〈 4화 〉 아이린 유리스(4)
* * *
마나란 곧 세계의 의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것이 마나였으며, 인간은 마나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는 것이 세계의 법칙이었다.
검이든 마법이든, 그 것을 다루는 실력에 따라 경지가 나뉘며 그 경지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영예또한 달랐다.
그 예로 검에서는 마나를 깨닫는 것이 유저, 마나를 다루는 것을 익스퍼트, 마나로 세상을 물들이는 경지를 마스터라 하였다.
검에 차오른 순백의 기운을 바라보는 저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몸에서 느껴지는 고양감에 혀를 내둘렀다.
마치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힘,
이런 거력이 사람이 낼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힘이 내 것이라는 게 퍽 놀라웠다.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리스 경은 그저 나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 수준이라면 저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걸까.
혹여나 날라올 암기를 살피는 것인지, 그저 두 눈을 부릅 뜬 채 암살자들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오로지 내 힘으로만 저들을 베어야 하는 거겠지.
사람을 벤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아까 한 명을 베었고, 내게 베인 이는 바닥에 쓰러져 서서히 싸늘해져가고 있음에도.
“후우...”
숨을 들이쉬자, 가슴께에서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몸을 순환하는 혈액처럼 요동치는 그 것은, 아마도 이 검을 휘감은 마나이리라.
한 번의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몸의 감각이 일어나고 있었다.
청각이, 시각이, 후각이. 당장이라도 저 암살자들을 단 칼에 베어내라며 날뛰고 있었다.
스릉
대치는 길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당연하게도 내 뒤에 있을 아이린 유리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런 암살 시도가 잦았는지 그녀가 당황하여 날뛰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저 내 뒤에 서서묵묵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
어쩌면 이 상황에 내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차기 방패였고, 황제를 수호하기 위한 방패에 필요할 어느 정도의 무력을 지니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호위는 지금 나였다.
한 손에 쥐어진 롱소드를 꼭 쥐며, 검에 일어난 백색 염화의 기세를 다시 한 번 드높인다.
화르륵, 아까보다 더욱 높아진 마나의 순도에 암살자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시간이 끌면 당하는 것이 저들이라는 걸 깨달은 거겠지.
섣불리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그저 방관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우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다.
암살자를 마주쳤을 때, 그 신분을 묻는 이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대답하지 않을 것이 당연할뿐더러, 쓸데없는 잡담으로 괜스레 시간만 끌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리 직접 암살자를 마주하니 절로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참으로 우습게도.
“어디서 온 누구냐.”
“......”
당연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에 가까운 침묵이었다.
저들이 그것을 답해주겠냐는 듯, 로페나 또한 나를 한심한 듯 쳐다봤다.
허나, 이런 어리석은 행동이 때로는 득이 될 때도 있다.
바로 지금처럼.
서걱
“...큭!”
아주 잠깐, 눈이 깜빡여지는 시간만큼이나 짧은 시간. 날카로워진 감각이 적들의 기세가 흐트러짐을 파악했다.
내가 내뱉은 말을 들은 이들이 잠시나마 긴장을 풀었는지, 검을 쥔 손가락의 힘이 풀어졌음이 훤히 보였다.
이 것이, 에반 프리드라는 이가 가지고 있던 감각인 걸까. 판단은 느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잠깐의 판단이 상황을 좌우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한 걸음, 두 걸음. 아마도 내 검과 암살자 사이에 놓인 간격.
허공에 수많은 실선들이 떠올랐다. 마치 거미줄처럼, 공격의 수를 보여주는 그 선을 따라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서걱
“크윽...!”
검을 쥐고 있던 이의 몸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를 보고 있던 암살자들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내가 노린 것이 바로 이 것, 단 한 순간에 당황이었으니까. 내가 던진 수가 멋지게 통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게 한 명을 벤 검을 거두지 않고, 다시 팔꿈치를 들어 그대로 옆으로 다가오는 이를 대각선으로 베었다.
허공에 떠오른 실선들을 바라보며, 그런 한 편으론 저 멀리서 몸을 피하고 있는 아이린을 바라보며.
마나가 순환하는 몸이란 내 생각보다도 훨씬 가벼웠고, 내 의지보다도 육체가 먼저 그 행동을 실천하고 있었다.
하나, 둘. 내게 향하는 검의 개수.
가슴, 옆구리, 허벅지. 다가오는 검을 한 번의 휘두름으로 쳐내며,그로 인해 빈틈이 생긴 이들의 가슴을 거침없이 베어냈다.
검이 살을 가르는 소리가 어째선지 불쾌하게만 느껴져 눈살이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망설여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행동에 주저함은 없었다.
베고자 한다면이미 베어져 있었고,막고자 한다면이미 그 일격을 막은 뒤였으니까.
암살자들의 손이 초조해져간다는 것을 나는 자연스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내 실력을 그들이 차마 당해낼 수 없었는지,살아남은 암살자는 낭패라는 듯 내 검을 막으며 중얼거렸다.
“익스퍼트라니...!”
채앵
마지막 남은 그의 검마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자, 암살자는 허망한 얼굴로 날아간 검을 바라보았다.
수준이 꽤나 낮은 건가. 제 아무리 이 몸의 재능이 있다한들,오늘 검을 처음 쥐어본 내 손에 이리 제압될 이들이지 않은가.
크리스 경이 가만히 있던 것도 아마 그런 탓으로 보였다.
경험이라, 아까 아이린의 방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몇 달간 쌓을 경험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
갑작스레 치솟는 짜증에 눈매가 가늘어졌다.
싸우던 도중 입 안의 상처가 다시 터졌는지 비릿한 맛이 감도는 것 마저 짜증을 더했다.
스윽,
암살자의 목에 검을 대자,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암살자의 표정은 초연해보였다.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듯, 목에 검이 놓였음에도 암살자는 그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런 암살자를 잠시 바라보던 찰나, 옆에 다가온 크리스 경이 암살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 온, 누구냐. 처음 내뱉었던 것과는 그 말의 무게가 달랐다.
손에 쥔 칼이 쓰러진 이의 목을 파고들었다. 한 줄기의 빨간 피가 검에 흐르고, 그 목구멍이 좁혀지는 움직임마저 보일 만큼이나 가까운 거리였다.
잠시 숨을 고르고, 쓰러진 암살자에게 크리스 경은 입을 열었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 물음이리라.
“어디서 온, 누구냐.”
목숨을 위협하며, 상대의 목숨 줄을 꽉 쥔 이의 협박이었다.
말한다 한들, 설령 말하지 않는다 한들 상관없었다.
이미 철혈의 핏줄을 노린 이상, 암살자의 말로가 끔찍하리란 것은 이미 예정된 사실이었으니까.
목에 칼이 있음에도, 암살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차라리 죽이라는 듯 경멸 섞인 시선에 피식 웃은 크리스 경은이내 검을 휘둘러 암살자의 목을 그었다.
고문이라도 할 줄 알았건만, 의외로 빠른 처리에 놀라자 크리스 경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을 하지 않을 때 고문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때때로 이렇게 빠르게 처리하여 후환을 없애는 것도 방법이지. 이 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조사해서 알아내면 될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유리스의 방식이다. 크리스 경이 덧붙인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제국을 수호하는 방패, 그로인한 위명은 설령 불가능하다 불리는 것마저 가능케 할 정도였으니.
아마 이들이 어디에서 온 암살자인지 알아내는 것은 순식간의 일일 터였다.
시야에 들어온 것이 온통 빨간 색이라, 나는 두 눈을 한 번 끔뻑인 뒤 시선을 돌렸다.
혹여 아이린이 다치진 않았을까.
그녀가 다쳤다간 내 목이 위험할 테니, 아직 돌아갈 방법을 되찾지 못한 지금 그녀의 상태는 꽤나 중요했다.
허나 그런 걱정은 필요없다는 듯, 내가 다가가자 아이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제 옷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얼굴에 묻은 피를 여상스럽게 닦아내는 로페나도, 목이 잘린 시체의 옷을 뜯는 크리스 경도, 그리고.
사람을 죽였음에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지금의 나도.
무엇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어서, 그저 헛웃음만 지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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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저에 돌아가면 아마도 발칵 뒤집히리라.
저택에 돌아갈 때까지도 은연중에 품고 있었던 생각은, 도착하여 경비대장을 본 순간 단번에 깨져나가고 말았다.
“암살시도가 있었습니다.”
“누구를 노린?”
당연하지 않은가. 나나 크리스경, 로페나를 노릴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차분히 경위를 설명하자 그 설명을 듣던 경비대장이 잠시 눈살을 찌푸리곤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알겠네.”
“...네?”
너무도 덤덤히 대답한 그의 모습에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공작가의 장녀에게 암살 시도가 있었는데, 고작 알았다는 대답으로 끝나는 것인가.
내가 생각했던 것은 적어도 기사들을 풀어 혹시 모를 위협을 제거한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아이린의 안부라도 물을 거라 생각했다.
다쳤는지, 혹여 놀라지는 않았는지.
아이린이 그런 것에 무감각한 것을 익히 알고 있던 자라 한들, 그 상투적인 말 한 마디조차 나오지 않음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
괜찮으신가, 다친 곳은 없으신가. 그 한 마디가 이토록 듣기 힘든 말이었던가.
암살시도가 있었다는 대목에서 눈살을 찌푸린 경비대장의 심정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한심해하는 표정, 단순히 암살시도를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불만족스러워하다니.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겨우 참으며, 경비대장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표정이 좋지 않은데.”
“...아닙니다. 그냥, 속이 좋지 않아서.”
“생각해보니 자네가 사람을 죽인 것은 오늘이 처음이겠군. 꽤 고생했겠어. 그럼 수고하게.”
선선히 웃는 그의 얼굴은 선한 얼굴의 표본과도 같았으나, 나는 그 얼굴에 구역질이 차오르는 것만 같아 다급히 자리를 피했다.
한 사람에게 향하는 그 얼룩진 책임의 편린을 느꼈을 뿐인데도, 온 몸을 누르는 중압감이 느껴지는 듯 했다.
“...하아.”
마침내 자리를 한참이나 벗어나 정원에 다다랐을 때쯤, 속을 꽉 막고 있던 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숨을 토해냈음에도 편해지지 않는 속에 비틀거리자, 갑작스레 어깨에서 아릿한 통증이 전해져왔다.
“다쳤나.”
언제 베였는지, 어깻죽지에서 묻어나오는 피에 얼굴이 구겨졌다.
피, 그 새빨간 색이 눈에 들어오자 괜스레 머리가 아파왔다.
사람을 베어 넘기는 그 촉감, 살이 검에 갈라져 뭉텅이로 잘리는 그 광경이 눈에 선했다.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마치 귀 옆에 심장이 있는 것만 같은 감각이 영 불쾌했다.
상처를, 치료해야겠지.
어지러운 생각의 파편 속에서 겨우 그 생각을 끄집어냈을 때, 어느새 내 발걸음은 의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어두운 복도를 초 하나를 의지하여 걸어가자, 마침내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방문이 보였다.
똑똑.
혹여나 누가 있을까 두드렸지만, 아무도 없는 듯 그 안은 고요한 울림만 전해져 왔다.
끼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켠에 쌓인 붕대가 보였다.
붕대 감을 줄은 알아서 다행인가. 평소 같았으면 소독이나, 하다못해 약이라도 발랐겠지만.
어지러운 머릿속은 단지 붕대를 감아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스윽,
옷을 내리자 갈라진 상처가 보였다.
뼈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에 베인 상흔이 꽤나 깊은 것이 보여 여태껏 자연스레 팔을 움직였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윽.”
붕대로 감싼 상처가 욱신거려 신음이 새어나왔다.
마나를 순환시킨다면 며칠 안가서 완전히 낫겠지.
예전 같았으면 요란을 떨었을 중상이었으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 정도 상처쯤은 몇 번이고 겪어왔다는 듯, 정신은 어느새 이런 상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처를 감느라 물고 있던 붕대를 뱉어내고, 한켠에 놓여있던 침대에 몸을 뉘인다.
째깍, 째깍.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 묘한 백색 소음에 집중하는 찰나, 문 앞에 갑작스레 들려온 발소리에 몸을 일으켜 초를 들었다.
화악
단번에 켜지는 불빛. 어두웠던 의무실에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빛이 들어오고, 이내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 앞에 서있는 여인의 얼굴에, 내 눈빛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불도 안 켜고, 여기서 무얼 하는 거죠?”
"...아."
차가운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 푸른 눈이 고요를 가르고 단 번에 폐부를 꿰뚫자, 입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 잠에 들려 했는지, 보라색의 네글리제를 입고 있는 아이린이 나타남에 나는 멍하니 입을 살짝 벌렸고.
“하아.”
그런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지, 옅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내 어깨에 감겨 있는 붕대를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 다쳤군요.”
내가 다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걸까. 차오르는 의문에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고저 없는 시선에 저절로 입이 꾹, 하고 닫혔다.
“그리 심하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네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다쳤으면 호위를 바꿔야 해서 물은 것이니, 쓸데없는 착각은 하지 말길 바라요.”
그런 거였나. 잠시 걱정해준다는 생각에 기뻐했건만, 전부 내 쓸데없는 망상이었다는 것에 입꼬리가 비틀렸다.
나를 응시하는 저 푸른 눈동자에 비치는 것이 내가 아닌 나의 필요성이라는 사실이,어째선지 고깝게만 느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