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벽을 넘어갈 준비.
“스타 마트의 창고를 이용해 지역 빵집에 저가로 납품을 하게 된다면 빵값은 자연스레 낮아지고 우리는 밀가루 유통에서 수익이 생기게 됩니다.”
이지연 대리의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래서 마트 총괄인 김민욱에게 가능한지 물었다.
“스타 마트가 지역 빵집의 밀가루 창고가 되는 것이 핵심인 거 같은데, 마트 총괄로서 가능하겠습니까?”
“그게, 힘들 것 같습니다. 마트에도 공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 매장들은 대부분이 지역 밀착의 작은 마트이다 보니 몇백 포대씩 밀가루를 쌓아둘 공간이 나오지 않습니다. 팔레트로 쌓는다고 해도 무리입니다.”
생각해 보니 제대로 된 주차장도 없는 스타 마트도 있었다.
김민욱이 난색을 보일 만했다.
“그리고 창고로서 역할을 한다고 해도 포대가 아닌 팔레트로 거래해야 하는 밀가루 특성상 배송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지역 빵집까지 배송하는데 지게차 비용도 문제라는 거군.”
“네. 팔레트로 인해 작은 마트에서는 업무와 공간에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고, 보관과 지게차를 이용한 비용까지 계산한다면 수익이 낮을 겁니다. 그 계산을 해봐야 합니다.”
크게 남길 수 없는 상품이다 보니 단가 계산을 몇 번이나 해야 할 것 같았다.
“헌데, 우리는 해운물류 회사가 있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직 수입해서 항구에서 창고를 운영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게 더 맞을 수도 있겠군. 그리고, 아까 보니 제분업체는 직영 유통을 운영하지 않았으니, 제분업체에서 나온 밀가루와 수입 밀가루를 같이 파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우선 단가 계산부터 한번 해 보지.”
어느 정도 각이 보이자 머리를 뭉쳤다.
제분 업체에서 최대 매입을 하고, 외국에서 밀가루도 들여와 각 지역의 창고에서 팔레트 25포대 단위로 판매한다는 로직이 세워졌다.
그리고, 이것도 지역 빵집의 조합화를 이루어 미리 지역에서 소비되는 밀가루 양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런 지역 빵집 조합을 구성하는 일은 이지연 대리가 맡기로 했다.
하지만, 일 때문에 뒤늦게 한국에 온 스타 물류의 정경배 사장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표님. 이게 정확한 계산을 해봐야 하겠지만, 마진 10~20% 보고 하시게 되면 물류비에서 마이너스가 날 수 있습니다. 특히나, 통밀을 들고 와서 우리가 제분하는 게 아니라 제분된 밀가루를 가지고 오는 거라면 시기에 따라 단가 계산을 꼼꼼하게 해야 할 겁니다.”
정경배 사장은 물류비를 걱정했다.
보통 무역선이 LA에서 부산까지 직행 연비운항을 한다면 보름 정도 걸리는데, 몇천 몇만 톤짜리 배를 밀가루만 싣고 오는 게 수익이 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아무리 밀가루가 밀봉 포장이라고 해도 그 밀가루 맛이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 그대로 유지가 되는지도 확인해 봐야 했다.
“쉬운 게 아니네, 쉬운 게 아니야.”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대부분의 밀을 수입해 오지만 거리가 너무 멀기에 힘이 든 사업입니다. 물류비를 줄일 수 있는 그 틈새를 발굴해야 합니다.”
“틈새? 밀가루에 틈새가 있는 거야?”
“네. 중국의 만주 지역을 한번 알아보십시오.”
정경배 사장은 지도를 가져와서 지역을 보여주고는 구글어스를 켜서 그 지역을 위성 사진으로 보여주었는데, 장춘시와 하얼빈시의 양 사방이 다 밭으로 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만주 벌판이라고 불리는 땅에 선양시, 장춘시, 하얼빈시가 있는데, 그 도시들을 잊는 경작지가 엄청납니다. 러시아 국경 인접까지 밭이 있는데, 한반도의 크기보다 더 큰 면적에서 기업형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와, 대단하군. 중국에서 농산물이 생산되는 곳은 따뜻한 강남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가 장난 아니었네.”
“예전에는 강남땅에서 나는 곡식이 하북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고 했었는데, 이젠 아닙니다. 예전에는 이 북방 땅이 습지이거나 늪이었지만, 80~90년대 개간 사업으로 옥토가 되었습니다.”
위성 사진으로 면밀하게 보니 밭의 구역이 직각으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 기계와 장비를 동원한 현대적인 농업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북방지역에서 나는 밀가루가 중국에서 다 소비가 되고는 있지만, 한국으로 수입해 오는 비용을 계산했을 때 미국산 밀보다 저렴할 수 있습니다.”
미국산과 가격이 같더라도 실어 오는 물류비에서 이득이 남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산이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중국생산이라는 인식이겠지. 나중에 밀가루 원산지를 공개하게 될 때 중국산 밀가루라고 하면 반발이 있을 수 있어. 문제 될 소지가 있는 건 들고 오지 않는 게 맞아.”
달걀을 고무로 만들고, 버섯은 나무젓가락으로, 두부는 폐타이어로 만들어 파는 곳이 중국이었다.
아무리 관리되고, 멀쩡한 중국산 밀로 빵을 만들었다고 이야길 해도 빵과 밀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칠 터였다.
가장 가까운 옥토 지역이고,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도 중국산 밀은 수입 리스트에서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떠십니까?”
정경배 사장은 구글어스를 돌려 중국 북방을 지나 러시아를 보여주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위로 가면 항카호(湖)라는 서울시보다 큰 호수가 있는데, 그 주위로 밭이 엄청나게 펼쳐져 있습니다.”
위성 사진으로 보니 항카호에 인접해 있는 중국 땅의 엄청난 경작지가 보였다.
하지만, 러시아 쪽은 경작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같은 항카호를 끼고 있는 땅이라도 중국 쪽은 이미 기계 농업을 위한 개발이 되어있는데, 러시아 쪽은 아직도 개발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항카호 주위뿐만 아니라 러시아 쪽은 국경을 사이로 해서 미개발 지역이 많군.”
“네. 면적만으로 보면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친 크기일 겁니다. 중국에서 직수입이 되지 않는다면, 이 러시아 땅을 개발해서 여기서 밀 농사를 짓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기업형 농업을 러시아에서 직접 하자는 말이군.”
좁은 한국에선 대규모 농사를 하지 못하니 땅이 남아도는 러시아에서 농사를 해보자는 말이었다.”
정경배 사장의 말에 뭔가 대안이 보이는 것 같았다.
곡물 수확 시기에 따라 10~20% 요동치는 국제 밀값과 미국, 캐나다에서 실어 오는 물류비를 따져 봤을 때, 한반도 인근인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에 농장을 만들어 생산량 전체를 한국에 들여오는 것이 가장 맞는 방법 같았다.
뭐, 러시아산이라는 국적도 문제가 될 수 있긴 했지만, 중국산이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면 러시아의 이미지는 선녀급이었다.
“러시아에서 타국의 기업영농을 허용해 주느냐 안 해주느냐가 문제겠군.”
“모스크바가 있는 동유럽 옥토에선 다국적 기업들이 기업영농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동북아시아에서 땅을 개간하고 기업활동을 하겠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을 해 줄 겁니다.”
“좋아. 이거 한번 추진해 보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입해 오고 한국 제분업체에서 받고, 러시아에서 직접 수확한 밀가루를 들고 오게 된다면, 한국의 비싼 밀가루 가격도 낮춰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러시아 전문가와 기업형 농업의 전문가를 수배했고, 코트라를 통한 러시아 기업형 영농사업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다.
***
민욱이는 술과 음료의 판매가 호조이기도 했고, 이젠 다른 마트에 납품까지 되었기에 이런 유통망을 좀 더 활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전 마트를 만들 때부터 생각했던 PB상품을 준비했다.
우선은 본인의 친정과도 같은 거산 그룹과의 협업이었다.
거산은 예전 스타 라면을 인수해간 이후 용심과 옹두기에 이어 3위 라면 업체가 되었는데, 서로 간에 가장 피해를 보지 않고 이득을 보는 미니 컵라면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요리쇼라는 브랜드도 있기에 요리쇼 도시락과 레토르트 음식도 시작을 했다.
이름이 알려진 유명 쉐프들과의 협업으로 제품을 만들었고,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공장을 경기도와 부산에 만들었다.
그리고, 마트 유통용으로 닭가슴살 공장도 인수를 했다.
도시락과 컵라면, 김밥과 컵라면 같은 콤비 제품을 마트에 유통했고, 샌드위치와 닭가슴살 같은 건강 식단도 구성을 했다.
“이젠 LT그룹 식품부에 못지않게 문어발식 확장인데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식품 라인이 만들어지자 김민욱은 이거 때문에 욕을 듣지 않을지 걱정을 했다.
“문어발이라도 가격이나 양이 기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해.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둬. 그러면 욕은 듣지 않을 거야. 다품종을 해서 힘들다면 핵심으로 잘나가는 한두 개씩만 하는 것으로 하고.”
“네. 가성비를 가장 최우선으로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식자재값이 너무 오르다 보니 힘이 듭니다. 공산품이 아니라 수확 시기에 따라 가격 변동이 너무 심합니다.”
“다른 도시락 업체에서는 그럼 어떻게 대응하는데?”
“농사꾼들과 계약 재배를 해서 최대한 가격 편차를 줄이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럼 그런 방식으로 가야겠구먼. 아, 그러고 보니 러시아 농업을 위해 온 농사 전문가가 있으니 그 사람에게 한번 물어보고 자문을 구해 보자.”
***
“이 부분은 수요예측에서 커버를 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추운 북동 아시아의 밀 농사 전문가로 영입한 허장길 연구사는 도시락에 사용되는 채소 문제의 해결책을 쉽게 이야길 했다.
“도시락에 들어가는 채소는 크게는 7종류로 정해져 있습니다. 배추와 상추, 양배추, 양파, 파, 깻잎, 고추이죠.”
다른 채소가 없나 했지만, 진짜 저 7종류가 전부였다.
“이중, 흔하고 가격 변동이 가장 적은 깻잎과 고추를 제외하면 5종이 남지만, 양파, 파는 볶음으로 주로 제공되니 냉동, 냉장 보관되는 상품으로도 커버 가능합니다. 즉, 김치를 만드는 배추와 고기반찬에 같이 들어가는 상추와 양배추가 중요한 겁니다.”
“그럼, 이 3종류는 계약 재배로 확보를 하면 되는 거군.”
“배추와 양배추는 계약 재배를 하고 상추는 계약 재배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수경재배입니다.”
허장길은 영상자료를 보여주었는데, 미국의 실리콘 밸리 인근에 세워진 스마트 팜 빌딩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수요가 별로 없는 고수와 루꼴라, 바질을 주로 수경재배로 생산하는데, 고부가 가치 사업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나 좁은 땅에서 층을 올려 만드니 각광을 받겠군. 그 동네는 진짜 비싼 동네였거든.”
“네. 그래서 스마트 팜을 만드는 것을 추천해 드리는 겁니다. 여러 상추 이외에도 미나리와 새싹 채소들을 수확해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흠. 도시 영농이라.”
“대표님이 추진하시는 항카호(湖) 인근 기업농업의 목적이 공급 확대를 통한 가격 안정과 자급력에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도심형 스마트 팜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종합 농업인이 되겠는데. 뭔가 주객이 전도된 거 같잖아.”
“아닙니다. 그 종합 농업인이 글로벌 유통과 식량 기업들의 모습입니다. 유통망과 판매망 만을 가지고는 유통의 강자가 될 수 없습니다. 생산망도 같이 가지고 있어야 강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그룹의 수직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로군.”
대기업은 수직계열화를 함으로서 그룹 조직을 만드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장점만이 있는 조직이었다.
생산과 유통, 판매의 일원화.
이게 되는 대기업은 새어나가는 돈이 없기에 정말 웬만해서는 망하지 않는 기업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내부거래를 통한 여러 탈법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좋아. 이왕 밀 농사에 뛰어들었으니, 아파트 규모의 스마트 팜을 만들어서 진짜 농업기업이 되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