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민심(民心).
[한국에서 돈만 벌어가는 LT 그룹은 야구단을 팔아라!]
[부산 출신이고 부산에 가족들이 다 사는 애향심 있는 사람이 운영하는 야구단을 응원하고 싶다!]
[LT는 야구단을 스타 그룹에 팔아라!]
[20년 넘게 우승 못하는 야구단이 야구팀이가?]
모니터링 용으로 중계진의 자리에도 화면만 보이는 모니터가 설치가 되어 있었는데, 이 현수막 화면을 본 캐스터나 해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마디 말을 잘못하면 자리가 날아 갈 수도 있기 때문에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음. 아…참 안타깝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일이 풀리길 기원합니다.”
아무런 음향이 없으면 또 방송사고가 난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캐스터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곤, 고갤 돌려 제작진에게 양손을 돌리며 화면을 변경하라고 어필을 했다.
그제야 외야 관중석의 현수막을 비추던 카메라가 돌아갔고, 다시 중계가 이어졌다.
***
그리고, 현수막 내용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산 사람들이 대단하다며 인터넷에 접속했다.
야구 이야기로 핫한 스포츠 전문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스포츠 게시판이 있는 종합 커뮤니티까지 난리가 났다.
-저 현수막 보니 속이 다 시원하네. 20년 넘게 우승 못하는 야구단이 진짜 프로 야구단이가? 아마추어지.
└저희 독수리도 있습니다만.
└거긴 절간의 부처님들 아니었음? 그러면 아마추어라고 인증 된 거지 ㅎㅎ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 마음이 느껴지네. 지역 기반의 스포츠인데, 오너가 부산에 안 살고, 아니 한국에 아예 없고, 본사도 서울이고, 국적까지도 외국인이면 응원할 맛 안 나지.
└LT그룹 회장은 한국 국적입니다만.
└군대 안 가는 40살 넘어서 국적 취득했잖아. 개새끼야! 물타기 하지마!
└그래도 한국 국적은 맞잖아.
-그런데 이번에 LT그룹 후계자로 왔다는 둘째 아들은 아예 한국말도 제대로 못 한다고 하던데, 그럼 시발 그게 한국인이냐? 40 넘어서 국적 따면 뭐해.
└그래도 좋다고 LT에서 나온 물건 사주는 사람 많음.
└시발 나부터 LT 그룹 불매운동 들어간다.
└헐 한국말도 못 하면 그거 외국 놈이나 마찬가지잖아.
-글로벌한 기업 세계에서 회사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한다. 대국적으로 생각해라.
└선족이 어서 오고!
회의실에서 별 맥주를 마시며 중계방송을 봤고, 인터넷에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이것보다 꿀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대표님. 우리도 저 방법으로 당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긴 한데, LT는 업보가 쌓인 거지. 그 업보가 있다 보니 야구장에서도 팬들이 현수막을 카바해 주는거고. 민심은 천심이야. 그리고 그 민심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가격 파괴죠.”
정윤이가 자신 있게 이야기 했다.
“그래. 사람들은 단순해. 자기에게 손해 안 나게 이득을 주는 사람을 좋아해 준다고. 우리는 그렇게 가격 낮은 물건으로 이득을 준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가야 해.”
“LT처럼 업보가 아닌 긍정 상생 이미지로 가야 한다는 거군요.”
김신현은 LT그룹의 백화점에서 나름 고급 명품들을 향유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걸 알지만, 그런 고급 명품을 사 입는 사람들이 LT편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대체재는 어디에나 있기에.
하지만, 반대로 실 생활에 도움을 주는 싼 가격으로 물건을 팔아 준다면 청원한 장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점수를 딸 수 있을 터였다.
현수막에서 칭찬을 받은 스타 코퍼레이션에 비해서 LT그룹은 난리가 났다.
그들도 몇 년 만에 6위에 올라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선 것이라 임원진은 물론이고, 한국에 와 있는 심정호 회장도 중계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거 빨리 카메라 돌리달라고 해!”
같이 야구를 보던 임원이 벌떡 일어나서 카메라를 돌리라고 했지만, 그 말이 카메라 감독에게 전해질 리 없었다.
“지금 우리 LT의 이미지가 저 정도인가?”
심정호 회장은 충격을 받았다.
현수막이 펼쳐져 있어서 안전 요원들이 걷으려고 했으나, 관중들은 현수막 내용을 지지한다는 듯이 직원들을 막아선 것을 그대로 보았다.
그리고, 현수막을 그대로 두라는 외침까지.
자신이 일본에 주로 있는 동안 한국에서 LT 그룹의 이미지가 이렇게 까지 되어 버렸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야구단에 투자를 안 해준 것도 아니잖아?”
심정호 회장의 말에 다들 LT 그룹의 평판이 이렇게 된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황전무 이유를 말해봐.”
“흐음. 국적 문제가 가장 큽니다. LT 그룹에서 수출하는 몇몇 제품에서 Made In Japan 까지는 생산지가 그런 것이기 때문에 괜찮지만, 해외에서 한국 기업이 아닌 일본 기업이라고 내세우는 것 때문입니다.”
“음….”
심정호도 알고 있는 이야기 였고,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 였다.
일본이 잘나가던 시기 일본과 한국에서 같이 사업을 하며 일본의 버블기에 동남아시아에 LT도 진출을 했었다.
당시에는 일본이 잘살기도 했고, 하이테크 선진국이라는 관념이 있었기에 껌을 만들어 팔더라도 일본의 기업이라고 하면 더 올려 쳐주는 마인드가 있었다.
그런 것이 아직까지 이어졌기에 동남아든 어디든 LT가 진출 할 때는 일본 기업으로 진출을 했었다.
“일본 기업이라고 이야길 하는데, 한국에서 유통업으로 크게 수익을 얻어 일본의 주주들에게 돈을 퍼주고 있다고 르포 프로그램이 나왔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이 방송 안되게 막았어야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심정호 회장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회장님부터 자제분들이 다들 일본 국적을 유지하다가 40살이 넘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좋지 않게 봅니다. 그런 부분에서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자들이 좋게 보지 않습니다.”
심정호는 둘째 아들 심재민을 쳐다봤다.
하지만, 심재민은 자신에게 군대를 가라는 눈빛으로 보이자 기겁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한국 군대에 가지 않았기에 아들들에게 강제로 입대를 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야구단에 돈을 더 넣어. 성적을 좋게 만들어서 이미지 쇄신할 수 있게 만들어 봐.”
심정호 회장은 기업의 이미지를 올릴 방법이 야구단 밖에 없다는 것이 짜증 났고, 20년 가까이 우승 근처도 못가 본 성적에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날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11:1로 LT 마린스가 대패를 하며 끝이 났다.
- 그 현수막 다시 내걸어라.
- 진짜 LT는 야구단 팔아라!
- 야구 탈덕한다.
탈덕 한다는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LT의 파란 유니폼과 글로브를 모아 불을 지르는 사진도 올렸다.
- 와 상남자네! 난 최원동 투수 이니셜 유니폼이라 차마 태우진 몬하겠다.
└ 나도 염종식 투수꺼라 못 태우지만, 진짜 저 탈덕하는 사람 마음이 내 마음임.
-내가 만든 유니폼임. 어떰? 이렇게 나오면 산다 안산다?
파란색의 LT 마린스의 유니폼에 스타 코퍼레이션의 별 모양 로고를 합성한 유니폼을 올렸는데, 이 사진에 좋아요가 엄청나게 달렸다.
***
[요즘 인터넷 분위기 돌아가는 거 보면 우리 LT 그룹 망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하냐?]
-나도 어제까지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 야구 지고, 현수막 나오고 하는 거 보니 우리 회사 브랜드 이미지 완전 개 똥망이네.
-나도 인원 감축 한다고 할까봐 겁난다. 우리 마트 망하면 우짜지.
└우짜긴 LT마트 망한 자리에 스타마트가 들어가서 영업하겠지.
└하진, LT가 신성전자처럼 기술을 가진 기업도 아니고, 그냥 물건 가지고 유통만 하는데, 대체할수 있는 기업이 많네. 급 기분 좋아 졌어~
-난 스타마트보다 뉴세계나 SG유통에서 잡아먹어 줬으면 좋겠다. 거기는 유통인데도 직원 대우 좋다고 하던데.
└일본식 연봉체계나 복지 진짜 극혐.
└오 그렇네. 그럼 태업해야지. 헤헤 뉴세계로 우리 매장 팔렸으면 좋겠다.
***
야구장 사건은 며칠 동안 계속 화제가 되었는데, 덕분에 스타마트에 한 캔에 1200원 하는 맥주가 있다는 소문도 자연스레 퍼졌다.
가격파괴 맥주가 있다는 소리에 값싼 맥주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더 늘어 날 수밖에 없었다.
“이게 한 캔에 1200원이라 맥주도 수출을 한다고 하던데.”
“아무 맛 없는 이걸? 와 이거 마시고 외국인들이 한국 극혐하는거 아니냐? 맛없는 맥주라고.”
“근데, 의외로 음료수처럼 라거 맥주 마시는 외국 사람들도 맥주 맛에 민감하지 않데. 값싼 게 거기도 최고라던데.”
“우리야 뭐 소맥 말아먹는 용도니깐 되는데, 외국도 그런지 몰랐네.”
“그런데, 스타마트에서는 저렴해서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맥주를 추구 한다고 하니깐 뭐 그런 방향의 맥주도 있어야지.”
“하긴, 다들 에일맥주의 깊은 맛이니 홉이니 뭐라고 하는데, 그냥 여름에 목 말라서 먹는 맥주는 시원해야지. 그러고 보니, 가격파괴 우유도 그렇고, 맥주도 그렇고, 방향성은 확실하게 가고 있네.”
“그건 진짜 나도 인정!”
***
“주류 부분에서 매출의 30%가 빠졌습니다.”
주류의 판매량 감소는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 세 달 만에 1000만 캔 판매를 찍은 별Lite로 옮겨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40여 명의 임원들이 들어찬 회의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다들 알고 있었다.
야구장에서 전국에 방송된 것이 컸다는 것을.
예전 뉴스가 나왔을 때는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괜찮은 부분도 있었지만, 야구 중계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 회자할 수밖에 없었고, ‘관중의 난’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야구 팬들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특히나 10년 넘게 8워 9위 꼴등을 찍고 있는 야구단의 성적이 더 불을 지른 것이었다.
“마트 전체의 매출은 21% 이상 감소했으며, 몇몇 지점의 경우에는 처음으로 적자전환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고 20% 넘는 매출의 감소는 중국에서의 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일본에서 온 지주사 신흥 홀딩스의 야마모토 야스키는 이 매출 감소를 아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중국들과 다르다곤 하지만, 지금 매출이 빠진 것은 아주 심각해 보입니다. 개선책이나 대응책이 있다면 발표해 주십시오.”
이미 LT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얻는 수익이 큰데 이렇게 이미지가 망해 버리면 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야마모토 야스키의 말에 다들 신정호 회장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신흥 홀딩스에서는 중국 사드때처럼 마트까지 다 박살 나 버릴까 걱정하고 있기에 개선책을 내놓아야 했다.
“기업의 총수를 교체하는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먼저 유업체를 매각하고, 적자가 난 지점도 매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 개선을 위한 방향은 없습니까?”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그럼 잠시 회장님이 물러나는 방안은 어떠십니까?”
야마모토의 말에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회장의 용태를 대 놓고 물어볼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걸로 된다면 고려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