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중계방송.
“이이제이(以夷制夷)로 가자고?”
“네. 기자를 이용해서 기사로 작업을 했다면 우리도 그대로 가면 되는 거죠.”
“어떻게?”
“기사에 보면 2500억 내외의 매각 금액이라고 했는데, 이걸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우리도 기사 내는 거죠.”
“오. 그럼 우리는 인수하려고 하는데, LT에서 5천억 원을 달라고 했다고 하는 거로? 우린 2500억으로 인수하고 싶은데, 저쪽에서 너무 과하게 금액 부른다고?”
“네. 그겁니다. 저쪽에서 먼저 기사로 허위사실 유포하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해주는 거죠. 물론, LT 쪽에서 허위사실이라고 고소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 거기나 다 침소봉대한 거니깐 고소해도 각하될 겁니다.”
언론을 이용한 이미지 작업을 LT에서 한다면 그 이미지를 똥값으로 만들어 주는 기사를 내어 그 작업을 망치게 하자는 말이었다.
방법은 좋았지만, 그렇게 되면 LT 그룹과 완전히 척지게 될지도 몰랐다.
“이렇게 하자고, 금액적인 부분 빼고, 제시한 금액이 너무 비싸서 우리는 인수 포기했다고 기사를 내지. 그 정도라면 문제없겠지. 정윤아 김길재 기자에게 연락해서 기사 좀 올려달라고 해.”
***
“하하하. 요거 봐라.”
황채근 전무는 신문에 나와 있는 기사를 보곤 웃었다.
이미지를 위한 선방기사를 우리가 내니 저쪽에서는 우리 LT의 제시 금액이나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인수/매각 건이 불발되었다는 기사를 내었다.
그리고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역시 LT 그룹 클라스 어디 안 간다면서 돈 비싸게 받을 생각만 한다고 욕 댓글이 박혀 있었다.
사죄의 의미로 매각한다는 기사로 나름의 이미지 쇄신을 했는데, 비싼 매각금액과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 인수 포기하게 만들었다며 욕을 먹고 있었다.
“그래. 이래야 서로 주고받을 맛이 나지. 김 비서 진짜 TF팀 하나 만들어서 사람들 준비시켜. 진짜 매각하려는 거처럼 더 밀어붙여 보자고.”
시간 끌기로 유업체 매각을 타진하는 동안 이미지 회복이 가능해 보이니 진짜 매각하는 거처럼 팀을 꾸려서 이미지를 만들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응? 스타 소주, 스타 맥주? 이것들이 언제 이런 걸 만든 거야.”
인수/매각 건 불발 기사 밑으로 초록색 병 소주와 맥주 광고가 있었는데, 바로 스타 음료에서 만든 스타 소주와 스타 맥주였다.
그리고, 광고 하단에는 가격 파괴 맥주! 별 Lite! 라는 발포주까지 광고가 되어 있었다.
“별소주? 별맥주? 전략 기획실 이 새끼들 다 뭐 하는 거야! 경쟁자가 나타났는데 왜 이 내용 보고가 없었던 거야!”
매각 건으로 재미있게 놀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었지만, 실질적으로 주류 매출에 바로 타격이 있을 것 같은 새로운 소주와 맥주의 출시에 황채근 전무는 화가 났다.
***
MT를 가기 위해 마트에 들른 대학생들은 고기를 샀으니 주류를 사기 위해 술 진열대로 움직였다.
진열대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소주와 맥주가 출시되었다는 입간판이 보였다.
“별소주? 처음 보는 소주인데, 이건 뭐지? 별맥주도 있네. 스타 음료에서 나온 거네.”
“파란색 저건 큰 캔인데 한 캔에 1200원이라고? 싸다. 이거 사자.”
다른 맥주들은 한 캔에 2200원에서 3500원까지도 가격이 나갔는데, 500ml 한 캔에 1200원이라고 하니 손이 절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건 어디 메이커지? 유럽에서 수입해 온 건가?”
맥주 캔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눈에 익은 글귀가 보였다.
“오! 이거도 가격 파괴 그거네.”
“가격파괴 우유는 들어봤는데, 맥주는 처음 들어 보는데.”
“가격파괴 맥주 ‘별Lite’래.”
“가격파괴면 그 스타 음료에서 나온 거잖아.”
“맞아. 이제 맥주도 가격파괴인 건가? 그런데 이거 알콜이 4.5도인데. 너무 약한 거 아냐?”
“소맥 해 먹을 건데 약하면 어때 소주가 알콜은 채워주겠지.”
“하긴, 소맥으로 말아 먹고 양주 타 먹을 건데 뭐. 그럼 이거로 다 사자.”
“소주도 그럼 같은 회사인 별소주로 가자. 싸니깐 20캔 살 거 30캔 살 수 있겠네.”
가격파괴 우유 사건으로 인해 담합을 뚫어가며 저렴한 물건을 공급한다는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도 스타마트에 자주 왔고, 그런 젊은 세대들이 저렴한 별Lite 맥주를 사가기 시작하자 알음알음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
“우유 생산을 위해 공장을 세웠지만, 쿼터제로 인해 공장을 돌릴 수 없자, 그 설비를 맥주와 소주 생산으로 돌린 것으로 파악됩니다.”
황채근 전무는 보고를 듣자 짜증이 났다.
우유를 마음대로 만들어 팔게 해뒀으면 이렇게 새로운 경쟁 소주와 맥주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별lite 인가 하는 저 가격파괴 맥주는 뭐야? 어떻게 저 가격으로 팔 수가 있는 거야?”
“전무님 별lite는 맥주가 아닙니다. 알콜이 5% 미만이라 발포주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발포주? 그거 일본에서 잘 팔린다고 우리도 한번 추진했던 거 아니었어?”
“맞습니다. 일본에서는 나름 발포주가 팔리지만, 한국에서는 설문조사 결과 5도 미만의 맥주에 대한 수요가 없어서 도입을 중지했었습니다.”
“수요가 없을 거라고 조사결과가 나왔는데, 지금 품절 사태가 일어나고 있잖아. 그때 설문조사 했던 담당자 새끼 찾아서 잘라버려.”
사실 황채근 전무도 스타 음료에서 나온 별소주와 별맥주, 별Lite를 구매해서 마셔봤었다.
별소주는 주정으로 만드는 소주 맛이라 거기서 거기였지만, 별맥주는 라거 타입이라도 단맛이 가미되어 일반적인 라거보단 에일맥주에 가까웠다.
그리고, 별Lite는 알코올도수가 낮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홉 함량이 작아서 그런 건지 진짜 싱숭생숭한 맥주 맛이었다.
보리차에 탄산을 섞은 그런 가벼운 라거 맛이라 특징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밍밍한 맛이라도 가격이 싸다 보니 품절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은 ‘종가세’라고 하는 주세법을 술에 매겼는데, 맥주의 경우에는 72%가 세금으로 붙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4캔 1만 원 하는 행사를 할 때 한국 맥주는 세금이 커서 행사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캔 2500원을 넘어 500ml 큰 캔 가격이 마트에선 1200원, 편의점에서는 1600원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손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발포주 수요 설문조사를 할 때 가격 측면을 빼고 설문조사를 했으니 발포주 수요가 없다고 결과가 나온 거지. 발포주가 기타 주류로 분류되어서 세금이 30% 밖에 없으니 가격이 40% 낮을 수 있다고 설문조사를 했으면 달랐을 거잖아!”
그 세금 40%의 가격 차이가 지금 별Lite의 가격파괴를 만들어 내었고, 납품하는 족족 품절이 되는 돌풍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특히나 발포주라고 광고하지 않고, 그냥 저렴한 맥주라고 광고한 것이 컸다.
“우리도 발포주 준비해. 가격파괴 맥주처럼 대가리에 딱 새겨질 정도로 좋은 네이밍을 만들어와. 맥주의 깊은 맛이니 홉이 얼마나 들어갔니 하는 개소리 하는 주류 담당자가 있으면 그 새끼 LT유업으로 보내. 같이 팔아 버리게.”
LT 주류는 나름대로 맥주 대회에 나가거나 해서 라거 부분에서는 수상을 해 올 정도로 맥주의 맛을 나름대로 구축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에일맥주나 개성을 가진 그런 라거 맥주를 만들기 위해 주류를 개발했는데, 그 방법을 다 바꿔 버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한국 사람에게 맥주는 그냥 소맥 만들어 먹고 야구나 축구 볼 때 치킨이랑 먹는 곁들이 음료일 뿐이야. 그런 곁들이 음료는 맛보단 시원한 목 넘김이 더 중요한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엡.”
“그저 소주에 말아 먹을 수 있는 값싼 맥주를 만들어. 그게 발포주든 뭐든 싼 맥주가 최고인 거라고!”
***
“이서야. 오늘 KBC 야구중계를 꼭 보라고?”
“네. 오늘 6위인 LT 마린스와 5위인 키다리 히어로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인데, 그게 지상파에서 중계될 예정이에요.”
“오, 단판 승부라서 주말 지상파에서 중계를 해주는 거구나. 근데, 여기서 뭐가 있어?”
“네. 그때 이야기한 작업의 마지막 작업이 오늘 들어갑니다.”
“아, 그거?”
통화 녹음을 공개하기 전에 이서와 무영이와 생각했던 작업이었다.
통화 녹음 공개 이후 폭력 사건까지 동시다발로 이루어지다 보니 마지막 작업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과연 반응이 어떨지 기대를 하면서 별맥주와 치킨을 뜯으며 회사 회의실에서 직원들과 야구를 보고 있었다.
***
“야이 시바라, 별Lite 사왔어야지 왜 비싼 LT맥주를 사왔노? LT맥주 2병이면 별Lite 맥주 3병 살 수 있다이가.”
“그래, 이 새끼 이거 낭비벽 존니 심하네. 부르조아네 부르조아. 아부지 사업 잘나가시나?”
“싸게 더 먹을 수 있는 게 있는데, 왜 더 비싼걸 사왔냐?”
“야, 우리가 LT 마린스 팬인데, LT 맥주 묵어줘야 되는 거 아니가? 그리고, 소맥 하려면 소주랑 맞춰 줘야지. 별소주는 없던데? 그래서 그냥 LT 소주 맥주로 샀다.”
“뭐래 병신이 별소주 있거든. 니가 갔을 때는 별소주가 다 매진되었는 갑찌.”
“별소주도 있다고? 와- 인자 거기도 오만 거 때만 거 다 만드는 갑네.”
[따악!]
“어! 공 일로 온다!”
야구장 외야석에 앉은 친구들은 와일드카드 결정전까지 왔으나 경기 초반부터 8:0으로 LT 마린스가 박살이 나자 그저 싸 온 술이나 마실 수밖에 없었다.
“에이 썅놈의 새끼들 오늘도 더럽게 못 하네.”
“야, 그래도 작년보단 좋다. 작년엔 이런 거도 못 하는 8위였다.”
“그 우유 업체는 매각한다고 하던데, 야구단은 안 파나 진짜. 이놈의 마린스 시바끄.”
“엇, 저기 봐라!”
친구의 손가락을 따라서 보자 흰색의 길다란 현수막이 외야에 펼쳐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돈만 벌어가는 LT 그룹은 야구단을 팔아라!]
[부산 출신이고 부산에 가족들이 다 사는 애향심 있는 사람이 운영하는 야구단을 응원하고 싶다!]
[LT는 야구단을 스타 그룹에 팔아라!]
[20년 넘게 우승 못 하는 야구단이 야구팀이가?]
“그래, 시바끄. 몇 년째고 20년 가까이 우승 근처도 못 가는데, 팔아치아삐야지.”
“나도 저 현수막에 동의! 쌉동의!”
야구장 외야에 대형 현수막 4개가 펼쳐지자, 안전 요원들이 현수막을 치우려고 했으나, 이미 한잔 걸친 아재들이 안전 요원들을 막아섰다.
“20년 넘게 상위권 근처도 못 가는 새끼들은 주떼뿌야지.”
“저 말 틀린 거 있나? 그냥 놔두라!”
“놔둬라! 놔둬라! 놔둬라!”
주위 사람들도 현수막을 놔두라고 외치기 시작하자.
경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현수막을 본 관중들도 20년 넘게 고통을 받고 있었기에 다들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감독님 어떻게 할까요? 저거 잡을까요?”
티비 중계를 맡은 김형오 카메라 감독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걸 그대로 카메라로 잡으면 전국에 방송이 될 것이고, 분명 난리가 날 터였다.
하지만, 야구장에 모인 3만 명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다들 같은 마음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전 우유 관련으로 LT 그룹이 물의를 일으켰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김형오 카메라 감독은 결정을 내렸다.
“잡아. 한번 사고 치자.”
경기 중계카메라가 관중석을 훑으며 현수막을 막 발견했다는 듯이 그대로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