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95화 (195/203)

195. 나락. (2)

“응? 사진, 동영상?”

“저기, 저분이 내가 멱살 잡히고 했을 때부터 찍으셨으니깐 영상을 꼭 받아야 해.”

정윤이는 자신이 맞아서 구급차에 타는 와중에도 정신이 또렷했다.

“정윤아 일단 크게 안 다쳤다고 안심하면 되는 거지?”

“그럼. 그리고, 이거 내 폰이니깐 이걸로 빨리 김길재 기자에게 연락해.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거야 이거.”

“차 출발해야 하는데, 보호자 분 누가 타실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구급차에 내가 타야 했지만, 정윤이의 말처럼 처리할 게 있었다.

“신현아 싱가포르에서 막 와서 힘들겠지만, 네가 좀 가라.”

“네. 제가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가 같이 심재일을 막았으니 상황에 대한 건 이 친구에게 들으시면 될 겁니다.”

“대리 정명호입니다.”

구급차를 보내고, 영상을 찍었다는 같은 건물 개발자에게 동영상을 받았다.

그러곤, 정길호에게 들은 그대로 한마음 일보 김길재 기자에게 사연과 동영상을 보내니 바로 전화가 왔다.

“이거 진짜 엄청난 겁니다. 특히나 문구용 칼이라도 옷에서 떨어졌으니 이게 큽니다. 지금 바로 거기로 가겠습니다.”

새벽임에도 김길재 기자는 속보 기사를 먼저 올리고 현장으로 온다고 했다.

“일단 명호 씨는 여기 로비에서 두세 시간 정도 있으면서 취재 오는 기자들에게 동영상 쏴주고, 인터뷰 해 주고 하세요. 싱가포르에서 막 와서 피곤하겠지만, 부탁해요.”

“네. 맡겨주십시오.”

***

[단독 속보! 욕설 갑질 논란 동영상의 L그룹 S모 상무 스타 그룹 직원에게 폭력 휘둘러 현장에서 검거!]

-L그룹의 직계 재벌 3세로 알려진 S씨는 스타 마트의 본사 건물로 찾아가 여직원에게 폭력을 휘둘러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흉기도 준비해 갔었으나 행인들에게 제지받아 다행히 큰일은 나지 않았다.-

기사의 밑으로 몇몇 사람의 얼굴이 모자이크된 동영상이 첨부되었는데, 욕을 하며 놓으라고 하는 S씨의 모습과 모자이크되었기에 그럴듯한 흉기로 보이는 문구용 칼의 모습이 첨부되어 있었다.

***

“아니, 칼은 도대체 언제 들고 간 거야?”

급하게 회의실로 돌아와 기사와 영상을 본 황 전무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게, 회의실에서 비품이나 물품들을 때려 부수실 때 문구용 칼을 챙기신 거 같습니다.”

“아이고, 두야. 넌 그때 뭐 했어? 나서서 막고 했어야지. 그러려고 월급 받는 거잖아.”

“그, 그것이 주차하고 올라가자마자 바로 이렇게 되어서 손쓸 새도 없었습니다.”

“제길 어디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고?”

“동대문 경찰서입니다. 우선 그룹 법무 이사님들께 연락을 취했습니다.”

“써글. 이젠 우리 손 떠났다. 회장님께 연락드려.”

“괜찮겠습니까?”

“안 괜찮으면 어쩌라고, 이젠 묻을 방법이 없는데.”

1년에 한두 달만 한국에 있고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내는 회장을 한국으로 오라고 하는 것은 임원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방송 왜 못 막았냐고 물어도 심 상무가 저렇게 해서 못 막은 것으로 하자고. 그러고 보니 심 상무가 우리에게 면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네.”

“흠흠. 그럼 우리도 대응팀 만들고 비상 운영체제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

“방금 보신 영상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욕설 갑질 영상입니다. 이 영상에 나오는 L그룹의 S씨가 스타마트 대표에게 우유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납품을 중지하겠다고 하는 통화내용입니다.”

“이 영상으로 인해 우윳값이 비싸진 원인을 알았다고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데요. 이 영상에 나온 것들이 다 사실입니까?”

“네. 스타 마트의 비워진 진열대 앞에 놓여 있는 푯말입니다. 공식적으로 여러 업체에서 납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이건 담합 참여를 거부했기에 벌어진 영업 방해로 보이는데, 범법행위 아닌가요?”

“맞습니다. 우유 관련 산업을 주관하는 농림수산부에 문의한 결과 관련 사건에 대해 인지했고, 영상에 나온 담합이나 다른 문제가 더 있는지 왜곡된 우유 유통시장을 들여다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늦었지만, 다행이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추가로 새벽에 들어온 속보로는 이 욕설 갑질 영상의 S씨가 스타 마트 본사를 찾아가 직원을 폭행했다고 하던데요.”

“네. 맞습니다. L그룹의 상무로 재직 중인 S씨가 어젯밤 12시경 스타마트 본사 건물을 찾아가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S씨는 출동한 경찰에 바로 검거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언론에 저 욕설 영상이 공개되니 보복 폭행을 한 거 같은데, L그룹에서는 공식적인 반응이 있는가요?”

“사건이 늦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보니 L그룹 측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반응이 없습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유통 업체들에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모쪼록, 담합하지 마시고, 공정경쟁으로 올라버린 밥상 물가를 좀 낮춰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HBC 모닝 뉴스를 마칩니다.”

새벽 5시 50분에 가장 먼저 시작하는 HBC 뉴스를 시작으로 지상파와 종편 뉴스에 욕설 영상 건 보도가 송출되었다.

그리고, 후속 속보라는 띠를 달고, 새벽에 찾아와 보복 폭력을 행사하다 현장에서 검거되었다는 속보까지 보도가 되었다.

***

뉴스와 추가 속보가 나가자 이제까지 모른 척하고 있던 중앙 일간지에서도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보복하기 위해 찾아가서 칼을 휘둘렀다는 이야기까지 있자 커뮤니티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와 시발 이거 재벌 3세가 설치는 영화 베테랑이랑 같은 거 아니냐?

-우유 싸게 팔았다고 납품 중단되었다는 거에 열받았는데, 그런 잘못된 걸 고쳐보려고 하는 유통 업체에 칼 들고 찾아갔다는 건 진짜 미친 거지.

뉴스와 거기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니 완전히 여론이 돌아선 것 같았다.

“정진아 이 정도면 되는 거냐?”

“나서기 충분하지. 그렇지 않아도 어제 사람들 모여서 준비한다고 했어. 장소 신청은 이미 저번 주에 했고, 오후에 기대해라.”

“LT 쪽에서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연락 없고?”

“아직은 없는데, 회장이 한국에 없다 보니 책임질 사람이 없어서 그럴 거야. 그럼, 나도 오랜만에 LT 그룹 앞으로 가볼까나.”

***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고 담합을 일삼는 LT 그룹은 각성하라!”

“일본에서 좋은 건 배워오지 않고, 안 좋은 것만 배워와서 한국에 팔아먹는 LT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담합으로 소비자 주권을 침해한 LT는 할복할라!”

“할복하라! 할복하라!”

LT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단체의 시위는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했는데, 오랜만에 LT 그룹 본사 맞은편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인 사람은 30여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깃발은 10여 개나 되었다.

‘한국소비자연맹’, ‘한국상거래협회’, ‘바른 상행위협회’, ‘비정규지회’, ‘마트 서비스직 지회’ 등등의 유통과 관련된 시민단체들이 모인 것이었다.

정진이가 청소년 갱생협회에서 일을 했을 때 만들어 두었던 인맥이었는데, 변호사가 된 이후로도 꾸준히 상담을 해주고 했기에 정진이의 부탁을 받고 모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오늘 아침 뉴스까지 봤기에 명분도 좋았으니 시위장의 분위기도 좋았고, 여러 방송국에서도 촬영을 와서는 인터뷰를 따 갔다.

“마트에 과자를 납품해 주지 않아 동남아나 다른 나라의 과자를 수입해서 파는 게 우선 말이 안 되고요. 이런 식으로 유통 갑질을 하는 LT 그룹은 유통업에서 철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메인뉴스가 아닌 정오 뉴스에서도 이런 시위와 인터뷰 내용이 보도되자 스타 마트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기 시작했다.

“와 뉴스 보고 설마 진짜야 했는데, 진짜네. 매대가 이렇게 많이 비어있다니 놀랍니다.”

“근데, 가짓수가 좀 부족한 거 같지만, 수입 과자가 존니 싸네. 한국 과자랑 비슷한 용량인데 30% 가격이야.”

“시발 과자 만드는 밀가루도 다 같이 수입하는 밀가루인데, 왜 국산 과자는 그렇게 비싸게 팔고 있는 거지.”

“과자 스낵류도 담합해서 올렸겠지. 정부는 이런 담합 안 잡고 뭐 하는 거지.”

“담합을 적발해도 추징금 5억, 10억 내면 끝이니깐 담합하는 게 더 이득인 거지.”

“햐, 시발. 어질어질하네. 이런 유통이 꼬인 거 다 뜯어고쳐야 할 낀데.”

실제 상황을 본 이들의 글도 올라오자 더 화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 김민욱은 김이서를 통해 스타 마트에 납품을 중지한 업체 리스트를 슬쩍 커뮤니티에 올렸다.

“와! 명단에 없는 유통 업체를 찾는 게 빠르겠다. 거의 다 참여했다. 진짜 과잣값도 우유처럼 다 담합했는가 보네.”

“명단에 전화번호도 있는데, 이 양아치 업체들에 항의 전화라도 하자.”

“좋네. 소비자 주권을 한번 세워보자고.”

***

네티즌들의 항의 전화가 각 업체 담당 부서로 쏟아지기 시작하자, LT 그룹 눈치만 보던 업체들이 태세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스타 마트 김민욱 대표한테 연락해서 재납품한다고 이야기하고, 우리 홈페이지에 납품 재개했다고 알리는 사과문 올려.”

“그러면, LT 쪽에서 뭐라고 안 하겠습니까?”

“지금 자기 집에 불이나 있는데, 우리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겠어? 그리고, 창우나 다른 업체들도 다 그렇게 재납품하려고 할 테니깐 괜찮을 거야.”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LT 담당자가 뭐라고 하면,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핑계대도록 하겠습니다.”

한곳에서 태세 전환하며, 사과문과 공급재개를 하겠다고 사과문을 올리자 눈치를 보던 다른 업체들도 다시 물건을 넣기 시작했다.

아예 SG유통에서는 가격 파괴 우유를 납품받겠다고 연락까지 왔다.

집안에 큰불이 난 LT가 영향력을 이제 내세우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 섰기에 다들 나선 것이었다.

***

“상무님. 우산으로 다 못 가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십시오.”

심재일은 변호사의 말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우산 뒤로 숨어서 움직였다.

심재일은 현장에서 검거가 되었으나, 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피해가 경미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기로 한 것이었다.

“칼을 들고 찾아갔는데, 다른 의도가 있으셨습니까?”

“욕설 갑질 영상은 본인이 맞으신 겁니까?”

“다른 유업체들과 담합을 지시하고 압박을 주셨습니까?”

심재일이 대기업 재벌 3세이기에 평소라면 이런 질문도 하지 못했을 기자들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그룹 총수인 회장이 둘째 아들과 같이 한국으로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기에 심재일의 끈이 떨어졌다는 것을 기자들은 아는 것이었다.

심재일은 매섭게 물어대는 기자들에게 분노를 터트릴 수 없었기에 그저 이빨을 꽉 깨물고 차에 오를 뿐이었다.

[짝! 쫘악!]

좌우 양쪽으로 휘둘러진 손짓에 김재일의 몸이 휘청거렸다.

“못난 놈. 무능한 놈. 일본으로 돌아갈 준비해. 그리고, 출국하는 그날까지 방에서 나오지 마.”

일본에서 부랴부랴 들어온 심정호 회장은 꼴도 보기 싫다며 심재일의 뺨을 때리곤 방안으로 집어넣었다.

눈에 핏발이 선 심재일은 할 말이 많았지만, 그저 참고 방으로 올라갈 뿐이었다.

심재일이 위로 올라가는 걸 확인한 심정호 회장은 서울 자택에 모인 임원들을 날카롭게 쳐다봤다.

“저렇게 될 때까지 뭣들 한 겁니까? 방송이 안 되게 막았어야지요.”

“죄, 죄송합니다. 편성을 빼기로 약속을 하고 마무리 단계에 가 있었는데, 심상무가 그만….”

황 전무를 비롯해 임원들은 그저 책임을 전가할 뿐이었다.

사실 심정호도 알고 있었다.

후계자로 낙점되어 30살에 상무에 오른 차기 기업 총수에게 누가 직언을 할 수 있겠는가.

“이거 마무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뭡니까?”

“에 그게, 유업체를 포기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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