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나락. (1)
[…미친 새끼야 너만 우윳값만 올리면 되는데 왜 안 하는 건데? 납품 거부당해서 말라 죽고 싶어?…]
[…유통 질서가 꼬여 있는 부분은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래된 악법에 기대어 법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미친새끼가…]
생생하게 들리는 욕 섞인 말이 나오며 목소리에 따라 L그룹 S씨, 스타마트 L씨라고 자막이 나왔는데, S씨라는 이니셜 만으로도, 몇몇 사람들은 눈치를 챘다.
-L그룹으로 유통사면 LT그룹이잖아. 창업주 성씨도 심씨니깐 S씨가 딱 맞네. 야구도 못 하는 것들이 양아치 짓은 제일 잘하네.
댓글 최상단에 추천을 받아 올라간 댓글에는 대댓글도 엄청나게 달려 있었다.
-아니, 우유를 싸게 판다고 이렇게 납품 거부를 하니 우유가 비쌀 수밖에 없는 거지. 상식적으로 원유값이 더 비싼 일본의 우유 가격이 더 싸다는 게 말이 되냐.
└우윳값 담합하는 애들 광화문 앞에 묶어두고 돌 던지고 싶네.
가정주부인 정인자도 가뜩이나 오른 밥상 물가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이런 담합 관련 영상을 보고 나니 짜증을 넘어 화가 솟구쳤다.
우유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들도 이렇게 담합해서 가격을 올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괜히 유통 업체들이 괘씸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에 아파트 맘카페와 지역 맘카페에 푯말 사진을 올리고 유튜브 링크까지 첨부해서 글을 올렸다.
***
-미친 새끼는 저 S씨 아니냐?
-시바끄 가격 파괴 우유 출시했다고 납품을 중지하는 건 협박하는 거잖아.
└협박 전에 공정거래법이나 업무방해죄에 걸림. 이제 저 LT그룹 주옥 된 거임.
└뭐래? 주옥 안됨. 우리나라 법원 너무 쉽게 보네. 그냥 시끄러운 거 가라앉으면 없던 일 되는 거임.
└맞음. 헬조선식 엔딩될 거임. 스타 마트 사라지고, 스타 코퍼레이션은 유통업에서 교수형 당해서 사업 철수할 거임.
└와 시바 생각만 해도 존나 아찔하네.
-지금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 알잖음. 실시간 검색어 사라지고 나서 이런 일이 문제되어도 화제가 안 됨.
└맞음. 뉴스 검색해도 안 나옴. 한마음 일보 말고는 오히려 멸균우유 수입하는 스타 코퍼레이션 까는 기사만 있음.
└시발. 기레기 새끼들 돈이 안 되니 아예 기사도 안 써주네. 그 영상이 유튜브 핫 영상 순위에 들었는데도 모른 척함.
└방금 대안 언론인 ‘사실확인TV’에서 기사 올라왔음. 동영상까지 해서 다 올라옴.
사회/시사 문제는 물론 잡다한 화제가 올라오는 루니웹 커뮤니티를 보고 있던 임건호는 대안 언론에서 기사가 올라왔다는 댓글을 보곤, 기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다른 대안 언론과 지방지에서 기사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빠! 김길재 기자에게 문자 받았는데, 지상파 보도부에 있는 친구에게서 보도 편성 잡았다고 연락을 받았대요.”
“오! 그건 언제 나온다는데?”
“내일 아침 뉴스래요.”
“내일 아침 편성?”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내일 아침까지는 8시간 이상 남아 있었다.
LT 그룹이나 다른 곳에서 손을 쓰면 편성이 그냥 취소될 수도 있었다.
지상파나 종편에서 제대로 보도가 되어야 안심이 되지 벌써 낙관할 순 없었다.
“내 핸드폰은?”
“지금도 LT 쪽에서 계속 전화 오고 있어요. 무음으로 해서 두고 있는데, 문자랑 카톡, 전화가 끊이지 않고 계속 와요.”
아마도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지워 달라는 전화일 터였다.
영상이 이미 다 퍼졌지만, 그 오리지널 영상만 사라지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고 보고 그 영상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정윤아 너도 집에 갈 때 기사님에게 배웅까지 꼭 해 달라고 해. LT 쪽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에이, 설마, 그러겠어요?”
“알 수 없다니깐. 일단 최대한 혼자 있지 말고, 며칠 동안은 아는 친구들 불러서 같이 다녀.”
일반적인 비서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정윤이는 이종사촌 동생이었기에 타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커뮤니티를 확인하니 생활물가 관련이라 그런지 여자들이 많은 네인트 판과 맘카페에 관련 글이 계속 올라오며 여론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서와 무영이가 나름 커뮤니티 작업을 해 주고 있지만, 회사에 남아서 퍼가는 글을 체크하고 댓글을 확인하여 여론을 살폈다.
그러다 LT 그룹이 일본에서 파는 1리터 흰 우유의 가격이 한국보다 500원 더 싸다고 여행 중인 사람이 인증 사진을 올리자 더 불타올랐다.
일본과 비교해서 더 비싼 소매 가격으로 팔린다는 것에 사람들은 분노를 했고, 몇몇 낙농업자들도 글을 올려 쿼터제로 원유를 자기들 마음대로 받아 가서 힘들다고 글을 올렸다.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가 있었다면 이렇게 불타오른 게 엄청난 화제가 되어서 게임이 끝이 났을 테지만, 실시간 검색어가 없다 보니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천천히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일일이 퍼져나간다는 것 때문에 화제가 되는 시간도 길어지는 장점이 있었다.
***
“아니 김 국장. 우리가 보통 사이인가? 방송 나가는 거 좀 막아줘. 아 글쎄 조만간에 사그라들 거라니까. 우리 못 믿어? 내가 진짜 거하게 한잔 산다니깐. 좀 도와주라. 우리가 하루 이틀 안 사이도 아니잖아.”
유튜브에 영상이 공개되고 여러 커뮤니티에 스타 마트의 푯말 사진과 영상이 돌아다니자, LT그룹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방송국 특히 뉴스보도부에 인맥이 있는 임원들은 전화기를 붙들고 편성에서 빼 달라고 읍소를 한다고 퇴근을 못 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런 읍소와 추후 광고 건으로 어떻게든 막아졌을 테지만, 이번에는 힘들었다.
속칭 기자계의 아웃사이더라고 불리는 이들이 세운 대안 언론에서 기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안 언론들을 LT그룹에서도 막아보려 했지만, 대안 언론의 책임자들이 기성 신문이나 보도계에서 환멸을 느껴 나온 언론인인 경우가 많아서 막아지지가 않았다.
광고를 내세워 입막음하려고 해도 1인 언론사로 세운 곳도 많았기에 어떻게 연락도 안 되는 곳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지상파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을 막으려고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것이었다.
“뭐? MHC가 편성 빼면 그쪽도 빼겠다고? 있어 봐.”
“SBA랑 KBA에서 편성 안 하면 그쪽도 안 하겠다고? 그러면 고맙지. 잠시만.”
늦은 밤 시간 지상파 4곳 보도국장과 종편 4곳의 국장들을 구워삶아서 서로 보도하지 않으면 다 같이 편성을 빼기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24시간 뉴스 채널을 유튜브에서 운영하는 YTA 방송에서 아침 시간으로 되어있던 뉴스를 그대로 먼저 내보내 버렸다.
단순한 담당자의 실수인지 아니면 반골 기자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튜브 뉴스 채널로 기사가 나가 버렸기에 몇 시간에 걸친 합의와 무마는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퍽! 파삭~]
바닥에 집어 던진 아이폰이 박살 나며 내는 소리였다.
“시발 갤럭시 쓰는 개새끼들! 다 죽여야 돼!”
자신보다 윗줄인 상무나 전무들이 전화기를 붙잡고 방송사 국장들에게 읍소할 때 옆에서 눈치를 보며 사태가 잘 마무리되길 심재원은 빌었다.
자신이 쓰는 아이폰은 녹음 기능이 없었기에 그날 임건호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떤 욕을 했는지도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영상 속의 욕이나 말들이 조작인지 아닌지도 구분이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송편성을 다 막아 가는 과정에서 뒤처리가 안 되게 터져 버렸으니 그동안 유지하던 심재일의 평정심도 터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박살이 난 아이폰을 발로 차곤 회의실의 기물들을 다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러곤, 그대로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저거 잡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놔둬요. 지가 싸지른 일이니 지가 알아서 하겠지.”
말은 이렇게 하였지만, 황 전무는 비서진들에게 따라가 보라고 눈짓했다.
“아이고 워낙 떠들었더니 입이 다 아프네.”
“일단 우리도 사우나나 다녀와서 회의실에서 쪽잠이나 잡시다.”
60대와 70대의 임원들은 피곤했음에도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아침 뉴스에 이 건이 보도되면 비상이 걸릴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우나에서 몸을 풀고 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호텔의 건식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편하게 마사지를 받으려던 일정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크, 큰일입니닷! 심 상무님이 스타 코퍼레이션에 쳐들어가서 여직원에게 난동을 피우다가 현장에서 검거되셨답니다!”
“뭐어? 이 미친….”
임원들은 야마가 돌아서 뛰쳐나간 심재일을 잡지 않은 것을 홀딱 벗은 채로 후회할 뿐이었다.
***
“이 개새끼 죽여버린다.”
분노에 찬 심재일은 무작정 차를 운전해서 스타 코퍼레이션 건물로 향했다.
임건호를 직접 만나 두들겨 패서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건물 앞에 차를 대고 내리는데, 그를 막는 사람이 없었다.
스타 코퍼레이션은 따로 본사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일반 빌딩에 임대로 들어와 있다 보니 건물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자유로웠다.
씩씩거리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내리는 여자의 얼굴이 낯익었다.
“너! 임건호 사촌 동생이라고 했지?”
“어? 아, 안녕하세요.”
정윤은 엘리베이터 앞에 화가 난 듯한 심재일이 서 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려고 했는데, 심재일은 오히려 잘 만났다며 최정윤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임건호 어디 있어! 몇 층이야?”
“이, 이거 놔요!”
손을 뿌리치려는 정윤이의 몸부림에 심재일은 끌고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에 최정윤의 멱살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악, 사, 사람 살려요!”
IT업체가 주로 입주한 빌딩이기에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퇴근하는 몇 명이 있었고, 여자의 비명에 놀란 몇몇이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를 찾았다.
심재일은 그런 사람들을 보자 자신도 당황해 최정윤의 입을 막고자 손을 휘둘렀다.
[퍽! 퍼억!]
“꺅! 아악!”
“조용히 하라고! 임건호 어디 있냐고!”
비명과 거친 남자 목소리에 몇몇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어왔고, 상황을 보곤 112에 신고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싱가포르에서 도착한 김신현과 직원이 맞고 있는 여자가 최정윤인 걸 알아보곤 뛰어들었다.
“당신 뭐야! 이 손 안 놔!”
두 사람이 달려들어 심재일과 최정윤을 떼 놓으려 엎치락뒤치락하는데, 뒤늦게 따라온 LT그룹의 비서는 어찌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남자 두 명이 말리자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달려들어 심재일과 최정윤을 분리했는데, 사람들에게 강제로 떼여지다 보니 심재일의 자켓이 억지로 벗겨지며 주머니의 내용물이 흘렀다.
[툭!]
“카, 칼이다!”
단순히, 남자와 여자를 떼 놓으려던 사람들은 자켓에서 떨어진 문구용 칼을 보곤 심재일을 아예 땅바닥에 넘어트려 몸으로 눌러버렸다.
“이 개새끼들아! 이거 안 놔! 다 죽일 거야!”
사람들에게 깔리고도 바락바락 악을 쓰던 심재일은 경찰이 출동하여 수갑을 차고 차에 앉혀졌음에도 계속 자신이 누구인지 아냐며 큰소릴 치고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소란을 듣고 내려온 임건호는 사촌 동생인 최정윤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봤다.
“어떻게 된 거야? 많이 다쳤어?”
“아니, 난 괜찮으니까 저기 저분에게 얼른 사진이랑 동영상을 받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