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전쟁 (2).
“오! 저 우유는 천 원이나 더 싸네. 뭐 문제가 있는 건가?”
애들을 학교에 보낸 이후 장을 보러 마트에 온 김영희는 가격파괴 우유를 보곤 저렴한 가격에 호기심이 생겼다.
“저거 유통기한 임박 상품 아냐?”
“어디 보자. 아닌데, 유통기한은 일주일 이상 남은 거 같은데, 생산 날짜도 어제인걸.”
“그럼 어떻게 이렇게 우유가 싼 거지? 그 분유에 물 타서 만들었다는 그 우유인가?”
“분유로 만드는 환원유는 환원유라고 표시해야 할 거야. 이건 1등급 원유 99%라고 되어 있는데. 다른 비싼 우유랑 차이가 없어.”
“그럼, 중국산 아냐?”
천 원이나 저렴한 우유 가격에 의심이 생긴 두 사람은 우유팩을 들어 꼼꼼히 글자들을 살폈다.
“중국산도 아니네. 공주에 있는 스타 음료에서 만든 거네. 국산인데 어떻게 우유가 이렇게 싼 거지. 같은 1등급 우유인데. 신기하네. 한번 사볼까.”
“한 개에 1500원이면 2개 한번 사 보지 뭐. 다른 거 1개 값이랑 거의 비슷하잖아.”
“그러게 나도 하나 더 사서 세수할 때 써야겠다.”
같은 그룹사에서 나온 우유이기에 진열도 좋은 자리에 배정을 받았고, 팝업 베너까지 세워 놓았기에 고객에게 노출이 잘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격이 워낙에 저렴하다 보니 판매가 잘 되었고, 나름대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가격이 싸다 보니 한두 명씩 가격파괴 우유를 사 갔고, 직접 마셔보니 다른 비싼 우유와 차이점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같은 품질에 반값에 가까운 가격이다 보니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고, 오전에 들어온 우유는 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다 매진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본래는 스타 마트 외에도 SG편의점 유통이나 뉴세계의 유통망을 통한 판매도 계획되었으나, 전국 55개 스타 마트에서만 판매를 해도 물량이 부족할 정도였다.
“고객님 한 사람당 1개만 구매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분들을 위해 2개 이상 구매는 자중 부탁드립니다!”
마트 직원들이 안내를 해도 두세 개씩 우유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입고되는 오전 시간에 줄을 서서 우유를 사가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천 원이라는 가격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가격파괴 우유가 매진되었을 땐 폴란드 멸균우유도 한번 마셔보세요! 청정 목장 폴란드에서 들여온 멸균우유가 1리터에 990원입니다.”
우유 진열대 옆으로 멸균우유 시식대가 생기자 처음으로 멸균우유라는 것을 마셔보는 사람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흠. 이건 살짝 밍밍한 거 같으면서도 그냥 우유랑 같은데.”
“어딜. 음. 진짜 맛 차이가 별로 없는데. 이게 990원이라고? 이건 또 왜 싼 거지. 신기하네.”
일반 우유에 비하면 살짝 부족한 맛이지만, 가격이 3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구매를 결정하는 포인트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번엔 이걸 사 가보지 뭐. 크림 파스타에 넣을 거니깐 괜찮겠지.”
“아, 고객님 크림 파스타라면 여기 헝가리에서 온 크림이 있습니다. 이건 1리터에 1490원입니다. 요리에 넣는 거라면 크림으로 나온 이걸 추천해 드립니다.”
“생크림이 1500원이라고요?”
직원이 내미는 크림 우유를 들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크림 파스타를 많이 해 먹는 사람은 우유를 넣었을 때와 크림을 넣었을 때의 맛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크림 관련 요리를 할 때 크림을 쓰고 싶지만, 요리용 생크림은 우유보다도 더 비싼 3500원대 가격이었다.
가격 때문에 크림 대신 우유를 사용했는데, 국산 우유보다 더 싼 크림이 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나, 아니 두 개 주세요. 와 그런데, 국산 크림은 진짜 금테를 두른 건지 그렇게 비싼데, 이건 왜 이리 싼 거지? 이것도 원유로 만든 게 확실하죠?”
“네. 유럽에서 나는 우유나 생크림은 저렴합니다. 그리고, 일일이 마트에 오지 않으시고, 푸드 딜리버리에서도 주문이 가능하세요.”
“아, 그렇네. 그런데, 그 어플로 주문하면 더 비싼 거 아냐?”
“스타 마트에서 직접 판매하는 상품들은 같은 가격입니다. 배달료만 내면 되니깐 편리하실 거예요.”
“그렇네. 다음에 마트 올 시간이 없을 때는 어플로 주문하면 되겠네.”
스타마트는 물론이고, 푸드 딜리버리에서도 우유를 싸게 구매할 수 있자 주문이 폭증할 수밖에 없었고, 출고 담당이던 윤영호의 걱정처럼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니 가격이 저렇게 되면 우리 메르밀 우유는 판매가 안 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건 무슨 대책을 취해 주셔야지요.”
“우리 한양 우유도 납품을 줄이거나 끊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건을 넣어도 팔리지가 않는데, 우리 지점에서는 넣을 이유가 없는 거지요.”
마트 실무진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런 거래처 불만 사항이 김민욱 총괄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김민욱도 지금은 한두 곳의 불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커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좀 더 큰 반응이 올 때까지 가격을 고수하고 불만을 무시하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문제를 알면서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판매가 되지 않고 있는 유업체들의 물건을 일단 다 받아들여서 마트 창고에 가득 채워 넣고 있었다.
***
[올라만 가는 물가에 한 줄기 빛! 1리터에 1590원 하는 가격파괴 우유 등장!]
새롭게 유가공을 시작한 스타 음료에서 나온 ‘가격파괴 우유’의 돌풍이 심상찮다.
가계부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출시한 국내산 1등급 우유의 가격이 1590원이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보다 비싼 우유 가격에서 거품을 빼겠다는 스타 음료의 임건호 대표는 최신 유가공 설비를 설치하였기에 원가 절감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마음 일보 김길재 기자.
[쾅!]
“아니 이 미친 새끼들이 돌은 거 아냐?”
남한우유의 서진석 실장은 책상에 펴진 신문 위로 주먹을 내질렀다.
“실제로 이 가격파괴 우유가 얼마 정도 팔리고 있는 거야?”
“정확한 생산량은 알 수가 없지만, 사람을 풀어 5개 스타마트를 알아본 결과 오후면 우유가 다 매진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피해는?”
“스타 마트가 있는 지역의 흰 우유 매출이 20% 이상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역지와 인터넷 언론은 물론이고,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가격파괴 우유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매출이 더 오를 거라는 거잖아.”
서진석은 그때 회의에서 멸균우유 수입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을 때, 가격 책정 부분도 몇 퍼센트 이상 차이 나지 않게 하겠다는 각서를 받지 않은 게 실책이라 느껴졌다.
“대응책은?”
“그게. 현실적으로 없습니다. 가격을 우리도 따라 낮추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익률이 급감하게 됩니다.”
방법이 없다는 소리였다.
보통 협동조합이 아닌 유가공업체는 협회에서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가격이나 유통에 대한 부분을 서로 돕고 했다.
한마디로 가격이나 그런 부분은 서로 조절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천둥벌거숭이처럼 튀어나온 스타 음료는 협회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가입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이 가격파괴 우유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한참을 서진석이 고민했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전화기를 들어 LT쪽으로 연락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
“스타 음료? 임건호가 있는 거기?”
“네. 상무님.”
심재일은 임건호란 이름이 나오자 기분이 나빠졌다.
자신이 제안하긴 했지만, 중국에서 ‘판다요원’ 의 지분을 4천억이나 주고 인수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판다요원은 알리바바에 인수되지 못했었고, 손실을 봤었다.
그리고 사드 문제로 인해 LT마트 자체가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며 5조 원에 가까운 손해를 보았었다.
그런 손실의 책임을 후계자가 지면 안 되었기에 한국의 LT음료로 옮겨왔지만, 스타 콜라와 매실 사이다가 등장하며 멀쩡하게 잘 굴러가던 LT음료의 매출이 10% 이상 날아가 버렸다.
심재일은 왠지 자신의 앞길을 계속 임건호가 막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럼 유업에선 어떻게 해 주길 원하는 거야?”
“남한유업과 메르밀은 스타마트에 납품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한양우유도 완전 끊지는 못하고 50% 줄여주기로 했습니다.”
“계획이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유업 쪽에서는 회의 때 봤을 때 임건호가 여간내기가 아닌 거 같다고 했습니다. 해서 유업체끼리 납품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먹히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제과나 음료 전체 보이콧으로 하고 싶다는 거야?”
“네. 상무님. 그렇게 대대적으로 실력행사를 해야 가격파괴니 뭐니 하는 유가공 제품 장난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흠. 강하게 나가자 이거군.”
“네. 그리고, 퇴사하긴 했지만, 중국 총괄 사장이었던 박종일 지사장이 스타 그룹에 있다 보니 상무님께 부탁 겸 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 거 같습니다. 임건호와 상무님이 중국에 계셨을 때 친분이 있었던 것도 있고 해서요.”
심재일은 이야길 듣고 보니, 자신이 나서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따로 실력행사를 위해 물건 납품을 금지하고 하는 거보다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 간에 융통성 있게 이야길 해서 푸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런 일을 자신이 전화 몇 통으로 해결했다면 그 자체로 평판이 높아지는 것이기도 했으니 은근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중국에서 손실을 다 박종일 지사장에게 넘기고 왔던 것이 자신도 마음에 걸리긴 했었기에 박종일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10여 번 넘게 연락을 했음에도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자 심재일의 마음에 조금 남아 있던 미안한 감정은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번호를 수신 금지해 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짜증이 난 상태에서 감정이 좋지 않은 임건호에게 전화를 했는데, 임건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임건호님 심재일입니다.”
“아 네.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연락한 이후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을 주신 겁니까?”
“가격파괴 우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거 문제가 있다고 유업 파트에서 중재를 요청해 왔는데, 계속 이 가격으로 판매하실 겁니까?”
“아, 우유 때문이시구나. 그런데 어쩌죠. 저도 이 우유 문제 때문에 개인적으로 쌓인 감정이 있다 보니 가격을 재책정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럼 그대로 가격을 고수하시겠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지 혹시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자유경제 체제에서 가격을 마음대로 한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훗. 다음 주까지 가격을 다른 제품들만큼 올리지 않으면 우리 LT유업의 우유 제품들을 스타마트에서 다 빼겠습니다.”
“실력행사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우리뿐만 아니라 남한유업, 메르밀, 한양우유나 다른 유업체에서도 동시다발로 납품을 하지 않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해도 우유 가격을 높이시지 않으면 우리 LT음료의 전 제품과 스낵류도 납품을 하지 않게 될 겁니다.”
“이렇게 단체로 납품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계약 불이행입니다. 그리고 영업방해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스타마트에선 영업방해로 고소를 하고 계약 불이행했다고 계약을 끊을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