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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88화 (188/203)

188. 전쟁 (1).

폴란드에서 수입한 멸균우유를 1리터에 990원으로 판 효과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었다.

신문기사에는 저가 멸균우유를 무분별하게 수입하여 낙농 농가 소득이 줄어들었다고 나와 있었지만, 과연 기자가 낙농 농가를 취재나 했을지 의심스러웠다.

축산정책국에서 주최하는 회의에 시간 맞춰 들어갔으나 이미 다들 자리에 앉아 있었고, 분위기가 냉랭했다.

“아니 스타 음료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요? 폴란드 멸균우유를 30만 톤이나 수입한다고 했다는데, 이건 다 죽자는 거 아니오?”

뭔가 짜인 것처럼 인사도 없이 심문하듯 이야길 했는데, 뭔가 함정에 빠진 건가 싶었다.

회의 주최자인 축산정책국장 김유환은 한쪽에 꿔다 놓은 허수아비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건,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럼, 이게 수입을 잘못한 겁니까?”

“아닙니다. 30만 톤이 아니라, 50만 톤을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10만 톤 정도만 깔렸고, 아직 더 깔리지 않았습니다.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아 잡아 드립니다.”

“뭐, 뭐라고요? 30만 톤이 아니라 50만 톤을 수입했다고요? 이 미친 작자가!”

“돌은 거 아냐 50만 톤이라니. 다 죽자는 거잖아.”

“아니 한국 1년 우유 쿼터의 25%를 수입했다고? 미친 거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겨우 이런 거로 여러분들이 죽다니요. 안 죽는 걸 아는데, 무슨 앓는 소리입니까? 이런 이야기 하려고 부른 겁니까?”

여유 있게 대답을 해 주고 표찰이 붙어 있는 내 자리에 앉았다.

“아니, 대답하는 게 뭐 이래? 지금 싸우러 여기 온 거야?”

회의 주최자인 김유환 축산정책국장보다도 더 기세가 등등한 사람의 앞에는 남한유업 서진석이라는 표찰이 놓여 있었다

“이상하군요. 전 회의에 들어오자마자 따지는 분이 계시기에 저를 성토하기 위한 회의로 보였는데요. 싸우자고 부른 거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우유 쿼터도 없다 보니 싸움을 피할 이유도 없습니다. 잃을 게 없거든요.”

잃을 게 없다고 배 째라고 나오는 임건호의 태도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저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유업 관련으로 축산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우유 쿼터가 거의 없는 스타 음료는 사실 별 상관이 없었다.

“흠. 그건 그냥 감정이 실려서 그런 거요. 오늘은 수입 멸균우유가 갑자기 너무 많이 들어오기에 그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남한유업의 서지석은 전략을 바꾼 건지 점잖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대체 그쪽에서 원하는 게 뭐길래 이렇게 50만 톤이나 멸균우유를 수입하는 겁니까?”

“네? 김유환 국장님이 이야기를 하지 않던가요? 저희도 우유 팔아보려고 유업체를 차린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멸균우유를 수입하는 거요?”

“같이 다 죽자는 거 아닙니까? 1년 생산량의 25%를 수입해서 싸게 푼다는 건 다 죽자는 거지요.”

값싼 수입 우유만 물고 늘어지자 임건호는 짜증이 났다.

“아니, 그러면 정상적으로 우유를 팔 수 있게 우유 쿼터를 늘려줬으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생산 우유가 없으니 수입을 할 수밖에요.”

“아니, 쿼터제를 만든 이유가 과도한 생산을 하지 말자고 만든 것인데, 그렇게 쿼터를 마음대로 늘릴 수 있다면 쿼터제가 왜 있는 겁니까?”

“그래서, 멸균우유를 수입한 거 아닙니까? 한국 우유를 못 파니 외국 우유라도 팔아야 먹고 사는 거지요. 쿼터 없다고 그냥 손가락 빨다가 죽어야 하는 겁니까?”

“허 이거 참. 말이 안 통하네. 그래도 할 일이 있고, 안 할 일이 있는 겁니다.”

“말이 안 통하는 건 유업체들 아닙니까? 쿼터만 잡고 있으면 다른 신규 업체가 못 들어오니 가격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시장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거랑 다른 거지요.”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쿼터를 늘려주지 않으니 우린 계속 멸균우유를 수입할 겁니다. 다행히 품질이 좋아서 몇몇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저희 멸균우유를 라떼에 쓰기로 결정을 했더군요. 가격 차이가 2배 이상 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봐야죠.”

한국의 우유 시장에서 고정적으로 우유를 소비해 주는 곳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시장은 바로 카페에 사용되는 우유 시장이었다.

전국에 체인점을 가진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국산 우유가 아닌 저렴한 멸균우유를 라떼에 쓰기로 했다면 눈에 보일 정도로 매출이 떨어질 터였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카페의 요청으로 생크림도 수입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그러면 다 같이 죽자는 거예요. 진짜.”

“그럼 좋네요. 죽는 곳이 나오면 그 업체가 가진 쿼터를 제가 사겠습니다. 그럼 우유 가공이나 유통에는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쿼터를 못 구하니 이렇게라도 쿼터를 모아야지요. 어느 곳이 가장 먼저 죽습니까?”

남한유업의 서진석은 말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두유를 왜 비건우유라고 파는 겁니까? 상표법에는 걸리지 않지만 그건 도의에 어긋난 거 아닙니까?”

“이미 우유를 가공하기 위해 공장 건설에 설비는 다 갖춰두었는데, 우유 쿼터가 없으니 두유라도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름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두유를 그렇게 비건 우유로 팔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두유를 비건우유라고 파는 것은 불법이 아니었기에 당당했다.

“나름대로 비싸게 쿼터를 사 모아도 이제 120톤을 겨우 모았습니다. 이걸 누구 코에 붙입니까? 쿼터가 없어 우유를 못 파니 멸균우유를 수입하고 비건 우유를 늘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멸균우유와 비건 우유를 팔겠다는 임건호의 말에 다들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사람이 나섰다.

“그럼, 우유 쿼터를 얼마나 주면 멸균우유 수입을 멈출 겁니까?”

탁자에 있는 표찰을 보니 LT유업에서 나온 사람이다.

“이미 50만 톤 수입 주문을 했기에 그건 다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야 미치겠네. 그럼 우리 매출이 더 떨어진다는 거 아냐.”

“김 국장! 왜 이런 걸 미리 알려 주지 않은 거야!”

“그, 그게 저도 이제야 알게 된 겁니다.”

유하게 생긴 김유환 국장은 질책을 받게 되자 얼굴이 벌게져서 변명하기 바빴다.

“멸균우유가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면 원유 쿼터 50만 톤을 늘려 주십시오. 그럼 내년에는 멸균우유 수입은 없을 겁니다. 쿼터 없으면 내년에도 50만 톤을 수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 째라는 전략으로 가기로 했다.

분명 내가 회의장에 들어오자마자 성토하는 분위기였듯이 이미 유업체들은 회의시간보다 더 일찍 모여 대응 방법을 논의했을 터였다.

그 논의엔 당근과 채찍을 다 준비했을 것이 틀림없었기에 얼마나 나올지 궁금했다.

“30만 톤으로 합시다.”

남한유업의 서진석이 입을 열었다.

“아니, 20만…이야기가 다르지 않소.”

애초에 논의한 것과는 수치가 다른지 바로 다른 쪽에서 말이 나왔다.

“그럼 메르밀 우유에서는 멸균우유가 매년 50만 톤씩 수입하겠다는 것에 대한 대책이 있습니까? 스타 음료가 저렇게 배 째라고 나오는데 방법 있습니까?”

다들 입을 열지 못한다.

“늘릴 수 있는 쿼터 한계는 30만 톤입니다. 업체들이 각출했고, 축산정책국에서 10만 톤을 늘린 겁니다. 동의하시면 내년부터 멸균우유 수입을 하지 않겠다고 각서 써 주십시오. 이건 담합이 아닙니다.”

30만 톤.

이거면 충분했다.

저들도 방안이 없으니 20만 톤까지 생각한 것 같은데, 일부러 50만 톤을 선 제시한 게 먹힌 것 같았다.

목적을 달성했지만, 그래도 고민하는 척하다가 각서를 확인하고 서명을 했다.

사실 이 멸균우유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각서도 법적으로 따지고 들면 효력이 있기 힘들었다.

강압에 의한 각서 서명으로 엮기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전진해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각서에 서명을 해 주고, 약속 이행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내년에는 멸균우유 수입은 없을 것입니다. 약속하지요.”

***

“아니, 김 기사 진짜야? 쿼터보다 더 생산해도 같은 가격으로 대금을 준다는 거야?”

나주에서 젖소 60마리로 키우고 있는 한덕수는 우유를 받으러 온 기사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네 진짭니다. 쿼터보다 더 생산해도 과잉 분에 대해서 같은 가격인 리터당 950원으로 쳐 드리겠습니다.”

“이거…나야 좋지만, 걸리면 안 되는 거 아냐?”

“걸리면 그냥 실수로 더 받아 갔다고 하면 됩니다. 대신에 과잉 착유 분에 대해서는 따로 계좌를 만들어서 그쪽으로 넣어 드릴게요. 그럼, 돈거래에서도 과잉 분에 대한 입금이 드러나지 않을 겁니다.”

“허허. 나야 좋긴 한데….”

한덕수는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에는 회가 동했지만, 찝찝했다.

“그리고, 뒤로 입금받는 계좌는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낙협에서 계좌를 만드시면 됩니다.”

“거기까지 가야 하는 거야?”

“다른 계좌는 왜 개설되고 하는 그런 걸 물어보는데, 거긴 안 물어본답니다. 낙협에서 계좌 만들고 알려주시면 그 계좌로 해서 바로 입금이 될 겁니다.”

한덕수는 찝찝했지만, 자신과 운송기사만 조용하면 되는 일이었기에 동의를 했다.

그리고, 이런 눈속임은 쿼터제이기에 가능한 꼼수였다.

낙농가가 100톤의 쿼터를 가지고 있다면 100톤까지는 리터당 원유가격인 950원으로 가격을 책정해 주었다.

과잉생산 되는 101톤부터는 리터가 아닌 1톤에 1000원 하는 식으로 물보다도 싸게 매입을 했다.

그래야 고의로 생산을 더 늘려서 납품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낙농업자는 물보다 싸지는 우유를 방지하기 위해 정확한 톤수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뒤로 돈을 준다고 하면 100톤 이상의 과잉생산도 충분히 가능했다.

돈을 더 벌 수 있다는데 싫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설령 공무원이 단속을 한다고 해도 1년에 100톤이라는 쿼터로 납품되기에 당일 오버된 양만큼 다음 날 덜 가져갈 것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뒤로 받은 우유까지 34만 톤의 원유를 확보하게 되자 본격적인 유제품 생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아니 그런데, 진짜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우유 생산 출고를 맡은 윤영호는 운송 플라스틱 용기에 쌓여가는 우유팩을 보며 불안해했다.

“출고가격도 문제이지만, 소비자가격이 이러면 난리가 날지도 모릅니다. 대표님이나 사장님이 진짜 컨펌한 거 맞습니까?”

“아, 맞다니깐 그러네. 안 그러면 이런 이름이 왜 붙어 있겠어?”

우유 팩에 인쇄된 이름 자체가 ‘가격파괴 우유’였으니 대표나 사장의 허락이 떨어진 게 맞았다.

하지만, 그래서 윤영호는 불안한 것이었다.

타 업체의 1리터 우유는 2500원에서 2900원대로 팔리는데, 이 가격파괴 우유는 소매가격이 1590원으로 되어 있었으니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것도 탈지분유로 만든 ‘환원유’가 아니라 1등급 원유로 만든 우유였으니 이 우유가 소매점에 깔리게 되면 다른 유업체에서 난리를 부릴 것이 뻔했다.

“저야 봉급쟁이이니 출고하라는 대로 하는데, 이거 때문에 분명히 문제 생길 겁니다.”

“위에 사람들도 다 알 거야. 그러니 이런 이름을 붙였겠지. 그리고,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겠지. 사서 걱정하지 말라고.”

윤영호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서 아는 문제를 위에 사람들이 모르지는 않을 터였으니 그저 열심히 가격파괴 우유를 출고하는 데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스타 마트 우유 진열대에 흰색, 노란색의 패키지에 검은색의 글씨로 ‘가격파괴 우유’라고 진열이 시작되었고, 그 앞에 크게 1590원이라는 가격파괴 홍보 베너도 세웠다.

[가격파괴 우유! 1등급 우유 1리터에 15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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