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매각?
바쁘게 있다 보니 손정의가 제안한 푸드 딜리버리 매각 건을 잊고 있었다.
“이번 주 주말까지 결정하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정윤이에게 푸드 딜리버리의 핵심 인원들을 모으라고 했고, 동남아에 나가 있는 박종일 KAD 택배 사장과 동남아 총괄 이종민, 스타마트의 김민욱도 불러들였다.
회의실에 핵심 인력들이 모이고 비치엔터의 동생과 매제인 최도협 쉐프까지 모이자 다들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하는 회의겠구나 싶었다.
“우선, 우리 스타 코퍼레이션에서 흑자를 기록하는 사업체는 푸드 딜리버리와 스타 음료, 스타 건설, 스타 마트, 스타 해운 물류입니다.”
신성스타페이와 대현자동차와 합작한 차량 렌탈사업은 단순히 수수료를 먹는 것이었기에 사업체라고 하기엔 뭐했다.
전체적으로 규모 차이가 있지만, 흑자경영을 안정적으로 하고 있는 건 스타 코퍼레이션이었다.
“외부에선 쇼퍼백이 동남아시아의 아마존이라고 하고, KDA 택배가 한국 택배사들보다 더 규모가 커질 거라고 언급하지만, 아직은 적자인 겁니다.”
다들 동남아시아를 장악했다고 대단하다고 떠받들어 주지만, 미래 청사진만 보고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안정적인 흐름이기에 사업체 매각 필요성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프트 뱅크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쇼퍼백에 대한 인수 의사입니까? 아니면 KAD입니까?”
동남아에서 불려온 박종일 사장은 소프트 뱅크가 관심 있어 하는 곳이 쇼퍼백이나 KAD택배라고 생각했다.
“아닙니다. 소프트 뱅크가 원하는 건 ‘푸드 딜리버리’입니다.”
“푸드 딜리버리를요? 의외로군요.”
박종일 사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국의 배송 대행 시장은 푸드 딜리버리가 65%의 점유율로 1위를 하고 있었고, ‘배송의 민족’과 ‘저기요’까지 해서 빅3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굳어진 배송 대행 시장은 매출 증가나 점유율 증가가 거의 불가능했기에 성장 없는 사업이었다.
그런, 성장이 안 되는 사업을 인수하겠다고 하니 박종일 사장은 손정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는 양팡에 투자해서 적극적으로 한국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하겠다고 합니다. 거기에 시너지 효과와 지배 효과를 얻기 위해서 푸드 딜리버리를 인수하겠다고 합니다.”
“그럼 인수 제안가가 얼마 정도입니까?”
“5조 원을 제시해 왔습니다. 현금과 관련 주식 교환인지는 아직 미확정입니다.”
“오, 오조요?”
“와!”
5조 원이라는 금액에 몇몇은 놀라서 탄성을 냈다.
그리고는 푸드 딜리버리가 매각되더라도 자신들에겐 떨어지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시무룩해졌다.
“참고로 소프트 뱅크는 인수 후 푸드 딜리버리를 상장시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임직원에게는 자사주가 배정될 겁니다.”
먼나라 이야기로만 들렸던 매각·인수 이야기가 자신들에게 자사주가 배정된다는 소리에 바로 가까운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럼, 대표님은 이미 매각을 결정하신 겁니까?”
배달 기사들 법인인 ‘빠른 친구들’의 김이서였다.
‘배송의 민족’이나 ‘저기요’의 배달 주문 건도 빠른 녀석들이 받아서 할 수 있게 별도의 법인으로 독립을 시켰지만, 창업을 함께 했던 멤버라 부른 것이었다.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만든 것입니다. 모두에게 이득을 주는 결정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매각이냐 아니냐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임건호의 말에 다들 입을 열지 않고 눈치만 살폈다.
사실 조건만 보자면 대표는 회사를 팔아서 5조라는 돈을 챙기는 것이라 이득이었고, 직원들은 손정의가 상장을 할 거라고 하니 자사주 배당 이익이 있는 것이었다.
“그럼, 대표님의 입장에서는 매각하는 것이 가장 좋은 거 아닌가요? 푸드 딜리버리만 있다거나, 흑자가 혼자 나는 상황이었다면 매각을 고민했을 테지만, 지금은 흑자를 기록하는 회사도 많고, 차세대로 불릴 정도로 관심을 받는 사업체도 있으시잖아요.”
김이서의 냉정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 맞는 말이었다.
푸드 딜리버리만 흑자가 나고 있는 상황이라면 매각하는 데 주저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흑자를 기록하는 스타 음료와 같은 회사들이 있었기에 모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뺀다면 흑자 규모가 크지도 않았고,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회사라 고정 비용도 높았다.
“나와 임직원들에게는 매각이 이득이라는 말이군.”
“그런 금전적인 것도 있지만, 사실 언론이나 관련 전문가들에게서 나오는 수치나 프레임이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신성스타페이 쪽으로 보냈었던 사촌 동생 이석건이었다.
“미국에서는 유버가 생기고, 서비스가 확대된 대도시에서 운송비가 올랐다고 합니다. 드라이버에게 오더를 올리는 방식이 되다 보니 빠르게 드라이버를 잡기 위해 가격을 올려서 전체적인 운송료 물가가 오른다고 합니다.”
한국 방식과는 달리 미국은 고객이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는데 00달러’ 형태로 의뢰를 올리다 보니 한정된 드라이버를 잡기 위해 요금이 계속 오른다는 소리였다.
“유버 같은 대행 서비스 플랫폼이 물가를 올리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나 전문가들의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고 대중의 반응도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유버는 한계가 있다며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동의합니다. 드라이버 몸값 부분이 장난 아닙니다. 빠른친구들에서 월급을 받던 기사들도 다른 플랫폼의 고가 배달만 잡으면 월급보다 200만 원 더 벌 수 있다고, 퇴사를 하는 기사들이 많습니다.”
김이서가 배달료가 오르는 문제가 있다고 힘을 실어 줬다.
“하지만, 그렇게 더 벌려면 교통 위반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네. 신호 위반이나 역주행, 인도 주행을 해야 그만큼 더 벌 수 있는 거지요. 거기에 시끄러운 배기음, 밝은 LED등 같은 거로 점점 배달 기사에 대한 이미지가 바닥으로 가고 있습니다.”
“편해지지만, 물가를 올리는 주범이고, 탈법을 하는 라이더가 판치는 그런 이미지가 될 수 있다는 거군.”
“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미지와 수익성의 큰 상승은 힘들 겁니다. 지금 매각하는 것이 이득으로 보입니다.”
현장에서 부딪치고 있는 이서의 말이었으니 배달 대행 시장의 미래가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 유럽의 배달 시장은 적자를 벗어나기 힘들 거라는 보고서도 나왔습니다.”
“왜? 인구 밀집도가 문제라도 런던이나 파리, 베를린 같은 대도시에서는 흑자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인구 밀집도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관련 법률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
이서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는 건별로 주문 배달받아 대행 일을 하는 배송기사들이 사업자로 분류되는데, 유럽에서는 플랫폼 사업주의 명령을 받아 일을 하는 노동자로 분류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런 노동자 관련 법률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하는 말이 나오기에 리스크가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도 노동법이 강화되면 흑자를 보고 있는 푸드 딜리버리도 적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법적 리스크였기에 사내 변호사로 회의에 들어와 있는 정진이를 쳐다봤다.
“이서 씨 말도 맞지만, 우리나라 노동법이 그렇게 강화될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그건 걱정하지 마.”
정진이는 절대 그 정도로 한국 노동법이 강화되지 않을 거라고 확답했다.
“그런데, 다들 좋은 가격이고, 리스크를 생각해서 푸드 딜리버리를 매각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입니다.”
스타 마트의 김민욱이었다.
“푸드 딜리버리를 매각한다는 말은 푸드 딜리버리의 인프라를 판다는 말입니다. 즉, 양팡을 운영하는 손정의가 사 가게 되면 푸드 딜리버리에서 수익을 내고 있던 생필품 배송 대행 수익도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푸드 딜리버리에서 통합 배송을 하는 스타 마트는 손해를 볼 거라는 말이군.”
“네. 매각된 이후로 당장은 그 거래를 끊지 않겠지만, 양팡이 전자상거래 업체인 만큼 자신들이 매입한 물건을 팔기 위해 스타 마트를 통합 배송에서 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스타 마트는 말라 갈 겁니다.”
“흠. 그럴 수 있겠군.”
단순한 사업체가 아니라 유통의 연계 축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어플에서 팔리는 스타 마트의 식품과 생필품이 다 양팡의 물건으로 대체된다면 스타 마트의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부분을 매각할 때 조건으로 걸면 되지 않을까요?”
동남아시아 총괄 이종민이었다.
“자신들의 물건과 같이 판매하게 한다고 매각 조건에 넣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매각 금액으로 대형 마트를 전국에 깔게 된다면 지금의 소형마트 50곳보다는 자생력이 커질 것입니다.”
푸드 딜리버리 대신에 대형 마트로 가서 스타 마트가 말라 죽는 것을 막자는 말이었다.
“그리고, 제가 동남아에 있다 보니 한국 시장에 목맬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매각 대금으로 동남아의 유통을 장악하는 사업 방향 전환을 했으면 합니다.”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동남아의 인프라 장악을 하는 것이 가장 이득일 것 같습니다.”
KAD 택배의 박종일 사장도 이종민의 의견에 동조했다.
“제가 중국에 있었을 때는 중국이 노다지라고 생각했는데, 동남아를 제대로 겪어보니 동남아가 노다지인 거 같습니다.”
동남아에서 근무하다 온 사람들은 다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까지 해서 아직 미개척인 지역에 한국계 유통 마트를 만들어 간다면 한국에서 5조를 투자해서 대형 마트를 개점하는 거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사업이 될 겁니다.”
“글로벌 그룹이 되는 데 매각 금액을 쓰자는 거군.”
“그렇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오프라인 마트가 다 성장한 시장입니다. 공고한 유통 시장에 끼어들어 10%의 점유율을 만드는 것도 힘든 시장입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에는 이제 오프라인 마트나 백화점이 대형화하고 있습니다. 동남아를 선점하는 게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흠.”
직원들의 의견은 어떻게 보면 제프 베이조스와 손정의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반대의 방향이었다.
그들은 만들어진 시장 안에서 사람들을 연계 서비스 안에서 머물게 만드는 것이 플랫폼의 최종 목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구매력은 있으나 이미 시장이 다 만들어져 있는 곳보다는 경쟁자가 없는 블루오션 개척을 원하고 있었다.
제프 베이조스나 손정의의 말처럼 플랫폼 서비스 안에 사람들을 안주시켜야 한다는 목표만 본다면 매각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스타 그룹의 생태계에서 사람들을 살게 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블루오션인 동남아 유통 사업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맞기도 했다.
어떤 방향이 맞을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들 수익적인 부분이나 미래 기업적인 부분만 이야기하시는데, 푸드 딜리버리를 사용하는 사용자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옆에 있던 레일리였다.
아시안 걸스의 대표이자 쇼퍼백 창업자로 회의에 참석을 했지만, 다들 내가 레일리와 동거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용자를 생각하라고?”
“네. 푸드 딜리버리를 인수한 손정의가 어떻게 푸드 딜리버리를 운영할까요?”
레일리의 말에 깨닫는 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