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81화 (181/203)

181. 판을 흔들고, 깨버려라!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몇몇이 눈치를 보다 이일찬 부사장이 나섰다.

“비싸서 우유 구매를 포기한 구매자들이 두유, 아니 비건 우유를 구매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네. 그겁니다. 그래서, 이름을 비건 우유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1리터에 2500원 하는 우유가 부담되어 구매를 포기했는데, 그 옆에 비건 우유라고 1500원에서 1800원 하는 우유가 있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700원 혹은 천원의 차이는 별 차이 나지 않는 것 같지만, 의외로 100~200원 차이로 구매 성향이 달라지는 것이 음료수였기에 구매 매력도가 올라가는 것이었다.

“상품에 ‘우유’라고 되어 있으니 좀 더 저렴한 비건 우유를 살 거 같습니다.”

“거기에, 별난 채식주의로 생각하는 ‘비건’이라는 단어도 붙어 있으니 가격은 싼데 유기농으로 만들어진 우유라고 소비자들은 착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상품명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왜 대지밀에서는 이 좋은 ‘비건 우유’라는 말을 상품에 붙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름만 변경해서 출시해도 대지밀의 매출은 20~30% 이상 그냥 늘어났을 겁니다.”

설득력 있는 네이밍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두유(豆乳)라는 이름이 콩의 우유라고 바로 와 닿기는 하지만, 한자를 몰라 이 ‘두’자가 콩 두 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였다.

그리고, 이름 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두유 음료의 판매량은 큰 등락 없이 유지되거나 1% 미만으로 떨어지는 추세였다.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1970년대 두유 음료가 나온 이후 큰 변화 없이 쭉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쌓인 데이터로 인해 마케팅이나 홍보에 비용을 쓴다고 해도 매출 변화가 없다는 걸 아는 거지요. 그냥 방치해도 연간매출은 무난하게 유지가 된다는 겁니다.”

“시장이 고착화되었고 기업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거군요.”

배포된 자료에는 국내 두유 시장 규모도 나와 있었다.

2013년 3900억, 2014년 3850억, 2015년 3750억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

“1~2% 미만으로 매출이 줄어드는 것이 보이지만, 큰 문제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 중에서 대지밀이 1700억에서 1800억의 매출로 두유 시장의 절반을 잡고 있습니다. 이런 굳어진 시장에 비건 우유로 새바람을 일으킬 겁니다.”

두유를 비건 우유로 출시를 하게 된다면 기존의 두유 제조사들도 비건 우유란 이름으로 신제품을 출시하게 될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외국처럼 우유의 시장을 비건 우유들이 나눠 가지게 될 터였다.

“우리는 비건 우유로 이 두유 시장뿐만 아니라 우유 시장까지 공략을 해서 우유와 두유 시장 자체를 흔들 겁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콩, 아몬드, 귀리로 우유 맛과 비슷한 비건 우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임건호가 말을 하며 회의실 끝에 앉아 있는 과즙음료 팀 직원들을 주시했다.

그제야 과즙음료 팀 직원들도 회의에 참석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음료 팀은 최대한 우유 맛과 비슷한 비건 우유를 만들어 주십시오. 콩, 깨는 캄보디아에서 아몬드와 귀리는 인도와 캐나다에서 수입하여 최저가를 지향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양성분보다는 우유를 먹던 사람들이 저항감 없이 마실 수 있는 우유와 유사한 맛을 내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비건 우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갈 겁니다. 콩으로 만든 두유, 까탈스러운 비건을 위한 우유라는 이미지보다는 환경을 생각해서 더 까다롭게 만든 우유라는 이미지를 가져가야 합니다.”

유업체에서 푸른 자연에서 풀을 뜯는 젖소의 이미지를 만들어 이용하듯이 우리는 비건 우유로 지구와 환경을 위한다는 이미지를 씌어야 했다.

“그리고, 정경배 사장은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멸균우유를 대량으로 수입해야 합니다.”

“얼마 정도를 수입하면 되겠습니까?”

“우선 5만 톤 정도입니다.”

“5만 톤요? 나눠주신 자료를 보면 한국의 1년 우유 생산량이 200만 톤인데 5만 톤이면 2.5%에 달하는 많은 양입니다.”

“처음이 5만 톤이고 최종 50만 톤까지 멸균우유를 수입해서 유통할 겁니다.”

배가 오는데 2~3개월이 걸리지만, 멸균우유이기에 유통기한에는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정경배 사장은 최종적으로 한국 우유 생산량의 25%에 달하는 50만 톤을 수입한다고 하니 그걸 다 판매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소매점에서 우유 1리터가 2500에서 3천 원까지 합니다. 원윳값이 한국보다 비싼 일본은 1리터에 2천 원 이하로 팔고 있구요. 원윳값이 더 저렴한 우리나라가 더 비싼 것은 어딘가에서 통행료를 받고 있는 놈들이 있다는 겁니다.”

원유 가격은 리터당 한국이 940원, 일본이 1080원이었다.

그 밑으로 타국의 우유 소비자가격이 나와 있었는데, 폴란드는 리터당 390원이었고, 유럽연합(EU) 평균은 450원, 낙농 선진국인 미국(490원)·뉴질랜드(495원)의 가격은 500원을 넘지 않았다.

“엇? 폴란드랑 다른 나라는 이 가격이 원유 가격이 아니라 소비자가 살 수 있는 가격입니까?”

그제야 한국, 일본만 따로 빼두고 폴란드, EU, 미국, 뉴질랜드가 별도로 표시되어 있는 표 밑을 사람들이 확인했다.

“맞습니다. 폴란드는 유가공업체에 원유를 넘기는 가격이 200원대 중반이라고 하더군요.”

“그럼, 리터당 300원만 잡아도 원유 가격에서 한국보다 3배 저렴하네요.”

“그래서 폴란드의 멸균우유 소비자가격이 평균 500원대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우유 소비자 평균 가격은 2500원이고 일본은 2200원이구요.”

“원유 때는 3배 차이가 나고, 소비자가격은 5배 차이가 나는 거군요. 유통에 확실히 문제가 있는 거군요.”

“맞습니다. 폴란드까지 비교할 것도 없습니다. 한국보다 원윳값이 더 비싼 일본은 소비자가격이 2200원이에요. 오히려 한국보다 우유값이 쌉니다.”

“흠. 대표님. 알 것 같습니다. 한국은 자율경쟁을 하는 게 아닌, 쿼터제로 생산량을 제한하고, 원유 가격 연동제로 가격의 변동을 통제할 수 있는 닫힌 시장이라 유통 마진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 판이 되어 버린 것이군요.”

“그래서. 이 닫힌 판에 우리가 끼어들려면 그 판을 흔들고, 깨어야 한다는 겁니다. IMF 때 만들어진 그 법들은 그때는 낙농업체들을 보호하는 법이 되었지만, 이미 17년이나 지난 법이기에 지금은 오히려 낙농업자들을 쥐어짜는 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들 시장 상황이 변했으면 그에 맞게 법을 개정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경배 사장은 걱정이 되었다.

이미 단맛을 보고 있는 유가공업체들은 그런 법들이 계속되길 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데, 그 법을 개정하려고 하겠습니까? 반발이 심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건 우유로 점유율을 가져오고, 폴란드의 멸균우유로 우유 시장을 흔들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흔들리는 시장에 타격받아 무너지는 낙농업자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냥 방치를 합니까?”

“그렇게 운영이 힘들어지는 목장은 우리가 인수를 해서 위탁을 맡길 겁니다. 그리고, 그런 무너지는 목장이 들고 있던 쿼터를 모을 겁니다. 그 쿼터가 일정 수준 모으게 되면 쿼터제나 원유 연동제를 없애라고 압력을 넣어 법 개정을 요구할 겁니다.”

“흠. 그때가 되면 우리가 소수이긴 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는 되겠군요.”

“그렇게 법이 개정되고 시장 자율화가 된다면 우리도 시장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고, 중국과 동남아를 공략할 수 있는 한국 내 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채산성이 나오겠습니까? 외국에 비해 목장을 대형화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폴란드나 동유럽, 미국, 뉴질랜드의 우유가 싼 데에는 자연 방목이 가능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아무리 한국의 우유 시장을 과거로 돌려 자유 경쟁하게 만들고 자동화 설비를 도입한다고 해도 그런 규모의 경쟁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국외 사육을 통한 조달입니다. 이런 국외 사육을 먼저 시작한 곳이 있습니다. 카타르의 발라드나(Baladna) 유업은 우크라이나에 1만 두 규모의 젖소 목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카타르의 면적을 비교한 지도를 띄었다.

“카타르는 국토가 경남 크기밖에 되지 않고, 기후가 덥다 보니 자국에서 목장의 운영이 힘듭니다. 그래서 카타르 정부는 자국의 식량안보를 위해 발라드나 유업을 앞세워 타국에서 목장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카타르는 대부분의 농산물을 수입해 오기에 자국의 식량안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외국에 목장을 만들어 수급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우크라이나 목장에서 카타르 국민 260만 명이 소비하는 유제품의 30%를 생산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운송이 어렵지 않을까요?”

“우유 상태로 운송하는 게 아니라, 요거트와 치즈, 버터를 우크라이나에서 가공해서 가져오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마시는 것은 자국에서 키우고 있는 2만5천여 마리로 커버를 하고, 기타 유제품은 국외에서 생산해서 채우겠다는 계획입니다.”

공장설비는 물론이고 노동자도 구하기 힘든 카타르였기에 우크라이나에서 모든 가공까지 끝내려는 것이었다.

“우리도 이 방법으로 치즈와 버터, 요거트류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공해서 들여올 겁니다. 이미 한국의 치즈 시장은 단가 문제로 80% 이상 외국산 치즈가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 점유율을 러시아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되찾을 생각입니다.”

우유 시장을 잡고 있는 대형유가공업체들에 대응하기 위한 구상이 다 나온 것이었다.

폴란드의 값싼 멸균우유를 풀고, 두유로 통칭되는 비건 우유로 우유의 점유율을 빼앗고, 치즈와 버터, 요거트는 러시아에서 가공해서 들여와 판을 흔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흔들릴 때 모은 낙농업체들을 규합해 오래된 법을 개정하거나 없애 버리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구상을 들은 사람들은 머리를 굴렸다.

폴란드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온다면 물류비와 관세를 붙여도 1리터당 800원은 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멸균우유를 스타마트에서 1리터에 990원으로 팔고, 푸드 딜리버리로 배송까지 해준다면 1리터에 2500원으로 팔리고 있는 우유 시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특히나 카페에서 라떼 용으로 쓰이는 우유 시장만 장악해도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러시아에서 만들어져 온 유제품과 모은 쿼터에서 생산한 우유를 유통한다면 점유율을 쉽게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담합만 하지 않는다면 우윳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겠군요.”

“어쩔 수 없이 내리게 되겠지. 그러면 우리도 유가공해서 수출하거나 유통하기 편해질 것이고. 한국 유업체들은 법적으로 담합을 했으니 거기에 안주한 대가를 이제 치러야지.”

미국의 유통업체들이 아마존이란 놈에게 다 박살이 났듯이 한국의 유업체들도 정신 차릴 때까지 좀 두들겨 맞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을 받을 낙농업자들이 생기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기 대표님. 이게 좀 쓸데없는 질문 같지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신성스타페이 일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김신현이었다.

“판을 흔들어서 우리가 끼어든다는 것은 이해했습니다. 헌데, 법까지 바꿔가면서 유업체들과 척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으로 점유율 좀 뜯어낸 후에는 같이 담합하면 다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소비자들은 언해피하겠지만요.”

“그래 담합하면 편하고 좋지. 헌데 비싸도 너무 비싸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