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문제가 많은 구조. (2)
단취웨이는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다.
3년 넘게 연습생으로 있었지만, 결국 데뷔는 하지 못했었다.
22살을 넘자 어쩔 수 없이 아이돌의 꿈을 버리고 중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때 아이돌이 아닌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일해 보지 않겠냐는 비치 엔터테인먼트의 제안이 있었고,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었다.
이후 비치 엔터테인먼트의 지원과 타고난 얼굴과 몸매, 한국에서 익힌 패션 센스로 이즈보(一直播) 플랫폼에서 컨텐츠 왕홍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녀의 방송은 주로 춤과 노래를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생방송 인원을 60만 명까지도 모을 수 있는 인플루언서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그녀로 인해 만들어지는 부가가치가 200억대가 되었다.
“응? 오늘은 타오바오 앱에서도 방송을 한다고? 어떤 물건인데?”
단취웨이는 물건을 주로 파는 커머스형 왕홍들이 활동하는 타오바오 앱과 동시에 방송을 한다는 말에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주로 한국 의류를 입고 보여주며, 춤과 노래로 브랜드와 옷을 ‘넌즈시’ 홍보해 주는 컨텐츠 왕홍이었기 때문에 이례적인 타오바오 앱 동시 방송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타오바오 앱은 이즈보 플랫폼에 비해서 유저는 작았지만, 타오바오 앱 방송에서는 물건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링크를 넣을 수 있었기에 직접판매가 가능한 플랫폼이었다.
“오늘은 한국 분유라서 그래요. 이게 샘플 3종류에요.”
“부, 분유? 그게 지금 나랑 맞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리 내 가슴이 크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난 의류나 화장품 같은 코스메틱 제품이 맞다고.”
“저도 아는데. 지금 몇몇 마트에서 외국 분유가 다 품절이래요. 그래서 홍콩이나 대만에 있는 친인척들에게 분유를 구한다고 난리라고 하더라고요. 아직 핸드폰으로 외국 분유를 구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꽤 많이 팔릴 거예요.”
“아니, 그렇게 분유 품귀현상이 있으면 뭐해 내 시청자들이랑은 타깃이 안 맞다고.”
“아니라던데요. 한국 비치 엔터에서는 오히려 최적의 상품이라고 하던데요. 연습생 때 먹는 거 많이 봤을 거라고 하던데.”
“아! 아하, 그런 거구나. 맞네. 내 방송을 10대에서 20대 애들이 많이 보고 있으니 타깃이 맞는 물건이었네.”
단취웨이는 자기 라이브 방송과 분유가 맞지 않는 물건이라 생각했는데, 한국에서의 기억이 떠오르자 음식 관련으로는 이거만큼 잘 맞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송시간이 되어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때 유독 가슴의 볼륨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단취웨이에요! 오늘은 한국 이야기부터 시작할게요.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였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돌 연습생을 한다는 걸 아실 거예요.”
방송이 시작되어 들어오는 사람들은 단취웨이가 한국 기획사의 연습생일 때 겪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거라고 기대했다.
“아이돌 연습생들은 어릴 때부터 체중 관리를 해요. 그런데, 한창 키가 클 성장기 때는 단백질과 여러 영양소를 잘 먹어야 키가 큰다는 걸 아실 거예요. 그럼, 한국의 아이돌 연습생은 뭐를 먹고 키가 큰 것일까요?”
채팅창에서는 한국 아이돌들이 좋아한다는 순대국밥과 라면, 떡볶이 같은 글들이 올라왔다.
“그런 한국 음식들도 맛있는데, 연습생들이 애용하는 음식이 따로 있어요. 바로 이거예요.”
단취웨이가 둥근 분유통을 올려서 보여주자 다들 이게 뭔지 궁금해하다 간난 아기들이 먹는 분유라는 것에 놀랐다.
“보시다시피 분유예요. 다들 분유를 연습생들이 먹는다고 의아해할 것 같지만, 분유는 우유로 만들어져요. 우유가 완전식품이라는 건 다들 아시죠?”
중국인들도 우유가 몸에 좋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유를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이 먹는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한국 아이돌 연습생들은 체중 관리를 해야 하는데, 키도 커야 하기에 충분한 영양소를 먹어야 해요. 그래서, 완전식품이라고 하는 우유로 만든 분유를 타 먹어요.”
단취웨이의 말에 채팅방에 들어와 있는 40만 명의 사람들은 이게 진짜 인지 아닌지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우유에는 영양소가 많아 키를 크게 해주지만, 살은 찌지 않게 해줘요. 그래서 한국 연습생들은 이 분유를 댄스 연습하고 난 이후에 꼭 마셔요. 한국 아이돌들이 마르면서도 키가 클 수 있는 비법이 바로 이 분유 때문이에요.”
채팅창에서는 한국인들은 어른이 돼서도 분유를 먹는다고 엽기적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살이 찌지 않으면서 키가 클 수 있는 완전식품이라는 말에 다들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한국 아이돌들이 먹는 분유의 링크를 알려드릴게요. 타오바오에서 구매하면 한국에서 직접 배송을 해 준답니다.”
20대에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동생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 중국에서 멜라민으로 인한 분유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분유를 안전한 한국에서 직접 보내 준다고 하니 이걸 구매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이가 없더라도, 다이어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분유를 마시면 한국 아이돌처럼 키가 클 수 있다는 생각에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
“허허. 신기하네요. 모은 분유를 중국 도매상들에게 넘기지 않고, 타오바오에서 팔 거라고 했을 때는 이 물량을 다 못 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타 물류 해운의 정경배 사장은 책상 위에 가득 쌓여 있는 택배 송장을 보며 신기해했다.
“아무리 50~60만 명의 팬을 가진 왕홍이라고 해도 패션 쪽이라서 타깃이 안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완판을 해버리니 신기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팔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번에 완판일 줄 몰랐네요. 더구나 구매자들 연령도 대부분이 10대와 20대로 나와요.”
비치 엔터의 건희는 구매 분석 자료를 정경배 사장에게도 보여줬다.
“젊은 층이 샀다면 분명 다음에도 우리가 파는 한국산을 사려고 할 겁니다.”
10대 때 다이어트용으로 한국 분유를 사 먹어 봤으니 중국 분유에 비해 안전함도 느꼈을 테고, 훗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을 때도 한국 분유를 먹이려고 할 터였다.
“오빠는 이렇게 분유를 팔아서 유통이익만 얻는 거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더군요.”
“네. 그래서 저도 급하게 한국으로 들어온 겁니다. 우리가 우유나 분유를 직접 생산하기만 한다면 LT마트 때 만든 인맥으로 중국 도매시장으로 진출도 가능할 겁니다.”
정경배 사장도 돈이 되는 중국 유가공 시장을 그냥 보기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얼른 제품을 만들어 중국에 진출하고 싶었다.
***
“비치 엔터와 해운 물류 합작으로 분유 25,000개가 중국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번 한번 완판 매출만 8억을 넘습니다. 쏠쏠하지만, 여기에 안주하면 안 됩니다.”
임건호는 회의실에 모인 20여 명의 사람들을 둘러봤다.
“중국의 분유 시장은 1년에 22조 원이나 되는 규모입니다. 그리고 1가정 1자 손이라는 산아제한 조치가 공식적으로 해제되었기에 중국의 분유 시장은 더 커질 겁니다.”
중국의 분유 시장 규모를 모르고 있던 이종민 동남아 총괄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동남아의 6억 인구가 있습니다. 아직은 모유를 기본적으로 먹이고 있기에 분유 시장이 작지만, 동남아의 분유 시장을 미리 선점해야 합니다.”
중국의 22조 원 시장과 성장 가능한 동남아의 분유 시장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유가공 프로젝트를 위해 스타 코퍼레이션의 전력을 투입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IMF 때 만들어진 법으로 인해 우리가 이 유가공업에 뛰어들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유 쿼터를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유제품을 생산하기까지는 플랜B로 시장에 진입을 해야 합니다.”
신호를 받은 정윤이가 테이블 위로 여러 음료를 올렸다.
“먼저 시장 진입을 위해 쿼터나 생산에 필요한 규제가 없는 이것들부터 생산을 할 겁니다.”
“대표님 이건 두유(豆乳) 아닙니까? 이미 한국의 두유 시장은 대지밀이 석권을 하고 있습니다.”
“맞아요. 두유 시장은 대지밀이 잡고 있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생각을 좀 바꾸자고요. 먼저 이 음료의 이름을 바꿉시다.”
임건호는 유리병과 종이 곽에 스티커를 붙였다.
“비…건 우유?”
“네. 스티커에 나와 있듯이 우리는 이제 이 음료를 ‘비건우유’ 비건 밀크(vegan milk)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불러왔던 두유를 갑자기 비건 밀크로 부르라는 임건호의 말에 이름만 바꾼다고 콩이 우유가 되는가 싶었다.
“속칭 ‘대체우유’라 불리는 식물성 우유 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내 대체 우유 시장은 지난해 16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기존의 우유 시장은 140억 달러 규모로 대체 우유가 기존 우유 시장의 10% 규모를 넘어선 겁니다.”
비서인 정윤이가 자료들을 배포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긍정적인 것은 전체적인 우유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체 우유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배포된 자료에는 미국의 2015년 우유 소비량이 1975년 우유 소비량보다 35%나 줄어들었다는 자료가 나와 있었다.
“미국인들이 월마트에 가서 사 오는 큰 플라스틱 용기로 된 우유의 판매율도 20% 가까이 줄었다고 합니다. 한때는 미국인들의 냉장고 필수품이었는데, 점점 생활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테이블 위로 음료들을 올렸는데, 콩으로 만드는 두유뿐만 아니라 아몬드와 귀리, 깨로 만들어진 대체 우유 제품들이었다.
“미국인들이 건강에 관심을 가지면서 채식을 하는 비건주의 사람들은 일반 유제품보다는 콩, 아몬드, 귀리 같은 식물로 만든 대체 우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다음 자료를 봐주십시오.”
종이를 넘겨 보니 한국은 1997년 1인당 연 우유 소비량이 31.5kg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차츰 줄어들었고, 작년 2015년에는 26kg을 기록했다고 나와 있었다.
“우유를 먹으면 뼈가 튼튼해지고 키가 큰다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먹일 만큼 완전식품으로 불렸던 우유도 IMF가 온 1998년 이후 소비량이 줄어들었습니다.”
다들 IMF를 겪은 세대라서 그런지 그 당시엔 뭐든지 줄여야 산다고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무너지는 낙농업계를 위해 생산 쿼터제가 나왔고 얼마 전에는 원유 가격 원동제가 나오면서 우유의 소비자가격은 더 올랐습니다. 그 결과 꾸준히 우유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회의실의 사람들은 자료를 보고 미국의 우유 소비량은 비건주의 사람들로 인해 줄어들었지만, 줄어든 만큼 비건들이 추구하는 대체 우유의 매출로 옮겨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매출의 변화가 건강을 생각하는 선진국들의 우유 시장 흐름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 시장변화와는 달랐다.
우유의 소비량은 줄었는데, 건강을 생각해서 대체되는 두유 음료의 판매량은 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경제적인 문제로 우유의 소비량이 줄었고, 대체 우유의 매출은 늘지 않은 세계추세와는 다른 특이한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