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문제가 많은 구조. (1)
“우선 건호 네가 낙농협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장이 될 수는 없어. 낙농업을 하고 있지 않으니깐. 다른 사람을 세워야 해.”
사내 변호사인 정진이가 낙농협동조합의 설립을 알아봐 줬는데, 낙농업을 하지 않는 사람은 조합원이 애초에 될 수 없었다.
“그럼, 명의를 빌려서 해야 한다는 거네. 만약에 그 명의 빌린 사람이 주도하여 낙협 금융기관을 설립하게 되었을 때 생기는 문제나 법적인 책임은?”
“명의 빌려주고 한 게 걸릴 일이 없으니 처벌도 없어. 그냥 조합장으로 낙농업자 이름만 빌려서 낙협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니깐.”
“그럼, 난 출자금을 내는 조합원이나 조합장이 아니라, 그냥 일반 고객으로 몇십억을 꽂아두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래. 표면상으로는 너나 스타 음료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조합의 상호금융기관인 거지. 하지만, 그 낙협이 스타 음료의 주거래 은행이 되어서 직원들의 월급이나 결제 대금을 받는 금융기관이 된다면 그때부터는 낙협이 좀 달라질 수 있지.”
낙농업 조합으로 만든 낙협이 나만의 작은 은행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손정의가 이야기한 은행과는 그 구조 자체가 다르고 한국에 있는 상호금융기관이라 쇼퍼백에 써먹을 수는 없겠지만,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사람 구해서 조합 만들고, 낙협 은행을 회사 근처 번화가에 만들어 줘. 은행 직원들은 고향이 충청도인 직원이 지원해 주면 좋을 것 같은데, 없으면 현지에서 뽑도록 하고.”
“오케이. 충청도에 있는 목장들을 다 돌아 보고 해 보지.”
그렇게 정진이가 5곳의 목장을 엮어 ‘참 우유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낙협 은행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원재료를 만들 기반을 조성했으니 가장 중요한 우유 쿼터를 위해 농림수산부에 방문했다.
“그렇다면, 올해는 우유 쿼터를 못 늘린다는 말입니까?”
“네. 매년 연말에 더 추가해야 하는지를 판단해서 쿼터를 조정하는데, 신문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남는 우유를 버리는 상황입니다.”
축산정책국의 김유환 국장이 신문을 보여 줬는데, 신문에는 우유 파동이라며 낙농업자들이 유가공업체에 납품하지 않고 우유를 도로에 쏟아 버리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우유 쿼터는 필요하다고 해서 바로 쿼터를 늘리고 줄이고 할 수가 없습니다. 스타 음료 측에서 건립하신다고 하는 공장에서 얼마만큼의 우유를 처리할 수 있는지 확정이 되면 그때 알려주십시오.”
한마디로 공장부터 다 지은 다음에 쿼터 늘려달라고 하라는 말이었다.
버려지고 있는 우유 사진을 봐서 그런지 김유환 국장의 말에 쿼터를 늘려 달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낙농업을 너무 쉽고 평화롭게 생각합니다. 우유 짜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하면 대다수는 스위스나 유럽의 풀밭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에게서 젖을 짜는 그런 상상을 하거든요.”
건호도 마찬가지였다.
조합문제로 목장에 가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미지화된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낙농업은 그런 목가적인 산업이 아니라 장기투자를 필요로 하는 장치산업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풀밭에서 풀을 뜯어 먹는 젖소의 이미지가 있어야 우유가 팔리니 그런 이미지 고착화를 계속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국장 김유환의 말에 건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 해도 목장에 직접 가 보기 전까지는 그냥 젖소들을 풀어 두다가 젖을 짤 때만 축유 기계를 붙인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 가 본 목장은 공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반 공장과 다른 점은 살아있는 젖소를 부품처럼 쓴다는 그 차이뿐이었다.
기계적인 착유 과정에는 새끼에게 우유를 주기 위해 착유한다는 그런 고귀한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돈이 되니 젖을 뽑아낸다는 무감정적인 생산만이 있을 뿐이었다.
젖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 개량된 젖소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젖을 짜주지 않으면 젖이 부풀어 올라 혈관이 터지고 유방염이 생기게 개량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유 수요에 관계없이 매일 일정량을 뽑아줘야 젖소가 살아갈 수 있는 기괴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젖소가 아프거나 죽지 않게 만들기 위해 하루에 2번씩 착유를 무조건 해야 했고, 그런 젖소는 생체기계화된 생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실을 알게 되면 우유를 더 안 먹게 될 것 같으니 유가공업체들은 초록 풀밭과 거기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젖소의 이미지가 필요했고, 지금도 소비자에게 주입시키고 있었다.
“새로 스타 음료에서 유가공업에 뛰어드신다고 해도 여러 제반 문제로 인해 급격하게 쿼터를 늘리기가 힘이 듭니다. 상황을 보고 늘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몇 톤씩 매년 늘려 주게 되면 제품을 생산해서 수출까지 하는 데 몇 년이나 걸릴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냥 한국에서 생산된 물건을 유통만 하는 게 낫지 생산은 하지 않는 게 맞았다.
“헌데 1999년 이전에는 생산이나 유통을 그냥 시장에 맡겨두고 고시가격만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우유를 버리면서 하는 이런 우유 파동이나 시위가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원유가격이나 생산 쿼터를 정해서 규제를 하게 된 겁니까?”
“그게, 이 낙농업이 장기투자를 필요로 하는 장치산업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 대부분이 대출을 받아서 설비를 투자하고 업그레이드를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농민이나 낙농업자들이 빚이 많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다, 1997년 IMF가 와 버렸습니다. 그때 한국 사람이라면 다들 힘들었지만, 낙농업 쪽도 그 타격을 크게 받았었습니다.”
시발 또 IMF였다.
이 개 놈의 IMF로 인해 우유 시장도 개판이 나 버렸던 것이었다.
“IMF 당시 국민들이 돈이 없다고 소비를 줄이자 우유 판매량도 줄어들었습니다. 낙농업자들이 서둘러 생산을 줄여 단가 지출을 막아보려 했으나, 젖소를 죽이지 않는 이상은 답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젖소를 도축해서 판다고 해도 당시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제값을 받을 수 없었었기에 손해를 봤을 터였다.
“그때 많은 목장들이 무너졌고, 파지퇴르 같은 유업체들도 IMF의 파고를 넘지 못해 자빠졌었습니다. 해서 정부에서는 시장 경제에만 맡겨두면 큰일 나겠다고 여러 규제와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무너지는 낙농업자를 위해 생산 공급량을 통제하고자 총생산 쿼터제가 만들어졌던 것이었다.
“그런 법들이 만들어진 이유나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법이 만들어진 지 이미 16년이나 흘렀지 않습니까? 낙농시장 상황이 바뀌었으니 그 법들도 변경이 되거나 폐지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대가 달라졌으니 법이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법을 개정하고 하는 것은 저희 공무원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방법이 없다는 말에 한숨이 나왔다.
법이 만들어진 초기에는 법의 의도대로 낙농업자들을 지켜주는 좋은 법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2008년부터는 그런 법들이 오히려 낙농업자의 이익을 제한하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매년 원유가격을 두고 낙농업자와 유가공업체들이 시위를 하며 가격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정부에서도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3년 전부터는 원유가격 연동제를 도입해서 낙농업자들의 생산비 증감액을 원유 기본가격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낙농업자들은 반발하고 있던데요.”
“대표님. 모든 국민들이 다 만족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는 없습니다. 법이란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누구에게 도움이 되면 다른 쪽의 사람에게는 손해가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희도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이 없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법이 없다는 김유환 국장의 말과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말에 지금 이 문제의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 말입니다. 직접 목장을 운영해서 제 생산공장에서 개인이 처리하는 것은 괜찮습니까? 제 농장에서 제가 생산한 우유이니 가격 연동제에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네? 목장을 직접 운영하고 우유도 직접 유통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네. 개인이 그렇게 가공해서 판매를 한다면 법에 접촉되는 것이 있습니까? 목장을 인수해서 그 목장이 가진 쿼터 자체를 제가 다 인수하는 것이라 쿼터 문제도 없을 테구요.”
“아, 그게…전례가 없었던 일이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부에서 주는 낙농업 지원금이라던지 그런 것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지원금이야 안 받으면 정부에게 더 좋은 거 아닙니까? 예전 1960~70년에는 양이나 소에서 바로 젖을 짜서 팔았지 않습니까? 개인이 그렇게 젖소를 기르고 우유를 판다면 그건 낙농진흥회나 다른 조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런데, 균에 따른 우유 등급을 받는다든지 하는 행정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등급제 조건이야 맞추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그렇지요. 헌데…다른 유가공업체나 유통업체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목장을 세우고 원유가격 연동제에 따르지 않은 채 생산 유통한다면 다른 곳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유가공협회’라든지 하는 그런 곳 말입니다.”
예를 들며 유가공협회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는 김유환 국장의 말에 대충 느낌이 왔다.
유가공협회.
거기가 막고 있는 거였구나.
한국에서 알아주는 유업체들이 다 소속되어 있는 곳이었다.
우유 관련 유관단체 자료를 봤을 때 협회의 회원사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이나 부산경남우유협동조합 같은 조합은 없었고, 다들 대기업 관련 유업체들만이 모여 있는 협회였다.
거기에는 LT그룹과 뉴세계의 자회사도 있었으니 유통업체가 한 몸으로 유가공협회에 들어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나 같은 신규 사업자가 들어와 시장을 나눠 먹으려 하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새로운 덩치 큰 사업자들을 막기 위해 17년이나 지난 IMF 때 만들어진 법을 아직까지 방어막으로 쓰고 있었고, 쿼터 제로 200만 톤 언저리로만 우유를 생산하게 해서 시장을 조정하고 있는 거였다.
그런 판국이었으니 지금 김유환 국장을 설득하든 안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쿼터를 늘리는 일이나 우윳값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유가공 대기업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원가연동제로 결정되는 원유의 가격은 안 오르는데, 소비자가 사 먹는 우윳값은 계속 오르고 있으니 그 중간에서 얼마나 이익을 보고 있을지 기분이 더러웠다.
“그럼, 내년 쿼터를 늘리려면 유가공협회에 가서 이야길 하면 되겠군요.”
“흠. 그건 또 아니긴 한데, 뭐…하하하.”
김유환 국장은 헛기침만 하며 얼굴을 돌렸는데, 그래도 부끄러움은 아는 사람 같았다.
쿼터를 정하고 낙농업계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결정하는 국장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로비도 많이 받았을 거고, 이리저리 챙겨 주는 떡값도 많이 있었을 터였다.
아마 심지가 굵어 로비가 안 통하는 사람이 국장으로 있었다면 재벌들이 힘을 써서 다른 자리로 보내 버렸을 터였다.
나름 유해 보이는 김유환 국장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천천히 쿼터를 늘려주십시오. 그동안 조합을 만들고 생산 준비를 하겠습니다.”
몇 년이 걸려도 계속할 것이라는 말을 김유환 국장에게 해주고는 농림축산부 건물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
“정윤아 플랜B로 가야 되겠다. 동남아 총괄인 이종민 총괄 들어오라고 하고, 정경배 사장과 이일찬 부사장 일정 체크해서 날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