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강 건너 불구경. (2)
“중국에 멜라민 분유 사고가 또 터진 겁니까?”
중국에선 낙농업자와 유업체들이 우유의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타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이 물 탄 우유를 잡아내기 위해 중국 정부에서는 우유 내 단백질의 주성분인 질소의 총 함량을 검사했었다.
그런 정부의 질소 함량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업자들은 질소 성분으로 구성된 멜라민 수지 가루를 우유에 섞었는데, 이 멜라민이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멜라민이 몸에라도 좋았다면 별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플라스틱의 재료이다 보니 인체에는 나쁠 수밖에 없었고, 신장이 멜라민을 걸러내기 위해 움직이다 신장이 망가져 버리는 것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의 신장이 망가지니 사망률도 높았고, 영구장애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네. 그래서 한국에서 최대한 분유를 모아서 수출해야 합니다.”
“중국에 사고가 나서 우리가 돈 벌 기회가 온 거긴 한데, 그렇게 조직이 다 움직여서 할 정도로 돈이 되는 겁니까?”
건호는 한국에서 분유를 모아서 중국에 파는 것이 큰돈이 될까 싶었다.
“제가 기억으로는 2008년인가 2009년에 멜라민 파동이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때 LT마트가 중국에서 크게 재미를 봤었습니까?”
“네. 당시 LT마트가 중국에 막 진입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멜라민 파동이 터지면서 10억 위안 이상의 매출을 올렸었습니다.”
“10억 위안요? 그 정도였나요?”
10억 위안이면 한국 돈으로는 1800~1900억인데 2008년 당시 LT마트는 중국에 막 진출하던 시기라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때였다.
그런 때에 10억 위안의 매출을 올렸다고 하니 돈이 되는 호재가 맞았다.
“당시에 매출을 더 올릴 수도 있었지만, 중국 정부에서 분유 시장이 외국계 기업들에 장악당하지 않도록 제재를 가했습니다. 그때 중국 정부가 막지 않았다면 더 이득을 얻었을 겁니다.”
그 사이 정윤이가 중국 분유 관련 자료를 가져왔는데, 중국의 분유 시장 규모는 2014년 기준으로 1200억 위안이나 되었다.
한국 돈 22조 원의 거대 시장이었다.
저기서 점유율 10%만 가져와도 2조의 매출이었다.
“LT그룹에서 파니퇴르 유업을 2010년에 인수한 것도 중국의 우유 시장을 보고 인수를 한 것이었습니다.”
“유업체와 LT 마트로 중국의 유제품 시장을 노렸던 것이었군.”
“네. 어느 정도 성과도 올라오고 있었는데, 다 날아가 버렸지만요.”
LT 그룹의 생각대로 되었다면 중국 유제품 시장을 어느 정도는 장악했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사드가 다 날려 버렸다.
“그러고 보니 중국이 올해부터 한 자녀 이상 낳을 수 있게 산아제한정책이 완화된다고 했으니 애들도 더 태어날 것이고, 확실히 끼어들 수 있는 시장이군. 한국에서 한번 최대한 움직여 봅시다.”
“대표님 그래서 말인데, 우유 팩에 든 멸균우유를 만들어 유통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스타 음료 설비에서 멸균우유도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스타 음료에는 콜라나 탄산음료 설비도 있지만, 토마토 쥬스나 알로에 쥬스 같은 과즙 음료도 생산을 했고, 검은 보리 음료 같은 경우에는 물을 끓여 만드는 과정도 있었다.
정경배 사장의 말처럼, 음료 설비를 조정하면 고온에서 멸균처리하는 팩 우유의 생산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탄산과 과즙 음료에 이어 이온 음료와 카페인 함유 음료까지 나올 예정이었는데, 멸균 팩 우유까지 생산해 낸다면 유업체로의 확장도 가능할 것 같았다.
레일리와 패션쇼를 보며 좀 놀려고 했던 것은 접어 둬야 할 것 같았다.
“정윤아, 한국 가는 비행기 제일 빠른 거로 잡아줘, 그리고 스타 음료에 연락해서 종이팩 관련해서 기술이나 관련 설비 있는지도 확인하고.”
“네. 그런데 대표님. 동남아 우유나 분유도 중국에 수출이 가능하지 않은가요? 그게 가능하면 한국까지 안 가도 될 것 같은데요?”
“오, 그렇네. 정 사장님. 동남아 우유나 분유는 안 되는 겁니까?”
“그게 동남아산 우유와 분유는 수출을 떠나서 좀 비관적입니다.”
“그냥 안되는 게 아니라 비관적인 겁니까?”
“네. 우선 동남아 대부분의 생산 우유나 분유가 중국의 기준을 맞추기 힘들 겁니다. 살균 설비도 제대로 없는 경우가 있다 보니 멜라민 파동 이후 강화된 우유 조건을 동남아에서는 맞추기 힘들 겁니다.”
정경배 사장의 말을 듣고 보니 동남아에서는 제대로 우유를 먹어본 기억이 없었고, 젖소를 키우는 목장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우선, 유럽에서 개량한 홀스타인 종이나 에어셔 종은 동남아의 더위에 적응이 힘듭니다. 그래서 동남아에서 목장을 하려면 높은 산자락에서만 가능합니다. 거기에 설비 없이 착유를 하다 보니 생산단가도 높고 유통단가도 높습니다.”
멸균 팩 우유를 제외하면 냉장으로 우유가 유통이 되어야 하는데, 동남아의 전력 사정이나 도로 사정상 제대로 된 냉장 유통이 힘들 터였다.
“물론, 싱가포르에서 만들어지는 화이자(Pfizer)의 S-26 분유가 있긴 하지만, 그건 재료를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들여와서 생산하고 다시 재수출되기에 구할 수가 없습니다.”
“동남아에서는 목장도 어렵고, 생산 가공도 어렵다는 거군. 결국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분유를 수입할 수밖에 없겠어.”
“네. 헌데 또 일본은 후쿠시마 이후로 환영하질 않습니다. 그래서 본토에서 외국 분유를 구하지 못하면 홍콩에서 미국산 분유를 사 오거나 멀리 있는 호주나 뉴질랜드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사 오기도 합니다.”
“응? 외국계 분유나 우유가 아예 중국에 수입이 안 되는 거야?”
“수입은 됩니다. 다만, 중국 정부에서 자국의 분유업계 보호를 위해 쿼터를 정해서 제한 수입을 하기에 일정 수량 이상은 수입을 못 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홍콩이나 대만에서 외국 분유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도 분유를 모아도 수출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국은 이게 또 재미있는 게, 보따리상을 통한 구매라던지 항공 직구가 가능합니다. 한국 분유는 바로 중국으로 택배를 붙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정식 분유 수입의 경우에는 중국 정부에 수입기업 등록을 하고, 여러 가지 제재를 받지만, 개인이 직접 구매하는 직구의 경우에는 그런 제재가 없다고 했다.
직구 물류비가 저렴한 한국이 최적일 수밖에 없는 거였다.
“햐. 그럼 이거 우리가 다 점유할 수도 있다는 거군.”
“맞습니다. 거기다 비치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왕홍들도 있기 때문에 그 왕홍들을 통한 직구로 판매를 한다면, 금방 매진이 될 겁니다.”
이제야 정경배 사장이 늦은 시간임에도 급하게 와서 전 조직을 동원해야 한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중국과 가깝고, 방사능 염려도 없으며, 식품제조의 안정성까지 한국이 가지고 있으니 중국의 22조 분유 시장을 한번 공략해봐도 될 것 같았다.
***
한국에 오자마자 공주에 있는 공장으로 움직였고, 이일찬 부사장의 브리핑을 들었다.
“예전 용진 음료일 때 유제품 생산을 시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산 책정이 되지 않아 중지가 되었었습니다. 그래도 당시 협력하고 있던 밍그레 유업에서 직원 다섯 명이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몇 년 전 이긴 해도 밍그레 유업에서 유가공 생산교육을 받았다고 하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럼, 설비만 추가하면 유제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다만, 이온 음료와 카페인 음료를 생산하게 되면 유제품 생산라인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설비를 더 늘리던지 해야 합니다.”
“흠. 제3공장을 만들어야 하겠군요. 아예 제3 공장은 유제품 공장으로 만듭시다. 분유도 만들 수 있는 설비까지 준비를 해주세요.”
“네. 준비하겠습니다. 헌데, 본격적으로 유제품을 생산한다면 생산설비보다는 다른 준비가 필요합니다.”
“다른 준비라면 어떤 겁니까?”
“단순히 우유와 분유를 중국으로 유통하는 목적이라면 괜찮지만, 우리가 정식으로 생산해서 판매한다면 먼저 낙농가를 모아야 합니다. 유제품은 탄산음료나 과즙 음료와는 달리 원재료를 공급받아야 하기에 먼저 낙농가를 모아야 합니다.”
“낙농가라. 하긴 원재료가 있어야 하니 당연하겠군요. 이 공주시 근방의 낙농업자들과 우유 공급 계약부터 맺도록 하겠습니다.”
공장 인근에 우유 목장이 없다면 다른 지역까지 가야 할 수도 있었다.
“헌데 또 낙농업자와 공급 계약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우유의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서 하루 뽑아내는 우유 쿼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우유 쿼터를 농림수산부에서 받아와야 합니다.”
“쿼터라. 그렇다면 유업체가 새로 생기게 되니 그 새로 생긴 유업체 분의 쿼터를 정부가 늘려 줘야 하고, 그 쿼터를 받은 낙농가에서 추가 생산해야 우유를 받을 수 있다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탄산음료나 다른 음료에 비해 규제가 많은 것이 유가공업입니다.”
“흠. 알겠습니다. 그런 문제는 제가 다 풀어 낼 테니, 이일찬 부사장님은 제3공장 건설과 신규인력들을 뽑아 주십시오.”
“네. 그리고, 밖에 신문기자가 와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직 한국에 대표님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인터뷰를 꼭 해야겠다고 합니다.”
“인터뷰야 하면 되는 것이죠. 주요 신문사가 아니기에 거마비니 뭐니 하는 것도 적당히 줘야죠. 저렇게 내려와서 뻗대는데.”
***
“아유 우리는 쿼터만 받아오시면야 언제든 착유량을 늘릴 수 있쥬.”
스타 음료 공장에서 17km 떨어진 가까운 곳에 목장이 하나 있었기에 들렸는데, 목장 구경도 하고 납품이 가능한지 물었다.
“쿼터에 맞게 젖소를 키우는 거 아닙니까? 쿼터가 늘게 되면 젖소도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그것도 맞긴 한디, 갑자기 수십 톤씩 늘리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여유가 있슈. 예전에는 한 마리 젖소가 20ℓ도 못 짰다면 지금은 35~45ℓ까지도 짜낼 수 있게 기술이 많이 발달했쥬.”
쿼터만 받아온다면 언제든지 우유를 추가 생산, 납품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헌디, 스타 음료에서 오셨다고 하던디, 거기서 조합을 만드는 거쥬?”
“조합요?”
갑자기 조합을 만들 건지 물어보는 말에 왜 조합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오빠 서울우유가 서울우유협동조합이잖아. 부산도 마찬가지로 부산경남우유협동조합이야. 학교에서 우유 받아먹었잖아.”
정윤이의 말에 그제야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받아먹던 부산우유 종이 포장에 부산경남우유협동조합이라고 쓰여 있었다.
단순히 목장들과 계약을 맺어 우유를 납품받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듯했다.
“젖소 40마리 겨우 키우는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슈? 납품을 계속 받아 가고 한다고 소 늘리고 땅 사고 다했는데, 납품이 갑자기 끊기면 어떻게 되겠슈? 조합으로 목장주들끼리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슈?”
“헌데 방금은 우리 스타 음료 쪽에서 조합을 만들 거냐고 물었지 않습니까?”
“그야 당연히 농협이든 축협이든 낙협이든 만들어서 은행을 해야 하니께 그런 거 아뉴?”
“네? 그게 무슨…아아!”
왜 우유 조합을 우리에게 만들 것인지 물어봤는지 알 것 같았다.
일명 단위농협이라고 불리는 농협은행이 있는데, 이는 그 농협 조합의 조합원들이 모여 설립되는 형태였다.
다른 말로는 상호금융기관이라고도 하는데, 조합을 만들어 조합비를 모으고 그 출자금으로 금융기관을 설립한 것이었다.
그렇게 모인 돈은 조합원들이 땅을 사거나 소를 들일 때 대출을 해 주고 할 수 있는데, 마을 단위의 두레나 계(契)모임이 금융 기관화된 거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한마디로 인근의 낙농업자들을 모아 조합을 만들면서 대출도 해주는 낙농업 협동조합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조합을 설립하는 우리가 출자금을 많이 내어야 하니 이용당하는 거 같지만, 이걸 뒤집어 보면 대출금을 볼모로 해서 우리가 낙농업자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목줄을 만드는 것과 같았다.
“네. 우유 납품을 위한 낙농업 협동조합을 우리가 만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