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73화 (173/203)

173. 제트핑크. (1)

“엇? 미사다!”

“어디? 진짜네. 제트핑크 새 광고판이네.”

“쇼퍼백? 그런 옷도 있었나?”

자카르타의 중심가에 위치한 그랜드 인도네시아 쇼핑몰 외부광고판에 제트핑크의 대형광고판이 내걸리자 인도네시아 소녀들은 더위도 잊은 채 한참을 구경했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기 바빴다.

“그런데, 저 광고 보면 제트핑크가 직접 택배를 전해 준다고 하는데, 저건 뭐지.”

“쇼퍼백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이벤트로 제트핑크 멤버들이 직접 택배를 건네준다고 하는데.”

“진짜?”

실제로 제트핑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에 광고판의 세부 이벤트 내용을 살폈다.

“9월 25일 인도네시아에서 제트핑크가 KAD 택배 직원으로 택배를 직접 전해 준대.”

“쇼퍼백에서 구매한 대상자 한정이라고? 처음 들어 보는 사이트인데. 근데, 어서 몰 안으로 들어가자 더워.”

네댓 명의 소녀들이 그랜드 인도네시아 쇼핑몰 안으로 들어가니 미사와 제트핑크 멤버들의 포스터가 여러 식당 앞에 붙어 있었다.

한두 집이 아니라 몇 집이나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광고판의 작은 포스터도 있지만, 짙은 파란색의 KAD 유니폼을 입은 포스터도 있었다.

“뭐야 이 이벤트 엄청나게 홍보를 하는데.”

“일본 음식 파는 집이나 스테이크를 파는 집이나 다 붙어 있어.”

“아! 그랩 푸드에 등록된 집은 저 포스터가 다 붙어 있는 거 같아.”

소녀들이 놀랄 만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74곳의 쇼핑센터 외벽과 그랩 푸드를 이용하는 가게에 제트핑크의 포스터가 내 걸렸다.

길거리에서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일 수밖에 없을 만큼 광고를 쇼핑몰에 집중했는데 이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몰링(malling) 문화를 노리고 한 마케팅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쇼핑몰이라고 하면 후진국이기에 한국 지방에 있는 그런 작은 쇼핑몰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의외로 쇼핑몰의 규모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2억 7천만의 인구에 맞게 800여 곳의 쇼핑몰이 있었는데, 대부분 쇼핑몰의 크기가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해운대 신세계 쇼핑몰만큼 컸다.

이렇게 인도네시아의 쇼핑몰이 대형화된 이유는 날씨가 무덥다는 것과 엄청난 교통체증, 주차문제 때문이었다.

일단 쇼핑몰에 가면 그런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기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쇼핑몰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몰링(malling)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쇼핑몰에 오면 거기서 먹고, 입고, 보고, 놀고 하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있게 만들다 보니 다들 큰 쇼핑몰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모든 광고와 마케팅도 쇼핑몰에 집중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대형 쇼핑몰에 제트핑크 포스터와 외벽광고가 노출이 되었으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될 수밖에 없었다.

“9월은 인도네시아고, 10월은 우리 방콕에서 미사가 택배를 직접 전해 준다는데!?”

“도대체 어디서 물건을 사야 하는 거야? 쇼퍼백? 처음 들어보는데.”

“한국 쇼핑 사이트인데!”

제트핑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쇼퍼백이란 정체불명의 사이트에 한번 들어와 봤고, 한국 사이트라는 표기에 우선은 살펴보았다.

“매일 직배송 상품의 경우 선착순 구매 1000건까지 제트핑크의 포토 카드와 굿즈를 준다는데!”

“뭐해? 빨리 가입해!”

“처음 들어보는 사이트인데, 상품이 의외로 많은데.”

“그러게. 그리고, 무료배송 상품이 많아.”

단순히 광고를 보고 제트핑크 때문에 사이트에 들어왔지만, 의외로 패션잡화 상품들이 많자 다들 구경하기 바빴다.

이런 패션잡화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자를 모은 것은 동생 건희가 한국에서 작업을 해 준 것이었다.

동대문에 편집샵을 오픈하며, 업체들에게 라자다와 비슷하다고 입점을 시켰고, 중국의 거래처에도 가입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

지면광고와 더불어 방송 CF도 준비를 했는데, 제트핑크의 일정상 어쩔 수 없이 광고가 나간 다음에서야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저기 임건희 대표님. 멤버들이 콘티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고 합니다.”

“네? 콘티에 수용하기 어려운 게 있다고요?”

건희는 자신이 본 CF 콘티와 제트핑크 멤버들이 본 콘티가 다른 건가 싶었다.

제트핑크 멤버들이 쇼핑가를 걷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택배 상자를 받게 되고, 또래 아이들에게 택배를 선물하는 그런 내용의 콘티였는데 여기에 수용하기 어려운 게 있다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부분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하던가요?”

CF 감독과 기획사의 수석매니저는 콘티의 한곳을 가리켰다.

“받은 택배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이 부분에서 나오는 노래가 문제라고 합니다.”

“아, 콘티 내용이 아니라 CF송이 문제인 거예요?”

CF 촬영대본을 정하고 연출 준비를 할 때 나름 CF계에서 유명한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만든 노래였다.

[모두가 원하는 쇼핑~모든 것이 있는 쇼핑~쇼퍼백~쇼퍼백~]

짧은 CF이니만큼 후렴구가 반복되는 후크송이었는데, 처음 듣자마자 건희는 귀에 착 감겨 들어왔었다.

그래서 CF송을 잘 만든 것 같았는데, 이 노래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하니 뭔가 감각이 틀린 건가 싶었다.

“애들 말로는 이 노래가 예전 들어봤던, ‘사나~사나~사나 모니~’ 하는 그 대출 광고의 리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싫다고 합니다.”

“에? 아아!”

수석매니저의 말을 듣자 그제야 왜 CF송을 처음 들었을 때 귀에 착 달라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여자 목소리이고 BPM이 빨라서 그 대출 광고 노래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직접 남자 목소리로 듣고 보니 바로 ‘사나모니’ 그 반복되는 리듬이 떠올랐다.

“이 노래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거 이해됩니다. 헌데, 문제는 이 CF송이 없으면 광고가 안 만들어집니다.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노래도 없고요.”

노래 때문에 일정이 다시 어그러지는 것 같아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임 대표님. 노래는 제트핑크가 직접 부르기로 한 거라 우선 촬영은 가능합니다. 이후 노래를 새로 해서 부르게 되면 편집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촬영장에 꼭 노래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 이 촬영 콘티대로 진행을 합시다.”

시작부터 꼬여버렸기에 퀼리티 있는 CF가 만들어질까 염려스러웠다.

촬영이 끝나면 이 광고음악 작곡가를 소개해 준 업체를 뒤집어엎어야 할 것 같았다.

“잠시만요. 노래를 다 바꾼다면 이 콘티도 바꾸면 안 될까요?”

촬영을 위해 대기실을 나오던 제트핑크의 제인이었다.

“콘티가 너무 무난한 거 같아요. 사실, 내용도 우리랑 안 맞는 것 같고요.”

“맞아. 맞아. 색이 달라.”

“그냥 흔한 CF 같아.”

“이 CF는 사실 봐도 기억이 안 남을 것 같아. 그래도 그냥 찍어야 하려나.”

제인은 물론이고 다른 제트핑크 멤버들도 사담처럼 CF 자체가 별로라고 입을 모으고 있으니, 진짜 별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망조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건희는 아찔했다.

“이 CF의 목표가 쇼퍼백이라는 쇼핑몰을 알리는 거잖아요? 쇼핑몰에서 물건을 고르고, 돌아다니기보다 갑자기 나타난 쇼퍼백 상자가 더 좋다는 걸 강조하는 그런 내용이잖아요. 맞나요?”

“맞아요.”

“그럼, 거기에 우리 색을 입히면 안 될까요?”

“어떻게 색을 입힌다는 건가요?”

“이 콘티처럼 쇼핑몰을 그냥 이리저리 보는 거보다는 그냥 갑자기 눈앞에 빈 택배 상자가 나타나고, 거기에 우리가 막 물건들을 넣는 거예요.”

“막 가게에서 강탈하는 그런 느낌말인가요?”

“강탈 보다는 신나게 담는다는 거죠. 너무 싸니깐 막 담아도 된다는 그런 느낌요.”

제인은 직접 상자를 들고, 쇼핑몰에 전시된 옷과 액세서리를 신나게 상자에 집어넣었다.

“이렇게 내가 좋아 보이는 물건을 다 담아서 너에게 주는 거야! 하는 그런 내용요. 그게 쇼퍼백이라는 쇼핑사이트 광고로 더 좋은 거 아닐까요? 그게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

제인의 말에 건희는 좋은 의미의 충격을 받았다.

이게 아티스트다!

CF를 만들 때 돈 생각하지 않고 업계의 이름난 감독과 스태프들을 모았었다.

콘티나 CF송도 업계 최고들에게 의뢰를 했었다.

그렇게 나온 결과가 무난한 콘티에 어디선가 들어봤던 ‘사나모니’ 노래의 변형이었다.

업계의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맡은 작업이 의뢰자의 기준을 통과될 수 있게 모나지 않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거부감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그 결과가 오늘 찍으려고 했던 CF였다.

하지만, 아티스트는 그런 전문가들과는 달랐다.

어떻게 하면 더 멋이 있을지 아는 것이었다.

물론, 물건을 마구잡이로 잡아 넣고 하는 모습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뇌리에 남는 것이었다.

“수많은 가게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제트핑크가 담아서 팔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제인 씨의 말에서 느껴지네요. 그렇게 콘티를 바꿉시다.”

“네? 대표님. 그러면 동선이나 그런 것을 다 바꿔야 하고, 이 쇼핑몰 관계자에게 다시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감독님. 그냥 여기 물건 제가 다 사면 됩니다. 그걸 더 좋아할 거예요. 그리고, 동선은 자유스럽게 보일 수 있게 핸디 카메라가 붙는 형식으로 가죠. 그런 장면들 모아서 편집하고요. 상자에 물건을 담아서 다른 친구들에게 건네주는 부분만 촬영대본대로 갑시다.”

10여 년 가까이 CF 감독을 해온 김온후 감독은 이런 일이 처음이라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콘티를 지키지 않고, 즉흥적으로 찍는 연출법이 있긴 했지만, 그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그런 즉흥성을 바탕으로 콘티를 짜야 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가자고 하니 김혼후 감독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트핑크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콘티가 바뀌었다고 즉석 랩으로 CF송을 하자며 가사를 만들어 내자 김온후 감독도 생각을 달리했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북미까지 인기를 가지고 있는 제트핑크이니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유니크 성을 담아내고 싶다는 연출가로서의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반복되고 지겨운 시간들

하루를 보내면 다시 해가 뜨는 무료한 아침

책임지지 못할 나의 기분을 기쁘게 하는 건 쇼핑!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모아온 나.

시선을 돌려 클릭해봐!

클릭! 클릭!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담아! 쇼퍼백에!]

팀의 랩퍼인 미사와 제인이 번갈아 가며 랩을 하며 리듬을 탔고, 다들 리듬에 맞춰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상자에 던져넣기 바빴다.

그리고, 물건이 담긴 상자는 자신들을 보고 있던 또래의 친구들에게 전해졌다.

[꾸미고 싶은 10대에게 필요한 건 쇼퍼백!

쇼퍼백을 너에게 준다!]

***

“크흑! 미쳤다. 이걸 진짜 즉흥랩으로 해서 녹음했고, 콘티도 다 바꾼 거라고?”

“그렇다니깐 오빠. 진짜 왜 제트핑크 애들이 인기 있는지를 이번에 알았다니깐. 애들을 좋아하고 열광하는 이유가 있었어.”

동생 건희를 통해 1차 편집본을 받아 봤는데, 뭔가 CF가 뮤직비디오처럼 느낌이 있었다.

“건희야. 이거 콘티 바꾸고 하는 과정도 혹시 찍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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