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네이밍.
“한국이라면 무료배송이라도 날짜가 늦으면 안 되겠지만, 동남아에서는 도착만 제대로 하면 대부분 이해를 해줍니다. 다른 유료 배송 일정에 맞추어 무료배송을 끼워 보내도 괜찮을 겁니다.”
“그 말은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가 아닌, ‘와! 진짜 무료로 택배가 왔네?’ 하는 그런 기분이라는 겁니까?”
“네. 대표님. 제가 겪어본 섬이나 산간 지역의 사람이라면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박종일 해운물류 사장의 말에 다른 해운사 직원들도 동의했다.
“인도네시아에는 한국의 택배 회사라고 할 수 있는 JNW와 J&T가 있습니다. 이 두 회사는 섬에도 배송을 하는데, 300톤에서 400톤 정도 되는 배를 수십 대 운영합니다.”
“한국처럼 공적 우체국이 없으니 그 두 곳이 우체국의 역할을 하는 거군.”
“네. 정기선처럼 화물과 사람을 싣고 운행을 하는데, 섬 특성상 배송은 기본 20일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습니다.”
20일, 한 달, 몇 개월이 걸려도 원래 그런 거라고 섬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JNW과 J&T가 돌고 있는 항로에 우리도 배를 운영하게 되면 화물과 여객까지 해서 손해는 보지 않을 겁니다.”
“좋네요. 필리핀은 아직 반군 문제 때문에 안될 것 같고, 인도네시아부터 물류망을 만들어 봅시다. 블루버드의 운송망과 연계가 되겠지요?”
“음. 그렇다면 대표님. 아예 블루버드의 운송망과 연계하여 택배회사를 따로 만드는 것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블루버드의 운송망으로 감당이 되겠지만, 주문이 늘어나게 되면 감당이 안될 겁니다.”
지금의 블루버드 운송망은 단순하게 각 지역을 이어주는 교통 물류지로 차를 움직여 주는 물류망인데, 고객에게 직접 배송까지 하려면 택배사를 따로 차리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넓은 국토에 지역마다 택배기사를 두는 것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하는데, 동남아시아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가 되는 택배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 부분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도어 투 도어가 안된다니? 그럼 택배가 아니잖습니까?”
“아닙니다. 대표님. 한국이나 미국의 택배를 기준으로 생각 하시면 안 됩니다. 나름 발달 된 싱가포르나 쿠알라룸푸르, 방콕 같은 대 도시에서도 도어 투 도어 서비스가 되는 지역은 50%가 안 됩니다.”
동남아에 체류한 기간은 길었지만, 택배로 뭘 사본 적이 없다 보니 그 차이를 모르고 있었다.
“그럼, 택배를 택배 지점까지 찾으러 가는 건가요?”
“네. 보통은 택배가 도착했으니 받아 가라는 연락을 전화로 하면 고객이 와서 찾아가는 형태입니다.”
“그렇게 해도 사람들이 만족한다는 겁니까?”
“네. 그게 당연한 택배 방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추가비용을 내면 집까지 가져다주긴 하는데, 대부분이 찾으러 옵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구역 별로 택배기사와 택배 트럭을 놔두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그렇지 않으면 물건값 만큼 비싼 DHL 같은 프리미엄 택배 서비스를 써야 하는데, 진짜 고가의 물품이 아닌 이상 다들 DHL을 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택배사를 설립하는 게 쉽겠는데요. 무료배송 전략을 짜기도 쉬울 것 같구요.”
인도네시아 지도를 꺼내 지금 만들어져 있는 블루버드와 합작한 물류 지역을 체크했다.
“이미 30곳 이상의 지점이 있으니 이 지점으로만 택배를 보내주면 무료배송이 완료 된 거라고 봐도 되는 거겠죠?”
“네. 각 지점별로 택배가 제대로 왔는지 검수하는 직원과 전화 업무 직원 해서 2명씩만 추가하면 됩니다. 다만 문제는 이 30여 곳을 일일이 열거해서 무료배송 지역과 아닌 지역을 체크해주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이거 쇼핑몰 서버에서 지역 확인이 바로 될까요?”
“IP로는 되지만 핸드폰의 경우에는 안될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명확하게 하려면 앱에서 GPS 위치 값을 받게 해야 하고,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흠 그럼. 그냥 인도네시아 전역을 다 무료배송으로 해버립시다. 30곳을 60곳으로 늘리고, 추이에 따라 90곳 이상으로 지점이 개척되면 전 지역이 다 무료배송 되겠지요. 그런데, 도어 투 도어가 이렇게 어려운 서비스였다니.”
“한국이 대단한 겁니다. 미국도 도어 투 도어 서비스를 적용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안되는 오지 지역이 남아 있습니다.”
“우린 그랩이 일단 먼저 깔려있으니깐 동남아 전체를 아우르는 택배사를 만들어 봅시다. 일단. 각 나라 그랩의 지사장들을 쓰면...아, 안되겠네요.”
손쉽다고 해서 그랩의 지사장들이나 지역 가입 사무실을 택배와 연관되어 활용하게 된다면 택배사의 성과도 그랩에 잡힐 수가 있었다.
하나하나 맨바닥에서 만들어 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박종일 사장님이 택배사 대표를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중국에서 마트 개척 했듯이 지점을 개척하셔야 할 것 같은데, 해운 물류는 정경배 부사장이 맡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에? 하하하. 너무 즉흥적인 거 아닙니까? 그래도 전경배 부사장이 적임자이긴 합니다. 그럼, 택배회사 이름은 뭘로 하실 겁니까?”
“음. ‘코리아(K)’ ‘아시아(A)’ ‘딜리버리(D)’의 약자로 ‘카드 KAD’로 어떻습니까?”
“카드라. 괜찮네요.”
블루버드의 교통량과 인구 데이터가 있으니 상위 60곳을 선정해 지점을 만들고, 한국계 이민자를 우선 채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한국에서 택배 실무자들을 들이고, 전산 관리 시스템도 구축하는데 몇 개월 걸릴 것 같습니다. 섬을 도는 배들도 구해야 하니 단기간에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겁니다.”
“네. 바로 적용이 가능한 블루버드 유통망으로 일단 시작을 해보지요. 지금이 아니라면 알리바바에 다 잠식이 되어 버릴 것 같으니 다들 서둘러 주십시오.”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는 생각에 다들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대표님 쇼퍼백 사이트에 무료배송을 바로 적용해 봅니까?”
“네 그럽시다. 우선은 우리가 직접 판매하는 한국 물건 뿐만 아니라 판매자가 인도네시아로 보내주는 일정 금액 이상의 물건에도 다 무료배송을 한다고 광고부터 합시다. 그리고 회원유치는 한류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그럼 또 한류 콘서트를 하는 겁니까?”
“한류 콘서트는 이미 했으니 또 하면 약발이 약할 겁니다. 지금 인도네시아, 아니 동남아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돌이 누군지 압니까?”
“제트핑크와 흥탄소년단이 최고일 겁니다. 그중에서 고르라면 태국인 멤버가 있는 제트핑크 걸그룹이 최고인기일 겁니다.”
“제트핑크라.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트핑크 멤버가 인도네시아 택배 지점에서 택배를 직접 전해준다는 광고를 하는 겁니다.”
“오, 그럼 제트핑크 멤버에게 택배를 받고 싶다면 쇼퍼백에서 주문을 하라는 거군요.”
“네. 그겁니다. 일단 전면적으로 광고를 하고, 인도네시아로 와서 사흘 정도 체류하는 스케줄을 우리가 잡아 봅시다. 그리고 이게 반응이 좋으면 그 멤버가 있는 태국에 택배 지점을 만들면서 태국에서도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고요. 어떻습니까?”
“괜찮겠는데요. 그리고 제트핑크 이후로는 어떤 아이돌에게 택배를 받아보고 싶습니까? 라고 해서 투표도 받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 그러면 자기들이 응원하는 아이돌 팀을 1위로 만들고, 직접 볼 수도 있으니 쇼퍼백에 가입해서 투표도 하고 쇼핑도 해주겠네요.”
별거 아닌 순위에 집착하는 아이돌 팬들을 유치하기에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좋네요. 그렇게 대대적인 광고를 진행해 봅시다. 정윤씨는 한국 비치엔터 연락해서 제크핑크 섭외하고 스케줄 비는 날짜를 알려달라고 해주세요.”
***
레일리의 쇼핑몰인 쇼퍼백은 오픈소스로 된 개인 쇼핑몰이었기에 한국에서 개발자들이 붙어서 사이트를 개편했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판매자들이 입점해서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오픈 마켓 형태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건 뭔가요? 25억? 저는 분명 사이트에 대해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 거 같은데요.”
레일리는 건호가 내미는 카드와 통장을 확인하곤 다시 돌려줬다.
“그럼 사이트 대금이 아니라 투자금이라고 합시다.”
“투자금요? 뭐에 대한 투자인가요?”
“쇼퍼백 사이트가 오픈마켓 형태가 된다면,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아,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네요. 그럼 이렇게 묻죠. 오픈 마켓에서 판매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임건호의 말에 레일리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구매자에게 어떻게 노출되냐 하는 것이겠지요.”
“맞습니다. 구매자에게 어떻게 도달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오픈마켓의 첫 페이지에 상품이 노출되게 광고비를 쓰는 거지요. 하지만, 그런 노출과 상관없이 고객에게 도달하는 것이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그건, 아마도 브랜드겠죠?”
“맞습니다. 구매자는 한번 구매했던 물건이 마음에 들면 그 브랜드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검색을 하죠. 이건 첫 페이지 노출보다 더 강한 힘인 겁니다.”
“그럼, 제 브랜드를 만들라는 건가요?”
“네. 이제까지 레일리의 쇼퍼백에서는 레일 리가 올리는 물건들만 팔았기에 브랜드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브랜드를 만드셔야 합니다.”
“그럼, 이 돈은 제 브랜드에 대한 투자금이라는 건가요?”
“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가 레일리씨를 이용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의 네이버는 배우 전지현씨를 내세워서 초반에 인지도를 만들었어요. 그것처럼 쇼퍼백에서는 레일리를 내세울 겁니다.”
“헌데, 그건 제트핑크의 태국 멤버를 쓰기로 한 거 아닌가요?”
“제트핑크는 우리 사람이 아니지요. 제트핑크는 한류 팬들을 끌어 모아줄 포인트 이지만, 알리바바가 돈을 더 주면 거기서도 광고모델을 할 겁니다.”
전속모델 계약을 해도 계약이 끝나면 남인 것이었다.
“전 레일 리가 자체 브랜드를 만들면, 그 브랜드를 띄우기 위해 돈을 쏟아부을 겁니다.”
“패션쇼 같은 거라도 해주신다는 건가요?”
“기꺼이 해드리죠. 전 ‘자라(ZARA)’ 브랜드처럼 레일리의 브랜드 옷을 사기 위해서 쇼퍼백에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합니다. 그런 브랜드를 만들어 주십시오.”
레일리는 임건호가 다시 내미는 통장과 카드를 받아들었다.
싱가포르 라셀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했을 때 모델로 성공하게 되면 자신도 언젠가는 빅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쇼퍼백 이라는 패션 쇼핑몰을 창업했었다.
모델로서의 인지도와 한국 혼혈이라는 장점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쇼퍼백 사이트는 자신의 것이 아닌 오픈마켓이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자라(ZARA)처럼 자신만의 브랜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이용당하는 게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건호씨가 원하시는 그런 브랜드를 한번 만들어 볼게요.”
“브랜드 이름은 생각한 게 있습니까?”
“몇 개 있긴 한데, 아마도 건호씨가 추천해 주고 싶은 이름이 있는 거 같은데요.”
“자라(ZARA)는 패스트 패션(SPA) 브랜드인데,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고급 명품의류와 SPA 사이의 브랜드로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네. 스페인이나 북미에선 유니클로와 비슷하게 보는데, 북동아시아에서만 저렴한 명품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네. 그래서 패스트 패션(SPA)을 표방하지만, 레일리의 이름을 걸어줬음 합니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건 패스트 패션을 원하는 거군요.”
레일리는 패스트 패션에 이름을 걸어야 하는 포지션이 애매하다는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아시아에서는 이런 수요가 있긴 있었다.
빠른 디자인과 다품종 소량생산, 생산되기까지 걸리는 짧은 시간,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은 품질과 빠른 판매 회전율을 가지는 것이 SPA브랜드인데, 아이러니하게 이름을 걸고 런칭하는 명품 브랜딩을 원하는 것이었다.
이미 그런 포지션인 자라(ZARA)가 있으니 못 만들건 없었다.
“레일리가 만드는 옷을 한류 아이돌들에게 입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