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69화 (169/203)

169. 얼마면 됩니까?

“레일리씨의 쇼퍼백 사이트 얼마면 됩니까?”

“얼마라니... 이게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좀 난감하네요.”

“사이트 회원 수가 어떻게 되고 매출이 얼마인지 물어도 됩니까?”

“회원 수는 25만 명 정도 되지만, 아직 매출은 월 1억이 안 돼요.”

“그럼 25억에 사이트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물론, 레일리씨가 대표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하는 조건입니다.”

“네?”

“사실 쇼퍼백 사이트를 사려는 게 아닙니다. 더 조건이 좋은 쇼핑몰 사이트 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이트에는 레일리씨가 없지요. 레일리씨의 가치를 보고 구매하고 싶은 겁니다.”

“제 가치요?”

“네. 모델 일을 하셨을 때 유럽과 동남아에서 다 했었습니까?”

“네덜란드를 초등학생 때 떠나서 모델 활동은 여기서 밖에 안 했어요.”

“그럼, 레일리씨가 무대에 올랐을 때와 무대가 아닌 그냥 다른 곳을 일반 적으로 다닐 때 사람들의 시선 차이가 있던가요?”

“흠. 제 자랑 같지만, 무대에 서든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 서든 별 차이가 없었어요. 다들 저를 보니깐요. 유럽에서는 동양인 같다고 보는 거라 생각했고, 싱가포르에 와서는 백인 같다고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생각해요. 자신과 다르니까요.”

“그 시선을 쇼핑몰에서 같이 걸었던 저도 느꼈습니다. 좋게 본다면 동서양을 아우르는 미(美)를 가진 것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동서양 그 어디와도 다른 이질적인 아름다움인 겁니다.”

“제 혼혈외모를 원하시는 거군요.”

“그게 아니라고 말은 못하겠네요. 하지만, 그 외모가 다가 아닙니다. 화장실 가셨을 때 검색을 해보니 모델의 지명도를 이용해서 쇼퍼백 사이트를 만들었고, 나름의 패션 팬들을 모았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럼 쇼퍼백 사이트를 인수해서 패션 쪽으로 방향을 잡으실 건가요?”

“아마도 회원 수가 늘어나기 전에는 패션 잡화 쪽이겠지요.”

만약 한국이었다면 초반 회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생필품을 주력으로 해서 판매했을지도 몰랐다.

최저가로 올리면 무조건 팔리는 품목이었으니깐.

하지만, 동남아시아는 그런 생필품이 주력이 될 수 없는 곳이었다.

생필품은 무게가 있다 보니 배송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한국처럼 유통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는 곳이면 괜찮지만, 동남아는 그게 안되었다.

가벼운 패션 잡화여야지 만이 동남아에서는 쉽게 배송이 가능했다.

물론, 회원 수가 늘어나게 된다면 우리 물류 창고가 있는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에서는 익일 발송 서비스가 가능해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가벼운 패션 잡화가 사이트의 주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라자다(Lazada)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아마존과 알리바바처럼 될 거라고 했지만, 더 성장하지 못하고 왜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는지 알 것 같네요. 배송 문제로 다른 제품의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겠네요.”

“네. 배송이 문제에요. 아마존, 알리바바처럼 전자제품이 제대로 유통이 될 수 없는 물류 환경이다 보니 동남아시아는 패션 잡화 쪽의 가벼운 의류와 액세서리 만이 온라인으로 판매가 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제가 레일리씨를 이용하려고 하는 겁니다. 쇼퍼백의 얼굴로서 나서 주십시오. 패션 잡화 쪽으로 시작해서 전자제품과 생필품까지 다 유통하는 동남아시아 최고의 사이트를 만들 겁니다. 거기에 이용당해 주십시오.”

레일리는 임건호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은 기껏해야 인도네시아에서 빠르고 안전한 블루버드의 유통망을 쓰기 위해 임건호를 이용하려 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을 이용해서 아시아를 석권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생각하는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일만 하다 연애 세포가 죽은 사람으로만 보였는데, 지금 보니 사람이 다르게 보였다.

자기 일에 몰두할 줄 아는 열정과 야망을 품은 존재감 있는 남자로 보였다.

“쇼퍼백 사이트를 인수하겠다는 그쪽 제안은 제가 거부할게요.”

건호는 케일리의 말에 놀랐다.

인수를 거부하겠다면 쇼퍼백 사이트를 통한 다른 일도 다 거부 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

“제가 역제안을 할거거든요. 무상으로 사이트 지분 51%를 넘기겠어요. 대신에 쇼퍼백을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이트로 만들어 주세요. 인수되는 게 아니라 조건 없이 사이트를 합병시키겠다는 말이에요.”

“네? 하하하. 재미있네요.”

이렇게 역제안을 받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쉽게 가까이 하기 힘든 모델 외모가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더 크게 클 수 있게 사이트를 무상으로 내놓을 정도의 강단을 가진 여자는 흔하지 않을 터였다.

“좋습니다. 서로를 한번 이용해 봅시다.”

***

“오빠 이게 뭐야. 연애질 하러 보냈더니 둘 다 일하러 호텔 방 잡는 건 뭔데?”

정윤이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빠완 달리 레일리 언니는 연애 세포가 왕성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호호호. 그게 대표님에게 전염이 되어버린 거 같아.”

정윤이는 환하게 웃는 케일리의 모습에 황당해 하면서도 이거 뭔가 잘 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첫 만남도 결혼식에서 나쁘지 않게 만났고, 둘 다 일에 대한 진심이 있으니 서로 붙어 일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게 될 수도 있었다.

일단 쇼핑몰 관련이니 중국 왕홍들을 통해 한국 물건을 중국에 팔고 있는 건희 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래? 그거 괜찮은데. 사이트에 얼굴이 나온다고? 쇼퍼백? 어디 보자. 어머 어머. 이렇게 예쁜 모델이라고? 혼혈이야?”

“네 언니. 아버지가 네덜란드인이고 어머니는 한국인이래요.”

“한국 혼혈이면 좋지. 나쁘지 않아. 오히려 괜찮을 것 같아. 유럽에는 이혼도 많이 하니깐 그쪽에서 성장했다면 이혼에 대해서 그렇게 나쁘게만 보지도 않을 것 같고.”

“그래서, 이 쇼퍼백 사이트에 한국 쪽 물건을 올리고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같이 붙어있게 하면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힘들게 일을 시키다 보면 서로 돕다가 정분이 나는 거지. 내가 적극 도와주마. 정윤이 네가 오빠 밑에서 좀 도와줘. 알았지?”

“걱정 마세요. 언니. 오빠 새장가 보낼 수 있게 당분간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에 머물게 할게요.”

***

“우리와 연계된 상품으로는 거산에서 나오는 상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생분이 운영하는 비치 엔터테인먼트에서 중국 쪽으로 판매하고 있는 한국산 의류가 있습니다.”

“우선 동생분이 핸들링 할 수 있는 한국 의류를 다 올립시다. 그리고, 거산이나 우리가 핸들링 할 수 있는 한국 식품이나 공산품들을 다 올리죠.”

정윤이의 주도(?)하에 새로운 계열사가 된 쇼퍼백 사이트에 대한 회의를 했는데, 다들 쇼퍼백 사이트에 들어가 보고 이야기한 방안은 품목을 늘리는 것이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네요. 품목을 늘려야 한다는 거.”

어떻게 보면 가장 보편적인 답이었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나 무엇이든지 다 있는 쇼핑몰이기에 사람들이 들어와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자다가 같은 전략을 폈음에도, 알리바바나 아마존처럼 확장되지 못했어요. 동남아에서는 그 방법이 정답이 아니라는 거죠.”

레일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존과 알리바바처럼 품목을 늘리고 저가 판매하는 것이 정답이었다면 라자다는 7억 인구를 등에 업고 동남아를 장악했을 터였다.

하지만, 라자다는 회원 수 600만 명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으니 일반적인 방법이 정답이 아닌 것이었다.

“하지만, 저번 달에 라자다가 알리바바에 인수 되었으니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자본력이 더해졌으니 그 파워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시아 총괄인 이종민은 라자다가 9천억에 알리바바에 매각되었고, 지금 내부 정리 중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매각 되면서 경영자가 바뀐다고 들었는데, 아직 누가 내정 되었는지 확정이 안되거야?”

“네. 지금은 알리바바의 장용 사장이 매주 이틀마다 중국과 싱가포르를 왕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기가 동남아에서 새로운 쇼핑몰이 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네.”

알리바바의 자본력을 등에 업고 라자다가 치고 나온다면 웬만한 쇼핑몰 사이트들은 다 말라 죽어갈 테였다.

“그래서, 제가 처음 그랩에 컨텍을 한 거에요. 일반적인 품목을 늘리는 것과 저가 정책으로는 라자다와 차별점이 없으니깐요.”

“그럼, 레일리씨는 배송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네. 오늘 주문하면 다음날 택배를 받을 수 있는 한국인들은 물건을 고를 때 배송은 부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동남아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물건의 품질만큼이나 배송이 구매 여부를 결정해요. 이걸 보시죠.”

노트북 화면에는 라자다에서 판매되고 있는 스킨 스쿠버 장비가 보였다.

“태국 판매자가 팔고 있는 스킨 스쿠버 장비는 840불에 배송비가 25불이에요. 싱가포르에서 받아야 하기에 배송이 8일 걸린다고 나오죠. 같은 장비를 말레이시아에서 파는 건 860불에 배송비 25불로 3일이 걸린다고 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떤 것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국 사람이라면 3일 걸리는 20불 더 비싼걸 살 것 같네요.”

“맞아요. 한국 사람들은 20불 비싸더라도 배송이 더 빠른 것을 구매할 겁니다. 5일이나 되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니깐요. 하지만, 이 3일 배송이 동남아에서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두 물건 모두 비슷하게 10일 정도 걸려서 오게 됩니다.”

“허허. 그러면 엄청 난리가 날 것 같은데요.”

“한국인이라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당연히 화를 냅니다. 하지만, 동남아는 그렇지 않아요. 여기는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해서 항의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 항의를 해도 받아들이거나 개선이 안되는 게 당연하기에 항의를 포기해 버리는 거죠.”

“그건 중국과 같네요.”

“네. 헌데, 아마존도 그렇고 알리바바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배송이 늦은 것에 대해서는 사실 한국만 그렇게 따지지 대부분이 그냥 넘어가 줍니다. 비행기로 해서 돈을 더 내고 항공 배송을 하지 않는 이상 기본이 일주일. 어떤 때는 3~4개월 후에 물건을 받는데도 크게 항의하지 않아요.”

“지구상에 8282의 민족만이 화를 내는 군요.”

“네. 저도 한국에 살 때 오늘 주문해서 내일 택배가 오는걸 보고 놀랐으니깐요.”

“그럼, 이 배송 날짜를 지키는 것에 포인트를 두자는 말인가요?”

“그것도 좋겠지만, 배송 날짜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항공 배송 시킬 수는 없잖아요. 제가 생각한 것은 무료배송이에요. 그랩과 해운물류회사를 가진 스타 코퍼레이션이라면 기존 물류망으로 무료배송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무료배송이라....”

한국도 무료배송 제품만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지만, 실제 완전한 무료 배송이 아니었다.

제품 가격에 배송비가 다 포함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일리의 말을 듣고 보니, 정기적으로 배가 움직일 때 그런 상품들을 실어 간다면 배송비를 최저로 해서 무료배송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늦게 배송되는 것에도 항의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유통망을 통해 다른 물건이 갈 때 무료배송이 가능할 것도 같긴 하군요.”

“2억 명이 넘는 인도네시아만 해도 많은 섬이 있고, 필리핀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곳에도 무료 배송이 가능하다고 홍보를 하면 라자다의 회원 수는 금방 모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한국도 도서·산간 지역에는 추가 배송비를 받는데, 거리가 먼 동남아 섬 지역에 무료로 배송해 준다고 하면 고객들은 좋아하겠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또 규모의 경제로 넘어가고, 품목에 따라 배송비를 추가하는 정책으로 간다면 다른 상품의 택배비에서 무료배송이 가능한 마진이 나올 수도 있었다.

“동남아시아 전역 무료배송이라. 확실히 손님을 끌어 들일 수 있는 포인트이긴 하네요. 이 건은 스타 해운의 박종일 사장님과 실무진들을 동석시켜야 되겠네요.”

각 섬을 이어주는 물류망을 만들려면 소형 선박이 있어야 하니 전문가의 말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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