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SOC 사업. (1)
한국과 캄보디아의 공동사업 중에서도 큰 사업이었기에 대사관을 비롯한 한국 교민들이 다 구경을 왔다.
거기에 훈센 총리도 직접 오기로 했기에 골든타워42의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리본 커팅식을 위해 온 훈센 총리가 기념 연설을 시작했는데, 이게 문제였다.
“…한국의 스타 코퍼레이션은 중단되어 흉물스럽던 골든타워42를 무사히 완공시켜, 프놈펜의 랜드마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인과 캄보디아인의 협력관계인 한캄 공동체의 역량이 다 들어 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캄보디아와 한국은….”
“리본 커팅식을 해야 하는데 연설이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가요?”
장장 20분 넘게 이어지는 훈센 총리의 연설에 장갑을 끼고 가위를 든 채 뒤에서 병풍이 될 수밖에 없었다.
땅 문제로 잘 보여야 하는 입장임에도 마냥 좋게 봐지지 않았다.
“총리님께선 본래 연설을 길게 합니다. 한 시간 넘을 때도 있습니다. 저기 보시면 사진 기자들도 찍는 척만 하고 있을 겁니다. 이젠 그냥 다들 그러려니 합니다.”
대한민국대사관에서 나온 영사는 익숙하다는 듯이 이야길 했고, 나이가 있는 대사는 아예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독재자이다 보니 이런 것을 말리는 사람도 없었고, 훈센도 눈치 볼 사람이 아니었기에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거였다.
결국, 30분이 넘어가자 리본 커팅식 없이 사람들을 입장시켰다.
스타 마트와 식당가로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가는 것이 보였음에도 훈센 총리는 계속 연설을 했는데, 무려 45분이나 지난 이후에야 연설이 끝이 났다.
사람들이 다 들어간 그제서야 리본 커팅식을 하며 사진을 남겼다.
“우측 동(棟)인 오피스텔 동의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500 리엘(한국 돈 150원 정도)이면 옥상정원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고층 빌딩에 올라 전경을 보는 경험을 모든 국민이 할 수 있는 겁니다.”
호텔의 스카이라운지는 호텔 이용객만 이용할 수 있게 했지만, 오피스텔 동에는 옥상정원과 전망대를 만들었다.
물론, 커피와 술을 파는 업장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입장료가 저렴해서 좋군. 그 가격이면 누구든지 올 수 있겠어.”
훈센 총리는 아주 만족하며 호텔 동도 살펴봤고, 식당가와 등기소, 마트 안까지 꼼꼼하게 움직여 구경을 했다.
그러다, 훈센 총리의 막내아들인 ‘훈 마니’가 총리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이야길 했다.
귓속말을 듣는 훈센 총리의 얼굴이 뭔가 나쁘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괜히 켕겨서 상황 변화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구나. 그랬어. 하하하 어쩐지 느낌이 다르더라니. 다 크메르(Khmer)인들이군.”
귓속말을 다 들은 훈센 총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거렸다.
“캄보디아는 크메르인이 절대다수지만, 이런 상업적인 일에는 화인(華人)들이 많았거든. 하지만, 여기는 다 크메르인이라는 게 좋군.”
“훈 마니 대표와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중국 회사들과 다릅니다. 약속대로 최소 2500명의 캄보디아 인을 고용했고, 컨벤션 센터의 공사 현장과 그랩 드라이버들도 95% 이상을 크메르인으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좋군. 다른 기업들과는 차이가 있어.”
호텔에서 마련한 오찬 자리에서 식사를 함께 하고 훈센 총리는 만족스레 돌아가는데, 의전 차량에 같이 올라타라고 훈 마니가 나를 이끌었다.
“아버지가 제대로 약속을 지켜 준 것에 대해 아주 만족스러워 하십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중국인들은 그러지 않더군요. 그래서. 아버지께선 스타 건설 아니, 임건호 대표에게 다른 일을 맡기고 싶어 하십니다.”
한 나라의 No.1인 사람이 일을 맡기고 싶어 한다는 소리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나라가 다르더라도 그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왠지 그 맡긴다는 일도 돈이 될 것 같았다.
“어떤 일인지요?”
“아버지는 캄코시티(Camko City)건을 다시 한국인들이 맡아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캄코시티는 돈이 될만한 것들을 다 나눠 가져 가버려서 그대로 진행은 불가능하지요.”
진흙탕을 넘어 진흙 뻘인 캄코시티 이야기가 나왔을 땐 식겁을 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말에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프놈펜에서 깜폿(캄포트)까지의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그쪽에 맡기고자 합니다.”
깜폿은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라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바닷가의 도시였다.
“스타 코퍼레이션에서는 태국 파타야와 베트남의 붕따우에 물류센터를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바닷가 깜폿에도 항만시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항만에서 프놈펜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스타 코퍼레이션에서 만들어 주십시오.”
내게 뜬금없이 도로 건설을 맡기고 싶다고 하니 바로 확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나는 도로에 도(道)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알 것 같았다.
바다와 인접한 국토를 가지고 있지만, 캄보디아는 제대로 된 항만시설이 없었기에 대형 선박 접안이 가능한 항구를 만들어 직접 배가 들어오는 것을 원하는 것이었다.
중국 회사가 항만을 건설하고 있으니 거기서 프놈펜까지 바로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우리가 만들어 주면 수도 프놈펜의 물류는 확실히 좋아질 터였다.
물류 인프라를 위한 투자이니 괜찮은 계획이었다.
문제는 도로 건설의 목적과 이유는 알아도 어떻게 도로를 만드는지를 내가 하나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일단 대충 200km에 달하는 공사 구간이라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공사비가 꽤 들어가게 되는 일이라 바로 판단이 힘들었다.
“실무진들과 이야기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관련 정보를 알려주시면 검토 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훈 마니와 헤어지고 사람을 통해 전달 받은 서류는 거산건설의 김영식 부장과 스타 건설의 공달호 사장이 검토하기 시작했다.
“대표님. 이거 옛날 그 냄새가 나는데요.”
“그 냄새? 그게 무슨 냄새인데?”
“양놈들 맥퀀리의 냄새 말입니다. 이 서류만 보면 전형적인 SOC 민자도로 건설 계획입니다.”
“사회간접자본 민자도로? 아, 그럼 이거 유료 도로를 만들겠다는 거야?”
“네. 맞습니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중 후반에 많이 했었지요.”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유료 도로와 터널들이 생각났다.
“이 건은 국가재정 투입사업이라 망할 일은 확실히 없습니다. 그리고 MRG(최소 운영 수입 보장제도)를 약정 한다면 안정적인 수익도 보장이 됩니다. 이건 무조건 하기만 하면 돈이 되는 일입니다.”
거산건설의 김영식 부장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맥퀀리가 했던 유료 도로라면 무조건 하는 게 맞았다.
맥퀀리가 한국에서 몇조 원을 뽑아 먹었으니 우리도 캄보디아에 빨대를 꽂아서 꿀을 빨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빨대로 빨아들여야 하는 꿀은 결국 캄보디아 사람들의 고혈이었다.
“그리고 대표님 이게 더 대단한 게 뭔지 아십니까? 한국은 정권 교체가 되면 관련 사업이 조사를 받거나 하지만, 여기 캄보디아는 훈센 총리가 앞으로 몇 년은 더 통치할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한국처럼 정권 바뀌었다고 털어서 먼지 날 일이 아예 없다는 게 엄청난 장점입니다.”
독재자가 발주한 민자도로.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도 은행에게 빌려서 하게 되면 내가 들일 돈 자체가 없을 터였다.
이후 완공 되면 MRG(최소 운영 수입 보장제도) 약정으로 받아 낸 돈으로 은행 돈을 갚고, 수익을 챙겨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우리가 맥퀀리가 되어서 돈을 번다면 그놈들처럼 욕도 양껏 들어야 하겠죠. 흐음.”
찝찝했다.
당시 한국에 맥퀀리를 끌어들였던 대통령은 물론이고 관련자들은 거의 민족반역자급으로 욕을 듣고 있었다.
국민들에게 세금 걷듯이 걷어 민간 기업에게 이익금을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으로서는 기분이 더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캄보디아에서는 그런 SOC 사업으로 돈 뽑아 먹는다고 보도하는 기자가 없을 겁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사라지겠지요.”
김영식 부장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투로 쉽게 이야길 했다.
“욕을 듣고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빚을 지우는 일인데도 하는 게 맞다고 보는 겁니까?”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십시오. 일단 훈센 총리가 항만과 도로를 만드는 것은 괜찮은 일입니다. 물론, 그 공사 때문에 국민들에게 빚을 지우는 것은 어쩔수 없지만요. 하지만, 그 인프라로 인해 생길 이득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캄보디아에는 제대로 된 대형 항만물류 시설이 없었으니, 실제 항구와 고속도로가 생기게 되면 그 인프라로 인한 이득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찝찝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도로공사를 안 맡는다고 하면 다른 기업에게 돌아갈 것인데, 아마도 이온 몰 백화점을 지은 일본 기업이나 항구를 만들고 있는 중국기업에 넘어갈 겁니다.”
일본과 중국에 넘어갈 거라는 김영식 부장의 말에 눈이 떠졌다.
결국, 이 민자유치 SOC 사업에 빨대를 꽂아 꿀을 빨 놈은 내가 안 한다고 해도 꿀을 빨 터였다.
그 꿀을 우리가 만들어 주지 않으면 일본이나 중국의 업체가 꿀을 만들어 줄 터였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캄보디아 국민들은 꿀을 짜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표님. 이 일을 우리가 하고, 대신에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다른 혜택을 돌려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훈센 총리나 훈 마니가 이야기 했듯이 중국 애들 빼고 본토인인 크메르인을 최대한 고용해서 그들에게 혜택을 준다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공달호 사장의 말에 마음의 찜찜한 부분이 대부분 희석되었다.
일본 애들이나 중국 애들이 먹을 바에는 내가 먹고 캄보디아인들에게 베풀어 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 이 도로공사 거산에서 다 먹을 수 있는 겁니까?”
“역량으로는 됩니다. 다만, 국내 공사로 바쁘다면 힘에 부칠 수 있습니다.”
이미 컨벤션 센터 공사를 맡고 있었고, 이 도로 건으로 해서 골프장과 보틀링 공장 부지도 얻어 내어야 했기에 그 공사까지 생각하면 거산건설 혼자 맡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한국에서 중견 이상의 건설사를 하나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때 사업비 규모 확인해서 최종결정을 합시다.”
***
“아니, 이제 건설회사에 집중하기로 한 거야 뭐야?”
도로건설 쪽으로 잘 하는 건설사를 소개해 달라는 임건호의 전화에 김독수는 대단하다며 짜증에 부러움을 담았다.
“한국에서는 지금 해외 공사를 못 따내서 난리인데, 국가재정투입 인프라 건을 이렇게 따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제 잘못이 아니라, 건설사들이 일을 못하는 거라고 봐야지요. 예전 중동 건설 특수 상황처럼 각 나라 통치자들과 친해져서 공사를 받아야 하는데, 요즘 우리나라 건설 업체들은 그런 일을 전혀 안 하고 있다는 게 문제인 겁니다.”
“뭐 그건 그렇지. 옛날에는 기업 총수들이 해외에 나가서 그 나라 지도자들이랑 인맥도 만들고 했는데, 이젠 건설 파트 사장단들이 가서 영업을 하니 일을 못 따내는 거지. 나라의 지도자들이 봉급쟁이 사장들이랑 속 깊은 이야길 할 이유가 없지. 그래서 넌 훈센 총리 구두라도 닦아 준거냐?”
“네. 구두도 닦아주고, 그 아들 따까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얻어 먹을게 많습니다. 도로 건설 쪽으로 잘하는 업체 하나 수배해 주십시오.”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들어간 건설사들은 지금 도로건설 건 있다고 하면 너 발가락이라도 핥아 줄 거다.”
“안 핥아줘도 되니깐 제대로 된 건설 업체 좀 찍어 주십시오.”
“그래 알았어. 대신에 이거 알아본다고 이 건이 소문 날 수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지요.”
김독수 전무와 통화 후 며칠이 지나자 캄보디아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신화은행에서 연락이 왔는데, 김독수 전무의 말처럼 소문이 퍼진 건지 공사 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