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55화 (155/203)

155. 스타 콜라. (1)

“겸양 그룹 총수가 전문 경영인과 경영권 싸움을 하다 결국 자살한 거로 기억하는데, 뭔가가 더 있는 겁니까?”

1980년대 겸양 그룹은 겸양해운, 겸양항공, 겸양운수 같은 물류 유통으로 재계 순위 25위까지 올라갔었던 그룹이었다.

그때 계열사로 겸양 냉난방, 겸양 식품 같은 곁가지 사업도 했는데, 총수였던 안영태 회장이 자살을 하며 그룹은 해체가 되었고, 모든 계열사들도 청산이 되었었다.

이후 아들인 안익환이 겸양 식품을 받아 지금은 신라식품이란 이름으로 운영을 하는 것 같았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저 신문에 난 것들만 알고 있는 거지요.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요.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셨으니 안익환 사장은 전문 경영인을 아예 신뢰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과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제가 한번 만나보죠. 자리 한번 잡아 주십시오. 오너 대 오너로서 이야기를 하면 의외로 잘 풀리지 않겠습니까? 헌데, 전문 경영인을 신뢰하지 않아 직접 경영을 하는데, 그 성과는 신통찮은 거니 참 안타깝네요.”

아이러니했다.

오너 경영이면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주인으로서 온 힘을 다해 경영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애초 가지고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회사는 실적부진으로 매물로 나와 있으니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다면 잘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전문 경영인이 들어와 경영권 다툼으로 아버지가 죽음을 선택했을 정도라면 전문 경영인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신라식품의 안익환 사장과 약속을 잡았으나 인도네시아의 블루버드 건으로 보름 넘게 출장을 다녀오다 보니 실제 안익환 사장을 만난 것은 한 달이나 지난 후였다.

***

“저희는 솔직하게 이야길 드리면 신라식품의 주력 상품인 당근, 토마토, 오렌즈 쥬스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과즙음료 자체가 설탕이 많이 들어 가 있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상황이니깐요.”

“그럼 진짜 이일찬 부사장의 말처럼 콜라 브랜드를 위해 우리 신라식품을 인수하고 싶어 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안익환 사장은 뭔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816 콜라의 브랜드를 위해 60억이나 투자를 한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수 조건이 다 들어 맞아도 의심이 들어서 고집을 부렸었습니다. 이미 보틀링(Bottling 병입작업) 설비도 다 없어졌는데, 콜라 때문에 인수를 하겠다고 하니 그쪽이 저 치에게 속고 있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일찬 부사장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전문 경영인이 아니라 기술진에서 올라와 임원이 되신 분이고 제가 회사를 인수하며 회사의 전반적인 운영을 다 맡겼습니다.”

“사원에서부터 올라온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믿을 만하지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아예 없어 보이는 안익환 사장을 보니 뭔가 안쓰러웠다.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고, 그룹이 해체된 이후 대구, 경북에서 코카콜라사의 원액을 받아 보틀링 판매를 하며 콜라를 주력으로 삼았을 터였다.

과거에는 일본처럼 코카콜라에서 원액을 받아서 보틀링 판매하는 업체들이 몇 곳 있었고, 지역별로 서로의 영역을 가지고 콜라 사이다를 팔았었다.

하지만, 90년대 코카콜라 본사가 직접 한국에서 사업법인을 차리게 되자 겸양식품은 816 콜라를 만들기 시작했었다.

물론, 지금은 판매 부진으로 아예 생산을 안 하고 있었지만.

“당시 외환위기로 국산품 장려 운동도 일어나고 있었기에 초반에는 나름 판매가 괜찮았었습니다. 하지만, 코카콜라에서 가격으로 덤핑을 해서 우리를 압박했고, 자신들만 믿으라고 했던 기술자들도 다들 돈을 더 많이 주겠다고 하는 코카콜라로 옮겨 가버리자 맛을 관리하지 못했고, 결국 망했었습니다. 저 사람이 기술자 출신이라고 해도 믿지 마십시오. 신라식품은 합의한 조건으로 넘기겠습니다.”

옆에서 자신을 믿지 말라는 말을 들은 이일찬 부사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안익환 사장은 그렇게 자리를 일어나 나가려고 했는데, 급히 붙잡아 자리에 앉혔다.

“인수 실무자가 사기치는 것이 아니라고 확인했으니 넘기고 가려고 하는 겁니다. 저보다는 더 잘 운영하겠지요.”

“안 사장님은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사실, 회사를 매각한 이후에도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말을 듣고 플랜 B를 생각해 온 게 있다 보니 물어보는 것이었다.

“50대로 조금 이르긴 하겠지만 은퇴를 해야지요. 능력 없는 사람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외골수에 사람을 쉽게 안 믿는 편집증을 가진 50대의 실패한 경영인이라면 사실 뭘 하든 힘든 상황이었다.

“우리 회사 임원으로 안익환 사장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나를요? 왜요?”

안익환 사장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봤는데, 이게 또 사기가 아닌가 하는 그런 의심의 눈빛이었다.

“저희 직원 중에 20대 중반의 직원이 있습니다. 아 직원은 아니고, 지사장이네요. 캄보디아 쪽의 개척 사업을 맡겼던 적이 있습니다. 헌데 그 친구가 공금을 유용해서 다른 사업을 차리더군요.”

“저런. 그래서 내가 일을 맡기고 나면 꼭 확인을 하고 챙깁니다.”

“뭐, 결과적으로는 좋게 마무리가 되었는데, 다시 또 이런 일이 터지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요. 그래서, 감찰업무를 하는 감사실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잡고도 날짜를 미룰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제가 일일이 사업 진행 상황을 챙길 수가 없거든요.”

“그럼, 그 감사업무에 저를 쓰고 싶다는 겁니까?”

“쓰고 싶다는 게 아닙니다. 모시고 싶습니다.”

안익환 사장의 뾰족했던 기세가 뭔가 모르게 줄어들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직원으로 쓰고 싶다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기 위해 모시고 싶다는 말 한마디가 안익환 사장의 마음을 녹인 것이었다.

“비서들도 있지만, 각 나라의 지사장들과 사업부가 제대로 굴러가는지를 확인해 줄 사람이 없어서 힘이 들었습니다. 사장님의 연륜과 경험이 있다면 감사실을 잘 운영해 주실 것 같습니다. 저희 스타 코퍼레이션의 이사진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모난 성격과 집안 문제로 아랫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편한 성격.

회사에서 누구에게나 백안시 받는 감사실 사람으로서는 최적의 인선이었다.

특히나 각 지사장과 총괄에게 권한이 쏠려있는 상황이니 그런 권한을 감시해줄 이런 사람이 필요했었다.

이 감사실 자리와 임원 자리를 플랜 B로 미리 준비했었기에 안익환 사장에게 제안한 거였다.

“제가 그 자리에 앉으면 아주 피곤하실 건데요.”

“감안하고 있습니다. 시장을 개척하고 확장하는 일에는 선두에 선 사람의 권한과 운용 폭이 넓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권한을 견제할 사람이 없다면 저번처럼 공금유용사태가 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없애고자 모시고 싶은 겁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대해주실 것 같아서 최고의 인선이라 생각합니다.”

“흠. 내일까지 답을 드리겠습니다.”

안익환 사장은 그렇게 자리를 떴는데, 결국 다음날 감사실 실장 자리를 받아들이겠다고 연락이 왔다.

***

“안익환 실장님도 이야기했듯이 816 콜라가 잘나갈 때 책임 기술자들이 스카우트되어 빠져버리면서 품질 유지가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린 그런 외부 요인에서 안전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우선 저를 비롯해서 20년 차 기술자들은 이직할 생각이 없습니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결국 코카콜라 보틀링에서 뒷방 늙은이로 있게 된다는 걸 아니깐 옮겨갈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이미 신성전자의 반도체 스카우트 사건을 뉴스로 다들 접했기에 연봉 두 배를 받고 이직을 해도 결국 기술만 뽑히고 2~3년 내로 회사에서 퇴출당한다는 것을 기술직 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옛날처럼 돈을 더 준다고 쉽게 이직을 하진 않을 터였다.

“스타 콜라가 나오면 탄산수처럼 스타 마트에서 홍보를 해 주고, 배달 어플과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것에 주력을 하겠습니다. 예전 매실 사이다처럼 오프라인 매장에서 LT음료나 GL생활건강에게 견제당해 말라 죽지만 않으면 처음 816 콜라가 나왔을 때처럼 해외 콜라의 점유율을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우선은 단가 자체를 최저 단가로 해서 다시 816콜라가 부활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중요합니다. 콜라, 사이다에 우리 스타 음료의 생사가 달려있습니다.”

***

“흐음. 군납이라는 게 말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보고 덤벼들면 안 되는 겁니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네 장군님.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와서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겠습니까.”

캄보디아 골든타워42로 인연을 맺은 군인공제회에 들어왔는데, 군에 콜라와 사이다를 납품하기 위해 거쳐온 전직 군인들만 다섯 명째였다.

민간에서 판매되는 것은 맛과 가격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군납은 맛과 가격으로 군인들의 선택을 받는 게 아니라, 장군들에게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장으로 전역한 김인수 장군은 병참 보직으로 제대를 한 사람이다 보니 이 사람의 선택에 따라 전군에 보급으로 816 콜라가 들어가냐 마냐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816 콜라의 최초 생산 업체였던 신라식품을 저희 스타 음료에서 인수를 했고, 생산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일자리도 늘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군인공제회에 취업 의뢰를 하는 전역 군인들을 우선으로 채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대군인을 위한 일자리를 어필하며 IMF때 나왔던 콜라 독립을 외치는 816 콜라가 재출시되었다는 신문기사들을 김인수 장군에게 보여주었다.

“좋아요. 좋아. 외국계 기업들이 다 먹고 있는 콜라 시장에서 콜라 독립을 외치는 건 좋아요. 이미지도 다 좋은데, 이 이유만으로 군납으로 선정하기에는 문제가 있어요.”

“입찰에서 최저가로 맞춰서 납품을 할 수 있습니다. 가격적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콜라의 이름도 아예 ‘군콜라’, ‘맛콜라’로 해서 납품이 가능합니다.”

“군콜라 맛콜라 하하하. 그렇게까지 해 준다니 좋네요. 헌데, LT그룹에서는 군납을 위해 각 부대 PX 환경 개선에 쓰라고 꽤 많은 돈을 기부했고, GL생활건강도 마찬가지로 병영현대화 사업에 기부를 했어요.”

“그…부분도 최대한 맞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두 곳에 비해 빠지는 부분은 없을 겁니다.”

솔직히 기부금으로 몇십억을 내게 되면 콜라를 납품한다고 해도 이익이 별로 없을 터였다.

하지만, 물량을 밀어낼 수 있다는 장점과 군납으로 장병들에게 홍보하는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대표적으로 맛스타나 맛다시 같은 군대 전용상품은 제대한 이후에도 은근히 찾아 먹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흐음. 이게 좋은 의도를 가진 콜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코카콜라나 펩시콜라처럼 대중적이지 않은 것을 군납으로 받으면 이게 또 의혹이 있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웃겼다.

군납이란 단어 자체가 비리와 엮인 단어로 사람들이 다 인식하는데, 그런 의혹이 있으니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게 웃겼다.

한마디로 더 챙겨 달라는 말이었다.

“장군님. 저희는 LT음료나 GL생활건강처럼 대기업이 아닙니다. 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흐음. 이게 참 대기업 중견기업 차이가 크네요.”

김인수 장군은 한참이나 궁리를 하다가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검색했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내가 스타 음료 관련해서 검색해보니 이 판매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 기사는 돈을 주고 낸 겁니까?”

탄산수 관련으로 경제신문에 난 기사였다.

“어느 정도는 기자들에게 협찬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 기사에 나온 것처럼 탄산수 쪽으로 판매가 확실하게 오르고 있습니다. 저희가 가진 스타마트 50곳과 국내 1위인 푸드 딜리버리를 통한 판매가 제대로 먹혀들었습니다. 이 816 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주부터 유통이 되기 시작했으니 다음 달에는 그 수치가 나올 겁니다.”

“흠. 마트를 가지고 있고, 자체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라.”

김인수 장군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판단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이 콜라 만드는 공장을 인수 했다고 하던데, 여기에 군인공제회도 좀 낍시다. 그러면 내가 책임지고 군납하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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