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53화 (153/203)

153. 블루버드 그룹.

“그때가 아시아를 덮친 외환위기 때였습니다. 1998년도. 한국도 난리였고, 인도네시아도 수하르토의 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 난리였지요. 한국의 민주화 운동만큼이나 매일 시위를 하고 혼란스러웠던 때였습니다.”

“그럼 시위대 눈치를 본다고 택시 회사가 파산하는 걸 그냥 놔둘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까?”

“네. 그때 나랏돈으로 도와줬다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지금도 380억 달러를 수하르토 일가가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 도와주지 못한 게 아니지요.”

“380억 달러요? 와, 한국 돈으로 치면 50조 원인데. 허허.”

김신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포브스 발표상 부자 1위인 ‘하르토노 형제’의 재산이 350억 달러라고 하는데 그 재산도 BCA 은행 관련으로 번 것이라 수하르토가 벌게 해 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아직도 수하르토 일가가 인도네시아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유료 도로의 대부분도 수하르토 일가가 들고 있습니다.”

“유료 도로를 가지고 있다면 그냥 돈을 아주 끌겠네요. 헌데,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죽은 지 7년이 넘어가는데도 처리가 안 됩니까?”

“그 당시 수하르토 밑에 있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깐요.”

“시위가 실패를 한 거였군요.”

“그렇죠. 그 당시 수하르토가 물러나긴 했는데, 시위대의 분노가 자기에게 오지 않게 인도네시아의 경제를 잡고 있던 화교들에게 향하도록 작업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수하르토 밑에 있던 이들은 그대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아, 화교 학살 사건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많은 화교들이 인도네시아를 떠나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로 가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지만, 여전히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화교들이 잡고 있습니다. 재벌 순위를 보면 1위부터 10위까지 중에 한두 명을 빼곤 다 화교들입니다. 포브스 1위라는 하르토노 형제도 이름은 황휘상(黃輝祥), 황혜충(黃惠忠)입니다.”

“그럼, 혹시 통신사도 화교들이 소유하고 있는 겁니까?”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은 통신사는 텔콤셀(Telkomsel)이란 업체인데, 이건 다행히 국부 펀드가 지분을 들고 있습니다.”

“아, 국부펀드.”

2000년 초 외환위기가 끝이 나고 중국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때 인도네시아는 중국에 원자재를 수출하며 엄청난 이득을 보았었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 국부 펀드였는데, 2,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운용 자금을 가진 펀드였다.

“당시에 인도네시아에 돈이 많을 때 인프라를 좀 더 개발하고, 전체적인 산업에 투자를 했다면 진짜 엄청나게 발전했을 겁니다. 하지만, 돈을 엉뚱한 곳에 써버렸죠. 선심성으로 돈을 그냥 막 풀어버렸습니다.”

“선심성으로 돈을 풀었다면 인기를 위한 거였습니까?”

“맞습니다. 독재자였던 수하르토를 몰아낸 이후 일본처럼 정당의 수장이 대통령이 되는 간접 선거로 대통령을 뽑았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에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때부터는 직접 선거로 대통령을 뽑았기에 인기에 영합해야 했습니다.”

김봉학은 자카르타에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는 대형 빌딩 건설에 보조금을 지원해 준 것은 괜찮았지만, 저소득층을 위해 석윳값과 전기에 대한 보조금으로 1년에 30조 원씩 뿌린 것은 그냥 국부를 낭비한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 보조금이 인도네시아 정부 지출의 15%에 육박했습니다. 꼼수로 석유와 전기에서 장난질을 쳐서 다들 돈을 벌었지요. 뭐 그래도 두 번째로 큰 통신사인 엑셀(XL)도 국부 펀드가 지분을 가지고 있기에 통신료는 타국에 비해 저렴한 편입니다.”

“그런데, 보통 국부 펀드들은 외국에 투자하는 거 아닙니까? 수익성이 좋은 외국에서 수익을 올리는 게 기본으로 알고 있는데.”

“본래라면 그게 맞습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국부 펀드들은 대부분이 국내 투자를 합니다. 그리고 그 투자 대상은 당연히 화교들의 기업들이고요.”

“어휴 화교는 어디든 안 끼는 데가 없네요.”

“인도네시아 상장기업의 시가총액 70%가 화교 자본으로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정치인은 인도네시아 현지인이 많으니 인도네시아 현지인이 대통령으로 뽑히겠지만, 경제는 화교가 앞으로도 계속 지배를 하게 될 겁니다.”

“그럼 저 블루버드 택시는 어느 화교 집안이 가지고 있는 겁니까?”

“아, 다행히 블루버드는 인도네시아 현지인인 프라위로 푸르노모(Prawiro Purnomo)가 대표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1965년에 창업을 했고, 물려받은 2세 경영입니다. 인니 재계 순위로 치면 30위권 밖일 겁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현지인이 세운 대기업이라 그랩으로 블루버드와 싸우게 될 상황이 된다면 힘들 수 있습니다.”

“자국민 출신 기업을 죽이려 드는 외세로 보일 수도 있겠군요.”

IT 플랫폼 기업은 이미지가 좋아야 했다.

아무리 관광객과 부자 승객들을 초반에 잡아간다고 해도 자국 기업을 죽이는 외국 기업으로 이미지가 박혀 버리면 대중들에게 퍼져나가기 힘들 터였다.

김신현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말레이시아나 캄보디아와는 또 다른 전략으로 시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었다.

우선 신성전자 현지 사업부의 도움을 받아 핸드폰 2만 대 개통에 따른 혜택을 확인했다.

다행히 캄보디아와 다르게 경제적으로 조금 더 안정이 되어 있기에 한국과 같은 후불 요금제가 있었다.

기사식당을 열어 기사들에게 스마트 폰을 무료로 주며 어플을 사용할 수 있게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전략이 세워지자 우선 블루버드 택시의 ‘프라위로 푸르노모’ 대표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넣었고 전략을 짰다.

“그런데, 블루버드 기업의 약점은 없는 겁니까?”

“있습니다. 가족 회사로 시작했기에 지분 소유관계에 문제가 있습니다. 올해 초에 블루버드 택시를 상장시키기 위해 IPO를 진행했는데, 지금 대표의 여동생이 상장에 반대한다며 소송을 걸었습니다.”

“오, 그럼 지금 소송이 진행 중이겠군요.”

“네. 그 때문에 IPO가 중지되었습니다. 그리고, 블루버드는 해외진출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내 미진출 지역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것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약점입니다.”

겉으로 보면 자국민의 기업이기에 자국민들에게 ‘애착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자국 우선주의와 패밀리 기업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소유권 문제를 잘 풀면 어떻게든 될 것도 같았다.

***

“이쪽은 제 딸이자 부사장인 ‘노니 푸르노모’입니다.”

김신현은 대표와 1:1로 보기로 했는데, 이렇게 딸이 같이 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기업을 조사하며 이 ‘노니 푸르노모’ 부사장이 블루버드 택시 외의 물류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언 버드 트럭(Iron Bird Trucking), 아이언 버드 물류(Iron Bird Logistics), 화물운송업체인 오션 에어(Ocean Air)까지 3개의 물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실력 있는 경영인인 것이었다.

‘프라위로 푸르노모’ 대표는 전형적인 인도네시아인의 갈색 피부를 가진 살집이 있는 사람이었고, 딸인 노니 푸르노모는 30대로 보였는데, 미백 화장을 했는지,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동남아는 전체적으로 흰 피부를 가진 사람이 미남, 미녀로 통하다 보니 여유가 있는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미백 화장을 하는 듯했다.

“미스터 김이 20대라고 들었는데, 젊은 기업인들끼리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 같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5년내에 딸에게 사업을 다 물려줄 것이기에 오늘 이 자리에 딸이 같이 오는 게 맞을 것 같았습니다.”

“맞습니다. 후계자가 이렇게 참여하는 것이 저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스터 김도 부모님이 스타 코퍼레이션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아, 제 부모님은 한국과 캄보디아에서 금융업을 하십니다.”

“2세 경영이긴 하군요.”

프라위로 푸르노모 대표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하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각을 봤다.

그리고 디저트를 먹으며 본격적인 사업 이야기를 꺼내었다.

“저희 그랩과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가 상용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라 봅니다. 미국에서 온 유버와 고젝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서비스를 추진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 그랩은 블루버드 택시와 연계를 하고 싶습니다.”

“미스터 김. 차량 공유 서비스가 세계적인 흐름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 블루버드는 자신의 딸이 택시 업계를 장악하게 밀어주던 독재자의 탄압에서도 살아 남았고, 아시아를 덮친 외환위기에서도 살아 남았습니다. 고급화된 택시는 어떻게든 살아 남을 수 있을 겁니다.”

프라위로 푸르노모 대표는 어려운 고난을 다 이겨 왔으며 지금 불어오는 차량 고유 서비스 또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IPO를 통과해 주식이 상장되게 되면 차량을 늘려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라 2억 명에 달하는 내수 시장을 믿고 있었다.

“처음 미국에 유버가 나왔을 때 고급 택시였던 미국의 리무진 서비스 업체들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아무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도 고급 택시에 대한 수요는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리무진 업체들은 수익성 악화로 파산하거나 통폐합이 되고 있습니다.”

김신현의 말에 프라위로 대표는 수긍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부사장으로 같이 온 딸 ‘노니 푸르노모’는 동의하고 있었다.

“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MBA과정을 밟을 때 유버에 대한 많은 리서치와 논문들을 봤었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유사한 서비스를 생각했지만, 쉽게 시작하기 힘들더군요. 기존 택시들과의 공존이 가장 어려운 걸림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유버는 물론이고, 우리도 가장 먼저 시작한 말레이시아에서 기존 택시 업체들과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랩은 각 나라에 맞게 대응을 하고, 캄보디아에서는 아예 ‘한컴택시’를 운영하며 공존을 만들어 내었더군요.”

“하하하. 그건. 어떻게든 살아 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습니다.”

김신현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대표인 프라위로 푸르노모와 딸인 노니 푸르노모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딸에게 이 일을 일임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미국에서 유버가 택시 업계들을 어떻게 초토화했는지를 공부하며 직접 본 사람이니 차량 공유 서비스와의 공존에 노니 푸르노모는 그리 거부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랩은 드라이버들에게 스마트 폰을 지급하고, 복지를 위해서 드라이버 전용 식당을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복지는 오히려 택시 업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보고 있고, 드라이버들을 직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느껴져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캄보디아에는 아예 드라이버들을 위한 기숙사도 만들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도 캄보디아와 마찬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돈을 벌기 위해 자카르타로 다들 올라왔으니 묵을 곳이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드라이버를 위한 기숙사 이야기를 듣자, 이제까지 시무룩하게 있던 프라위로 푸르노모 대표도 관심을 가졌다.

“유버와 고젝의 사람들과 만나보았지만, 이 정도로 드라이버들을 생각해 주는 곳은 그랩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그랩과 연계를 하고 싶군요.”

노니 푸르노모는 차량 공유 서비스로 시장 점유에만 관심이 있는 유버나 고젝에 비해 그랩이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다.

“차량공유 서비스 외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논의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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