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새로운 음료.
“네? 부사장이요? 퇴사하는 게 아닙니까?”
“퇴사 후에 하실 일이 아직 안 정해지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부사장 자리를 제안 드리는 겁니다. 커피 건을 마무리한 후에 다른 프로젝트를 함께 했으면 합니다.”
“아하하.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이일찬 상무는 갑작스레 퇴사하게 되어 뭘 할지 머리가 멍했는데, 다시 회사에서 그것도 부사장의 직책을 준다고 하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앞장서서 대표를 데리고 공장을 안내했다.
충남 공주에 있는 생산공장은 대지면적 1만 평에 건평 3600평, 제조시설 2000평 규모의 큰 제조 공장이었다.
다만, 워낙에 생산 품종이 많다 보니 여러 종류의 상품들이 물류장에 뒤섞여 쌓여 있다는 게 문제였다.
회사의 이름이 ‘스타 음료’로 정식으로 바뀌고 정리가 되자, 이일찬 상무처럼 제품 생산과 제조에서 잔뼈가 굵은 공장장 이희근을 상무로 올렸다.
***
“우전 생산 라인부터 정리를 합시다. 맑은 매실과 같은 과즙 음료든 볶은 보리처럼 식수대용 음료든 모두 다 흑자가 나오지 않으면 라인을 정리하도록 합니다.”
음료 라인을 정리하면서 대추 음료나 인삼 음료 같은 전통 음료는 괜히 마음이 걸렸으나 전통 음료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껴안고 갈 수는 없었다.
과감하게 돈이 되지 않는 음료 10여 종을 정리하자 생산 설비에 여유가 생겼다.
“이일찬 부사장님이 만든 커피의 경우에는 편의점보다는 온라인 마켓에서 판매를 추진하도록 합니다. 이것도 2년 판매해보고 흑자 전환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단종시키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새로운 제품은 2년 만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남는 생산라인은 어떻게 운영하실 생각이십니까?”
노조위원장인 김태조는 혹시라도 인력이 남는다고 인력조정을 할까 걱정을 했다.
“다른 제품을 돌리던 라인에 여유가 생기면 새로운 음료를 만들 생각입니다. 헌데, 우리 스타 음료에서 생산되는 음료들을 보니 궁금한 게 있습니다. 탄산음료는 왜 생산하지 않는 겁니까?”
“흠. 그게. 대표님. 이미 있었습니다.”
이일찬 부사장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남자 직원이 뛰어가서 두 개의 캔 음료를 들고 왔다.
‘청록사이다’, ‘보리사이다’
“탄산음료를 저희도 만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좋지 못해 단종되었습니다.”
“이거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은데 마셔도 되는 겁니까?”
“맛만 보시는 거라면 가능합니다.”
딸깍!
먼저 청록사이다의 뚜껑을 따서 냄새를 맡아봤다.
“흐음. 이거 매실이 들어간 사이다입니까?”
입안에서 맛을 보니 매실의 향이 나는 사이다였다.
레몬 향이 들어간 세븐업이나 스포라이트와 같은 계열의 사이다라고 볼 수 있었다.
“이거 맛이 의외로 깔끔하고 괜찮은데요.”
그리고 보리사이다 캔도 따서 냄새를 맡아보고 맛을 보니, 바로 떠오르는 다른 음료수가 있었다.
“이건, 일화에서 나오는 맥콜과 맛이 비슷하네요. 의외로 둘 다 맛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게 왜 단종이 된 겁니까? 맛은 괜찮은데.”
“바로 그 문제 때문입니다. 맛은 괜찮은데, 대표님처럼 다들 이런 탄산음료수가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홍보 마케팅의 문제였습니까?”
“네 2004년에 출시했을 때 티비 광고를 아예 하지 않았으니 마케팅의 문제가 맞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알력’ 때문에 제대로 시장에 깔리지 못한 문제도 있습니다.”
“알력요?”
“이게 참 웃긴 건데, 한국 음료 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은 생수 시장이 가장 큽니다. 제주도 생수가 앞장서고 수십 종의 지역 생수가 있기에 시장 규모가 1위가 되었습니다.”
건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사람들은 이제 수돗물을 바로 마시거나 수돗물을 끓여 먹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수기 물 아니면 생수를 구매해서 먹었다.
그러다 보니 생수 시장이 음료 시장에서 가장 크다는 게 이해가 되었다.
“그다음으로 큰 음료 시장은 탄산음료입니다. 생수가 크기 전까지는 부동의 1위였습니다. 하지만, 생수 시장이 커지며 2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수 시장과는 다른 게 있습니다. 바로 시장의 90%를 두 업체가 점유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코크와 펩시이군요.”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좀 다릅니다. 미국의 코카콜라에서 원액을 받아와 만들어 파는 GL건강음료와 펩시를 가져와 파는 LT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럼, 그 알력이라는 게 코카콜라와 환타, 스포라이트를 가진 GL건강음료와 펩시, 사이다를 가진 LT그룹이 서로 다툰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다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둘은 연합을 해서 새로운 탄산음료가 시장에 나오면 알력을 행사해서 제품이 시장에 깔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 알력 때문에 청록사이다나 보리사이다가 깔리지 못했고 사람들은 용진 음료에서 아예 탄산 음료를 안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담합으로 다른 애들이 탄산 시장에 못 들어오게 막는 거군요.”
“네. 대형 마트의 경우에는 코카콜라가 입점을 방해했습니다. 우리가 한 병에 1200원에 제품을 넣으면 코카콜라는 1000원으로 행사를 해버립니다. 처음 보는 탄산음료가 아예 판매되지 않게 해 버리는 겁니다.”
“대형 마트 외에는요?”
“작은 마트나 요식업에도 납품을 알아봤었습니다. 하지만, 거긴 펩시를 판매하는 LT그룹이 잡고 있습니다. LT그룹은 음료뿐만 아니라 주류도 생산 납품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LT그룹에서 요식업체에 압력을 넣습니다. 다른 사이다를 넣게 되면 주류 납품을 하지 않겠다고요.”
“허허허. 거참.”
“그냥 무시하고 저렴한 우리 사이다를 받아 주는 요식업주도 있었지만, 결국 주류를 파는 게 메인이다 보니 결국 우리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졌고, 단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편의점이나 매점도 마찬가지였었습니까?”
“네. LT그룹은 여러 편의점 체인의 지분도 들고 있기에 아침햇빛이나 맑은 매실이 있다고 해도 탄산음료를 편의점에서 받지를 않았습니다. 그냥 비주류 음료로만 먹고 살라고 압박을 했던 겁니다.”
“결국 용진 음료로서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단종을 시킬 수밖에 없었던 거군요.”
“네. 대표님이 의욕적으로 탄산음료에 대한 것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그 유통 자체가 어렵기에 제대로 판매하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탄산음료를 못 만든 게 아니라, 만들어도 제대로 유통이 안 되니 제대로 팔지를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온라인 판매는 해봤습니까?”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는 온라인 쇼핑몰이 이렇게까지 활성화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이 두 종류 만들어 봅시다. 유통 방법은 온라인 쇼핑몰과 우리 스타마트에서 판매하는 것으로 하죠.”
전국에 30여 개의 스타마트가 있으니 깔아두고 팔면 될 터였다.
우리 마트에서 우리가 생산한 제품을 파는 것이라 LT그룹에서 지랄병은 못 할 터였다.
물론, 지금은 그 지랄병을 떨 정신도 없긴 없을 터였다.
“더해서, 푸드 딜리버리와의 시너지도 한번 내어 봅시다. 요식업장에 납품하는 건 주류가 걸려 있어서 안 된다고 하면 배달 전문 업소들에게만 납품을 하죠. 배달 어플로는 술을 파는 게 불법이기에 주류의 납품 여부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 겁니다.”
푸드 딜리버리의 영업사원들이 음료수 영업도 겸하게 하면 추가 인건비도 필요 없을 터였다.
“그리고, 이 두 사이다는 더는 손을 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콜라는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일찬 부사장님이 커피 건을 마무리하시게 되면 스타 콜라라는 이름으로 하나 개발해 주십시오.”
“스타콜라라... 알겠습니다. 헌데, 그렇게 콜라를 출시할 생각이라면 다른 업체 한곳을 인수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업체를 인수요?”
“네. 신라식품이라는 곳입니다.”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혹시 816 콜라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8.16? 아아! 기억납니다. IMF 때 나온 국산 콜라 아닙니까? 혹시 그 콜라가 아직도 나오고 있습니까?”
“상품 출시는 안 되고 있지만, 신라식품이 그 상표권을 들고 있습니다. 스타 콜라라는 무명의 콜라보다는 한때 코카콜라를 위협했던 816 콜라 이름을 가져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금액만 맞다면 광고 마케팅 비용으로 생각하고 인수할 수도 있지요. 신라식품이 매물로 나와 있습니까?”
“매물로 나온 지는 1년이 넘었는데, 제대로 히트 친 상품이 없다 보니 인수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라식품을 법무 담당인 박정진 이사가 한번 알아봐 주세요. 그런데, 그때 816 콜라의 상표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원액 레시피도 신라식품에서 가지고 있습니까?”
“네. 원액 레시피도 가지고 있긴 하겠지만, 816 콜라가 잊힌 이유 중 하나가 그 원액 레시피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맛이 없었고, 품질 관리에도 문제가 있는 레시피였습니다.”
“그럼, 브랜드 하나만 보고 신라식품을 인수해야 하는 거군요.”
“네. 브랜드가 가장 크지만, 그쪽이 가지고 있는 생산 인프라도 꽤 괜찮습니다.”
검색으로 살펴보니 과즙 음료인 쥬스류를 신라식품이 많이 생산하고 있었다.
“나름 이름이 있는 탄산 브랜드가 있음에도 역시나 여기도 두 업체의 알력 때문에 탄산을 못 만들었던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한국 음료 시장도 변화가 확실히 필요하네요. 헌데 궁금한 것이 있는데, 탄산음료이지만,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탄산수는 GL건강음료나 LT그룹에서 압력을 넣을까요?”
“탄산수요? 그건 저도 잘.”
이일찬 부사장은 고민을 해봤지만, 자신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분명 탄산음료이긴 하지만, 생수이기도 하고, 그 중간에 위치한 음료이니 괜찮을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번 찔러나 봅시다. 법무 이사님이 신라식품을 인수해 올 동안에 생수에 탄산을 넣어 만드는 탄산수를 생산해서 전국에 한번 뿌려 봅시다. 또 업체가 방해를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의외로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몇십 년간 탄산음료가 음료 시장의 1위였지만 근 10년 만에 생수가 음료 시장의 1위가 되었듯이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지금에는 생수와 탄산음료의 중간에 위치한 탄산수가 시장에 끼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리고, 탄산수에 부사장님이 만든 포켓 커피 액을 넣으면 탄산 커피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틈새 음료를 한번 추진해 봅시다.”
이일찬 부사장이 보기에도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생산공정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
충남에 위치한 물 맑은 동네라서 그런지 탄산수에 쓰일 지하수 수원도 생산공장 인근에서 바로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그 물에 탄산 가스를 집어넣고 바로 페트병에 밀봉을 하는 것이라 보름도 되지 않아 제품이 나왔다.
“스타 탄산이라고 일단 패키지도 만들었습니다. 가격은 20병에 1만 원으로 박리다매를 일단 노려 보겠다는 생각입니다.”
“한 병당 50원 남겠군요. 편의점에 납품했을 때 GL건강음료나 LT에서 말은 없던가요?”
“아직은 없습니다.”
스타 음료 회의에서는 시장을 장악한 두 업체에서 아무런 말이 없다고 했지만, 그날 밤 LT 그룹에서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