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48화 (148/203)

148. 옥석.

용진 음료의 인수 입찰장에는 기업관계자들만 있고, 기자들은 한두 명만이 보였다.

대한민국의 모든 화제를 사드(THAAD)가 다 가져 가버렸기 때문이기도 했고, 용진 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계열사인 용진 정수기 건도 같은 시간에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자들도 다 그쪽으로 간 것이었다.

“CJ 측에서는 아예 임원이 출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직 붙여두었던 사람들에게서 보고가 왔다.

CJ가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정도라면 신세계나 빙그레도 제대로 된 배팅을 하기 힘들 터였다.

1010억을 써내고 나서 살짝 졸리는 마음이 있었지만, CJ 측에서 아예 입찰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이렇게 찬밥신세를 당하면 당할수록 내가 인수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이번 사드 사태를 기업들이 예의주시하는 상황이었다.

중국과의 거래는 동생의 비치엔터에서 매니지먼트하고 있는 쇼 쉐프들밖에 없었기에, 스타 코퍼레이션은 이번 사드 사태에서 비켜설 수 있었고, 마음이 편했다.

“최종입찰이 마감되었으며 주관은행인 신일은행 입회하에 30분 후 입찰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빙그레와 신세계가 과연 얼마를 써냈는지가 궁금했다.

서로 눈치를 보며 금액을 파악하려고 했으나, 다들 오픈할 생각이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하종하 신일은행 부행장이 서류철을 들고 연단에 섰다.

“최종 입찰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우선협상 대상자는 스타 코퍼레이션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예에-!”

경직되고 침울한 분위기에서 터져 나온 내 환호성에 몇몇이 웃어댔다.

하지만, 오히려 더 크게 좋아하며 직원들과 악수를 하고 안아줬다.

우리도 사드 사태로 가치를 낮게 잡았지만, 빙그레나 신세계도 시장 가치보다 낮게 가격을 써서 입찰한 것 같았다.

일단 사드 사태로 인해 300억 이상 저렴하게 인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기뻤고, 배송 대행과 차량 공유, 페이(PAY)류에 집중되던 사업 영역을 마트와 식음료로 제대로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스타 코퍼레이션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긍정적인 시너지 방향으로 늘린 것을 축하드립니다. 협의를 위해 가시지요.”

실질 인수를 위한 실사를 거치고, 법적 검토를 받은 이후 인수금과 용진 그룹이 가지고 있던 용진 음료의 지분 62%를 양도받으며 용진 음료의 인수는 한 달 만에 마무리가 되었다.

***

언론에서는 연일 중국에서 사드 보복으로 한한령을 내려 한국 가수들의 콘서트와 영화, 드라마가 피해를 받고 있다고 보도가 되고 있었고, 결국 중국에 퍼져가는 한류를 막기 위해 사드로 한류와 한국 기업의 발목을 묶었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었다.

대규모 보복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한국 정부를 머쓱하게 만드는 한한령이었다.

동생 건희도 방송,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사드의 최대 피해자라며 중국에서 그렇게 아는 척하던 인맥들이 다 등을 돌렸다고 울분을 내게 토해 내었다.

“진짜 오빠 말을 듣고 쇼 쉐프들을 웨이상으로 전환 시킨 게 신의 한 수였어. LT 그룹의 요리쇼는 채팅창에 올라오는 욕이 많아서 접었어. 삐뚤어진 애국심이 큰지 사드 부지를 제공한 LT 그룹은 중국에서 쫓겨날 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

“쯧쯧쯧 LT 그룹에서 중국에 5조 원 이상 투자해서 250곳 넘는 마트를 만들었는데, 한순간에 나락으로 가 버린 거네. 아이돌 데뷔 못 한 연습생들 모아서 해보라는 그건 잘되고 있어?”

“그것도 잘되고 있어. 여자 남자 해서 27명을 뽑아서 웨이상으로 지원을 해줬거든. 20명 정도는 억대로 매출을 만들어 내고 있어. 진짜 시장이 좀 더 커지고 한다면 웨이상으로만 먹고살 수 있을지도 몰라.”

“다행이네. 당분간은 비치엔터가 나서지 말고 웨이상으로 있는 아이돌 애들만 나서게 해서 해. 한 1년 지나면 한한령인가 하는 것도 가라앉겠지.”

“그래도 아쉬워. 한국 음료수가 몸에 좋아요 하면서 웨이상 애들에게 판매하게 시키면 용진 음료도 엄청나게 매출이 좋아질 수도 있을 텐데. 음료수 시장은 타격이 없는 거야?”

“용진 음료의 대 중국 수출이 누적으로 이제 1500억이야. 2000년 초반부터 수출을 했으니 1년에 겨우 100억 정도의 규모인 거지. 나중에 한한령이 해제가 되면 그때 웨이상 애들을 통해서 수출액을 늘려 보자고.”

“그런데 이름은 안 바꾸는 거야? 이제 용진 그룹이랑은 상관이 없잖아.”

“그렇지 않아도 스타 음료로 사명을 변경하는 문제와 임원들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고 회의 일정을 잡았어.”

건희와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지만, 이거 뭔가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가 내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진 음료를 인수하는 자금은 LT그룹에서 준 것이긴 하지만, 저렴하게 인수할 수 있게 알아서 사드 사태를 만들어 주었으니 두 나라 정부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

“용진 음료는 자금난을 겪던 용진그룹을 지원해야 했던 데다 선택과 집중 없이 다양한 제품에 과도하게 투자해 수익성이 악화한 상태입니다. 해서 임시 기획단에서는 매출이 미미한 12종의 음료를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임원이 다 참여한 회의에서 출시 제품의 1/3에 해당하는 제품의 단종을 알렸다.

“그리고,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듯이 임원진 17분 모두에게 경영실적 부진의 이유로 퇴사를 권고하는 바입니다.”

임원들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크게 웅성거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인수 조건에서 직원들의 고용승계는 약정이 되어 있으나 다들 아시다시피 임원들은 직원이 아니기에 정리해고될 수밖에 없음을 알립니다. 그만 일어서서 회의실을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 내로 사무실을 비워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회의실 탁자에는 나와 정진이, 김민욱만이 남아 있었고,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 정윤이와 회의 기록을 위한 여직원까지 해서 다섯 명이 넓은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회의 이어 갑니다. 용진 음료의 사명은 스타 음료로 변경이 될 것이며 로고와 기타 마크도 모두 다 변경이 될 겁니다. 밖에 노조위원장님 들어오라고 하세요.”

충남 공주에 있는 용진 음료 공장은 320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그중 150여 명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었고, 지금 들어오는 40대의 험상궂은 이가 5년째 노조위원장을 하고 있었다.

“김태조 노조위원장님. 5년 동안 노사쟁의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기조를 유지해 주실 겁니까?”

“아, 그게. 그 강제 명예퇴직이나 감봉 같은 일만 없으면 그대로 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실 김태조 노조위원장은 험상궂은 얼굴과 다르게 마음이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회사가 인수된 이후 첫 회의라고 해서 노조위원장 자격으로 바뀐 대표이사를 보러 왔는데, 오자마자 임원 17명의 목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으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직원들에게 일방적인 명예퇴직이나 감봉은 없을 것이라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약속한 만큼 위원장님도 약속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위원장님은 전임입니까? 아님 따로 업무를 하고 노조 일을 하시는 겁니까?”

“배송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업무 외의 시간에 노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네요. 그럼 이제 임원 회의에는 위원장님도 참여를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업무 스케줄은 임원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조절하시길 바랍니다.”

“네에? 제가 임원회의에 참석을 하라는 말입니까?”

“네. 절반의 직원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면 노조의 입장도 중요한 것입니다. 본인들이 몸담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노조원들에게 잘 설명해 주시고 노사 간의 힘을 합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회사가 어렵습니다.”

회사가 어렵다고 김태조 위원장에게 이야길 했지만, 사실 아침햇살이나 맑은매실 같은 음료를 보유하고 있는 용진 음료는 나름 알짜 계열사였다.

전국 마트와 편의점에 모두 다 납품이 되고 있었으니 캐시카우가 될 수는 없었지만, 손실은 나지 않는 기업이었다.

지금까지는 모기업을 잘못 만났었기에 그 가치를 제대로 빛내지 못한 것이었다.

“네에. 그렇다면 외람되오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네. 의견이 있으시다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공식적인 노조의 요구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임원 중에서 이일찬 상무님은 퇴사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일찬 상무요?”

뜬금없이 노조위원장의 입에서 상무를 퇴사시키면 안 된다는 말에 임원들의 인사파일을 확인했다.

현장 기술자로 상무까지 진급했다는 것은 나름 주목할 만했지만, 인사파일에서는 그 외에 특이점이 나와 있지 않았다.

“회사의 히트 상품인 아침햇살과 맑은매실을 만드신 분이고, 지금 용진 음료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음료를 구상하고 제조에 참여하신 분입니다. 지금도 커피 관련으로 준비하시는 게 있으신 분이라 그분은 퇴직을 시키면 안 될 거라 생각됩니다.”

“아, 제품 개발부에서 제품을 만든 게 아니라 이일찬 상무가 음료를 다 만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용진 음료는 이제까지 단종된 제품까지 총 50종이 넘는 음료가 있었었다.

대부분의 음료가 이일찬 상무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다면, 이일찬 상무야말로 용진 음료를 상징하는 가치였다.

그런 특이사항이 인사파일에 나와 있지 않았기에 큰 실수를 할 뻔한 것이었다.

“좋은 의견이네요. 제가 상무님께 직접 가죠.”

***

공장 2층 사무실 한편에 만들어진 사무실이었는데,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파티션으로 만들어진 사무실에 이일찬 상무가 멍하게 앉아 있었다.

똑똑똑.

파티션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일찬 상무가 고개를 돌렸는데, 이번에 바뀐 회사 주인인 걸 알자 놀라서 일어섰다.

“상무님 그냥 앉아 있으셔도 됩니다. 혹시 회사를 나가신 후 뭘 하실지 정해진 게 있으십니까?”

“그, 글쎄요. 이렇게 급작스레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는 몰라서 아직 계획이 없네요.”

“지금 하고 계신 것이 커피 관련 일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일인지 물어도 됩니까?”

“아, 그건 말이죠.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나. 그러니깐 2010년에 커피 에스프레소 머신도 정수기처럼 렌탈을 하자는 그룹 차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물론, 정수기처럼 렌탈이 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정수기를 메인으로 삼았던 회사이다 보니 커피 머신도 렌탈로 하려고 한 것 같았다.

“위의 분들은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집에서도 에스프레소를 뽑아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하자고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한국 사람들의 커피 문화를 제대로 몰랐던 것이었죠.”

“그렇죠. 커피는 일하다가 힘들어서 숨돌리기 위해서 마시는 것도 있으니깐요.”

“하하하. 맞습니다. 직장인들은 힘들어서 커피라도 때려 넣고 싶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는 거지 진짜 집에서 여유를 즐기며 마시는 유럽 스타일과는 다른 것이었죠. 해서 이번에 추진한 것은 좀 늦은 감이 있지만, 편의점 커피액 음료를 출시하려고 했었습니다.”

이일찬 상무는 일회용 케찹 크기의 작은 패키지를 내밀었다.

“시제품입니다. 얼음물에 그냥 요거 하나 타 먹으면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됩니다. 휴대성과 편의성을 강화한 커피 제품입니다. 가격은 500원으로 벌크 타입으로 판매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일찬 상무는 정수기 찬물에 그냥 얼음 두 개를 띄우고는 미니 커피를 넣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렇게 뛰어난 맛은 아니었지만, 간단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틈새 상품으로 보였다.

“그럼 이 건을 마무리하실 수 있게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아이쿠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걸 마무리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아쉬웠거든요.”

“그럼 이거 마무리하면 신생 ‘스타 음료’의 부사장이 되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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