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인수전.
‘맑은매실’, ‘볶은보리’, ‘아침햇빛’.
이 세 가지 음료는 탄산음료와 카페인 에너지 음료를 제외한 비주류 음료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음료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비주류 음료 시장의 강자가 바로 내가 눈독 들이고 있는 용진음료였다.
“2013년 용진 음료의 매출은 1922억으로 2012년 대비 1.1% 상승을 한 상황입니다. 다만, 영업손익은 18억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 외에도 신세계와 빙그레, CJ도 인수 의사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비서인 최정윤의 브리핑에 캄보디아에서 급하게 불려온 김민욱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처음 스타마트를 해운대에서 열었을 때 민욱이에게 내가 한 말이 있을 거야. 우리만의 제품을 만들어서 팔자고.”
“네.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도시락류의 즉석식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료가 될 줄 몰랐네요.”
“아직 인수전이야. 우선은 용진이 내놓을 용진 음료의 62% 지분 가치를 계산해야 해. 업계에선 1000억에서 1300억 정도로 가치를 매기는데, 얼마를 써내야 할지가 문제인 거야.”
“우선, 인수 의사를 보이는 세 곳 중에서 빙그레가 가장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전 식음료를 했었던 경험이 있기에 시장으로의 재진출을 노리는 거 같습니다. 신세계도 다크호스이긴 한데, 신세계는 자기들의 주 영역이 아니다 보니 크게 돈을 쓰지 못할 겁니다.”
“아니지, 오히려 신세계가 새로운 사업 분야를 확장하겠다는 생각에 크게 돈을 지를 수도 있어. 지금 그쪽이 현금이 남아돌거든.”
김민욱은 빙그레를 변호사인 정진이는 신세계를 요주의의 업체로 선정했다.
다른 팀장이나 총괄들도 서로 빙그레가 걱정입네, CJ가 걱정입네 하며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 업계의 가치분석을 넘어서 1300억 이상 베팅을 하는 게 맞을까?”
일단, 중국의 판다요원을 매각하고 받은 자금이 3천억 이상 있었으니 총알은 충분했다.
하지만, 빙그레든 신세계든 CJ든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할 때는 1500억 이상도 써낼 수 있는 회사들이라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세계나 빙그레에 프락치라도 심어 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헛된 망상만 할 뿐이었다.
“저기 대표님. 의견을 하나 이야기해도 될까요?”
“그래 김이서 총괄. 무슨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거야?”
“우선 우리도 그렇고 저 회사들도 인수 의향서를 쓰기 전이지요?”
“아직 의향서는 다들 안 썼지.”
“그런데, 저 회사들이 인수전에 참여할 거라는 건 어떻게 아는 거죠?”
“저 브리핑에 나온 3개 회사는 기자들의 추정이긴 해. 하지만, 빙그레나 신세계, CJ의 경우에는 회사 내에 담당 기자들이 상주하는 기자실이 있어. 그러다 보니 인수 건에 대해서 기자들이 어느 정도는 주워들어서 정보를 알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저 세 회사가 얼마나 적극성을 가지고 인수전에 뛰어들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적극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네. 세 기업을 담당하는 기자들에게 돈 좀 쥐여주고, 인수 건을 담당하는 임원들의 정보를 받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임원들에게 사람을 붙이는 거죠.”
“오오. 사람을 붙여서 평상시와는 다르게 이리저리 활발하게 많이 움직이는 임원이 있으면 그 회사는 적극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판단하겠다는 거야?”
“네. 물론, 용진 그룹의 매각 소식을 듣기 전과 지금과의 비교가 불가능하기에 확률은 떨어질 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방법이 있을 거 같아요.”
“어떤 방법?”
“저 세 곳과는 달리 우리가 용진 음료를 인수하겠다고 인수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저 세 곳이 어떻게든 반응을 하고 액션을 취하지 않을까요?”
“오호. 용진 음료를 인수할 의향이 강하게 있다면 우리의 인수 기자회견을 보곤 뭔가 반응을 할 것이고. 그런 반응이 전혀 없다면 용진 음료 인수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는 걸로 판단할 수 있겠구만.”
“제가 보기엔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인수 의향서 제출까지 보름이 있으니 당장 사람을 붙여 임원들의 움직임 패턴을 파악해 보죠. 이후 일주일을 남기고 우리가 기자회견을 했을 때 그 움직임 패턴이 달라진다면 저쪽에서 용진 음료 인수에 적극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프로그래머인 채학인 팀장이 괜찮은 방법이라고 지지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인수 기자회견을 하게 되면 인수 가격이 더 올라버리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가격이 더 오르게 되더라도 다른 곳의 의향을 확인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기자들의 추론이나 주워들은 게 틀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을 판별하기 위해서 인수 의향 기자회견을 하는 건 좋은 방법 같습니다.”
채학인 팀장 이후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경쟁업체들의 적극성을 파악해서 대응하자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기자회견 후에도 세 곳 모두 아무 변화가 없다면 기자들의 기사에 놀아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각 회사 임원들의 움직임 패턴부터 알아보도록 하지. 이런 건 김이서 총괄이 잘하니깐 사람 써서 반응을 체크해 주세요. 그리고, 다른 경로로 업체들의 인수 의향이 나올 수도 있으니깐. 세 곳과 관련된 곳에서 일하는 지인이 있다면 한번씩 물어봐 주기 바랍니다.”
***
일주일간 빙그레와 신세계, CJ의 담당 임원들에게 사람을 붙여 움직임 패턴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그런 변화의 흐름을 알아보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처하여 한국 프레스 센터 회견실에 섰다.
“...저희 스타코퍼레이션은 배달대행 시장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용진 음료를 인수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다른 식음료 관련 업체들의 인수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프레스 센터라는 말과는 다르게 기자들은 10여 명밖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들을 통한 기사가 나가고, 그 기사를 본 이후 각 업체들의 행동 변화만 볼 수 있다면 목적한 바는 다 이루는 것이었다.
기자들에게 잘 부탁한다고, 돌리는 용도의 명함을 건네주고 식사나 한번 하자며 입을 털어댔다.
그리고 프레스 센터를 벗어나려는데, 프레스 센터 입구로 미친 듯이 차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사고 났어?”
설마, 우리 기자회견에 늦어서 이리 급하게 온 것인가 하는 망상도 했지만, 다른 일 때문이었다.
“야! 빨리 타! 바로 내려가야 해!”
“칠곡군 인근에 숙소 좀 잡아줘!”
“경상북도 칠곡군에 우리 신문사 지사가 있어?”
기자들이 난리 난 이유는 그들이 떠난 후에야 알 수 있었는데, 바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 때문이었다.
회사로 돌아와 뉴스 채널을 틀자 모든 채널에서 사드 미사일 기지가 경북 칠곡에 들어서기로 했다고 속보가 띄어져 있었다.
“저거 외교적으로 입만 털고 설치 안 하는 거 아니었어? 2월인가 그때 이야기만 나오길래 미국이랑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건가 싶었는데, 진짜 저걸 설치하는 거야?”
“그런 거 같은데요.”
티비에서는 칠곡군의 군수가 삭발식을 하며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땅에 몹쓸 것을 설치하는 것은 호국영령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거 사드가 너무 시끄러우면 우리 기자회견이 묻히고, 그 세 곳 반응 보는 것도 나가리 되는 거 아냐? 정부 새끼들 발표 좀 며칠 있다가 하지.”
나의 이런 걱정처럼 사드 배치 문제로 모든 뉴스 채널과 신문 지면이 할애되자 용진 그룹의 매각 인수에 대한 뉴스는 경제면의 한 귀퉁이에 겨우 나올 뿐이었다.
이틀 후 사드 배치 협의가 끝났다는 속보가 나오며 배치 예상 부지를 언론이 발표를 했는데, 평택시, 원주시, 칠곡군, 대구광역시, 양산시 등의 지명이 거론되었다.
그러자 각 지역에선 삭발식과 시위를 하며 여론이 심하게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M&A 시장에 나온 상용건설과 곡동건설의 인수 건은 시장에서 찬밥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고, 용진 그룹의 계열사 매각도 전혀 화제가 되지 못했다.
“세 회사에 40여 명을 붙여서 M&A 관련 임원들의 행동 패턴을 확인했는데, 확인이 안 됩니다. 사드 사태 때문에 모든 것이 파묻히어 버린 거 같습니다.”
“햐아- 이거 진짜 어이없네.”
대한민국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설치 문제로 그냥 모든 일이 뭉개지고 화제가 묻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인수 의향서 접수 이틀 전 사드가 경상북도 성주에 설치가 된다고 최종 발표가 되자 더 난리가 났다.
성주 시민들은 절대 설치할 수 없다고 결사 투쟁하겠다고 농기구를 끌고 나왔고, 시민단체들도 집결하면서 뉴스의 90%가 사드 이야기만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인수 의향서 하루 전날 중국 정부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한국 성주 LT골프장에 설치될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는 북한의 미사일을 감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중국의 전략자원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한국 정부는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설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었다. 이에 그 약속을 어긴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을 제재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발표에 뉴스와 여론은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그리고, 이건 기업인의 입장에서 아주 엄청난 문제였다.
당장 사드 미사일 기지에 부지를 제공한 LT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이 바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의 기자회견 이후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온라인이 난리가 났으니 아마도 중국 정부에서 사람들을 동원한 것 같았다.
“와 이거 미쳤네.”
중국 정부의 기자회견과 한국산 물건에 대한 불매운동 뉴스를 보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만약 판다요원을 팔지 않고 그대로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면 혼란의 사드 소용돌이 안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을 것 같았다.
내가 손 털고 나올 수 있게 도와준 LT그룹에 절이라도 하고 싶을 판이었다.
“사드 뉴스에 다 파묻히었지만, 혹시나 해서 세 기업의 임원들에게 사람을 계속 붙여두고 있었는데, 지금 다들 본사로 움직이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서가 붙여둔 사람들에게서 문자와 카톡으로 계속 연락이 왔다.
그쪽도 사드 사태로 정신이 없을 것 같았다.
“자자 우리도 판단해 보자고, 우선 신세계는 중국 쪽에 유통 진출을 하기 위해 발을 담그고 있는 상태였어. CJ는 이미 영화극장 체인을 설립하는 계약도 한 것으로 알아. 지금 그 두 곳에서 용진 음료 인수에 정신을 쓸 수 있을까? 아마 없겠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중국 정부에서 제재를 하겠다고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했으니 중국과 연관된 일을 하는 업체들은 다 비상이 걸릴 터였다.
용진 음료의 인수에 마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큰 금액을 베팅하지 못할 터였다.
“빙그레도 중국 빙과시장과 우유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공장 설립 건이 엮여 있습니다.”
“빙고! 빙그레도 크게 못 지르겠네.”
인수 기자회견을 할 때만 해도 모든 화제를 사드란 녀석이 다 들고 간다고 욕을 했었는데, 이제는 모든 화제를 다 들고 가며 중국의 어그로까지 끌어줘서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할 판이었다.
“입찰 가격은 그럼 얼마를 써내실 겁니까?”
시장에서 보는 용진 음료의 가치는 1000억에서 1300억 정도였다.
본래라면 1300억 이상을 써낼 생각이었지만, 경쟁자들이 다른 문제로 정신이 없을 터이니 입찰 가격을 낮춰도 될 것 같았다.
“1010억으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