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조폭과 총수는 종이 한 장 차이.
“종민아. 나 지금 떨고 있니?”
“아 진짜 아무리 조폭 같은 끗맹 회장을 만나러 간다지만, 그런 드립은 넘 촌스럽지 않습니까?”
“배에 철판 하나 대고 갈까도 난 생각했다고. 퍽퍽 칼 맞고. 마, 고마해라. 마이 무따이가. 이런 대사도 해보고 싶었는데.”
“조폭에 너무 빠지신 거 같은데요. 끗맹 회장에 대한 것은 다 소문일 뿐입니다.”
“언론에 보도 안 되게 다 막으니깐 소문으로 남은 거겠지. 같이 보기로 한 LYP 그룹의 이용팟만 해도 태국과의 국경지대인 ‘꼬꽁의 왕’이라고 불린다잖아.”
“이용팟 회장은 미국 뉴스위크에도 보도가 된 게 있으니 진짜 그 사람에 대한 것은 맞을 겁니다. 끗맹보다 어떻게 보면 더 조심해야 하는 사람일 겁니다.”
끗맹 회장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전날에 끗맹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재계 2위인 LYP 그룹의 이용팟도 같이 보자는 연락이었다.
그래서 같이 보기로 한 LYP 그룹의 총수 이용팟에 대한 것도 조사를 했는데, 화교 출신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프놈펜과 씨앱립이 로열그룹의 나와바리라면, 태국과 마주한 캄보디아 국경지역인 꼬꽁지역은 LYP 그룹의 나와바리였다.
이용팟은 캄보디아와 태국의 화교 정치인들과 인맥이 넓었는데, 그 들의 비호를 받으며 개인이 잘 경작하던 국경지대의 땅들을 수탈하듯 빼앗았다.
말로는 정당한 거래를 통한 인수라고 하지만, 죽은 고양이나 살아있는 독사를 자루에 넣어 땅 주인 집안에 던지거나 하는 방법으로 협박을 해서 옥토를 수탈했다고 뉴스위크에 보도가 된 인물이었다.
여의도의 30배에 달하는 땅에서 사탕수수와 상품작물을 재배해서 부를 일구었는데, 지금은 태국에서 가져오는 전기 사업과 건설, 호텔, 카지노, 자동차 수입까지 소비재와 관련된 사업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조폭과 비슷한 재벌들의 상황을 보면 볼수록 캄보디아가 우리나라 60~70년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벌이 형성되면서 서민들을 갈취해도 권력층과 연계만 되어 있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산업화를 위한 야만의 시기가 지금의 캄보디아였다.
***
끗맹의 집은 말 그대로 궁전이었다.
유럽식의 궁전이 아니라, 옛날 율 브리너가 주연했던 영화 ‘왕과 나’에 나오는 동양 느낌의 궁전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리스의 신전과도 비슷한 구조의 집이었다.
끗맹이 현관에서 맞아 주었는데, 소문으로만 들었던 캄보디아 배우 출신의 마누라도 어린 아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
그 뒤로 LYP 그룹의 이용팟도 아내와 같이 와있었는데, 그의 아내도 미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뭔가 남자들은 다 중국계인데, 여자들은 캄보디아와 인도계가 섞인 큰 눈을 가진 서구적 미인들이었다.
“이쪽은 향후 캄보디아와 동남아 전체를 총괄할 이종민이라고 합니다.”
“다들 영어가 되니 좋군요. 안쪽으로 가시죠.”
끗맹은 킬링필드 때 부모님을 잃고, 호주에서 학교를 나왔기에 영어가 유창했고, 이용팟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었다.
먼저 차를 마시며 가족들을 소개받았는데, 말레이시아에서 데닐리 탄의 가족들을 소개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홈파티 형식이었다.
중국계인 화교이지만, 생활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서구의 방식이었다.
집에 방문했다는 기념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한복 입은 전통 인형을 건네었다.
“임 대표는 이혼했다고 들었는데, 따로 재혼할 애인이 있는 겁니까?”
제대로 만나는 사람도 없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짜증나는 것은 내가 이혼남이라는 게 캄보디아까지 소문이 났다는 것이었다.
“지금 만나는 여자가 없다면 캄보디아 여자를 추천해 드립니다. 중국이나 한국 여자에 비해서 성격이 순하고, 때리면 맞고 있을 만큼 지고지순합니다. 이런 부분은 일본 여자들과 비슷하죠.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이야기를 하세요. 하하하.”
“그렇군요. 그럼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헌데, 듣기로는 골든타워42를 인수해서 완공을 하려고 한다고 들었는데, 그 일을 진짜 맡으실 겁니까?”
“아직 검토 중입니다. 로열뱅크에서 저리로 대출을 해주신다면 그 검토가 빨리 끝이 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친해져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군요.”
끗맹의 턱짓에 여자들은 다 나가고 끗맹 측 2명, 이용팟 측 2명 해서 6명 만이 남았다.
“골든타워42를 위한 대출에 콘세로 저축은행이 끼게 된다면 대출을 해드릴 겁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그랩에 우리 로열뱅크에서 만든 윙(Wing) 이란 지불 화폐를 넣어서 결제가 가능했으면 합니다.”
이번 달부터 그랩에서 신성스타페이로 결제가 가능하게 업데이트가 되었는데, 그런 페이처럼 그랩에 ‘윙’을 결제 수단으로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각국의 전자결제 서비스에 대한 커스텀을 기본으로 구축이 되었습니다. 윙을 결제 수단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실무진에 처리를 시키겠습니다.”
“그리고, 홍룡뱅크와 퍼블릭 뱅크는 그랩에 투자를 했던데, 우리도 그랩에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그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홍룡 뱅크와 퍼블릭 뱅크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그랩 법인에 투자를 한 겁니다. 로열 그룹이나 LYP 그룹은 ‘그랩 캄보디아’에 지분 투자를 하실 수 있습니다.”
대출 건으로 내가 매달리는 포지션이었는데, 이야길 해보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랩에 투자하고 싶다고 두 곳이 먼저 몸을 움직이는 거였다.
“그랩 캄보디아는 투자 오픈된 지분이 20% 있습니다. 두 분께서 10%씩 지분을 인수해 주신다면 저희도 든든한 배경이 생기는 것이라 기쁠 것 같습니다.”
“흐음. 각 나라별로 독립 법인을 두는 거군요. 그럼 다른 나라에도 투자를 할 수 있는 겁니까?”
이용팟은 태국 쪽에도 자산이 있다 보니 태국을 염두에 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물론입니다. 국가마다 오픈된 투자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국 쪽으로 투자를 생각하신다면 다음에 데닐리 탄과 함께 방문을 하겠습니다.”
“역시 미국의 유버와는 대응 방식이 다르군요. 발빠르게 확장되는 이유가 있는 거 같습니다.”
“유버는 세계 1위이니깐요. 그들은 충분히 배짱을 부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배짱을 부려준 덕분에 동남아시아에서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투자와 관련된 이야길 하다 보니 그랩 푸드에 대한 것도 이야기를 했고, 그런 배송기사를 거느리는 사무실이 돈이 된다는 것을 살짝 알려주었다.
유흥업인 KTV도 사업으로 거느릴 정도의 회사였으니 이런 배송기사들을 움직이는 사무실도 자기들이 맡으려고 할 터였다.
캄보디아의 재계 1, 2위인 기업이 우리 그랩에 깊이 관여되면 될수록 시장 장악은 더 쉬울 터였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끗맹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었다.
끗맹의 로열그룹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외국 기업들과의 합작이 많다는 것이었다.
로열그룹 혼자서 뭘 하기보다는 외국의 빠른 트랜드를 가진 회사와 합작해서 장점을 취하는 방식이 로열그룹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합작 회사의 CEO는 언제나 캄보디아인이 아닌 중국계 화교나 서양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끗맹이 호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화교나 서양인들과 사회초년생 시절을 보내었기에 그런 이들을 CEO로 앉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경영방식은 캄보디아에 한정되지 않는 글로벌 한 지식과 서구의 트랜드를 로열그룹에 가져오고 있었다.
“지분 투자 건에 대한 것은 내일 실무자들이 다시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그런데, 저희는 골든타워42를 완공한 이후 마트를 입점시킬 예정입니다. 캄보디아에 보니 큰 규모의 마트가 하나도 없다는데 놀랐기에 마트를 세울 생각을 했습니다. 헌데 문제가 있더군요.”
“수출입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군요.”
끗맹은 문제가 있다는 상세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알고 있다며 말을 했다.
“네. 알아보니 훈센 총리의 막내아들인 훈 마니의 처남이 하는 ‘캄카시아 수출입무역회사’를 무조건 거쳐야 물품이 수입된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그게 해결이 안 되니 캄보디아에 월마트가 들어오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럼, 이걸 푸는 방법은 없는 겁니까?”
“그 건은 안타깝게도 풀 수가 없습니다. 훈 마니와 직접 이야기를 해보았는데도 안되더군요.”
이용팟은 자신이 해도 안 풀렸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꼬꽁 지역에서 나오는 농작물을 배를 이용해 수출하면 좀 더 좋은 가격으로 수출이 가능한데, 그게 안 되니 우리도 태국으로 육로로만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오히려 그랩에게 풀어 달라고 요청하고 싶군요.”
“훈 마니가 그 정도로 막힌 사람입니까?”
“막혔다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이건 우리도 도와줄 수가 없어요. 뭐, 훈 마니 와의 자리는 잡아 드릴 수 있습니다. 한번 만나서 풀어보겠습니까?”
자리를 잡아 준다는 끗맹을 보니, 뭔가 판을 벌여 주길 원하는 눈빛이었다.
못 먹어도 ‘고’라는 생각에 훈센 총리의 막내아들과 만나보겠다고 했다.
***
“끗맹과 이용팟의 이야길 들어보니 수출입 물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마트를 하겠다는 계획 자체가 안 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안 괜찮지. 여기가 무슨 북한도 아니고, 수출입을 자기 입맛대로 하려고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네.”
“그런데 이상한 것도 있습니다. 일본의 이온 몰은 그 많은 물건을 어디서 들고 오는 걸까요. 중간에 캄카시아 수출입회사를 거쳐서 오게 된다면 단가가 올라가서 마진이 박해질 텐데요.”
“그 박한 이익을 참고 있던지 아님, 뭔가 이유가 있겠지. 총리의 막내아들을 만나기 전에 그 이유를 우리가 알아내야 하는 거고. 일본의 이온 몰은 물건을 들여오고 하는 게 다 되는데, 끗맹이나 이용팟은 안된다고 하니 뭔가가 분명 있을 거야.”
캄보디아에서 김신현이나 김조일이 만든 인맥으로 일본의 이온 몰은 물류가 마음대로 되는 이유를 알아보았지만, 훈 마니와 약속을 잡은 날까지 알아내지를 못했다.
***
“저기가 훈센 총리의 여러 저택 중의 하나인데, 저 집을 막내아들인 훈 마니가 쓰고 있다고 합니다.”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기와지붕 비슷한 것이 올려진 저택이었는데, 멀리서 보면 절 같아 보였다.
이번에는 김조일과 김신현까지 동행을 했는데, 총리의 막내아들이다 보니 한국에서 가져온 전통 인형이나 선물도 잔뜩 챙겨서 방문을 했다.
몸 수색까지 다 한 이후에 훈 마니를 만날 수 있었는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쓴 살집이 있는 사람이었다.
“쭘 리업 쑤어.”
캄보디아 인사말을 하고는 불교식 합장으로 인사를 했는데, 훈 마니도 마주 합장을 하며 반겨주었다.
다른 세 명도 모두 다 합장 인사를 하니 훈 마니는 살짝 웃으며 우리에게 자리를 권했다.
캄보디아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방석이 놓였는데, 탁자나 의자를 쓰지 않고 바닥에 앉았다.
한국인이라면 이러한 방석 문화가 자연스러웠기에 다들 불편함 없이 앉아서 눈치를 봤다.
“한국인들은 확실히 다르군요.”
한국인은 뭔가 다르다며 이야길 하는 훈 마니의 말에 느낌이 팍! 왔다.
훈 마니는 전통주의자였다.
서구화된 삶의 방식이 아닌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삶을 살려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게 판단한 이후에 훈 마니를 다시 보니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스님이다. 스님이야. 훈 마니는 스님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