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모두가 행복한가?
“저기 가방을 보니 서류를 더 가지고 오신 것 같은데, 제안 조건이 몇 개 더 있으시다면 보여주십시오.”
“이런.”
박종일 지사장은 서류 가방을 바닥에 놓지 않았다는 실수를 그제야 깨달았다.
심재일이 허락한 4800억 마지노선까지 해서 만든 서류가 있었지만, 이미 들통난 서류들을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우리 패만 다 보여줘서는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임 대표님이 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먼저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솔직히 금액적인 부분을 더 원하지는 않습니다. 헌데, LT 그룹은 한국과 일본에서 물건들을 어떻게 중국으로 들여오고 있습니까?”
웨이신 모멘트를 통한 상품 판매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내가 원하는 정보부터 물었다.
“우리 LT 그룹은 일본에 계열사로 해운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내 생산을 위한 설비도 계획은 하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과는 가깝기에 중국 내 공장 생산은 계획만 내놓고, 전용 화물선으로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배가 들어 옵니다.”
“아, 해운사를 가지고 있으니 안정적으로 물류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군요.”
결국, 앞 마당 멀티와 같은 중국 시장에 뭔가를 팔아 보려면 컨테이너선을 보유한 해운사가 있어야 물류에 차질이 없을 것 같았다.
“혹시, 해운업을 생각하시고 계신 겁니까?”
박종일은 판다요원의 매각한 이후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던 임건호의 말이 떠오르자, 물류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물었다.
“지금은 생각만 해보고 있습니다. 컨테이너 선 가격도 한두 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한두 푼이 아닌데, 지분을 매각한 이후 컨테이너 선으로 해운업에 뛰어드신다면 LT 그룹이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마트 지점이 늘어나는 만큼 한국과 일본에서 들어오는 물건도 많아질 테니깐요.”
용선이나 해운 운임을 고정적으로 내줄 거래처가 있다면 해운사 입장에서는 든든할 터였다.
4100억.
그 돈으로 컨테이너 선을 구매해서 한·중·일을 왕복하는 짧은 무역로만 돌려도 손해는 보지 않을 터였다.
물론, 더 오를 수도 있는 미래가치를 4100억에 파는 것이 아깝기는 했으나 그 과실을 먹기까지 들어가는 시간적인 매몰 비용이 너무 컸다.
그리고, 그랩이나 신성 스타페이에 더 들어가야 하는 돈도 부담이긴 했다.
지금 판다요원을 매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무조건 이득인데,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마윈이 더 낮은 금액으로 인수 제안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LT 그룹에서 난리를 칠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서류상으로는 정상적인 지분 인수 계약이 될 터였고, 마윈이 제안한 금액은 둘의 구두 대화로만 남아 있었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또, 마윈이 10일의 생각할 시간을 주며 날짜가 늦을수록 조건이 나빠질 거라고 했으니 나중에 금액이 떨어졌다고 해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내가 사기 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돈을 더 받게 되는 도의적인 미안함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한국 재계 순위 5위 안에 드는 대 재벌이었다.
거기에 일본에 있는 자산도 어마어마했으니 도의적인 미안함은 그냥 마음속에 접어두기로 했다.
“해운업을 하게 되면 도와주신다고 하시니 든든한 버팀목이 있는 것 같네요. 한국에서 회사 변호사를 부르겠습니다. 지분 인수건과 자회사 분리건 다 같이 처리하죠.”
박종일은 한계인 4800까지 부르지 않고 첫 제안인 4100에 지분을 넘겨 받게 되었다는 생각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다만, 부사장인 스카이나 김안일 부장 등 다른 이들에게는 서명이 끝날 때 까지 비밀 엄수를 해주십시오. 알리바바의 마윈을 만나고 한 소식이 너무 빨리 퍼졌습니다. 관련된 소문이 돌다 보면 분명 말도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로 의(義)가 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지요. 협의 사항 논의는 그럼 저희 마트로 변호사들과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눈에 띄지 않을 테니깐요. 저와 심재일 이사님만이 알고 있겠습니다.”
“네. 저도 변호사와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기본적인 지분 인수에 대한 동의를 했으니 이제 서류와 법적 문제가 남았다.
그리고, 연막이 좀 필요했다.
박종일이 가자 바로 스카이를 불렀다.
***
“우리 연막 좀 치자. 너 ‘커우베이’ 대표하고도 알고 있지?”
“네. 커우베이의 왕치신 CEO와는 안면이 있습니다.”
“그럼, 커우베이를 찾아가서 우리는 마윈에게 안 팔고, 디엔핑 쪽과 이야길 하고 있다고 이야길 살짝 흘려주고 와.”
“네? 디엔핑 쪽과 이야길 하고 있다고요? 진짜입니까?”
“아니. 거짓말이지. 몸값 올리기야. 커우베이가 마윈에게 먼저 팔리게 되면 우리가 손해 보니깐 우리 둘 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면서 몸값을 올려 보자는 거지.”
“흠. 그러면 어러마 측에서 오히려 더 마음이 급해지겠군요.”
“그래. 그러니 재주껏 왕치신 CEO와 이야길 해서 매각 시간을 좀 벌어 보자고.”
스카이도 두 회사에게 마윈이 10일의 시간을 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윈의 제안에 따르지 않고 주도권을 오히려 우리가 가져온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LT그룹과의 일을 모르는 스카이가 설쳐주니 연막이 아주 잘 쳐졌다.
***
“좋군. 700억을 아꼈어. 계약은 그럼 언제 하는 거야?”
“주말에 한국에서 담당 변호사 들이 들어 온다고 합니다. 헌데, 매입 자금은 괜찮겠습니까?”
박종일 지사장은 그제야 돈 문제가 떠올랐다.
“내가 본사로 들어갔다가 와야지. 김안일 부장을 데리고 들어 갈 테니까 인수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심재일은 일본 본사로 갔고, 3세 후계자이다 보니 4100억도 금세 준비가 되었는지 변호사들과 돌아왔다.
“LT 그룹에서 일주일 동안 분산 입금될 것이며 첫 입금 시 판다요원은 스타 코퍼레이션의 자회사가 아니게 됩니다. 한마디로 그 이후로는 임건호 대표의 권한이 모두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4100억대의 빅딜이다 보니 변호사만 양 측에서 11명이 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판다요원의 모든 임직원들은 지금 그대로의 지위와 근로 권리를 가지지만, 스타 코퍼레이션 측에서 파견 나와 있는 한국인 직원들은 본사로의 복귀와 잔류를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모든 조항에 동의 하십니까?”
내가 동의를 했고, 심재일이 동의하자 바로 서명을 했다.
그리고, 계좌에 바로 1차분 돈이 들어왔다.
“시원섭섭하시겠습니다.”
심재일이 먼저 악수를 청해왔다.
“판다요원을 더 크게 할 수 있고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주인을 만난 것 같아 섭섭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심 대표님의 건승을 빌겠습니다. 모쪼록 많이 도와주십시오.”
차기 LT그룹의 주인이 될 사람이라 고갤 숙여 인사를 해주었다.
이후 내 집무실은 심재일이 차지하게 되었고, 내가 지분을 LT 그룹에 넘긴 것을 직원들이 알게 되자 다들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금세 그 충격은 사라졌다.
다들 일본과 한국의 대기업 소속이 되었으니 임금이 오를 것이라고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스카이가 좋아했는데, 자신을 속이고 지분 거래를 했다는 것도 금방 다 잊었다.
김안일 부장에게 LT 그룹이 판다요원을 인수한 이유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인수가 아닌 어러마와 알리바바와의 협업을 위한 매각을 추진하기 위한 인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스카이로서는 불만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럼, 이제 중국을 완전히 떠나는 것입니까?”
“이제 집무실도 없는데, 떠야지. 그리고, 한국에서 파견 온 직원들을 다 모아주겠어?”
가맹점을 위한 영업팀과 요리쇼 촬영을 위한 영상팀, 전산 연동을 위한 개발팀까지 14명이었다.
그리고, 아무 상관없는 쇼쉐프를 관리하는 비치 엔터의 직원도 왔는데, 쉐프들도 뒤 따라 들어왔다.
엔터 직원이나 쉐프들은 아무 상관이 없었기에 나가라고 하려다 저들도 다 내가 발탁한 직원들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회의실에 그냥 있게 했다.
“다들 이야길 들어서 알 테지만, 저는 지분을 정리했습니다. 이제 판다요원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해서 한국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여기에 모이게 한 이유도 한국으로 가는 문제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일하는 것이 맞는 사람은 그대로 판다요원의 직원으로 남을 수 있을 겁니다.”
그제야 한국에서 온 직원들은 근무처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웅성거렸다.
“판다요원에 남을 사람은 내일까지 스타 코퍼레이션에 사직서를 제출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바로 판다요원의 직원으로 직급 그대로 채용이 될 것입니다.”
비서인 최정윤이 서류를 배부했다.
“지분 변동으로 인한 대표이사 선임과 관련된 임시 총회가 열릴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내부적으로 어수선할 겁니다. 최대한 빨리 서류를 주셔야 처리가 됩니다.”
서류를 받은 직원들과 달리 쉐프들이 먼저 나와서 이야길 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걸 미리 알았기에 우리들을 매니지먼트 계약 시킨 겁니까?”
프랑스인인 페리앙이었다.
“매니지먼트 계약을 시킨 건 이것과는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요리쇼는 그대로 진행 될 것이고 변하는 건 없습니다. 오히려 일거리가 더 늘어 나게 될터이니 다들 웨이보 관리에 신경을 써주시면 됩니다.”
웨이보 관리에 신경 쓰라는 말뜻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회사주인이 바뀌어도 변경되는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으니 쇼 쉐프들은 안심했다.
***
“14명 중에 6명이 남기로 했다고?”
“네. 한국보다 더 기회가 많아 보여서 남는 다는 사람도 있었고, 애인이 중국 사람이라 남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서류를 보는데, 개발팀을 맡은 강민호 팀장이 남는다고 한 것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강민호 팀장은 텐센트에서 오퍼가 왔다고 그쪽으로 간다고 합니다.”
“역시 개발직군은 이직이 빠르구만.”
개발 역량이 있는 직원들이 유출되는 것은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회사의 역량에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전체 개발직군에 보너스를 주기로 하고, 중국에 파견 왔다 복귀하는 직원들에게도 보너스를 주자고. 그게 맞겠지?”
“그럼요. 다들 대표님이 몇천억을 벌었다고 아는데, 보너스를 안 쓰면 말이 나오죠.”
“그래. 직급에 따라 최대 5천만 원까지 보너스 주게 테이블 만들어 와라.”
“저도 주는 거죠?”
“정윤아, 넌 1년도 안되었잖아.”
“그래도 힘들었다고요.”
어릴 때 한동네에서 크는 것을 보았던 사촌 동생이다 보니 이럴 때 돈을 좀 쓰기로 했다.
“그냥 넌 면세점에서 다른걸 사줄게. 이번에 들어갈 때 이모랑 외삼촌들 선물 좀 많이 사서 가야겠다.”
“아싸! 일할 맛이 납니다!”
***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연락이 아니라 미안하군요.”
인수 협의를 위해 받은 담당자 연락처를 통해 마윈과 전화 통화를 했다.
“40% 지분을 얼마에 넘겼는지 알려줄 수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비밀 엄수 조항이 있어서 그건 안될 것 같군요. 다만 이건 이야기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LT 그룹은 단순한 돈 보다는 알리바바와 어러마의 인프라에 관심이 많으니 서로의 장단점을 맞춰보면 괜찮을 겁니다.”
“그럼, 지분 관계만 가능하다는 겁니까?”
“네. 그러니 독단적인 공격적 인수 보다는 서로가 함께가는 공생의 길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에 텐센트의 위챗에서 만든 웨이상 서비스가 그런 공생의 길을 보여주더군요. 아주 크게 될 것 같아서 마윈씨도 걱정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흥. 그 서비스가 잘 될지는 시간이 지나고 봐야 알겠지요. 이제 연락할 일이 없을 것 같군요.”
“네. 그럼. 햐 기분 잡쳤다고 말도 다 안 끝났는데, 전화를 끊어 버리네. 비즈니스 매너 꽝이네. 이 새끼.”
스티브 잡스도 그렇고, 마윈도 그렇고 크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뭔가 성격이 삐뚤어져야 하는 건가 싶었다.
***
“오빠앙! 난 이거 이거! 까르띠에!”
“야 미쳤어? 이거 700만 원이구만.”
“개발 신입 1년 차들도 다 천만 원씩 보너스 받았잖아요. 난 그래도 비서에 사촌인데 700이면 싼 거지.”
“이게 맛탱이가 갔네. 저기 돌핀 시계 있네. 저거나 사.”
인천 공항 면세점에 도착하자 나름 맹하지만 비서역을 잘 해내던 정윤이가 사촌 동생으로 돌아왔다.
“으으응. 이제 한국에 있다가 또 캄보디아 가야 한다면 서요. 나도 나름 고생했다고. 중국에서 바퀴벌레 나오는 원룸에서 5개월 넘게 있었고, 밥도 이상한 향신료에...그러니까 나도 보너스로 까르띠에! 캄보디아 가면 또 바퀴벌레 나오는 원룸에서 살아야 하고....”
비싼 시계를 사달라고 매달리며 응석 부리는 모습에 결국 신용카드를 꺼내 들었다.
“헤헤헤. 역시 오빠야가 최고다!”
급 방긋하며 정윤이가 좋다고 날뛰었다.
이후 가족들의 선물을 카트에 가득 실어 가며 먄세점을 털 듯이 쇼핑을 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선배. 저 사람 말레이시아에서 봤던 그 사람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