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제안. (1)
“네. 맞습니다. 요리쇼를 우리가 가지고 오면 됩니다. 다만, 그 가치를 정확하게 환산하기가 힘이 듭니다. 스타 코퍼레이션에서 별도의 회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비치 엔터테인먼트와의 공동 제작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요리쇼의 가치환산이 어렵습니다.”
“아니. 아니. 박종일 사장님.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껏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아니라고 태클을 거는 말에 박종일은 눈가에 인내 천(川) 주름을 만들었으나 금세 주름을 펴고 웃었다.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이가 바로 LT 그룹의 차기 후계자인 심재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29살 밖에 안된 심재일은 사외이사라는 직함을 달고 회의에 나와 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심재일을 사외이사로 보지 않고 있었다.
언제든 승계작업을 위해 지주회사의 대표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 이야기는 요리쇼를 인수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료를 보니 이 요리쇼에 뭔가 특별한 기술이 들어간 것도 없는 것 같고, 특허나 그런 것도 없어 보입니다. 그냥 이 요리쇼 틀을 그대로 우리도 써서 만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심재일의 말에 박종일은 속으로 웃었다.
사실 자신도 그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한창 일본이 잘나갈 때 그런 일본의 상품들을 Me Too 전략으로 카피해서 한국에서 성장한 것이 LT 그룹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 새로운 신상품이 대박이 났다고 하면 자연스레 Me Too 제품을 준비하는 것이 LT 그룹의 기본 전략이었고, LT 그룹에서 잔뼈가 굵은 박종일도 당연히 요리쇼의 카피를 생각해 봤었다.
“심 이사님 말처럼 이 요리쇼의 핵심인 스타 쉐프만 영입할 수 있다면 우리만의 요리쇼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된다면 협업하고 있는 판다요원과는 관계가 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상승세로 성장하고 있는 기세가 꺾여버릴 수 있습니다.”
“당장 그렇게 판다요원과의 관계를 부술 필요는 없지요. 같은 바이두 영상에서 자체적으로 우리만의 요리쇼를 준비해서 진행해보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자연스레 판다요원과의 관계는 끊어낼 수 있을 겁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쪽의 스타 쉐프들도 결국은 프리랜서 아닙니까? 그 쉐프들을 그대로 스카웃해서 하면 될 것 같은데, 중간에 업체를 하나 끼워서 쉐프들을 빼 와서 투입하는 것도 한번 추진해 보세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지만, 심재일이었지만, 이런 일은 이미 겪어보았다는 듯이 전략을 풀어내었다.
법적으로는 합법이 맞았지만, 결국 사업파트너의 뒤통수를 치는 양아치 짓이었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이런 뒷 작업이 당연했다.
대기업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대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요리쇼 일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되자 박종일 사장이 일본으로 직접 온 이유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100개의 지점을 늘리는 계획을 좀 더 앞당겨 3년 내 100개 지점을 오픈할 수 있게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박종일의 브리핑은 LT그룹의 고위층에게 먹혀들었다.
그룹의 핵심이자 캐시카우인 일본과 한국의 유통사업이 정체기에 접어들었기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과 일본처럼 중국의 유통사업을 장악할 수 있다면 그 이득은 지금의 몇 배로 커질 수 있을 터였다.
“심재일 이사도 중국 법인으로 가도록 하지. 본인이 직접 이야길 했으니 그 요리쇼인가 하는 것을 만들어 내고, 중국 내 지점을 최대한 늘려봐. 할수 있겠지?”
회의실 상석에서 들려온 소리에 심재일은 흠칫 놀랐다.
갑작스러운 중국 발령에 불만이 있었지만, 이내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버지의 말에는 토를 달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내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3세로 이어지는 우리 LT 그룹의 성쇠가 결정될 것이다. 심재일 이사는 그 시험을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임하도록.”
단순한 시장 확장이 아니라 아예 결과에 따라 후계자로서 적합한지를 판단하겠다는 말에 임원들은 당분간 중국 법인에서 올라오는 투자 건이나 지원 건에 대해서는 무조건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상승일로의 중국 시장은 박종일 사장에게 맡겨두어도 성공할 것 같았는데, 그 성공의 과실을 심재일에게 안겨주겠다는 말이었으니 중국 법인의 일에 반대할 간 큰 사람은 없었다.
***
3세인 심재일이 LT 그룹 중국 법인으로 간다는 것에 유일하게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박종일 지사장이었다.
상승세인 기세를 살리기 위해 본사의 지원을 받으러 갔는데, 어린 상전을 머리에 이고 돌아왔으니 눈치를 봐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우선은 자신의 집무실을 심재일에게 빼앗겨야 했고, 법인차량 역시 심재일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던 마트 지점 확장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심재일이 불만이었다.
“그러니깐 김안일 부장의 말은 판다요원의 지분 중 9%는 오픈 투자를 위해 남겨두었다고?”
“네. 심대표님. 판다요원의 대표인 천친위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투자 가능한 지분이 9% 남아 있다는 말에 심재일은 고민을 했다.
“그럼, 김안일 부장이 판다요원 측에 지분 인수를 타진해 보세요. 9%를 인수해서 같이 판다요원의 경영에 참여하고 싶다고.”
심재일은 요리쇼 문제도 그렇고 마트에서 픽업해서 가는 배달 대행의 시장도 커지고 있었기에 단순한 협업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참에 지분을 가지고 오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되었다.
그리고, 이런 업무 지시를 내리는 심재일의 모습에 박종일은 한숨을 쉬었다.
마트로 바닥부터 다지며 확장하여 중국 유통망을 먹겠다는 생각보다도 M&A로 기업을 인수해 더 빠른 성과를 내려는 심재일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M&A가 잘되면 괜찮지만, 실패하게 되면 그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실패했을 때는 명목상 중국 법인장인 자신이 뒤집어써야 할 리스크이기도 했다.
반면, 김안일 부장은 지사장인 박종일이 아닌 자신에게 일을 맡기는 심재일의 모습에 박종일 지사장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김안일 부장은 투자를 하겠다고 판다요원 본사에 찾아가면 칙사처럼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평소 술잔도 같이 기울이며 호형호제 했던 스카이 천친위가 오늘따라 멀게 느껴지게 행동했다.
이런 눈치는 또 기막히게 알아채는 것이 김안일 부장이었기에 스카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그게, 며칠만 일찍 오셨으면 좋았는데 말이죠.”
“서, 설마, 이미 오픈 지분 9%를 누군가가 투자하기로 한 겁니까?”
“뱅가드 마트의 화룬 유한공사에서 지분을 인수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스카이의 말에 김안일 부장은 이게 투자 금액을 늘리기 위한 뻥카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아예 지분 투자 금액을 이야기도 하지 않는 스카이를 보니 진짜 투자 건이 있는 것 같았다.
김안일 부장은 혼자서 판단할 수 없어 심재일 이사에게 전화를 하려다 전화기를 끊었다.
처음으로 그룹의 3세 후계자에게 일을 받았는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제아무리 충성을 맹세한다고 해도 심재일은 능력 없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을 터였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결국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인 박종일 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연락을 받고 달려온 박종일 지사장은 판다요원의 대표인 스카이를 거치지 않고, 스타 코퍼레이션의 임건호 대표에게 바로 갔다.
“화룬 유한공사가 인수하겠다는 지분을 우리도 인수하고 싶습니다.”
“본래 LT 그룹에서는 배달 대행 서비스에 관심이 없지 않았습니까?”
“본래는 없었으나, 판다요원의 성장과 같이 매출도 늘고 있는 수치를 보다 보니 관심이 생기는 것이지요. 중국 국유 기업인 화룬 유한공사에게 넘기는 지분을 우리에게 넘겨주십시오. 중국에게 그렇게 지분을 넘겨주다 보면 회사의 주인이 중국인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박종일 지사장의 말에 건호도 동감하고 있었다.
지금은 지분을 행사하지 못하지만, 훗날 상장을 위해 기업공개(IPO)를 진행하게 되면 스카이의 지분이 51%가 될 터였다.
거기에 화룬 유한공사의 9% 지분이 얹어지면, 판다요원은 그대로 중국 기업이 되는 거였다.
스카이가 가진 지분을 쪼개어 화룬 유한공사에게 팔고, 공개되어 있는 9%는 LT 그룹에 팔아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최적이었다.
그렇게 되면 중국에서 LT그룹과 화룬유한공사의 뱅가드 마트를 둘 다 활용할 수 있었다.
“지분 9%를 한국 돈 270억으로 매각할 예정입니다. 그 조건을 맞춰 오신다면 LT 그룹에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270억.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금액이었다.
본래라면, 이걸 바로 OK 할 수 있는 배포가 있었지만, 지금의 박종일은 그렇게 마음대로 OK 할 수가 없었다.
“다음 주까지 시간을 주십시오. 확답을 드리겠습니다.”
나이 어린 3세 후계자에게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짜증 날 뿐이었다.
***
“스카이. 사천 지역과 2선 도시들까지 진출할 경우 들어가는 자본금이 300억이라고 했었지?”
“네. 그래서 화룬 유한공사에게 지분을 팔아 자본을 만들기로 했고요.”
스카이는 중한 우호 콘서트에서 직접 만난 화룬 유한공사의 총경리와 만나서 투자 건을 이끌어 내었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투자를 유치한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변화가 생겼어.”
“어떤 변화 입니까? 설마, LT 그룹 쪽으로 지분을 넘기기로 하신 겁니까?”
“아직 확정은 아니야. LT 그룹의 LT마트와 화룬 유한공사의 뱅가드 마트 둘 다 버리기 힘든 패(牌)야.”
스카이도 알고 있었다.
당장 LT 그룹을 무시하고 화룬 유한공사에 지분을 넘겨 버리면 협업중인 LT 그룹과 소원해 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중국 마트 1위 브랜드인 뱅가드 마트의 화룬 유한공사의 투자 제안을 거부하기도 힘들었다.
“해서, 스카이 네가 나중에 가질 51%에서 9%를 화룬 쪽에 넘기는 건 어때? 당연히 그 지분 투자 건에 대한 투자금은 네가 가지는 거야.”
스카이는 머리를 굴렸다.
당장 자신이 천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지분을 더 가지고 있게 되면 지분의 가치가 더 오를 수도 있었다.
소탐대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팔기 싫었다.
하지만, 임건호 대표가 왜 갑자기 자신의 지분을 팔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9%를 4.5%씩 나눠서 LT그룹과 화룬 유한공사에 팔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9%씩을 주려고 하는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너도 알고 있겠지만, 신성스타페이 사업에 300억을 출자하기로 한걸 알 거야. 거기에 300억을 태웠고, 이번 우호 콘서트에만 70억 이상을 들였어. 그리고 그랩과 판다요원에 각각 100억씩을 태웠지. 아무리 한국 시장에서 흑자 전환을 해서 돈이 벌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계속 투자금을 넣고 있는 게 힘들어지고 있어.”
아직 판다요원과 그랩은 적자였고, 신성스타페이가 2개월 후 정식 런칭을 하게 된다고 해도 당분간은 흑자가 나오기 힘들었다.
1년 동안 벌어들인 돈에 비해 스타 코퍼레이션이 쏟아낸 돈만 700억이었다.
푸드 딜리버리를 통해 돈이 계속 돌고는 있었지만, 자금 유동성에 문제가 오기 충분했다.
“그래서 LT 마트에는 지분에 대한 투자 금액을 받고, 뱅가드 마트에서는 1300곳의 마트를 활용해서 시장 확장을 좀 더 빨리하려고 해.”
건호는 여차하면 화교계 은행들에서 대출도 받을까 생각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