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미인은 어디서든. (1)
“컷컷! 타미야는 너무 잘하면 안 된다니깐. 타미야의 컨셉은 중국 요리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서 실수를 하고 하는 철부지의 캐릭터여야 해. 그런 외국인을 중국인들은 좋아한다고. 지금은 우럭 살을 손질하는 게 너무 숙련되어 있다고.”
“하지만, 잘하는 걸 잘 못하는 척하기가 힘들다구요.”
한국에서 매제의 요리쇼를 자주 보았기에 4명이 하는 요리쇼 리허설을 보며 코디를 해 주었는데, 타미야가 여자라서 그런지 요리하는 게 남달랐다.
원래부터 요리 센스가 있는지 한번 가르쳐준 탕추위(糖醋鱼 우럭 탕수육)를 뚝딱 만들어 내었고, 재료를 손질할 때도 생선이나 육고기 손질에 거리낌 없이 칼질을 했다.
“컨셉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타미야는 칼질만 봐도 많이 해본 느낌이 납니다. 요리를 모르는 서양인이 중국 요리를 배워 간다는 컨셉은 힘들 것 같습니다.”
옆에서 같이 지켜본 한근오 쉐프도 컨셉을 바꾸길 추천했다.
“그럼, 식당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서 칼질에 여유가 있는 프랑스의 페리앙과 타미야는 중국 요리를 잘하는 마스터 컨셉으로 가고, 조반니와 페르시가 이제 막 중국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외국 쉐프로 가자고.”
전체적인 컨셉을 다 바꾸었고, 칼질이 서툰 조반니와 페르시는 내일까지 감자와 무 한 포대씩 썰기 작업을 시켜서 칼질이 늘어가는 것도 촬영을 시켰다.
“타이틀과 칼질 인서트 영상도 다 촬영했습니다. LT마트에서 매장을 세팅해 주면 바로 거기서 리허설 방송을 한번 해 보고, 다음날부터 실시간 라이브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요리쇼를 맡고 있는 황일환 팀장이 팀과 함께 와서 찍어주고 있었는데, 중국에선 유튜브가 접속이 안 되는 상황이라 바이두 영상에서 진행을 하기로 했다.
“황 팀장님. 촬영은 중국 사람들에게 맡기더라도, 편집은 한국 팀이 계속 맡아줘야 할 것 같은데, 중국에서 연출과 편집을 맡아줄 근무자를 선정해 주세요.”
“1년은 근무한다고 봐야 되겠지요?”
“네. 편집이나 연출은 좀 천천히 중국 사람으로 바꾸도록 합시다. 전부 다 알려주고 했는데, 갑자기 그만두거나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교대로 중국에 체류할 수 있게 인원을 구성해 보겠습니다.”
***
첫 요리쇼 방송은 북경 왕징에 위치한 LT마트에서 진행되었는데, 이곳은 본래 네덜란드계 할인점인 마크로에서 운영하던 마트를 인수해서 리모델링한 지점이었다.
창고형 마트였던 마크로가 지은 건물이다 보니 천장이 높았고, 공간이 넓었기에 한국에서 보다 더 크게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뭔가 장비와 인력이 많아지니 LT마트에 온 손님들도 궁금한지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30여 석의 좌석도 만들어 착석을 시켰다.
“방송 시작하지!”
황일환 팀장의 신호에 촬영이 시작되자, 몇 번의 리허설을 했던 타미야는 긴장하지 않고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니하오~니취팔러마! 저는 벨라루스에서 온 타미야입니다. 제가 이 먼 중국에 온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타미야는 방금 만든 것 같은 칭쩡위(清蒸鱼)를 보여주었다.
칭쩡위란 음식은 비늘을 벗긴 민물 생선을 한번 찌고, 그 위에 간장에 설탕, 기름을 넣어 만든 소스를 부어서 다시 쪄내는 생선찜 요리였다.
간장과 설탕을 베이스로 한 음식이다 보니 생선 본연의 담백한 맛으로 먹는 음식이었고, 하천이 발달한 남부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었다.
“남부 사람들의 소울 푸드라고 하는 칭쩡위를 외국인인 제가 한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네? 뭐라고요? 외국인이 만든 칭쩡위는 믿을 수 없다고요?”
좌석 앞에 앉아있는 손님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타미야는 능청맞게 진행을 했고, 이미 만들어진 칭쩡위 위에 고수와 쪽파, 실고추를 썰어 올려 앞에 있는 손님에게 나눠 주었다.
“어때요? 벨라루스에서 온 외국인이 만든 것 치고는 맛이 괜찮은가요?”
“하오하오! 맛있어요!”
“간장 양념이 제대로야!”
방청객을 동원한 것도 아닌데, 공짜로 먹어서 그런지 손님들은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만족해하시니 다행이에요. 지금 제가 다시 이 칭쩡위를 만들 거예요. 그리고, 방금 만드는 칭쩡위는 여러분이 바로 드셔 보실 수 있답니다.”
타미야는 준비된 핸드폰을 보여주며 판다요원 앱을 다운받는 걸 보여주었다.
“지금 판다요원 앱을 설치해서 요리쇼 매장에 주문을 해 주시면 무료로 집에서 시식해 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 지금 여기에 계신 분들도 바로 핸드폰으로 주문하실 수 있어요! 어서 주문하세요!”
타미야의 말에 의자에 앉아있던 손님들도 판다요원 어플을 내려받아 주문을 하겠다고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방송에 들어온 사람은 몇 명이야?”
“53명입니다.”
첫 방송이고 중국에 연고도 없는 일반인이 하는 방송이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53명이면 너무 작았다.
중국의 IT인프라는 많이 깔려있었지만, 아직은 한국처럼 개인 방송이 유행하는 단계가 아니었기에 어쩔 수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준비된 10명분의 칭쩡위도 다 판매가 안 될 것 같아 걱정되었다.
현재로서는 바이두에 올린 영상들이 쌓이고 외국인이 중국 문화에 빠져서 중국인화되어 가는 모습이 화제가 되길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오! 방금 10개 다 판매되었습니다.”
“진짜?”
“네. 어플을 켰을 때 바로 방송 창이 보이게 해서 어플 유입자가 바로 주문한 거 같습니다.”
“다행이네.”
10명에게 보낼 칭쩡위를 만들고 있는 타미야와 외국인들에게 완판되었다고 알려주자 다들 자신이 만든 음식이 팔렸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만들어진 칭쩡위를 붉은색의 판다요원 옷을 입은 배달기사들이 들고 가는 모습까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오늘의 요리쇼는 여기서 끝입니다. 하지만, 이틀 후에는 스징산(석경산) 구의 LT마트에서 요리쇼가 진행되니 다들 스징산 LT마트에서 만나요!”
대략 1시간여의 방송이 끝이 나자 남는 재료들로 앞에 앉아있는 방청객들에게 칭쩡위를 만들어 주었고, 다들 중국인 요리사가 만든 음식보다 맛이 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중국을 좋아하는 서양 백인 요리사들이 중국 전통요리를 만드는 방송이 이틀 후 스징산 LT마트에서 이어집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김안일 부장이 나서서 돌아가는 이들에게 크게 소리 내어 홍보를 했는데, 그런 김부장의 모습에 박종일 지사장은 만족스러웠다.
처음 김안일 부장이 인지도 없는 판다요원이란 배달 대행업체와 협업을 한다고 했을 때는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돈을 쓴 것 같은 방송국 카메라와 진행되는 방송을 보니 박종일 지사장도 뭔가가 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이거라면, 일본 본사에 어필할 수 있겠어.’
박종일 지사장은 이런 협업을 바탕으로 지점을 늘리겠다는 보고 서류를 만들기 시작했다.
***
중국 최대 검색엔진인 바이두에서 근무하는 우제이는 바이두 영상에 올라오는 영상들을 검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올라오는 영상들 속에서 중국의 위신에 어긋나는 영상이나 당을 욕하는 영상은 삭제하거나 신고하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그런 그에게 1시간에서 2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이틀에 1편씩 올라오는 ‘판다요원 요리쇼’라는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풀 영상 외에도 3분에서 10분 사이로 편집되어 올라오는 편집 영상들도 있었는데, 그런 짧은 영상들이 우제이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당과 정부와는 무관한 아무 문제 없는 영상이었는데, 단순히 검수하고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 영상을 볼 수밖에 없었다.
바로 벨라루스에서 왔다는 타미야 때문이었다.
중국의 문화와 요리가 좋아서 중국에 왔다는 타미야는 서양 여자들처럼 키가 크지 않고 160cm 정도의 작은 몸이라 부담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무거운 웍을 들어 요리하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자신이 한 요리를 사람들에게 먹여줄 때 웃는 모습이나, 불 앞에서 요리를 하며 흘리는 땀을 팔로 훔쳐낼 때의 모습은 우제이가 이제까지 그려왔던 백인 미녀에 대한 환상을 채워주기 충분했다.
그래서 그녀를 더 알고 싶었고, 실제 어디에서 요리사로 일하는지를 알게 되면 찾아갈까도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바이두에서 검색되는 정보는 판다요원이란 음식 배달 대행 어플에 소속된 요리사라는 것이 전부였다.
출신 국가와 이름을 빼곤 나이가 몇 살인지, 풀 네임이 어떻게 되는지도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때는 즈후(知乎)가 필요하지.”
우제이는 ‘알다’라는 뜻의 즈후(知乎) 사이트에 타미야에 대한 질문 글을 올렸다.
***
“죄송합니다. 직원 개인 정보에 대한 것은 답변해 드릴 수 없습니다.”
“방송에서 알려진 대로 벨라루스에서 왔고, 중국 문화를 사랑해서 왔다는 것만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판다요원의 요리쇼는 4명의 요리사가 돌아가며 진행이 되기에 4일 후 타미야 요리사의 방송 차례입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CS에 전화가 많이 오는 거야?”
스카이는 갑자기 CS 전화 통화량이 늘어났다는 소리에 시스템 장애나 다른 크레임이 터진 것인가 싶어 급하게 CS팀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어제부터 요리쇼의 타미야와 다른 백인 요리사들에 대한 문의 전화가 폭증했다는 것을 알고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도대체 뭣 때문인데?”
“즈후 사이트에 1000위안(약 18만 원) 짜리 질문이 올라와서 그렇다고 합니다.”
“즈후 사이트? 그건 뭐 하는 사이트인데?”
스카이는 즈후 사이트가 뭘 하는 사이트인지 몰랐기에 즈후 사이트에 한번 들어가 보았다.
즈후 사이트 메인 화면 리스트에 타미야의 얼굴 사진이 있었다.
“가장 핫한 질문이라고?”
질문 글을 클릭해보니, 요리쇼에 나오는 벨라루스 미녀 타미야에 대한 답을 알려달라는 질문이었는데, 답변이 300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거 쿼라(Quora) 사이트와 같은 건가.”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했기에 스카이는 쿼라 사이트를 알고 있었다.
질문을 할 때 질문자가 포상금을 걸면 그 포상금을 받기 위해 답을 찾아 사람들이 답을 주는 사이트였다.
그런 쿼라 사이트의 컨텐츠를 그대로 들고 와 중국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것이 즈후(知乎)였다.
스카이는 중국 내 기업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에서 즈후를 검색해 보곤 양 주먹을 쥐었다.
즈후 사이트의 회원 수가 천만 명을 넘었다는 기사가 있었고, 그 회원들의 직업과 업종, 나이 분포도가 분석되어 나왔는데, 이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여기선 구글을 이용하지 못하니 즈후 사이트를 개발이나 IT정보를 획득하는 채널로 쓰고 있구만.”
IT 관련 질문이 많다는 것은 회원들의 대다수가 북경이나 상해, 천진, 선전의 화이트칼라 계층이라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판다요원의 타겟층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소비할 여력이 있는 IT 화이트칼라 계층이 많은 사이트에서 핫한 질문으로 올라왔으니 다들 타미야의 정체를 궁금해했고, 판다요원 CS에 전화를 해서 정보를 알아내려고 한 것이었다.
질문글에 달린 추가 댓글들도 다들 영상을 봤는데,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며 자기도 타미야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글들이었다.
미인과 아기, 새끼동물들은 그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이었으니 스카이는 판다요원 앱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빨리 특별 방송 오늘 진행할 수 있게 연락을 어서 해!”
스카이는 바로 즈후 사이트에 가입해서 답변을 달았다.
- 오늘 북경 왕징에 있는 LT마트에서 특별하게 타미야 요리사가 요리쇼를 진행할 것입니다. 방송에서 궁금하신 것을 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판다요원 어플을 설치하셔야 요리쇼를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LT마트 요리쇼에 가면 진짜 타미야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가요?
-네. 선착순 30명 한정으로 타미야가 직접 요리한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스카이가 남긴 답글을 본 우제이는 몸이 아프다고 조퇴를 했고, 바로 LT마트로 달려갔다.
*
[작가의 말]
즈후 닷컴은 쉽게 생각하면 네이버 지식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즈후(知乎)는 2011년, 미국의 쿼라(Quora)는 2009년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즈후닷컴은 2021년 뉴욕에 상장되어 7조 원의 가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인이 2002년 10월에 시작을 했었는데, 네이버 지식인도 금전이 오가는 형태가 되었다면 지금처럼 광고 마케팅으로 점철된 죽은 서비스가 되지 않고 즈후처럼 미국에 상장되어 가치를 평가받았을 터인데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