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22화 (122/203)

122. 이룬 것과 잃은 것. (2)

“저희, 한국항공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하는 스튜어디스의 인사에 일등석 사람들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선배! 선배 대애박! 이거 보세요!”

비행 마감 회의를 하고 공항 밖으로 나서는데 후배가 스마트폰의 검색결과를 이나린에게 들이밀었다.

“이름으로 검색해 보니깐 푸드 딜리버리 대표로 나와요. 해운대 라면도 만들었고, 엄청 부자예요. 대박!”

나열된 기업인 정보를 보니 특이한 것도 많았다.

여동생의 남편으로 스타쉐프인 최도협도 있고, 라면으로 천억의 이득을 봤다는 신문기사도 있었다.

“선배 저기 공항 앞에 있는 ‘그랩’도 이 사람 회사래요. 그랩 저거 때문에 말레이시아랑 싱가포르를 자주 다녔던 거예요. 앗, 그럼 이번에는 신성전자랑 뭔가 일이 있으니깐 말레이시아로 같이 왔다는 거네요.”

후배 말을 들으며 검색결과를 다 본 이나린은 생각이 많아졌다.

“선배. 이 사람에게 카톡 넣어봐요. 이혼남인 거 알고 연락 안 했더라도 비행 괜찮았는지 물어보는 건 자연스럽잖아요.”

“휴우.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뭘요? 아, 이혼한 거요? 뭐 이혼을 했더라도 저랑 12살 차이니깐 전 괜찮은 거 같은데요. 천억대 부자라고 하잖아요.”

철이 없는 건지 아니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것인지 25살 후배는 37살의 이혼남이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0살 차이인 이나린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혼 사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혼한 이상 결혼 생활 자체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선배. 아무리 결혼 적령기라서 결혼을 생각한다고 해도 이제 썸을 타는데,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면 안 된다고요. 일단 데이트라도 한번 해보고 나서 결정해요. 제가 톡 보내드릴게요.”

망설이는 이나린의 핸드폰을 뺏어서 비행이 어땠는지를 물었고, 자신들이 묶는 숙소 호텔도 톡으로 찍어줬다.

“바빠서 톡이 늦다고 했으니 이제 숙소 가서 씻고 기다리면 된다고요.”

질러버린 후배의 행동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자 이나린은 한숨을 쉬고 공항버스에 올랐다.

***

화교 은행 4곳과 신성전자 그리고 스타 코퍼레이션까지 실무진과 대표자들 20여 명이 모여서 3시간의 회의를 했고, 지분 제외 규정을 두겠다고 했던 인도, 일본, 호주 중에서 호주를 제외하는 결론을 일차로 내었다.

이미 호주에 화교들의 은행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회의하기로 하며 자리를 파하니 이미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신성전자나 화교은행들은 아마도 오늘 있었던 회의에 이어 내일 다루어야 하는 문제 때문에 다시 모여서 전략을 짜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우리 측에서 내세워야 하는 조건들은 이미 다 합의가 된 사항이었기에 나는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이나린이 보낸 카톡을 보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비행은 괜찮았다고 톡을 하며 호텔 라운지에서 볼 수 있는지를 물으니 바로 답이 왔다.

프런트에서 잡아준 택시를 타고 힐튼호텔로 가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전에 느낀 거지만, 회의를 하고 신경을 쓴 후에는 스트레스가 만만찮았는데, 여자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흰색의 블라우스에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워 스커트를 입은 이나린의 모습을 보니 이혼남이라고 밝힌 이후에 톡이 없었던 섭섭함마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너무 늦은 시간에 연락드린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6시간 넘는 힘든 비행시간 이후 밤 9시라면 피곤해서 잠잘 준비를 하는 게 당연했는데, 옷은 물론이고 화장까지 다 해서 나온 이나린의 모습을 보니 데이트할지도 모른다고 준비를 미리 해뒀던 것 같았다.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준비하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고, 비행기의 스튜어디스가 아닌 일반인의 느낌으로 마주앉아 있으니 눈이 이나린의 얼굴을 떠날 수가 없었다.

물론, 이혼남이라고 말한 이후 아무 연락 없다가 신성 사장단이랑 동행할 정도의 사람이라는 걸 알고 다시 연락 온 것에 기분이 좀 씁쓸하긴 했다.

하지만, 사람만 보는 20대의 사랑과 조건까지 봐야 하는 30대의 사랑이 같을 수는 없었다.

이나린도 사람만을 보는 20대의 연애 시기를 지나 있었다.

결국, 결혼을 하려면 조건을 보는 사랑을 해야 했고, 그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적인 조건이 이혼남이라는 조건을 상쇄했기에 연락을 준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현실의 조건을 보는 연애를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린 씨는 스튜어디스로 일하면 들이대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들이대는 사람은 많은데, 들이대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스튜어디스들의 눈도 같이 올라가요. 그래서 오히려 더 늦게 결혼하는 경향도 있어요. 극과 극이에요. 25살 정도의 입사하자마자 결혼하는 케이스랑 아예 30살 넘어 하는 케이스가 많아요.”

“그럼, 나린 씨의 높아진 눈에도 저는 통과한 겁니까?”

“으음. 충분하다고 봐요. 오히려 제가 부족할지도요.”

“하하하 다행이네요. 한국에서 시간 쫓기지 말고 한번 봅시다. 벌써 11시네요.”

늦었다고 헤어지자는 말에 살짝 아쉬워하는 이나린을 보면 입을 조금만 더 잘 놀리면 호텔 방까지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뭔가 기분이 좋으면서도 생각이 많아져서 이나린을 엘리베이터에 태워주곤 돌아섰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 따라 보는 풍경이 달라지고, 자신의 나이에 따라 삶의 방식이나 결혼관이 달라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변화였다.

그것을 보고 속물이니 뭐니 말을 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들어 버렸고, 그런 것을 보지 않고 사랑해서 결혼했던 여자와는 이미 이혼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내 숙소에 와서 누우니 생각이 많아졌다.

신성전자와 화교자본의 거대 은행 4곳을 엮는 합자회사를 이루어 냈다는 성취감에 어깨에 뽕이 들어갔고, 스튜어디스들이 알아줄 정도로 성공도 거두었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사람의 삶 적으로 행복한가 고민을 해보니 알 수가 없었다.

잘 꾸미고 아름다운 스튜어디스인 이나린의 얼굴이 생각났고, 전처인 지선이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연예인의 포스가 흘러넘치던 김가영도 생각이 났다.

비즈니스적인 큰 건을 이루어 누구에게든 자랑할 수 있었지만, 내 삶의 행복을 위한 작은 것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

“소유하는 지분율에 따라 은행 측에서 330억, 신성전자에서 300억, 스타 코퍼레이션에서 300억을 출자하도록 합니다. 나머지 7%의 지분은 오픈 투자형식으로 열어두겠습니다.”

계약서를 들고 신성의 김종학 사장과 퍼블릭뱅크의 테홍 피오우에게 보여주었고, 내가 먼저 서명을 해서 두 사람에게 계약서를 돌렸다.

사흘 동안 이어진 회의에서 지분율과 각 나라에 따른 계약관계가 결정되고, 이제 서명과 발표만이 남은 것이었다.

찰칵! 찰칵!

서명이 모두 끝나자 세 명이서 손을 맞잡은 사진을 찍었다.

동남아시아와 한국이 뭉쳐진 글로벌한 신성스타페이가 출범하게 된 것이었다.

언론 발표는 단신으로 하기로 했고, 실제 신성스타페이의 시스템이 구축되면 그때 대대적으로 언론에 알리기로 했다.

개발 쪽도 신성 개발팀이 말레이시아에 오기로 했고, 우리 개발팀도 합류하여 그랩의 네트워크를 통한 보급 마케팅과 CS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말레이시아 신성지사 건물에 있을 거니깐 석건이 네가 우리 스타 코퍼레이션의 지사장해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비서에서 어떻게 바로 지사장이 됩니까?”

“근본 없는 신생 회사가 다 그렇지 뭐. 그리고, 회사가 작으니깐 이런 파격적인 승진도 가능한 거야. 중견 기업만 되었어도 사촌 동생을 지사장으로 올린다고 노조에서 난리가 났을 거다.”

“그건, 그렇긴 한데.”

“그리고, 지사장이라고 해야지 신성이나 화교 애들에게 안 꿀릴 거 아냐. 더해서 신성애들에게 최대한 교민 위주 혹은 한국인 위주로 채용해서 가자고 이야기를 해.”

“아, 그건 이야길 안 해도 될 겁니다. 신성도 화교 애들 견제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들 한국에서 쭉 살았거나 미주에서 유학했던 사람들도 동남아시아에 와서 화교 영향력을 보면 다 같은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비서는 어떻게 할 겁니까?”

그냥 비서로 한 명을 뽑으면 될 것 같았지만, 늘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새벽에 전화를 하기도 해야 해서 보통의 비서는 힘들 수도 있었다.

“큰이모 딸 정윤이가 대학 졸업반이라고 하더라고.”

“아, 맞다. 정윤이가 경영학과였을 거예요. 뭐 사촌이 많아서 좋네요. 지환이랑 동형이랑 애들 졸업하면 다 부려 먹을 수 있겠네요.”

어머니가 5남매 맏이이다 보니 사촌 동생들이 많다는 게 큰 장점이 되었다.

“그럼, 바로 중국으로 가시는 겁니까?”

“그래. 정윤이도 중국으로 바로 불러서 글로벌한 경험을 쌓아줘야지.”

***

“메이투안과 디엔핑이 합병한다는 말이 돌아서 난리입니다.”

중국에 오니 중국 배달 대행 서비스의 판이 뒤 바뀌고 있다고 이종민이 보고했다.

“메이투안이 1위 업체인데, 거기서 디엔핑을 인수하기로 한 거야?”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그 반대? 그게 무슨 말이야? 디엔핑은 3위, 4위 업체 아니었어? 돈이 그렇게 있는 거야?”

“디엔핑(Dianping)의 모회사가 게임을 만들어서 재벌이 된 텐센트입니다. 음식 배달 서비스에서 디엔핑이 우위를 차지 못하니 아예 1위 업체인 메이투안을 사버리겠다고 하는 거 같습니다.”

“가격은? 공식 발표가 아니라서 아직 가격은 모르는 거야?”

“이게 지분 문제가 끼어 있기에 한국 돈으로 2조 원 이상이 될 거라고 합니다.”

“2조 원?”

금액이 애매했다.

중국 음식 배달 대행과 외식, 영화, 버스 티켓까지 다 예매할 수 있는 4억 명의 회원을 가진 1위 업체의 가격이라고 하기엔 적은 금액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메이투안의 지분이 세쿼이아 캐피털, 제너럴 애틀랜틱, 알리바바가 나눠 가지고 있다 보니 자사 보유 분에 대한 지분 인수만 그 가격일 겁니다. 25%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분 25% 정도에 2조 원이라면 적절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메이투안의 지분을 들고 있는 알리바바에서는 경쟁사나 다름 없는 텐센트 쪽의 지분 인수를 허락해 줄까?”

알리바바가 하는 알리페이, 텐센트가 만든 위챗페이는 서로 경쟁하는 상태였는데, 알리바바 입장에서는 이 합병을 찬성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말이 돌기만 하고 제대로 발표가 안 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에겐 이게 기회네. 어수선할 때 우리가 치고 나가야지.”

“한국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한류 콘서트가 북경과 상해에서 열릴 거야. 북경은 3개월 후 상해는 4개월 후야. 이걸 지금부터 홍보하고, 콘서트 입장권은 우리 판다요원에서만 내려받을 수 있다고 홍보를 해야 해.”

“하긴, 인수 합병 문제로 혼란하면 다들 홍보 마케팅에 큰돈을 투자하기는 힘들 것 같군요.”

“그래. 지금이 우리가 치고 나가야 할 때야. 그리고, 중국에 진출해 있는 LT그룹 쪽 사람들이랑 약속을 잡아줘.”

“LT그룹이랑요?”

“그래. 같이 할 게 있을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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