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호사다마.
“한류 콘서트를 중국에서 하면 안 되냐고?”
건희는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건호를 쳐다봤다.
“방송국에서 하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잖아. 그 음악 프로그램을 중국에서 특집방송으로 하는 거지.”
“흠. 방송국에서 그렇게 한다고 할까?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요즘 중국에서 한류가 장난 아니라니까. ‘K-POP뱅크’나 ‘뮤직중심’ 같은 공중파 프로그램을 외국에서 해주면 한류 확산이 더 잘될 거라니까.”
“그 비용은 그럼 어떻게 할 건데? 가수들 섭외비용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비용은 걱정할 필요 없지. 방송 녹화인데, 방송에 나가는 출연료만 받는 거지. 콘서트나 행사가 아니라서 섭외비용을 높게 줄 필요가 없지.”
“응? 어떻게 그런...”
건희는 이야길 들으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니 말이 되는 일이었다.
가수가 행사나 콘서트를 한다면 작게는 몇백에서 많게는 1억까지도 받겠지만, 공중파의 프로그램에서 1~2곡을 부르는 것은 방송 출연료만 주면 되는 것이었다.
한류 콘서트라는 해외 콘서트의 형식이긴 하지만, 분명 공중파의 음악 프로그램을 찍는 것이었으니 추가로 더 출연료나 행사비를 달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진짜 섭외비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네. 문제는 중국의 공연장을 빌리고, 조명이나 무대 같은 제반 비용이네.”
“그건, 우리가 비용 분담할 수 있어. 중국과 한국의 화합을 위한 콘서트라고 공적인 목적으로 방송을 유치하고 싶다고 방송국 중역들에게 한번 협의를 해줘.”
“아무리 그래도 10~20억은 들어갈 것 같은데. 그렇게 돈을 들이는 이유는 뭔데? 진짜 한국과 중국의 화합을 위한 건 아닐 거 같은데.”
“우리가 서비스하는 중국의 판다요원이란 어플을 홍보하기 위한 거야. 큰 경기장의 티켓을 우리가 뿌려서 홍보할 거라 서로 이익이 되지 않겠어? 방송국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한류 콘서트를 하고 있다는 생색을 낼 수 있고, 우린 홍보를 할 수 있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럼 주최는 우리가 하고 주관은 방송국이 하는 것으로 해서 북경과 상해의 한류 콘서트를 잡아 볼게.”
“그리고 그 2곳이 잘되면 동남아시아와의 수교 30년, 40년 기념 같은 그런 콘서트도 주최할 수 있다고 이야길 하고.”
“그럼 동남아의 한류 콘서트도 그 ‘그랩’인가 하는 서비스의 홍보를 위한 걸로?”
“그래. 목적은 한국과 그 나라의 공식 수교 몇 주년 기념 콘서트가 되는 거지. 이런 공적 목적이 있다면 방송국의 위의 분들이 좋아하실걸. 외교부와도 연계할 수 있고.”
“그럴 것 같네. 알았어. 내가 한번 방송국에 제안 넣고 해볼게. 날짜 고정은 아직 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
“최대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비용은 30억까지도 커버 가능한데, 최대한 아껴주고.”
“알았어.”
공영방송이라는 방송의 목적과 실적을 같이 올릴 수 있는 행사이니 그런 보여줄 수 있는 이력을 원하는 음악방송 PD들은 거부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상세 일정이 나오면 중국에 있는 이종민 실장에게 연락을 하라고 알려줬고, 동남아 쪽의 공연도 결정이 나면 사촌 동생인 석건이에게 연락하라고 전달했다.
***
신성전자 모바일 사업부의 사장인 김정학 사장과 만나기 위해 아시아 지역 담당 이사인 최현준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김정학 사장과 만나서 제안을 할 것이 있다고 했는데, 이미 한 번의 미팅이 있었음에도 만나기가 힘이 들었다.
사실 애초에 김정학 사장은 임건호나 푸드 딜리버리의 사업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아니 김정학 사장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성 사장단들은 자신들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굳이 신경을 써서 만나고 인연을 유지하며, 서로를 챙겨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 10만 대 250억의 매출을 올려줄 때는 만나줄 수 있지만, 구매 건이 아닌 제안 건이었으니 애초에 미팅 시간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일주일을 기다려도 안 되자 동남아시아의 메이저 은행들과 체결한 계약 서류와 제안서만 먼저 올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야 김정학 사장과 만나볼 수 있었다.
“제안한 스타 페이를 보고 사실 놀랐습니다. 우리도 비슷한 서비스를 준비 중이었거든요. 전해드려.”
김정학 사장의 집무실엔 예전과 달리 다섯 명이나 있었는데, 내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저희 쪽도 사실 Pay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실무진이 건네준 서류를 보니 중국의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를 분석해서 신성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만들어 페이를 준비 중이었다.
“화교쪽 은행들과 협의를 하고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 냈을 정도라면 스타 코퍼레이션에서도 나름 빠르게 준비를 하신 것 같습니다. 처음 면담을 하실 때 페이 건이라고 바로 이야길 하셨으면 되었을 터인데. 이제부터 임 대표님은 제게 바로 전화를 주십시오.”
나름 준비를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은 것인지 김정학 사장이 직접 자신의 명함을 주었다.
“헌데, 한국 법으로도 이 Pay가 신용카드와는 다르게 구분이 되는 것입니까?”
“네. 우리 법무팀에서 내린 유권해석은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직접 Pay 시스템을 구축해 핸드폰에 탑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제가 제안한 스타 페이와의 연계는 불가능한 것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화교권의 은행들과 체결한 계약을 저희 쪽에 넘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동남아시아 전자결제 시장의 인프라를 쉽게 가져올 수 있는 계약이라고 생각됩니다. 임 대표께서 이 계약을 저희 신성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려주십시오.”
최악의 상황이었다.
설득시켜 우리의 스타페이에 함께 하자고 해야 했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벌써 신성페이를 준비하고 있으니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인 화교은행들과의 계약을 넘기라고 하고 있어서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화교은행들과의 계약서에 첨부된 지분 계약 서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들은 각자가 가진 지분으로 사업이 누군가에게 좌지우지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신성과 연계해서 Pay 사업을 하게 되면 자신들은 디딤돌만 되고 결국 팽당하게 될 것을 알 겁니다.”
그 누구보다 이문에 밝은 화교들이었으니 미래가 좋지 않은 신성의 Pay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신성도 금산법으로 은행을 가질 수 없으니 결국 다른 은행과 연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하지만, 결국 신성에게 다 빼앗기게 될 Pay 사업에 참여하려고 누가 나서겠습니까? 아, 물론 국내의 은행들이라면 신성전자가 까라고 하면 다 까겠지요.”
“그럼 임 대표의 입장은 이 은행들과 맺은 계약을 넘길 수 없다는 것입니까?”
“네. 넘기고 싶어도 금방 휴짓조각이 될 겁니다. 그들은 신성을 보고 이런 Pay 사업에 합류한 것이 아니니깐요.”
김정학 사장도 이 화교은행들과의 계약에 화교 인맥이 작용한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화교 인맥들을 동원해서 계약을 체결한 것도 결국은 임건호였다.
임건호가 없다면 화교 은행들과의 계약도 없었고, 신성 페이가 동남아로 진출할 수 있는 방법도 결국 날아가는 것이었다.
“첨부되어 있던 지분 계약 서류처럼 은행권 32% 신성 30% 스타 코퍼레이션 30% 그랩 1%의 지분 계약을 원합니다. 그 조건이 아니라면 이 계약은 존립할 수가 없는 계약입니다.”
다른 프랜 B를 제시하는 게 아닌, 무조건적인 제안 계약서의 관철을 요구하는 임건호의 모습에 김정학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조건을 받지 않고, 그냥 독자적으로 신성 페이를 만들어 보급한다면 한국에서만큼은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에 버금가는 전자결제 시스템을 만들어서 돌릴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인구 5천만이 되지 않는 한국 시장만으로는 그 수익의 한계가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 통용되지 못하는 한국만의 전자결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대로 갈라파고스적인 결제시스템으로 남아 버릴 터였다.
하지만, 저 조건을 다 들어주게 되면 기껏 준비해 온 신성페이가 자신들의 것이 아닌 공동의 것이 되는 것이 문제였다.
“신성은 자신들이 준비해 온 프로젝트와 유사한 프로젝트가 먼저 런칭을 하더라도 그것을 버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먼저 나온 서비스를 물리치고 신성의 것이 1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국에 한한다는 제한이 있습니다. 전쟁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발전하려면 길을 만들고, 망하려면 성을 쌓으라고요. 일본의 전자업체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독자적인 기준을 만들고 해서 외국 전자제품이 일본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망해가는 일본의 전자기업들을 예로 들자 김정학은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 신성의 행동이 그 일본 기업들처럼 보입니다. 동남아로 나아가 동남아의 전자결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기껏 준비해온 프로젝트가 박살 날 수 있다고 성을 쌓아 방어에만 신경 쓸 거라고 하는 겁니다.”
“외람되오나 그 반대로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 이 계약대로 하게 되면 동남아 화교 자본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샛길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김정학 사장이 아닌 옆에 있던 이들 중에서 대답이 나왔다.
“전자결제 TF팀의 팀장 정태우입니다. 자본력이 아직 부족한 한국 은행들이 우리가 추진해온 신성 페이로 인해 무너지게 되고 동남아 화교 자본 은행들이 한국을 장악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동남아처럼 중국인들이 한국의 시장을 가지고 놀게 될 경우도 생각해야 합니다.”
정태우의 말에 임건호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신성전자와 연계해서 신성스타페이를 만들게 된다면 이 페이를 타고 화교자본의 은행들이 한국에 들어올 수도 있었다.
“그것이 문제라면 제한을 두면 되지 않겠습니까? 페이 회사를 공동 설립할 때 한국의 페이 시장에 대해서는 모든 지분과 결정권을 신성과 우리 스타 코퍼레이션이 가진다고 제한 조건을 건다면 되는 일입니다.”
지역제한을 페이에 걸자는 말에 다들 생각도 못 한 것인지 머리를 굴렸다.
“신성에서 만든 페이가 출시되어 사용하게 되었더라도 결국 한국을 벗어나서 신성페이를 쓰는 것은 불가능 했을 겁니다. 한국계 은행이나 신성페이를 받아줄 사용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지역 제한 조건을 걸어 한국에서는 한국인들만이 지분 행사를 할 수 있다고 하면 본래 신성페이의 역할과 영역은 그대로 존속이 되는 것입니다.”
TF팀의 정태우도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한국은 지역 제한을 걸어 사용한다는 계약을 한다면 본래 신성 페이가 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은 다 그대로가 되는 것이었다.
대신에 동남아로 갈 수 있는 교두보만이 공짜처럼 열리는 것이었다.
“지역제한 계약은 생각지도 못했군. 그렇게 한국과 인도를 우리 신성만이 지분을 행사할 수 있게 하고 싶은데. 어떤가?”
“신성‘만’이 아니라, 같은 한국인인 저의 스타 코퍼레이션도 같이 지분을 행사해야지요. 그렇게 협의해 주신다면 한국과 인도에 대한 페이 사용에서 화교은행을 배제하는 계약을 추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성 혼자서 꿀을 빨게 둘 수는 없었다.
결국 실무와 현장에서 돌아가는 일은 우리 스타 코퍼레이션이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 우리도 같이 꿀을 빨아야 했다.
“이 건은 내가 확답을 바로 줄 수가 없군. 회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결정이 나면 바로 연락을 주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