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미래 먹거리를 찾다.
“그렇다면, 싱가포르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리고, 홍콩과 대만은 중국 쪽에 넘기는 겁니까?”
데닐리 탄은 이야길 하면서도 중국인인 스카이의 눈치를 봤다.
한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화교나 중국인이나 대만인이나 거기서 거기이지만, 본토 중국인은 본토인대로 화교는 화교대로 그들의 인식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다.
싱가포르는 면적이 부산시와 비슷한데 인구는 500만 명이 넘어가기에 꽤 매력적인 시장이었고, 홍콩 또한 마찬가지로 부산시와 거제도를 합친 면적에 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인구밀도가 높아 충분히 매력이 있었다.
이런, 제반 조건은 좋지만, 사실 두 곳은 계륵처럼 애매했다.
500만 명의 시장과 700만 명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사를 세운다거나 하기에는 수지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싱가포르와 홍콩은 따로 나누거나 하지 않았고, 대만은 중국 본토와의 영토문제가 끼어 있기에 그랩이 가져오기에는 중국인인 스카이의 눈치가 보이는 것이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붙어 있으니 말레이시아에서 같이 서비스하도록 하지. 그리고,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그랩의 본사는 싱가포르에 두게 될 거야.”
마이텍시로 시작해서 그랩으로 성공한 본거지와 같은 말레이시아를 버리고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다는 말에 데닐리 탄은 불만을 표할 것 같았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싱가포르에서는 ‘경제 확대 우대법’이라는 투자 촉진법이 있어, 투자를 해서 회사가 들어오는 경우라면 소득세를 면제받거나 선구자적 혁신 산업의 경우에는 최대 15년까지도 세금면제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계획처럼 그랩이 동남아시아를 석권한다면 싱가포르에서는 소득세 면제는 물론이고 세금면제까지도 해주면서 우리를 유치하려 할 터였기에 본사를 싱가포르에 두겠다는 것이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런, 관련된 제반 사항을 데닐리 탄도 알기에 본사를 싱가포르에 두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싱가포르를 말레이시아에 맡긴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홍콩은 너무 불안해. 진출하긴 할 텐데, 판다요원으로 중국 쪽을 먼저 두드려 보고 그랩이 들어가야 할지 판다요원이 들어갈지를 판단하자고. 대만도 마찬가지로 우선은 시장 상황을 보고 가자고.”
복잡한 상황이 얽혀있는 홍콩과 대만은 추후에 결정하자는 말에 다들 동의했다.
“그리고, 본래 3단계 계획의 일환이었던 그랩 푸드와 유통 마트와의 연계는 보류를 하는 것으로 하지.”
한국에서는 마트 물품을 같이 배달해주며 수익을 올리는 것이 가능했지만, 동남아시아는 그게 힘들 것 같았기에 아예 서비스를 보류하기로 했다.
우선, 우리가 컨트롤 가능한 대형 마트 체인이 없다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마트에서 물품을 배달시켜 먹을 정도의 돈을 가진 중산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배달시켜 먹을 정도라면 대부분 가정부를 두거나 따로 마트에서 장을 봐줄 사람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 있었기에 마트 물품 배송으로는 수익을 내는 것이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랩 바이크 어플에서 장을 봐오거나 하는 의뢰도 올릴 수 있기에 그랩 푸드에 따로 서비스를 만들 필요성도 작았다.
회의를 마치고, 스카이와 클래이와 함께 중국으로 바로 움직이기로 했다.
김신현은 말레이시아에 남겼는데, 말레이시아 일을 새로 채용한 한국 교민에게 맡기고 캄보디아로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시키기 위해서였다.
“내가 중간중간에 올 거지만, 말레이시아에서 하는 것을 다 봤으니 캄보디아에서도 어떻게 할지 순서를 알 거야.”
“네. 신성전자 지사에서 소개받아 지역 통신사와 연계하고, 공항부터 잡는다! 그리고, 그랩 택시와 카의 드라이버는 기사식당으로 확보한다. 확실히 체크하고 있습니다.”
“그래. 한국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인원도 올 테지만, 캄보디아에서 나고 자란 교민들을 위주로 해서 신규 채용을 하도록 해.”
“네. 화교처럼 한국인 써클을 만드는 것도 염두에 두겠습니다. 헌데, 스카이와 클래이가 쿵짝이 잘 맞던데, 그것까지 고려하셔야 할 겁니다.”
“그래. 그래서 나도 같이 가는 거야.”
김신현은 한국 교민들을 만나 퀵서비스 사무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사람이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았고, 덕분에 일을 맡기고 중국으로 갈 수 있었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북경에 도착하니 영업 총괄인 이종민과 개발팀장 강민호, 정산팀장 채학인, POS기 하드웨어 담당인 황우영 팀장까지 미리 도착해 있었다.
그랩과 판다요원의 시스템 구조 자체가 다르다 보니 한국의 실무진들이 판다요원을 위해 중국에 다 올 수밖에 없었다.
그랩은 각 부문에 맞게 만들어 두면 택시, 카, 푸드, 바이크가 다 따로 돌아갈 수 있었기에 개별 개발이 가능했지만, 판다요원은 ‘푸드 딜리버리’처럼 푸드와 바이크가 함께 들어가야 하기에 실무진들이 모두 다 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말레이시아와는 다르게 북경과 상해 두 곳에서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라 거리 문제도 있기에 한국의 실무진들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판다요원도 한국의 방식과 같게 시작을 할 것입니다. 북경과 상해의 한국 거리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요식업들을 1차 적으로 가맹시킬 예정입니다.”
미리 와서 준비한 이종민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POS기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조건으로 가맹점을 모은다는 것은 동일했고, 한국 코트라에서 받아온 자료와 첫 공략을 위한 한국인 거리 업체들의 정보가 공유되었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100만 명이 넘은 것으로 나옵니다. 처음 공략하는 북경에 20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작은 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업체와 한국인이 많은 칭따오(청도)에 1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상해는 7만 명, 텬진(천진)에는 5만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거주 한국인만 보면 초반 안정적인 진입을 위해 상해보다는 청도에서 시작하는 게 나아 보이겠지만, 청도는 공업 도시이기에 소비 도시인 상해를 스타트 포인트로 잡았다.
“가장 우선해야 하는 지점은 베이징의 동북부에 위치한 왕징입니다. 한국성(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곳인데, 여기에 사는 한국인이 거의 10여만 명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경영하는 음식점, 슈퍼, 카페, 미용실 이 500개가 넘습니다. 이 왕징의 한국성 가게들만 잡으면 북경에서의 1차 진입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북경에서 나고 자란 스카이도 이 분석에 동의했다.
먼저 북경과 상해에서 시장 진입에 성공한다면 다른 1선 도시인 선전, 광주, 충칭, 성도로 확장을 하면 되었고, 단일 도시인 홍콩도 그때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왕징에는 창업 벤처 업체도 많고, 트랜드가 확실히 빠릅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에서 그랩이 했던 것처럼 출장 사무실 매장을 오픈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카이는 말레이시아에서 직접 경험하며 좋았던 출장 사무실을 우선으로 꼽았다.
“음식점이 직접 와서 등록도 할 수 있고, 바이크 기사들이 와서 대기할 수 있는 그런 사무실을 만들자고?”
“네. 지금 1위 업체인 따종디엔핑(大众点评)은 그런 사무실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직접 보니 모든 업무가 스마트 폰으로 이루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교육 수준이 높고, 스마트 인프라 접근성이 좋다면 온라인으로 모든 업무 처리가 가능하지만, 중국도 그런 정도는 되지 않았다.
“지금 따종디엔핑도 입점 신청을 하면 직원이 출장을 나오는데, 그렇게 사람이 찾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말레이시아의 출장 사무실에는 사람이 직접 와서 서류 접수를 하고 바로 처리가 가능했기에 음식점을 운영하는 업주들을 쉽게 모을 수가 있었습니다.”
유지비가 더 들어가더라도 출장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배달 기사들을 위한 유니폼과 비옷을 만들어 무상으로 기사들에게 뿌리는 홍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을 무료로 뿌렸던 동남아와는 다르게 중국은 자국의 스마트 폰 업체로 인해 보급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비옷이나 오토바이를 탈 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기사들을 유인하자는 것이었다.
“이것도 실행하도록 하지. 그럼, 스카이와 클래이가 출장 사무실을 알아보고, 영업직원들을 운영해서 가맹점을 늘리는데 신경을 쓰도록 하고, 바이크 기사를 가입 받아 늘리는 것은 내가 맡도록 하지.”
말레이시아에서 했듯이 중국에서도 오토바이를 대여해 주는 조건으로 배달기사들을 꾸려 우리 판다요원이나 따종디앤핑의 배달 건에서 수익을 만들 생각이었다.
“헌데, 한국과는 완전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이종민이 올린 화면에는 사각형의 바코드가 있었는데, 사각형 안으로 도형들이 들어서 있었다.
“QR코드라는 바코드의 한 종류인데, 중국은 신용카드 대신 이 QR코드로 결제를 합니다. 알리페이라고 하는데, 2004년에 가상 결제 서비스로 나온 기술로, 이게 우리나라나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신용카드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스마트폰 용의 QR코드로 하는 알리페이는 작년 2013년 9월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스마트폰으로 찍기만 하면 바로 처리가 되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다들 이 QR코드로 결제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텐센트에서 만든 웨이신(微信)이라는 한국의 카카오톡과 같은 서비스가 있는데, 거기서 만든 위챗페이와 함께 중국의 전자결제를 이 두 페이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위폐문제가 있다 보니 엄청나게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QR코드를 찍어 물건을 산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아, 직접 물건을 사러 갔다.
스카이와 클래이도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생긴 서비스였기에 다들 중국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고, 실제 사용을 해봤다.
아직 작은 가게에서는 서비스가 되지 않았지만, 규모가 있는 가게에서는 대부분이 되었다.
“이걸 우리 포스기(POS)에 연동을 시키는 건 가능한 거야? 카드 리더기를 들고 가서 결제하듯이 이 QR코드를 보여주고 결제하는 걸로 대체가 가능해?”
“네. 이미 중국에 와서 푸드 딜리버리의 프로그램을 커버전 할 때 적용해서 추가했습니다. 휴대용 단말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무리 없이 잘 돌아갔어? 정산은?”
“네. QR코드로 처리하는 것이 특이할 뿐이지 전산 에서 돈이 오가는 것은 신용카드와 같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래? 그럼, 이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라고 하는 걸 우리가 한국에서 스타페이라고 해서 만드는 것도 가능한 거야?”
“네? 으음. 한국에서도 이 QR코드를 이용한 결제가 가능은 합니다. 다만, 이미 한국에는 신용카드 보급률이 높습니다. 계좌를 만들 때 받는 체크카드를 거의 전 국민이 다 들고 있기에 효용성이 없어 보입니다.”
개발팀 강민호의 말을 듣고 보니, 이 QR코드로 만들어진 페이 시스템을 한국에 들고 가더라도 이미 확고해져 있는 신용카드의 결제 시장에서 파이를 떼먹는 수준일 것 같았다.
“한국에선 잘 안 되겠군. 하지만, 이 QR코드 페이 시스템을 그랩에 올리는 건? 동남아는 평균적으로 은행 계좌를 가진 사람이 60%가 안 되고, 신용카드를 가진 사람도 30%가 안 된다고. 그렇다면 물리적인 신용카드가 만들어져서 확대되기보다는 이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QR코드 페이 시스템에 메리트가 있지 않을까?”
“음. 한국에선 확대가 힘들어도 확실히 아직 신용카드가 보급되지 못한 동남아시아에서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산 개발 담당인 채학인은 충분하다고 동의했다.
본래 전자결제 시장에서는 종이돈에서 물리적 카드인 신용카드를 거친 이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전자 화폐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 업계의 예상을 중국은 넘어선 것이었다.
중간의 물리적 카드를 건너뛰고 무형의 전자 화폐로 이미 진입한 것이었다.
중국이 이렇게 되었다면 조건이 비슷한 동남아시아도 카드를 건너뛰고 전자 화폐로 바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 전자 화폐를 우리가 먼저 작업해서 그랩으로 실제 적용을 해버린다면 동남아 미래 화폐의 헤게머니를 우리가 잡을 수 있었다.
“자 새로운 과제야. 스타페이. 페이 개발팀 하나 따로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