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조건을 제시하다.
“데닐리의 마이텍시 사업이 500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스몰 비지니스였다면 저는 1억 6천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빅 비즈니스라고 자부합니다.”
스카이라 불리는 천친위는 자기 입으로 빅 비즈니스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실제로 뭔가 만들어진 서류도 없었고, 제안서도 없었다.
이런 허풍을 떠는 것은 중국인다웠다.
“어떻게 1억 6천만 명을 대상으로 한다는 거지? 중국이면 14억 명 아닌가?”
“중국의 인구는 14억 명이지만, 그 모든 이들을 타깃으로 잡을 수는 없습니다. 미국의 음식 배달 업체들이 동부, 서부, 중부로 나눠서 각 지역의 중점 대도시 위주로 일을 하듯이 중국도 그런 6대 도시만을 공략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 거기에 홍콩까지 한다면 7대 도시라고 할 수 있겠군요.”
“속칭 1선 도시라고 불리는 도시의 인구들만 해서 1억 6천만 명이라는 거군.”
“맞습니다. 북경, 상해, 선전, 광주, 충칭, 성도, 홍콩까지 해서 이 1선 도시들만 잡아도 충분합니다.”
스카이의 말이 좀 오버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우리 푸드 딜리버리가 한국에서 전국구로 갈 때도 서울, 부산, 인천, 세종, 광주 같은 광역시 이상의 큰 도시만 직영으로 했고 그 외 작은 도시들은 지사장 제도로 운영을 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그 말이 맞아. 하지만, 그런 1선 도시라면 이미 다른 사업자들이 들어와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중국에는 배달 대행 서비스가 몇 개나 있지?”
“업체들의 개수는 수십 개가 있습니다. 하지만, 독보적인 곳은 한 곳밖에 없습니다. 따종디엔핑(大众点评)이란 곳입니다.”
“독보적인 곳이 한 곳밖에 없다면 이미 독과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 아닌가? 그리고, 따종디엔핑? 그건 무슨 뜻인 거지?”
“일단 따종디엔핑(大众点评)이란 말은 ‘대중이 점수를 매긴다’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이용자가 평가점수를 매긴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이 따종디엔핑의 독과점은 참 애매합니다. 이 따종디엔핑이 2003년도에 만들어졌는데···.”
“2003년? 그땐 스마트 폰이 아예 없던 시대 아닌가?”
“네. 맞습니다. 그 당시의 따종디엔핑은 그냥 인터넷 사이트였습니다. 여러 이용자들이 자신들 지역의 가게나 숙박업소, 영화관을 이용하고 그 점수를 매기는 고객 후기를 올리던 사이트였습니다.”
“고객 후기를 올리던 사이트가 음식 배달 대행 앱으로 변신한 거로군. 회원 수는 얼마 정도 되는 거지?”
“회원 수는 4천만 명이 넘습니다만, 애매합니다.”
“역시 중국은 스케일이 다르구만. 회원 수 4천만 명의 사이트라니. 그런데 애매하다는 게 뭐가 애매하다는 거지?”
“따종디엔핑 사이트에서 2010년에 따종디엔핑 앱이 나왔습니다. 이 앱은 사이트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앱입니다. 한마디로 가게에 대한 후기를 올리는 기능이 메인이고, 그 외의 서브 메뉴로 음식 배달이라던지 꽃 배달, 영화예약, 숙박 예약 같은 것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 그렇다면 이 따종디엔핑은 어떻게 보면 배달 전문 앱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군.”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애매하다고 한 것입니다. 본래의 사이트가 가게의 별점을 매기고 품평을 하는 사이트였기에 여전히 앱에서 음식 배달은 주(主)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종합 쇼핑 앱입니다. 그래서 이 따종디엔핑이 배달 대행에서 1위를 하고 있지만, 독과점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주(主) 된 서비스도 아니기에 애매하다는 겁니다. 물론, 따종디엔핑이 애매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배달 어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전문, 특화된 앱이 아닌, 종합 쇼핑 앱이 배달 어플 시장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시장 상황은 꽤 흥미로웠다.
한국 시장을 경험했고, 미국과 동남아를 알기에 대충의 딜리버리 시장의 패턴을 다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중국은 중국이었다.
시장 자체가 특별한 곳이었다.
“그렇다면 스카이 너의 생각은 다른 배달 어플처럼 틈새를 노리겠다는 거겠군.”
“네. 따종디엔핑의 덩치를 보면 분명 중국 시장을 다 장악한 큰 덩치인데, 배달 대행을 주로 하지 않기 때문에 파고들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 틈새만 노리고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면 따종디엔핑을 이어서 업계 2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스카이의 말처럼 그 틈새를 잘 노린다면 따종디엔핑에 이어 2위를 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 틈새를 찾아서 다른 업체들도 난립해 있을 텐데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장점이나 특별함은 뭐지?”
시장을 알았으니 어떻게 치기 진입장벽을 넘어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우선,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푸드 딜리버리의 대표인 미스터 임을 만났다는 겁니다.”
“하하하. 웃기고 있구만.”
스카이는 대학교까지 중국에서 성장했다고 했는데, 이런 아부를 떠는 방식을 보면 본토 중국인이 절대 아니었다.
“정말입니다. 이미 한국에서 시장 1위를 하고 있는 푸드 딜리버리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으니 최고의 장점인 겁니다. 타 업체들은 하나하나 새로 개발하고, 적용을 할 때, 한국에서 이미 성공한 시스템을 바로 도입할 수 있으니 개발 시간이나 비용에서 엄청난 이득이 생깁니다.”
스카이의 말이 맞았다.
물론, 중국 현지 사정에 맞게 수정을 해야 하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만들어 가는 거보단 만들어져서 잘 돌아가고 있는 시스템을 바로 적용하면 시스템 구축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어제 집에 가서 푸드 딜리버리와 임 대표님에 대해서 찾아보니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가지고 있더군요.”
“엔터 회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는데, 그게 장점이 될까?”
“물론입니다. 임 대표님은 물론이고 데닐리 탄이나 클래이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국 내에서 한류의 인기가 엄청납니다. 마케팅 홍보 비용으로 쓸 금액을 북경과 상해, 홍콩에서 한류 콘서트를 열면 됩니다. 특히나 그 티켓을 우리가 만들 어플에서만 구매할 수 있게 한다면 금방 회원을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스카이의 말을 듣고 보니 초반 진입장벽을 깨부술 방법으로 그럴싸해 보였다.
대장금 이후 한류 드라마 인기가 확실히 많아지기도 했고, 인기 아이돌 그룹에 중국 멤버도 3~4명씩 있다 보니 아이돌 팬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한류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그리고 한류를 생각하다 보니 콘서트나 행사를 진행하며 홍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다른 좋은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콘서트도 좋지만, 내가 알기로는 북경과 상해에는 한국인 거리나 코리아 타운이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거기에 있는 한국 가게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서 아예 음식 카테고리에 한국 음식을 넣어두면 좋을 것 같은데.”
“오, 틈새의 틈새를 공략하는 방법이군요. 콘서트를 하고 그렇게 한국 음식 전문 메뉴를 둔다면 확실히 한류 팬들을 회원으로 끌어들이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스카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중국 쪽 사업에 대한 구상이 어느 정도는 나왔다.
우리 시스템을 그대로 들고 가고 한류 문화에 편승한 한국 음식을 메인으로 내세운다면 초기 시장 진입은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다 좋은 거 같지만, 문제는 중국이란 나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데닐리 탄의 경우에는 사업을 벌이는 장소가 동남아시아이기도 했고, 화교 3세이긴 하지만, 국제학교를 다녔고, 학창 시절을 미국에서 쭉 보내었기에 중국인과는 그 기질이나 성향이 확연히 달랐기에 중국인들이 자주 저지르는 비 문명화된 마인드는 없었다.
하지만, 사업 장소가 중국이 되면 그런 비 문명화된 사람들의 마인드 때문에 신용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였다.
데닐리 탄의 그랩 택시처럼 지분 계약을 하더라도 그런 사업 계약을 다 무시하는 중국의 법이 언제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중국법은 언제든지 힘 있는 사람에 의해 시시때때로 바뀔 수도 있었기에 과연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1억 6천만 명을 타깃으로 하는 미지의 세계인 중국 시장이 탐이 났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어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카이는 이미 결정이 난 거처럼 앱 이름을 짓고 있었다.
“푸드 지나, 딜리버리 지나 같은 음식 배달 대행의 느낌이 나는 이름도 좋지만, 배고픕니까? 같은 의문형의 이름도 좋지 않을까요?”
“배고프면 클릭해라. 라는 뜻의 어플이면 괜찮을 것도 같아.”
스카이의 말에 클레이까지 동의하며 이름을 지었는데, 장기적으로 봐야 했다.
지금의 업계 1위라는 따종디엔핑처럼 종합 쇼핑 앱을 지향해야 하지만, 하나의 어플에 모든 걸 다 때려 박는 건 좋지 못했다.
“음식 배달 대행의 사업 목적에 맞는 이름도 좋지만, 길게 본다면 푸드를 빼는 게 좋을 것 같군. 따종디엔핑처럼 다른 배송까지 생각한다면 ‘판다요원’ 같은 이름이 좋을 거야.”
“판다요원요?”
“그래. 중국에서 배달 대행 서비스를 한다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 유니폼에 등판이나 앞에 중국을 상징하는 판다 그림을 넣는 거지. 그런 판다요원이 음식이든 식료품이든 가져다주는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가면 될 것 같거든. 그 이후에는 ‘판다푸드’, ‘판다꽃배달’, ‘판다영화’ 같은 세부 어플을 따로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단순히 따종디엔핑의 그늘에만 있지 않고, 데닐리 탄의 그랩처럼 여러 버전을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그래야지. 그냥 틈새만 노리기보다는 틈새로 시작해서 대도(大道)를 찾아야지. 일단 스카이는 다음에 볼 때 판다요원이란 서비스로 중국 시장에서 어떻게 시작을 하고 운영을 할 것인지를 계획해 와. 세부적인 건 그때 제대로 이야길 하자고.”
아직 중국 시장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아 오늘은 이렇게 스카이를 보내는 게 맞을 것 같았고, 데닐리 탄을 좀 더 조져서 동남아부터 가야 할 것 같았다.
***
데닐리 탄의 기획서와 제안서를 다시 확인하며 이틀 동안 1년간의 세부 일정까지 다 들어가 있는 계획서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서포터를 해줄 동업자나 받쳐줄 수 있는 직원은 없어?”
“그게 이미 부모님께 받은 투자금은 다 써버려서 직원을 유지할 재정이 없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했던 마이텍시에서 이미 사업 자금을 다 까먹은 거 같았다.
투자 부분을 정확하게 정리해야 할 것 같았는데, 마침 스카이에게도 오겠다는 전화가 왔기에 고민을 했다.
결국, 둘을 앞세워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둘에게 채워둘 고삐가 필요했다.
단순한 투자로 끝이 나는 것이라면 지분 투자 계약만 하면 될 것 같았지만, 투자의 결실을 제대로 보려면 결국 함께 뛰어가야 했다.
제안서를 들고 온 스카이와 데닐리 탄을 앉혀두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류사회에서 살아온 화교 3세나 중국 본토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는 아시아인들에겐 특징이 있어. ‘후광 효과’를 아주 크게 본다는 특징.”
“뭔가를 이룬 사람에 대한 존경을 크게 본다는 그런 겁니까? 그런 것이라면 서구의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요?”
“데닐리가 아는 그런 존경과는 좀 다른 거야. 예를 들면 일본인들은 미국에서 온 물건이나 사람이라면 뭔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전쟁에서 졌다는 것도 있고, 일본인은 미국인을 이길 수 없다는 그런 마인드가 내재되어 있지.”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 같은 것인 거군요.”
“그렇지. 스카이가 이야기한 게 맞아. 대부분의 아시아인들은 같아 보이는 양복 재킷이라도 한 개에는 명품 로고가 박혀있고, 다른 한 개에는 자국의 로고가 박혀있다면 입어 보지도 않았지만, 명품 로고가 있는 옷이 좋은 옷이라고 생각을 해.”
“서구인들은 안 그런가요?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서구인들은 사고방식은 좀 달라. 자기가 입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답을 할 수가 없다고 이야길 해. 서구에서도 명품 옷이 잘 팔리지만, 아시아의 명품 시장이 훨씬 더 크게 발전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야. 브랜드가 가지는 후광 효과에 대해서 훨씬 더 신뢰를 한다는 거지.”
데닐리 탄과 스카이는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완전히 동의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자 그럼, 이 신문에 나와 있는 광고를 봐. 미국식 광고는 직접 보여주겠다. 와서 확인해라 라는 방식으로 물건을 판매 광고한다고. 하지만, 아시안들의 광고는 어떨까?”
노트북에서 한국 제품 광고를 보여주었다.
‘2011년 판매 1위. 2012년 중소기업청 선정 혁신 기업 1위. CNN선정 주목해야 하는 기업 TOP10.’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데닐리 탄이 바로 수긍했다. 자신도 하버드 내 사업경진대회에서 2등을 했다는 것에 엄청나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바로 생각해 냈기 때문이었다.
“아시안들은 어디서 1등 했다. 누가 인정했다. 국왕이 지시했다 하는 후광 효과를 아주 잘 믿어. 그리고 신뢰를 해. 그래서, 동남아에 진출하는 ‘그랩 택시’와 ‘판다요원’은 한국 기업이 투자를 했다는 이미지를 가져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 완전 신생 작은 기업이 아니라 한국의 1위 기업이 투자를 했다는 후광 이미지를 가져가자는 거지.”
두 사람 다 한국에서 1위 했다는 문구가 주는 후광 효과를 이해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한국이 가지는 긍정적 이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단순 지분 투자가 아닌 자회사 개념으로 투자계약을 하는 것이 나는 좋다고 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