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한국식? 아시아식?
실리콘밸리의 외각이라 제대로 먹을 만한 게 있을까 싶었지만, 외각에 위치한 여러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배달 드라이버들이 많았기에 한국식 비빔밥과 초밥, 국수, 피자와 타코를 시킬 수 있었다.
그런 음식을 잔뜩 깔아둔 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내가 이 정답을 알려주게 되면, 데닐리의 마이텍시 사업은 내 사업이 되어 버리게 될 거야.”
사업의 주체가 바뀌어 버릴 수도 있다는 말에 데닐리 탄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상 마이텍시의 사업이 다른 형태로 바뀌게 될 거거든. 그렇게 해도 되겠어?”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듯이 동서양 어디든 밥을 먹을 때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스마트 폰 보급에 대한 해결 방안을 듣고 싶었던 데닐리 탄은 짠 피자를 뜯어 먹으면서 고민했고, 결론을 내렸다.
“지분을 원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으면 하는데. 다들 어제 들었겠지만, 한국의 배달 시장은 10억 달러(약 1조 원) 규모이고, 계속 성장 중이야. 그리고 내가 운영하는 푸드 딜리버리는 과반의 점유율로 1위를 하고 있어. 솔직하게 더 이상의 점유율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온 거라고 판단을 내리고 있어.”
세 명 모두 미국에서 사업 물을 먹은 사람이었기에 독과점 방지법이라는 자유경쟁과 관련된 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독과점으로 판단을 받게 되면 거기에 가해지는 제약의 위력도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의 딜리버리 시장에서 점유율을 5% 올리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클 테지만, 독과점이 되어 버리게 되면 결국 견제를 받게 되고 제약이 많아지게 되어있어. 그래서 미국에 와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본 거지.”
“그 블루오션이 동남아시아라고 판단을 하시는 겁니까?”
“맞아. 이제 스마트 핸드폰과 신용카드가 보급되고 있는 동남아 시장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어. 그리고 우연인지 유버 차 안에서 데닐리를 만났고.”
그러고 보니 운이 좋았다.
유버 합승을 통해 데닐리를 알게 되었고, 헤드 헌터를 통해 인터뷰한 클래이를 통해 미국 마인드를 가진 중국인을 알게 된 것이 운이 좋았다.
“그래서 역으로 데닐리에게 제안을 하지. 마이텍시 사업을 말레이시아가 아닌 동남아 전체에서 할 수 있는 사업으로 만들어 보자고. 거기에 투자를 하겠어. 회사의 대표는 네가 될 것이고, 난 초반에 내가 가진 노하우를 전해주고 서포터 역할을 해주지. 어때?”
데닐리 탄은 제안을 오히려 역으로 받게 되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저...미스터 임. 그 제안 저에게도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저는 차량 공유나 콜택시보다는 푸드 딜리버리 사업에 관심이 있습니다.”
겁 없는 중국인답게 스카이가 먼저 치고 나왔다.
“미국에서 뉴욕과 LA, 시카고 같은 대도시를 위주로 한 음식 배달 대행 사업이 성공하고 있듯이 중국도 같은 방식으로 가능할 겁니다. 더구나, 이미 한국에서 성공한 시스템이 있다면 그걸 그대로 중국에 뿌려주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어떻습니까?”
“스카이. 그 이야기는 일단 데닐리와의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하지. 데닐리 시간을 줘야 되겠나?”
“아닙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일단 이 먹는 거부터 다 먹고 손 좀 씻고 보자고.”
***
야외 테이블에서 먹었던 식사가 끝나고 쓰레기 정리까지 끝이 나자 펜과 종이를 들고 다시 테이블에 4명이 마주 앉았다.
“우선 서비스 이름이야. 마이텍시(MyTeksi)도 나쁘지 않은 이름이지만, 텍시라는 단어 자체가 말레이사람들에게만 먹히는 이름이야.”
말레이어에서는 Taxi를 Teksi로 쓰기에 괜찮았지만, 다른 동남아에서는 Taxi를 그대로 Taxi로 사용했었다.
동남아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이름을 바뀌는 것이 맞았다.
“그럼 어떤 이름이 동남아를 다 포용할 수 있을까요?”
“미국에 있는 그럽허브(Grub Hub)를 보고 떠올린 이름이 있는데, Grab Taxi 어때? 택시를 잡다라는 뜻이지. ‘그랩 택시’ 발음을 어중간하게 뭉갠다면 그럽허브의 소속인가라고 판단할 수도 있는 이름이야.”
“정확하게 발음하지 않으면 그럴 것도 같네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데닐리의 마이텍시에는 콜택시와 일반 차량을 같이 쓰는 것이었지만, 이걸 분리할 거야. 처음 시작은 그랩 택시로 하겠지만, 유버처럼 그랩 카로 해서 일반인이 자가용으로 영업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따로 만드는 거지.”
“그러면 비용이 2배로 나가게 되지 않을까요?”
“비용은 2배로 나가게 되겠지만, 쓸데없는 분란은 막을 수 있을 거야. 마이텍시의 내용처럼 택시와 일반 차량을 같이 운용하게 되면 드라이버끼리 서로 싸우게 된다고. 그런 분란이 서비스를 망치게 될 거야.”
“그런가요?”
데닐리 탄은 택시와 일반 차량을 다 한곳에 모아두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공급이 많아 보이는 것이라 택시와 차량을 분리한다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랩 택시와 그랩 카가 어느 정도 된다면 그랩 바이크도 만들게 될 거야.”
“바이크요?”
“그래. 필리핀 마닐라와 동남아 태국,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도로 교통 체증이 장난 아니었어. 그런 교통 체증이 심한 곳은 오토바이가 확실히 좋았거든. 그리고, 가격이 그랩 카보다 저렴하다면 다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그랩 바이크를 이용하게 될 거야.”
아직 사업은 시작하기도 전인데, 택시와 공유차량, 거기에 이은 바이크까지 이야기가 나오자 데닐리 탄은 물론이고 클래이와 스카이도 놀라고 있었다.
단순한 사업 이야기이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을 터인데도 후속 단계 서비스까지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 사업가의 사고방식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 3개 서비스에 가입된 드라이버들은 그랩 푸드에서 올라오는 배달 의뢰에 뛰어들 것이기에 자연스레 그랩 푸드도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그랩 푸드까지. 교통과 배송에 대한 토탈 서비스가 되겠군요. 하지만, 그렇게 드라이버들을 모으는 것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데닐리 탄은 혼자서 집안의 돈으로 마이텍시를 해 보겠다고 말레이시아에서 좌충우돌한 생각이 났다.
우선은 기사들이 그런 어플을 폰에 설치하거나 가입하려고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초창기의 기사를 모으는 진입장벽을 어떻게 넘어서냐에 따라서 사업의 흥망이 정해질 거야. 그리고, 그 기사들을 모으는 것에는 스마트 폰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고.”
앱 프로그램을 깔 수 있는 스마트 폰을 가진 택시 기사가 있어야 했다.
그것이 동남아시아 택시 사업의 핵심이었다.
“식사 전의 이야기로 이제 돌아왔구만. 그럼 그 스마트 폰 보급을 어떻게 늘리느냐. 이게 제일 궁금하겠지?”
“네. 어떻게 택시 기사들이 스마트 폰을 활용해서 가입을 하고 손님을 받고 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말을 한 데닐리 탄뿐만 아니라 클래이와 스카이도 궁금해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야. 물론, 다른 측면에서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냥 택시 기사들에게 스마트 폰을 공짜로 주면 되는 거야.”
“네? 공짜로 스마트 폰을 준다고요? 그렇게 되면 그 비용이...”
데닐리 탄은 대충 1만 명의 기사들에게 스마트 폰 1만 대를 무료로 나눠주는 것을 계산해 보았다.
아무리 저가의 중국산 안드로이드 스마트 폰이라고 해도 20만 원 이상의 가격이었다.
최소로 계산해도 200만 달러 이상의 스마트 폰을 뿌려야 하는 것이었다.
“2백만 달러를 투자로 생각해서 스마트 폰을 뿌리겠다는 겁니까?”
“맞아.”
무덤덤하게 맞다고 하는 말에 데닐리탄과 클래이, 스카이는 대단하다고밖에 생각을 못 했다.
말레이시아에서만 1만 명에 2백만 불이면 동남아에서 가장 시장이 큰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까지 했을 때 5만 대였다.
즉 천만 불 100억 상당의 스마트 폰을 뿌리겠다는 말이었다.
‘이미 천만장자이다 보니 사업 규모가 다르구나. 그렇게 스마트 폰이 깔리게 되면 택시 기사 5만 명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니 그랩 택시는 금방 성공을 할 수 있겠어.’
공짜 스마트 폰으로 그랩 택시가 성공한다면 자연스레 스마트 폰을 든 개인 차량들도 그랩 카에 가입을 할 것이고, 아까 이야기했던 그랩 바이크와 그랩 푸드도 성공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초반에 가장 어려운 드라이버들을 모으는 일을 돈을 뿌려 해결하겠다는 것이 단순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물론, 그만큼의 투자가 있냐 없냐가 문제였다.
“하하하. 이 생각을 저도 못 했네요. 스마트 폰 보급이 안 된다면 그걸 공짜로 보급시키면 된다는 그 발상을 저도 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인 스카이는 그런 발상을 한다는 것에 감탄했다.
부자와 일반인의 사고방식 차이가 이거구나 하고 느끼는 중이었다.
데닐리와 스카이가 단순한 돈질 투자 방법이 대단하다고 보급 투자 금액을 이야기할 때, 건호는 그 정도의 돈이 들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북경대 출신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미국식 일을 배운 스카이는 물론이고 부자인 화교 3세 데닐리도 통신 관련 바닥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
스마트 폰을 공짜로 뿌리더라도 돌아오는 금액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니 단순 계산만 해서 투자 비용을 산출하고 있었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미국은 아이폰이나 삼성의 스마트 폰을 사서 자신이 가진 유심을 넣어 기기를 교체하는 방식이 기본방식이었다.
즉, 통신사는 고객이 어디 유심을 쓰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통신 3사가 있어서 대리점에서 고객 유치를 해오면 돈을 주는 유치 성과금이 있었고, 기계를 몇 대 이상 팔았을 때 나오는 보조금 같은 돌려받는 금액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대형 통신사들이 좌지우지하는 통신 시장은 동남아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8~90년대 통신사를 선정할 때 기존의 대기업이나 대통령 혹은 실력자의 친인척에게 통신사를 만들어 영업하게 했는데, 대부분의 동남아도 이런 방식이었다.
동남아의 통신사는 대기업이거나 대통령의 친인척이 하는 게 국룰이었다.
그래서, 여러 통신사에서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금전적 보상을 했고, 가입 유치에 따라 지원금이 나왔다.
이런 통신사 가입 방식은 한국과 일본 동남아가 같았다.
그런 각 나라의 통신사 상품을 이용해서 1만 명씩 가입을 시킨다면 100억까지는 들어가지 않을 터였다.
회원 유치를 해줬으니 알아서 돈을 돌려줄 터였다.
“그렇게 스마트 폰을 공짜로 준다고 택시 기사들을 모아 교육을 할 겁니다. 기본적인 스마트 폰 사용법과 그랩 택시 어플로 손님을 받고 결제하는 것을 연습하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택시 기사들은 한번 배워 본 것을 어떻게든 써보려고 할 것이고, 공항에서 광고 간판을 본 외국인들은 미터기를 켜고 움직인다는 그랩 택시를 이용하게 될 겁니다. 물론, 첫 그랩 이용에 성공한 기사들에게 축하금 10달러를 준다면 기사들은 서로 그랩으로 의뢰를 받으려고 할 겁니다.”
데닐리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임건호가 이야기한 말에 동남아 콜택시 사업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라이버의 모집과 스마트 폰의 보급 두 가지를 모두 다 잡은 것이었다.
“데닐리는 그런 그랩 택시의 운영을 맡아주세요.”
“그...그럼, 지분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데닐리는 임건호가 천만 불 투자를 하기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 투자금에 대한 지분이나 조건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전 지분 30%만 있으면 됩니다. 데닐리가 51%를 가지고 나머지 19%는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입시다. 제가 투자한 금액은 스마트 폰 보급과 교육에 거의 다 들어갈 겁니다. 홍보과 광고 마케팅에 들어가야 할 돈은 별도의 투자를 받아야 할 겁니다.”
투자 계획까지 이미 다 만들어져서 이야기를 하니 데닐리 탄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이제 스카이와 배달 음식 사업 이야길 해보죠. 중국 진출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하게 되네요.”
스카이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