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04화 (104/203)

104. 사람을 만나다.

결국, 인도사람인 CS직원이 내 카드 건을 처리해 줄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나서서 움직이기로 했다.

미국에서 쓰기 위해 만들어 왔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분실했다고 정지를 시켰고, 연동된 계좌에 있던 돈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신용카드 계좌로 모두 다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아니, 시바 이건 또 뭔데.”

갑자기 은행 어플에서 외국에서 접속했기에 계좌이체가 불가능하다고 떴다.

분명 외국에 나오면서 외국에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처리하고 왔었기에 어이가 없었다.

한국은행에 국제 전화로 따지려고 했지만, LA와 한국 서울의 시차는 16시간이 차이 났고, 정오의 LA와는 달리 한국은 새벽 4시였다.

시발이란 욕이 절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 비서실장으로 승진시킨 사촌 동생 석건이에게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 여보세요. 아, 형. 진짜 너무하다. 새벽 4시예요.”

“석건아 큰일 났다. 카드랑 은행 계좌 핸드폰이 다 해킹당한 거 같아.”

“에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해킹이라는 말에 이석건은 잠이 확 깨버렸다.

테스트를 위해 도어대시로 주문을 하며 카드를 사용했고, 이후로 미국의 여러 어플을 써보기 위해 내려받아 결제까지 했던 어플이 많다 보니 거기서 해킹이 된 거 같다고 이야길 했다.

“네. 일단 아침에 은행 문 열면 바로 계좌에 있는 돈 다 빼서 옮기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미국에선 어떻게 돈을 쓰실 겁니까?”

“한국 신용카드 중에 마스터 카드 되는 거 써야지.”

“형님. 그럼 왜 처음부터 그렇게 안 쓰신 건데요?”

“미국 VAN사는 또 좀 다르거든. 한국은 어느 나라의 신용카드든 다 결제가 되지만, 미국은 VAN사가 다 되는 게 아니야. 마스터나 비자가 다 따로 있다고, 그래서 미국에서 편하게 쓰려고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만든 거였고.”

“그래요? 그럼, 미국에서 VAN사 차려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응?”

석건이의 말을 듣고 보니 괜찮은 것 같았다.

미국은 아직까지도 각 카드사와 개별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었고, VAN사가 있다고 해도 모든 카드가 다 되는 VAN사가 드물었다.

물론, 미국 은행이 발행한 카드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아시아 남미 등에서 마스터와 비자 그룹으로 뭉뚱그려 카드가 사용되다 보니 거기서 오는 문제였다.

“그거도 괜찮은 거 같은데, 한번 알아보마. 일단 넌 이 문제 좀 처리해라. 그리고 미국 번호 하나 받아 적어. 따로 들고 온 아이폰에 유심 꽂은 번호야. 안드로이드 폰 초기화하고 나서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깐 이 번호도 알고 있어.”

그렇게 잠결의 석건이에게 지시를 내리고 나니 유버 기사가 빨리 내려오라고 난리였다.

LA에서 실리콘밸리까지 가는 데 5시간이 걸렸는데, 렌트카를 빌리려고 하다 생각하고 할 것이 있다 보니 유버 드라이버를 불러서 가는 것이었다.

한국이라면 이런 도시 간의 이동을 고속버스가 커버를 해 주지만, 미국은 그레이하운드 버스 말고는 멀리 이동하는 대중교통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유버의 드라이버들이 2~3시간 거리의 도시들을 이어주는 사설 교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헤이 브로. 로스바노스에서 산호세로 가는 사람이 있는데, 같이 태워서 가고 싶은데, 어때? 시원한 물과 스낵을 서비스로 줄게.”

LA에서 산호세로 실리콘밸리로 가는 길에 다른 승객들을 더 태우겠다는 거였다.

차에 폰을 3개나 거치해서 의뢰를 받는 모습이 찝찝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돈을 더 벌기 위해 합승을 하겠다는 거였다.

“난 유버풀(UberPool)을 신청한 게 아니라고.”

차량공유 서비스인 만큼 유버에는 기본적으로 합승을 할 수 있는 서비스가 따로 있었는데, 유버풀이라고 불리는 메뉴였다.

이 유버풀은 목적지가 같은 승객을 2명까지 합승으로 실을 수 있었는데, 대신에 이용료를 40~50% 가까이 할인을 해주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기사는 유버풀이 아닌 일반 이용객 두 명을 태우겠다는 것이라 좀 짜증이 났다.

모르는 사람과 합승을 했는데, 운 나쁘게 데오드란트를 뿌리지 않은 미국인이라면 실리콘밸리에 도착할 때까지 곤혹이기 때문이었다.

“브로. 로스바노스에서 타는 사람도 실리콘밸리에 일이 있어 가는 사람이라고, 혹시 알아 너가 가는 일과 관련된 사람일 수도 있다고. 이게 신이 안배한 것일 수도 있잖아.”

행운을 믿으라며 넉살 좋게 이야기하는 흑형의 말에 동의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합승이 의외로 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에서 콜택시 앱을 만들고, 합승 혹은 뭉쳐서 탈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한밤에 택시를 못 구해 발을 동동 그릴 일이 없을 것 같았고, 택시 기사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한국은 택시 합승도 불법이었기에 택시 관련 어플도 그냥 잊을 수밖에 없었다.

“브로, 아시안이야.”

다행히 로스바노스에서 타는 사람도 동양인이었다.

“유버 풀(UberPool)?”

“노노. 그냥 가는 길이 같아서 타게 되는 거야. 유버풀보다는 못해도 할인해 줄게. 그리고 시원한 물과 스낵도 제공할게. 컴온.”

중국인 느낌이 나는 승객은 잠시 생각하더니 나를 보곤 올라탔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했다.

나랑 비슷한 연배로 보였는데, 이름이 ‘데닐리 탄’이라고 했다.

그는 일이 바쁜지 바로 서류를 꺼내어 봤는데, 나도 노트북을 꺼내 미국 어플을 정리한 파일을 다듬고 있었다.

“미스터 임. 혹시 공유 사업 쪽으로 일을 하는 건가요?”

데닐리는 내 엑셀 파일에서 유버의 거리에 따른 비용이나 도어대시의 1마일당 1불의 가격이 된 이유를 표로 만들어 두었기에 한글을 몰라도 알아보는 것 같았다.

대답을 하기 전에 데닐리 탄이 보고 있는 서류를 나도 보았는데, 그가 보는 서류에는 CALL TAXI라는 단어가 눈에 보였다.

“저는 한국에서 배송 관련 앱을 사업으로 하고 있는데, 데닐리는 공유 택시 관련의 일입니까?”

“비슷합니다. 이거 우버에서 비슷한 동종업계 사람을 보게 되다니 신기하군요.”

“와우! 보라구 브로. 이건 신이 주신 만남이라니까. 아까 합승을 거부했다면 이런 인연이 없었을 거라고!”

드라이버가 더 오바하며 실리콘밸리로 가는 길에 사람들을 태우면 이렇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며 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이냐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푸드 딜리버리의 임건호라고 합니다.”

같은 동양인에 같은 카테고리의 사업을 위해 실리콘밸리로 간다는 것이 진짜 인연 같기도 해서 정식으로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데닐리 탄도 명함을 꺼내 줬는데, 마이텍시(MyTeksi) 라는 업체였다.

사업장 주소가 말레이시아였는데, 말레이어로 Taxi 가 Teksi 인거 같았다.

“푸드 딜리버리는 미국 진출을 위해서 온 것입니까?”

“시장 조사라고 봐야지요.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성과가 있어서 미국 시장을 살펴보고 있긴 합니다.”

이제 미국 어플 시장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는 수준이라 아직 진출을 논할 단계가 아니었다.

“그렇군요. 성과가 있다니 부럽군요. 마이텍시는 아직 투자를 받아야 하는 단계이다 보니 여기저기로 투자 설명을 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콜택시 공유 사업이면 유버와 같은 건가요? 아니면 그냥 콜택시 같은 건가요?”

“아, 유버와는 다른 콜택시 서비스입니다. 여기 한 부 드리겠습니다.”

마이텍시의 투자 제안서를 받아 살펴볼 때 데닐리 탄도 핸드폰으로 푸드 딜리버리를 검색해보고 있었다.

마이텍시는 차량 공유와는 다른 단순한 콜택시 플랫폼이었다.

한국은 이미 각 지역별로 콜택시 업체가 있고, 몇몇 지방의 경우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콜택시 업체도 있기에 한국에서는 사업성이 없어 보였다.

“데닐리 씨. 말레이시아는 지역별로 콜택시 업체가 없는가요? 한국은 전화를 걸면 거기에 맞게 택시를 보내주거든요.”

“네. 말레이시아도 전화로 하는 콜택시가 있지만, 전화로 불렀을 때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거나 택시를 부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콜택시 앱을 만들어 서비스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동남아에 신혼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거의 10년이나 지난 기억이었지만, 택시 승강장은 물론이고, 미터기를 켜고 운행하는 택시가 없었다.

가격은 흥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바가지를 쓰는 것도 흔했다.

그런 옛날 방식을 앱으로 해서 바꾸려는 모양이었다.

“마이텍시 투자 제안서를 보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흠. 사실로 이야기해 드립니까?”

“네. 그래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우연히 만난 비슷한 카테고리의 사람이니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실망스럽겠지만, 이 말레이시아 콜택시 사업에는 투자를 결정하기가 힘이 들 것 같습니다. 한국 출신인 저의 입장이기도 하지만, 동남아시아에 가보지 못한 미국인이라면 콜택시 사업에 대해서 기대를 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사실 로스바노스에 있는 투자사에 브리핑을 하고 왔는데, 다들 다른 사업을 알아보라고 하더군요. 이미 콜택시 사업은 한물갔다면서요.”

뭔가 바쁘게 서류를 준비하던 모습에 일 잘하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기운이 빠져 보였다.

투자 브리핑을 말아 먹은 후이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건 아마도 삶을 사는 인프라가 미국과 말레이시아가 차이가 나다 보니 그럴 겁니다. 동남아시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거나 말레이시아의 택시를 이용해 보지 못한 사람은 동감하기 힘든 사업입니다. 그들이 과연 동남아시아의 복잡한 도시에서 택시를 타봤겠습니까?”

“저도 그걸 알지만, 투자가 없으면 아예 사업을 시작해 보지 못하게 되니깐요. 휴우. 사실 이 사업 아이디어는 HBS의 사업경연대회에서 2위를 했었거든요. 그만큼 인정을 받은 사업인데, 투자자들은 혹평만 하니 기분이 우울했습니다.”

HBS이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약어였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한국에서도 나름 잘나가는 이들만이 HBS에서 나름의 인정을 받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곳 출신이라는 말에 사업제안서가 다시 보이긴 했다.

그런데, 이미 도어대시에서 결제사기를 한번 당했기에 이것도 무슨 사기 수법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유버를 타고 이동하는데 하버드 대학원 출신이 합승할 확률은 사기당할 확률 급이었다.

그래서 구글에서 검색을 해서 데닐리 탄과 HBS의 사업경연대회를 검색해 보니 진짜 그대로 자료가 여러 건이 나왔다.

여러 검색 페이지를 확인하니 이건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 실리콘밸리에는 투자 건으로 다시 가는 건가요?”

“네. 숙소를 그쪽으로 잡았고, 내일 다른 투자사에 가볼 생각입니다.”

“그럼 오늘 저녁은 시간이 어떻게 됩니까?”

“특별한 일정은 없습니다만.”

“그렇다면 나랑 같이 사람을 한번 만나 보겠습니까? 헤드헌터에게 의뢰를 넣어서 포스트 메이트 사에서 일하는 사람과 인터뷰를 잡았는데, 같은 카테고리이니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아서요.”

“오, 그런 자리라면 언제든 좋지요.”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고, 각자의 숙소에서 내려 헤어졌는데, 투자 브리핑을 실패한 벤처 사업자의 힘듦을 알기에 데리고 가는 것도 있었지만, 다른 꿍꿍이도 있었다.

바로 인맥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인맥인데, 이곳 실리콘 밸리에서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이나 프린스턴 대학교의 창업스쿨을 최고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HBS 출신의 같은 동양인을 옆에 데리고 인터뷰 자리에 나간다면 헤드헌터는 물론이고 포스트 메이트의 사람도 한국에서 온 촌놈을 쉽게 보지는 못할 터였다.

한마디로 데닐리 탄을 멋진 병풍으로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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