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This Is America.
“뭐? 내가 못 할 줄 알고?”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회사 이름을 말하라는 소리에 안제원은 호기롭게 자신이 임원으로 있는 회사의 이름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뒤돌아본 이가 30대 중반의 남자라는 게 보이자 괜히 찝찝했다.
가장 늦게 비행기에 탔고, 정장을 입고 비행기에 탔다는 것도 기억이 나자 옆자리의 졸부 아들로 보이는 20대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왔다.
성질을 더 부릴까 싶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기 위해 미국으로 가신다는 분이 회사 이름도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까? 괜히 회사에 피해 갈까 봐 이야기 못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비행기 서비스로 요청한 라면도 제대로 못 끓여주니 다시 요청하고 하는 건데, 이게 뭐가 문젭니까?”
안제원의 말투는 어느새 바뀌어 있었지만, 여전히 자기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항변했다.
“지금 하시는 행동이 그냥 트집 잡기인 거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비스에 대한 클레임이면 조용조용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그쪽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아니고. 안 그렇습니까?”
“나는 정당한 서비스에 대한 요구를 하는 거지 트집이 아니에요.”
“서비스 요구일 수도 있는데, 그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을 우리가 다 들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안 주게 조용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내가 목소리가 원래 큰데 어쩌라고. 그리고, 그쪽은 어디의 누구길래 이렇게 어른에게 가르치는 듯이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건데? 그쪽부터 먼저 밝혀봐.”
능수능란하게 논점을 바꾸어 가며 말을 돌리는 걸 보니 이런 패악질이 생활화된 사람 같았다.
강약약강(强弱弱强)의 전형적인 사람이란 생각에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제가 먼저 밝히면 그쪽도 밝히는 거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그걸 감당하실만한 위치에 계신 게 확실합니까?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안제원은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에 속에서 욱하는 승부 욕이 올라왔지만, 여유롭게 앉아 있는 임건호의 모습에 괜히 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철강회사의 임원이긴 했으나, 저 젊은 놈이 재벌그룹의 직계인 경우에는 뒷감당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30대의 직장인으로 보이는데, 천만 원이 넘는 일등석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사람.
자신감 있게 강하게 나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저게 뻥카일 수도 있는데, 확 질러봐.’
거친 철강회사의 남자답게 질러 버릴까 생각했지만,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에 결국, 용기를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에서 싸워봤자 뭐합니까. 그만합시다. 내가 참겠소이다.”
당장 서로 신분 밝히고 들이받아 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금세 가라앉아 버렸다.
‘아니 지가 참기는 뭘 참아. 지가 먼저 화를 내며, 개진상 짓 해 놓고는 지가 양보한 것처럼 참는다고?’
자기 위주로 이야기하며, 자기가 참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에 어이가 없었지만, 나도 입을 닫고 다시 CNN 뉴스를 봤다.
사실, 신분을 밝히고 싸운다고 해도 내가 무슨 수로 찍어누르고, 실력 저지를 하겠는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퍼스트 클래스. 일등석에 앉아봤기에 한번 질러본 뻥카였다.
저 사람이 뻥카에 안 속고 둘 다 까자고 했다면, 사실 나도 난감했을 터였다.
‘푸드 딜리버리의 대표입니다.’라고 이야길 했다면, 아마도 대기업 출신으로 보이는 저 사람은 피식하며 비웃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난 오너고, 저쪽은 임원쯤 되겠지만, 회사가 가진 무게감이 달랐다.
회사 이름을 이야기했을 때, ‘우와!’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그런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신성전자나 대현자동차, KS그룹 같이 이름을 이야길 했을 때 ‘한국 몇 대 재벌!’이라는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스타 코퍼레이션을 키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는 그런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내수만으로는 부족했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회사가 되어야 했다.
똑같은 자동차 공유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라고 하더라도, ‘유버’ 창업자라고 하는 것과 한국에서 서비스 하는 ‘또타’의 창업자라고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달랐다.
아마 한국에서는 ‘그냥 택시 합승하고 비슷한 일 하는 거 아냐?’ 하며 매도당할지도 몰랐다.
결국, 얼마나 유명하고 알려져 있는가. 그게 핵심이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의 서비스가 있다고 해도 유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쓰지 않는 것이었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도 ‘우선 누구든지 이야길 했을 때 안다고 하는 서비스를 준비해라.’라고 했었다.
일단 유명하기만 하면, 성매매를 위해 사진을 올리는 창녀든, 지구 온난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회활동가든 방문자들이 몰려들 거라는 것이었다.
일단 유명해지자. 그게 미국에서 배운 첫 번째 교훈이었다.
***
나름대로 자신들의 편을 들어줘서 그런지 사무장과 스튜어디스들이 편안하게 서비스를 해주었고, LA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데도 언쟁이 있었던 50대 아재는 기분 나쁘게 쳐다보고 내렸고, 나도 같이 째려봐 주고 내렸다.
“비행기에서는 고마웠습니다. 다운 타운으로 가시는 거예요? 친구가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같이 가실래요?”
진상 아재 옆좌석이었던 20대 친구였다.
“숙소를 가까이 잡았다 보니 괜찮습니다.”
“아, 수행기사가 있는 거지요? 그 생각을 못 했네요.”
20대 친구는 내가 진짜 대기업 직계라던지 엄청난 벤처기업 대표로 생각하는지 꾸벅 고갤 숙이고 인사하며 갔다.
왠지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지만, 현실은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에서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출국장으로 뛰어야 하는 처지였다.
“아차 유심(USIM)을 사야 하구나.”
늦은 밤에 도착했기에 막 문을 닫으려고 하는 매장에서 유심을 2개 샀고, 무료 셔틀버스에 올랐다.
LA 공항 인근의 가장 가까운 호텔은 르네상스 호텔이었는데, 객실에서 비행기 이착륙이 보일 정도로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이었다.
4성급 호텔이었음에도 오래되기도 했고, 공항 바로 옆에 있다 보니 단기간만 묵고 가는 이들이 많아 객실관리가 그렇게 깔끔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부러 숙소를 여기로 잡았기에 한국에서 들고 온 아이폰에 새로 산 미국 유심을 꽂았다.
그렇게 핸드폰을 개통하자 바로 도어대시(door dash) 앱을 설치했고, 어떤 것이 배송되는지 확인했다.
“뭐야 시발. 뭐가 없는 거야.”
혹시 몰라, 그럽허브(grub hub) 앱도 설치했고, 유버 앱도 설치를 했다.
분명 미국 시장의 음식 배달 대행업체 1위가 도어대시이고 그럽허브가 2위라고 했었다.
유버도 이제 음식 배달 대행 서비스를 하며, 유버이츠란 자회사를 만들어 런칭할 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헌데, 이 3개 앱을 설치해서 이리저리 살펴봐도 배달이 되는 음식의 가짓수가 몇 개 없었다.
공항 근처 외진 곳이라 몇 개 없는 건가 싶었지만, 미국 양대 대도시로 꼽히는 LA 인근에서 이 정도라면 다른 주(州)의 외곽지역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일단은 도어대시로 인앤아웃 햄버거 세트 2개를 시켜봤다.
“아니 시발 이거 뭐야. 배달 드라이버를 내가 찾아야 하는 거야?”
순간 머리가 멈춰버릴 정도로 충격이 왔다.
한국의 배달 대행 어플의 경우에는 가게와 메뉴만 정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배달 대행 어플은 달랐다.
가게와 메뉴를 정하고 난 이후에는 별도로 배달 기사를 고객이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인앤아웃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난 이후에는 주문자가 배달 의뢰를 올리는데, 그걸 보고 배달기사가 받아들이면(accept) 배달주문이 완료되는 것이었다.
배달 의뢰를 올리는 양식을 보니 보통 1마일(약 1.6km)당 1달러의 배달비가 들어갔다.
거기에 추가로 팁이 또 있다고 했다.
보통 미국 매너를 배울 때 음식값의 10~15%를 팁으로 줘야 한다고 했는데, 인앤아웃에서 3.5마일 정도 떨어진 르네상스 호텔이라면 배달비만 3.5불에 음식값의 10%까지 팁을 줘야 했다.
인앤아웃 버거 20불을 주문하면, 배달료만 5500원이 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도 기본규칙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이 근방에 기사가 없거나, 배달이 힘든 지역이라면 배달 의뢰를 올려도 기사들이 다 거부(decline)를 때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2만 원짜리 햄버거를 먹으면서 1만 원까지도 배달비가 나가게 되는 것이었다.
이야, 시발 이게 바로 어메리카 방식이구나.
테스트한다는 마음으로 인앤아웃에서 더블더블 버거 세트 2개에 칠리페퍼를 추가하고, 치즈와 소스가 잔뜩 올라간 애니멀 스타일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했다.
첫 주문 할인을 받고 23불이 음식값이었고, 4불을 배달료로 해서 배달 의뢰를 올렸다.
하지만, 5분이 지나도 받아들이겠다는 드라이버가 없었다.
미국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자동차로 대부분 배달을 했는데, 4천 원으로는 못 시켜 먹는 것 같았다.
눈치 게임을 하듯이 50센트씩 배달 의뢰를 계속 올렸고, 결국 6불이 되자 픽업해서 가져오겠다는 기사가 나왔다.
여기에 팁으로 또 2불이 나가야 하니 8불.
음식값의 절반에 가까웠다.
주문을 하고 나니 과연 이 배달료를 내면서 음식을 시켜 먹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예상 배달 시간 같은 것도 나오지 않았는데,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불편해 불편해. 땅이 넓으니 불편해.”
결국, 50분이 넘어서 호텔 라운지에서 음식 배달시켰냐고 전화가 왔고, 직접 내려가서 햄버거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과는 달리 호텔 객실 문 앞까지 배달은 안 되는 거 같았다.
남미 출신으로 보이는 드라이버에게 팁을 주면서 혹시 인터뷰 가능한지 물으니 30분에 10불을 주면 가능하다고 했다.
호텔 로비에서 인앤아웃 버거를 드라이버와 나눠 먹으며 이야길 해보고 싶었지만, 외부음식을 로비에서 못 먹는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호텔 밖 야외 의자에 앉아서 햄버거를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로꼬. 파트잡으로 도어대시 드라이버를 하는 거야?”
“으흠. 낮에는 주유소에서 일하고, 오후부터는 유버나 도어대시 드라이버를 하면서 벌어. 늦게까지 해야 멕시코에 있는 가족들을 데리고 올 수 있거든.”
“그럼 드라이버들 대부분이 남미 사람들이야?”
“노노. 화이트 몽키, 엘로우 몽키, 블랙 몽키, 멕시칸 몽키 etc 올 몽키 이즈 드라이버.”
한마디로 차 있는 놈들은 다 드라이버를 한다는 말이었다.
“주로 유버로 사람을 태우는 일을 더 많이 해. 아직 도어대시나 다른 음식 배달은 아직 의뢰가 작거든.”
한참 이야길 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되어 헤어졌는데, 결국 결론은 미국의 배달 대행 시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시장이었고, 이제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블루오션에 가까운 시장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블루오션이 너무 넓었기에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해야 하는 금액도 너무 클 거라는 것이었다.
우선 내일은 번화가에 있는 호텔을 잡아서 다시 음식을 배달시켜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나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붐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