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뒤통수를 맞다.
“물품 협찬입니다. 식기세척기 업체에서 협찬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물품이면 우리에게 뭔가 이득이 생기는 게 아니네. 식기세척기이니깐 그대로 출연 가게에 주는 것으로 하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물품 협찬이 사실 더 마음이 편합니다. 실질적으로 돈으로 협찬비가 들어오게 되면 MBV와 나눠야 합니다.”
한동욱 팀장이 외주제작사 계약서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40%? 미쳤네. 우리가 협찬이나 PPL을 받아와도 40%나 MBV에 줘야 한다는 말이야?”
“다른 종편의 50%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보통은 30~50%인데, 30%를 떼서 줘야 하는 곳의 경우에는 디센티브(Decentive) 조건이 또 붙게 됩니다.”
“인센티브(Incentive)가 아니라 디센티브?”
“네. 외주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일정 수준 이하일 경우에는 외주 제작사에 주는 제작비에서 10%까지 돈을 제한다는 그런 조건이 또 붙게 됩니다.”
“미쳤네.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고 제작비를 토해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우리도 디센티브 조건 붙었다면 제작비의 10% 토해내야 했겠네.”
“방송 바닥이 좀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광고비도 태우고 해서 디센티브 조건 없이 수익 배분 계약을 맺은 거라 제작비를 다시 토해내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히 방송국 놈들에게 협찬 수수료 떼주는 게 짜증 나네. 협찬받을 때 안 떼이게 물품 협찬으로만 다 받아야 되겠네.”
외주 제작비가 2천만 원에서 4천만 원까지 집행이 된다고 하는데, 잘나가는 빅4 MC 중 가장 싼 한 명의 출연료가 800만 원이었으니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외주 제작비만 받아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협찬은 마음대로 당겨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진행자와 신인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 다른 업체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리얼 스타 스튜디오의 사정은 확실히 좋은 축에 들었다.
시간이 흘러 ‘가게를 부탁해’ 2화가 방송이 되었고, 시청률도 1.9%로 유지되자, MBV에서 정규 편성을 해주기로 했고, 방송국 자체에서 나서주기 시작했다.
종편의 모기업이 언론사이다 보니 방송 프로그램을 위한 홍보성 기사를 지면과 방송으로 내어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역 빵집을 살려주는 상생의 경영!’
‘쉐프들의 요리재능 기부 방송!’
‘영세 가게의 매출을 올려드립니다!’
‘오랜만의 심금을 울리는 훈훈한 예능프로!’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칼럼 형식의 신문 기사와 일일 정보 프로그램에서도 ‘가게를 부탁해’가 나가게 되자, 그 홍보 효과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
“우리 ‘푸드 딜리버리’가 안드로이드 식음료 부분 어플 다운로드 순위 1위에 올랐습니다.”
예능 방송에서 그렇게 밀어주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어플을 켰을 때 첫 화면에 나오는 베너에 ‘투데이 가게’ 5곳을 무상으로 넣어주는 이게 큰 거 같습니다. 영업 현장에서 확실히 우리 어플이 타 업체에 비해서 우위에 있습니다.”
“서울 경기 쪽은 후발 주자이다 보니 ‘저기요’나 ‘배송의 민족’에게 우위를 점하기가 힘이 들었는데, 예능 방송과 이 투데이 가게 덕분에 20% 가까이 가맹 문의가 늘었고, 가맹점 수도 우리가 두 업체를 젖힌 거 같습니다.”
방송이 나가고 한 달 만에 배달 음식 어플의 판도가 바뀐 것이었다.
투자캠프에 가서 서울 포위공략에 나설 거라고 했던 그 말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서울 전역에 직영 퀵서비스 사무실이 생겼고, 대행 주문 건이 늘어서 흑자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방송을 통해서 우리만이 유일하게 직영 퀵서비스 기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에 더 주문이 몰린 것이기도 했다.
주문건수가 늘어나니 당연히 카드사용 건도 늘어나서 VAN 사에서 나오는 수익도 늘어났고, 부산과 서울, 경기에 퍼져있는 마트의 숫자도 22곳으로 늘어났다.
이뿐만 아니라, LT 마트 3곳과 En마트 1곳에 요리쇼 가게가 입점해서 직접 영업도 하고 있었기에 25곳의 요리쇼 업장에서 나오는 수익도 짭짤했다.
‘저기요’와 ‘배송의 민족’ 측에서 정보를 오픈하지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알아보고 수치를 비교해봤을 때 우리가 서울에서도 1위에 오른 거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제는 특별한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푸드 딜리버리로 부자가 될 일만 남은 것이었다.
“올 연말에는 흑자 전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하하하. 아직 흑자 아니잖아. 김칫국 미리 먹이지 마. 부끄럽잖아.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다들 수고했어.”
기분 좋게 회의실을 나서는데, 김독수 전무에게 전화가 왔다.
지자체 라면과 불떡 볶음면까지 넘겨줘서 그걸 소화하고 새로운 홍보 마케팅을 꾸린다고 정신이 없다고 했었는데, 전화를 한 거 보니 이제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았다.
“네. 전무님. 전화 받았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하십시오. 하하하.”
“편하게? 임 대표 아직 이야기 못 들었어?”
“어떤 이야기 말입니까? 설마, 저희가 식음료 부분 어플 순위에서 1위 한 걸 벌써 들으신 겁니까?”
“무슨 소리야. 그런 이야기 아니야. LT 그룹에서 ‘배송의 민족’ 인수하기로 했다는 거 아직 못 들었어?”
“네에? 그게 무슨... 잠시만! 다들 다시 회의실로 모여! 큰일 났다!”
김독수 전무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고, 회의실을 벗어나 돌아가려던 팀장과 실장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인터넷에는 아직 정보가 올라오지 않았기에 다들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이 인수 건이 사실인지를 알아본다고 난리를 부렸다.
“확인했습니다. 진짜랍니다.”
배송의 민족에서 일을 하다 우리 쪽으로 이직해온 이를 통해 회사 내부직원에게 확인을 했다.
“아직 세부 조정한다고 외부 발표는 나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LT 그룹이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될 거라고 합니다.”
“햐. 이 새끼들이 내가 편하게 사는 게 그렇게 불만인가. 왜 이렇게 되는 건데.”
***
“지금 푸드 딜리버리가 점유율을 늘려나가는 게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하는 스타 마트와 요리쇼의 존재가 큰 겁니다.”
배송의 민족 송종하 대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지분 인수가 아니라, 그런 오프라인 연계를 저희 LT 그룹과 함께 하는 증거로 지분을 나누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마음 편하시지 않겠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맨 밑바닥에서 하나하나 직접 일으켜 세운 회사를 넘긴다는 생각에 송종하는 마지막 싸인만을 남겨둔 상태에서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송종하 대표를 위해 LT그룹의 임원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며 계속 타이르고 있었다.
“형님. 투자캠프에서 투자받는 것을 훼방 놓은 푸드 딜리버리에게 복수를 하지 않으실 겁니까? 지금 이대로 있다가는 저기요와 푸드 딜리버리가 한국 배달 시장을 양분하게 될 겁니다. 그 둘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흐음.”
송종하는 입맛이 썼다.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창업멤버인 김항길의 말처럼 투자캠프에서 제대로 투자만 받았어도 힘들여 키운 회사의 지분 55%를 내놓지 않아도 되었을 터였다.
그런 아쉬움의 감정이 분노가 되었고, 그 분노는 회사를 넘기는데 망설였던 송종하의 마음을 움직였다.
투자를 훼방 놓았던 저기요와 푸드 딜리버리에게 솟구치는 화를 어떻게든 풀고 싶었다.
송종하는 결심한 듯 준비된 만년필을 들어,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배송의 민족을 LT 그룹에 파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 장악을 위해 협업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LT 그룹 임원의 말에 뭔가 마음이 달래어진 것 같았지만, 이제 대표이사가 아닌 10%의 지분만을 가진 임원이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
[LT 그룹 500억에 벤처 배송의 민족 지분 55% 인수. 그룹의 새로운 도약 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
경제지 신문에 배송의 민족 인수 기사가 올라왔고, 송종하 대표이사는 그대로 대표직을 유지한 채, 전국 확장을 노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협업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종민 실장이 보기에는 LT 그룹에서 송종하를 그대로 놔둘까?”
“계약서를 봐야 알겠지만, 1년은 그대로 두지 않겠습니까? LT 그룹 방식은 인수한 이후에는 그대로 두고 관심이 좀 사라지면 LT 그룹 만의 물을 들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뭔가 대기업 중에서는 가장 인건비 짜게 주는 곳으로 유명하니깐. 비싼 월급 받는 대표이사를 바꾸려고 하겠지. 그런데, 생각할수록 빡치네, 새끼들이 야구도 젓같이 하는 놈들이 이렇게 뒤통수를 깔 줄이야.”
그냥 대기업이 벤처 기업을 인수했다고 하는 거였다면 이렇게까지 열 받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놈들이 자신들의 LT 마트 푸드코트에 ‘요리쇼’ 가게를 입점시킬 때 어플이 어떻고, 배달 대행 사업이 어떻고 하면서 꼬치꼬치 물어보고 했었다.
그리고, 푸드코트 내 요리쇼의 매출을 들여다볼 수 있다 보니 LT 그룹 놈들이 이 사업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고, 이쪽에 발을 넣어 볼까 고민했을 터였다.
그렇게 정보는 우리에게 뽑아 먹고 다른 업체를 싸게 먹는 작업을 했다는 게 열받게 하는 것이었다.
“우선은 인수된 이후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고 LT 마트의 요리쇼 매장을 계속 둬야 할지 말지를 고민해야겠습니다. 시간 되었는데, 나가시죠.”
“그래 일단 반응을 보자고.”
이종민 실장과 같이 사무실을 나서는 이유가 있었는데,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사법고시에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겠다고 했던 박정진의 합격 축하 때문이었다.
학교 동문들이 모이기로 한 자리였지만, 이종민 실장은 의사인 동규와도 친구이기도 했고, 이제 정진이가 회사 고문변호사로 올 것이었기에 같이 가서 축하를 해주기로 했다.
***
“새꺄, 잘나가는 로펌에서 나를 데려가고 싶어 했는데, 내가 진짜 친구 회사에 가야 된다고 해서 그거 다 고사했다. 장&창에서도 와달라고 했다고.”
“뻥치시네. 고시 공부하더만 구라만 늘었네. 시민사회 운동했던 경력이 있는데, 무슨 장&창 로펌에서 데려간다고 구라를 치냐.”
“아니라니까. 그런 시민사회 운동하는 쪽에서 고소당한 고객들이 많다고. 그런 고객들에게 보여주기용으로 사회운동 쪽 출신들도 영입을 하고 있다고.”
“시바 시민사회 운동 쪽도 전관예우를 하는 거냐?”
“전관예우보다는 너네 수법 우리가 다 아니깐 오바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지. 사회운동 출신 변호사를 옆에 세워 두기만 해도 허튼짓은 못하니깐.”
“기세로 괴롭힌다는 거네.”
“그르치. 그런 스카우트를 내가 다 고사하고, 너네 회사로 가는 거야. 그러니깐 돈 못 버는 변호사라고 무시하지 마라!”
“웃기고 있네.”
“그런데, LT 그룹에서 배송의 민족 인수하던데, 너넨 상관 없어? LT 그룹이 나름 부산 기반이니깐 영향 있는 거 아니냐?”
“나도 그거 때문에 빡쳐서리, 뒤통수 맞았다니깐.”
정진이와 동규에게 LT 마트 푸드코트 이야기를 하며 정보 뽑아 먹혔다고 이야길 해줬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버’ 어플 안 들어오냐? 전에 내가 미국 갔을 때 보니깐 미국은 다 유버로 음식 배달도 하던데.”
“응? 동규야 그게 무슨 소리야? 유버가 택시 같은 차량 공유 어플인데, 그걸로 음식 배달을 하더라고?”
“그래. 밤에 그렇게 시켜 먹어봤어. 이렇게 미국 정보가 어두워서야 되겠나? 어플리케이션 어플의 최신 트랜드를 알아야지 뭘 할 거 아니냐. 미국 한번 다녀와. 미국에서 음식 배달대행 하는 어플이 뭐가 있는지는 아냐?”
미국에서 유버로 음식 배달을 해 먹어 봤다는 소리에 다른 의미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도어대시(Door dash)라는 배달 어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음식 배달과는 무관한 유버 차량 공유 서비스로 음식 배달대행을 한다는 말에 사고의 전환이 나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미국 가서 좀 보고 배워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