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롤 모델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2)
“퇴사자를 줄이기 위해서 이야길 했어요.”
“퇴사자를 줄이기 위해서 옛날이야기를 한다고?”
이서는 과거에 탈선했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퇴사자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게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산의 경우에는 실 수령액 200만 원에 4대 보험이 되고 하니 퀵사무실의 직영 기사를 구하는 게 어느 정도는 괜찮아요. 하지만, 서울은 아니더라고요. 기본급을 250만 원까지 올려도 직영 퀵기사를 구하는 게 힘들었어요.”
부산과 서울의 임금 차이가 25% 이상 나는 수준이었기에 기사 수급 문제가 확실히 있는 듯했다.
“겨우 구한 기사들도 절반 정도는 좀 더 많이 벌 수 있는 프리로 나가버리고요. 그래서, 대부분의 직영기사들은 군입대와 복학을 위해 휴학한 학생들이거나 제대 후 자리를 잡지 못한 고졸 학력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125cc 미만의 오토바이를 운행할 수 있기에 운전면허증만 있다면 누구든지 와서 일을 할 수 있는 진입이 쉬운 업종이 퀵서비스 기사였다.
물론, 진입이 쉬운 만큼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오토바이 배달업종에 많이 있다는 것도 현실이었다.
사람들을 관리하고 다루는 것을 잘한다고 이서를 책임자로 세웠지만, 그동안 그런 사람들을 관리한다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터였다.
“미성년자나 무면허의 경우에는 아예 받지 않았고, 정규직으로만 직영 기사를 꾸려야 하다 보니 한번 들어온 사람이 퇴사를 한다고 하면 손실이 꽤 크더라고요.”
직영기사가 되면 오토바이, 헬멧, 슈트가 기본 지급되고 사고가 나면 문제가 크기에 오토바이용 블랙박스까지 지급을 했다.
거기에 영업팀을 맡고 있는 이종민과 서비스 관련 강사에게 특강도 듣게 했기에 퇴사를 하게 되면 손해가 확실히 컸다.
“그래서, 고졸 출신인 저나 무영이가 중견기업의 관리직이 된 이야기를 해서 미래에 대해서 청사진을 그려줘야 하더라구요.”
“사람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했다는 거구나.”
“네. 미성년자 때의 일이라 전과는 안 남는다지만 그런 과거가 있는데도 회사에서는 지원을 해줬고 이렇게 책임자로 일을 맡겨준다는 이야기를 하면, 퇴사를 결심했더라도 한 번 더 고민을 하더라고요.”
따로 투자 없이 퇴사를 망설이게 하는 방법으로는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구역에 사무실을 낼 때 직영 기사 중에서 승진시켜서 구역 책임자로 배치한다고 하니 평직원일 때의 퇴사율이 확실히 줄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숨겨야 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영이의 말을 듣고 보니 뭔가 마음이 짠하면서도 나름의 직원 관리 노하우를 이서와 무영이가 만들어 냈다는 생각에 믿음도 갔다.
그러면서 나를 직장인들의 롤 모델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한동욱의 마케팅 방법과 이서와 무영이의 과거 이야기 방법이 같은 괘를 가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졸에 특별한 기술이 없지만, 믿어주는 회사에서 성실히 근무해서 승진도 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그런 롤 모델이 바로 이 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서야, 무영아. 우리 몇 년만 고생하자 우리가 시장의 절반 이상 휘어잡게 되면 그만큼의 보상을 내가 해주마. 그리고, 퇴사자를 잡을 수 있게 배달료와 수익구조에 대해서 한 번 더 살펴보마.”
퀵서비스 기사들을 좀 더 챙겨주겠다고 둘을 달래어 주었고, 요리쇼 가게처럼 별도의 법인으로 만들어서 이서와 무영이에게 지분을 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아님, 아예 지분의 10% 정도의 배당이나 이익금을 직영 기사들에게 나눠주는 그런 포상 보너스 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보면 가장 주인의식이 필요한 것이 배달기사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당근을 제시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이미지가 고객에게 그대로 심어지는 것이기에 나에 대한 롤 모델 홍보 이미지만큼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직영 퀵서비스 기사의 이미지였다.
***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자사주를 배당하듯이 지분만큼 이익을 나눠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긴 한데, 그렇게 되면 경영자인 후배님 입장에서는 손실이 생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직영 퀵기사들을 위해서 법인 분리를 변호사인 이지람 선배와 이야길 했는데, 경영주에 고용된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별도 법인을 내어서 분리한다면 따로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도 있기에 저는 법인을 분리하려고 합니다.”
“어떤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그런 방법이 있으면 분리를 하면 되는 것이지 왜 변호사에게 상담을 하러 온 건가요?”
“이게 법에 걸리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먼저 법인을 분리한 후에 제 지분을 동생에게 매각을 할 겁니다.”
“명목상의 주인을 동생 이름으로 바꾼다는 거겠지요? 아마도 지분 획득에 들어가는 돈은 자전거래로 처리할 것이고요. 맞습니까?”
“네. 그렇게 매각한 거처럼 동생에게 법인을 넘길 겁니다. 이후로 ‘빠른 친구들’ 법인은 우리와 경쟁 상대인 ‘저기요’ 나 ‘배송의 민족’의 배달 일도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허허. 경쟁사의 일을 받아 매출을 올리겠다는 겁니까? 헌데 이 직영 퀵서비스는 푸드 딜리버리의 특장점이 아니었는가요? 그렇게 되면 어플의 장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 텐데요.”
“맞습니다. 직영 퀵서비스 기사가 있다는 게 우리의 장점이지요. 하지만, 우리 점유율이 40%가 넘어가게 된다면 그런 특장점을 얼마 정도는 잃어도 괜찮습니다.”
“그럼, 시장 포화 상태를 대비하는 건가요? 지금은 서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만, 1~2년이면 아마 서울 경기 및 광역시에 다 깔리게 되니 그 이후를 대비하는 겁니까?”
“네. 지금은 세 업체 모두 우상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한국이란 나라가 작다 보니 2년이면 정체기가 올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빠른 녀석들’ 법인을 분리해두고, 정체기 때 경쟁업체의 주문배달 건을 받아먹으며 이익을 극대화할 생각입니다.”
“오호. 두 수 앞을 내다보고 하는 법인 분리라, 허허허. 역시 사업 운영하시는 분은 다르군요. 그렇다면 법인 분리와 지분 변경 건에 대해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분 관련 문제는 장기적으로 천천히 작업하도록 하지요.”
“네. 초반에 분리할 때는 퀵서비스 기사들에게 지분을 배정해 주기 위한 법인 분리 작업이라고 이야길 할 겁니다. 8%는 직영기사 모두에게 이익금을 배정하는 것으로 하고, 김이서와 박무영에게는 각각 1%씩 배정하는 것으로 해주십시오.”
“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참. 정진이가 사시 2차에 붙은 거 같습니다. 연수원 나오고 하면 올해 말에는 변호사가 될 겁니다.”
“오! 벌써 결과가 나왔습니까? 3차도 있는 거 아닙니까?”
“3차는 면접이다 보니 떨어지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2차가 제일 중요하지요. 일단 시험 문제와 적어낸 답을 물어보니 무난하게 합격할 것 같습니다. 본인도 자신 있어 하구요.”
“다행이네요. 정진이 결과 나오면 그때 한번 찐하게 한잔하지요.”
***
“흠. 그러니깐 일주일에 하루는 퀵서비스 기사로 일을 하라는 말이지?”
“네. 대표님. 내일은 관악구에서 직접 콜 받아서 배달하고 하십시오. 그러면서 뭔가 미담을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마케팅 팀장인 한동욱은 직장인들의 롤 모델 만들기를 위한 첫 번째 작업으로 퀵서비스 기사 체험을 요청했다.
“무모한 도전의 박맹수 개그맨도 치킨집을 경영했을 때 쉬는 날이면 나와서 치킨 배달을 했었습니다. 그런 이미지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보니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흠. 일단 누군가가 알아줄 때까지 해야 하는 거구만.”
금요일부터 오전 10시부터 이서가 준비해준 헬멧에 슈트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일을 하기로 했다.
“투잡으로 오늘부터 일하게 된 임건우입니다.”
“오, 직영 직원 구하기 힘들다고 이제는 투잡으로 비정기적으로 일하는 기사도 뽑는구만.”
[띠리링!]
기사들과 커피 믹스나 한잔하며 애로사항에 관해서 물어보고 하고 싶었는데, 내가 지급받은 핸드폰에 바로 콜이 잡혔다.
직영기사이기에 우리가 콜을 잡는 게 아니라, 가맹점에서 직영기사를 지정해서 잡는 것이라 통보가 오는 것이었다.
허겁지겁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였고, 오후 3시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할 만큼 배달을 했다.
이후로 한솥 도시락에서 납품받은 도시락을 먹고, 2시간 정도 쉬고 있으니 또 바로 콜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 8시가 넘어가자 콜이 뜸해졌고, 제대로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을 시간이 나왔다.
“어떻소? 할만하오?”
“빡센데요. 화장실 가는 게 제일 힘드네요. 우리 스타마트 화장실이 없었다면 진짜 화장실 가는 게 제일 힘들었을 거 같습니다.”
“하하하. 며칠 일하다 보면 상가 건물이나 빌딩의 개방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될 거요.”
그렇게 매주 금요일마다 서울과 경기도의 빠른 친구들 퀵서비스 사무실을 돌다 보니 확실히 20대 초반 젊은이들은 입사와 퇴사를 자주 하는 게 보였고, 40대 이상의 장년들은 빠른 친구들에 어떻게든 오래 근무하려고 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런 오래 있으려고 하는 40대 이상의 기사들이 더 친절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물론, 어느 부분은 군대처럼 상명하복식의 내리 갈굼 같은 문제도 있었지만, 애초에 다들 바쁘다 보니 기사들끼리 얼굴을 마주치고 뭘 할 시간이 없었다.
***
“두 달 동안 9일 넘게 퀵서비스 기사 일을 하셨는데, 뭔가 미담 같은 건 없습니까? 배달하러 가는 길에 길 건너는 할머니를 돕는다든지 하는 그런 일 말입니다.”
“전혀 없는데. 그런 미담이 꼭 있어야 하는 거야?”
마케팅팀 한동욱은 답답했다.
“진짜 너무 열심히 배달 일만 하신 겁니까? 언론 플레이를 하려면 회사 대표가 직접 말단 사원이 하는 일을 매주 하고 있다고 하는 그런 스토리가 필요한데. 거기에 착한 선행이 딱 들어가야 화룡점정이 되는 겁니다.”
“하하. 그런 게 잘 안 보이던데.”
“그러면 어쩔 수 없지요. 조작해야겠습니다.”
“조작?”
“네. 미담 제조를 위해 조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걸리면 오히려 박살 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안 하면, 이벤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시간이 걸립니다. 저와 대표님 딱 두 명만 아는 거로 작업해야겠습니다.”
“어떻게 작업하려는 건데?”
“제일 쉬운 작업을 해야지요. 일단 같이 서울 한 바퀴 하면서 대표님이 오토바이 타고 쭉 움직이는 겁니다. 그러다 건널목 신호에 걸리면 그때 지나가는 노약자분을 돕는 걸로 조작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 뒤를 따라오는 한 팀장 차의 블랙박스 영상으로 작업하겠다는 거네.”
“네. 그렇게 작업을 치죠.”
“흐음.”
선행을 하기 위해 계속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계속 움직이다가 건널목을 건너는 노약자를 돕는다는 것은 조작일지라도 선행이긴 했다.
“그렇게 하지.”
***
“에이 또 비가 오냐.”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에 투덜거리며 배달 출발을 했는데, 한동욱 팀장의 승용차가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블랙박스에 찍히는 것이다 보니 평소보다 더 교통법규를 잘 지켰고, 신호등에 걸렸을 때나 건널목에 있을 때는 도울 만한 사람이 없는지 좌우로 살폈다.
“어어엇?”
[콰당당탕!]
건국대 앞 이면도로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를 하는데, 비보호 좌회전을 하던 차가 빗길에 미끄러졌는지 인도를 침입해서 사고를 일으켰다.
“대표님 뭐하십니까? 어서 가서 도우세요!”
“한 팀장! 너무하네!”
사고가 났다고 빨리 움직이라고 닦달하는 한동욱을 보니 사이코패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