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 롤 모델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1)
“CS는 Customer Service 고객 서비스입니다. 새롭게 팀이 만들어지고 운영이 될 때 최고의 지향점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CS팀의 제1 가치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아닙니다.”
새로 생긴 CS팀의 팀장이 된 각오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를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김준환 팀장은 고객 서비스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길 했다.
“그럼, CS팀의 제1 가치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CS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것입니다.”
“직원들과 고객 모두가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정확하게는 고객으로부터 직원들이 상처받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객의 만족을 위해 직원이 고개를 숙이고, 최선을 다하는 CS방식은 예전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들의 만족도를 올려주면, 자연스레 만족스러운 고객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 최근의 추세입니다.”
“직원이 만족해야 고객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거군요.”
“네. 상담원과 고객 서로가 상대를 존중해준다면 최고겠지만, CS팀에 전화를 했을 정도라면 사실상 존중보다는 불만이 가득한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 고객에게 직원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관리해주는 것이 팀장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CS팀장으로 김준환을 뽑았을 때, 학사장교로 5년 근무를 했다는 이력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뽑았었다.
대위로 제대를 해서 그런지 팀원들을 부대원으로 생각하고 이끌려는 것 같았다.
“해서, 푸드 딜리버리의 업무를 파악하는 한편 크레임 건별 카테고리를 만들어 유사한 크레임에 대한 데이터화를 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데이터화가 되면 고객의 크레임에 손쉽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에 근무했던 쇼핑몰 CS팀은 대부분 데이터화를 해서 정해진 응대를 하게 되어 있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정해진 응대를 하게 되면 직원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줄어듭니다. 다만, 정해진 응대만을 하게 되면 일에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 일상화가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김준환 팀장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고객의 크레임에 정해진 답만 하는 사람이라면 기계 응답이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해진 답을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그런 상황이 일상화되어 고객의 불만에 공감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큰 CS팀의 경우에는 보직을 변경해 줌으로써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만드는데, 푸드 딜리버리처럼 처음 시작하는 단계의 CS팀에서는 팀장이 그런 일상화 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CS일의 일상화를 경계하겠다는 김준환의 말에 동의했다.
“이 일의 일상화를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합니다. 가까운 일례로 ‘스타마트 싸움’으로 실시간 검색어가 떴을 때를 기억합시다.”
갑자기 나온 스타마트 싸움 이야기에 김민욱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늘 해왔던 일이기에 긴장하지 않고 일을 하게 되면 그런 사고가 나게 됩니다. 일의 일상화를 경계합시다. 늘 새로운 일이라고 매일의 업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네엡!”
“그럼, CS팀의 데이터화와 직원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홍보 마케팅팀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마케팅팀의 팀장인 한동욱은 180cm 정도 되는 키에 100kg은 될 것 같은 큰 덩치를 가졌는데, 혼자서 회의실 앞에서 꼼지락거리더니 PPT를 띄웠다.
하루 만에 준비를 한 것 같았다.
“푸드 딜리버리에 입사 지원을 하며 조사했던 것들이 있기에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회의 기록에서 보았던 요리쇼를 기준으로 만들자는 밑 작업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업계의 기준점이 될 수 있게 바이럴 작업을 한다는 것은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굉장히 좋은 마케팅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동욱은 네인버의 블로그를 비롯해서 네이튼 사이트의 ‘Pan’과 cook82 등의 커뮤니티를 나열했다.
“상기의 사이트에서 남자와 여자 쪽에 맞추어서 ‘요리쇼’를 기준점으로 만드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대표님에 대한 작업도 준비 중입니다.”
“나에 대한 작업? 그게 어떤 거지?”
한동욱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PPT 안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산청군에서 생산되는 무청이 산청군 한방 라면에 그대로 들어갑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산청에서 생산된 재료로 만드는 한방 라면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이건, 예전에 라면 사업을 할 때 나온 거잖아?”
KBC1 채널의 6시 우리 고향에 나와서 영농 후계자처럼 농사꾼으로 출연했던 영상이었다.
“네. 2년 6개월 전. 연수로는 3년 전의 영상입니다. 비서인 김민지 씨에게 회사 관련된 영상들을 받아 보니 있더군요. 이걸 보고 나선 왜 대표님을 띄울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의아했습니다.”
“그야 당연히 홍보 마케팅 담당이 없었으니깐 그렇지. 그런데, 저걸 보고 띄울 생각이 들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영상 속의 대표님은 농약 이름이 들어간 초록색의 모자를 쓰고, 군청색의 긴 팔 PK티셔츠를 입은 전형적인 영농 후계자입니다.”
딸깍!
영상이 넘어가며 영상 속 영농 후계자의 사진과 투자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찍은 정장을 입은 프로필 사진이 나란히 놓였다.
“두 사진을 보면 엄청난 갭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3년 전 영상 속 농사꾼인 나와 한껏 꾸민 회사 대표의 얼굴이 분명 같은 얼굴의 나였지만, 엄청난 차이가 났다.
그리고, 3년이나 지난 사진이 오히려 더 젊어 보이는 게 재미있었다.
“대표님 회춘하셨네요.”
“이러면 산 좋고 물 맑은 산청보다는 공기 안 좋은 서울이 더 좋은 거 아닙니까? 하하하.”
“진짜 남자도 관리네요. 관리.”
“갭이 진짜 크네요.”
“이겁니다. 단 3년. 이 영상 속 청년은 어떻게 3년 만에 IT 기업의 대표가 되었을까요? 아, 청년은 아니고, 남자로 수정하겠습니다. 하하.”
“두 번 멕이네. 그런데, 진짜 한 팀장의 말처럼 이 두 사진을 보고 3년 후 이렇게 변했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다 궁금해하겠어.”
“맞습니다. 얼마 전 죽은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그리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까지 그들은 모두 다 자기들만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애플과 MS, 페이스북을 만들었는지 모두가 궁금해합니다. 한마디로 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들이라는 소리입니다.”
“그건 인정해. 근데, 내가 저 세 사람에 낄만한 급이 아니잖아.”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대표님이 이룬 것을 보면 국내에서는 저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만합니다.”
“이거 한 팀장이 너무 띄어주는 거 같은데, 떨어질 때 많이 아픈 거 아냐.”
“아닙니다. 평범한 대기업 직장인에서 매제와 함께 만든 라면이 대 히트!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라면 사업을 위해 경남 산청으로 낙향. 일단 여기까지만 하면 별거 없는 성공 후 은퇴입니다. 하지만, 지자체 라면으로 8천만 개의 라면을 판매할 만큼 라면계의 거물이 되었지 않습니까? 이것만으로도 직장인 봉급쟁이 신화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진짜 그 정도야?”
“물론입니다. 근래 2000년대 이후 봉급쟁이로 이 정도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카카오나 네이버 있잖아.”
“그쪽은 90년대였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 없이 바로 벤처 창업이었기에 이야기가 다릅니다. 강조해야 할 부분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직장인이 창업 후 성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면을 대기업에 매각해서 천억 이상의 이득을 얻었다. 하는 이야기. 이 정도면 책이 나와도 벌써 나와야 하는 겁니다.”
“흠흠. 한 팀장이 금칠을 너무 잘해주네.”
“그리고, 천억 이상의 자산가가 되었지만, 은퇴하지 않고, 푸드 딜리버리와 스타마트를 창업해서 1년 거래금액이 5천억에 근접하게 되었다는 것은 직장인 성공신화로 불리기에 충분합니다. 이렇게 좋은 홍보 대상이 있었는데, 활용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직장인 성공 신화로 해서 나를 앞세우고, 내가 만든 푸드 딜리버리를 홍보하겠다는 전략이라면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진짜 이게 먹힐까?”
“물론입니다. 지금 시대에 직장인들의 롤 모델이 되어줄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대권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백신 프로그램의 김철수 씨의 경우에는 의사 아버지라는 배경이 있지만, 대표님은 그런 배경도 없이 진짜 비빌 언덕도 없는 직장인이었지 않습니까?”
“비빌 언덕 없는 보통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상황과 같은 나를 롤 모델로 투영한다는 거로군.”
“네. 그겁니다.”
한동욱은 회의에서 말하지 않았지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있고, 그 문제로 이혼해서 고향인 부산으로 갔다는 스토리까지 들어가면 직장인들의 롤 모델로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픔이 있고, 일어서야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이 성공했으니 그 이야기를 들은 자신도 그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이미지 마케팅의 경우 그 주인공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 유명세가 타격으로 더 크게 다가올 테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글 이유는 없었다.
모든 직장인들이 부러워하고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는 롤 모델로 이보다 좋은 사람은 없었다.
“그럼, 기업 관련 뉴스를 내는 맨경비즈나 함경비즈 같은 신문사에 인터뷰하고 하면 되는 건가?”
“그건 옛날 방식이고, 그렇게 하려면 들어가야 하는 돈도 몇천이 필요합니다. 우선, 커뮤니티에 저 갭이 큰 사진으로 글을 올려 사람들의 반응을 볼 것입니다. 그러면 그 커뮤니티의 글을 보고 여러 매체에서 문의가 올 겁니다. 그때 자연스럽게 언론에 등장하면 되는 것입니다.”
“치밀하게 설계를 해야 하는 거군.”
“네. 그만큼 온라인으로 바이럴하는 수준이 올라갔습니다. 기준점을 만드는 작업과 더불어 대표님을 롤 모델로 만들어 회사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믿어보지. 그럼 일단, 내가 좀 더 바른 생활을 해야 하는 거네. 어디에 기부금도 좀 내고 봉사활동도 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좋긴 좋은데, 사실 김이서 실장과 박무영 팀장과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응? 벌써 거기까지 회사와 창업 멤버를 들여다본 거야?”
“이미 퀵서비스 쪽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이던데요. 탈선 청소년이었던 실장님과 팀장님을 갱생시켜서 회사의 중요한 직책을 맡겼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어딘가에 기부금을 내는 것보다도 더 사람들을 감동하게 할 이야기 소재입니다.”
“두 사람 괜찮겠어?”
“전 괜찮습니다. 퀵서비스 사무실 쪽에서 그렇게 직접 이야기도 하는데요 뭐.”
이서는 괜찮다고 했고, 옆의 무영이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두 분 실장님과 팀장님이 동의해 주시니 이 미담까지 해서 한번 작업을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홍보 마케팅팀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것이 정해지고 회의를 끝냈지만, 뭔가 찝찝했다.
분명 청소년기의 탈선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때의 일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 당연했다.
헌데, 이서와 무영이는 그런 과거를 숨기지 않고, 아예 퀵서비스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왜 그런지 궁금했다.
따로 둘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