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시간을 사다.
“불떡볶음면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팔고 싶다는 건 이해를 해. 그리고 우리에게도 확실히 이득이 되는 일이야. 하지만, 대기업도 대기업의 사정이 있다고.”
“거산에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겁니까?”
“대기업이라고 늘 돈을 쌓아두고 있는 게 아니야. 거산도 유동성이 늘 좋은 게 아니거든. 특히, 해운대 라면을 인수한 이후 아직 그 인수 금액도 벌어들이지를 못했어.”
거산은 해운대 라면과 공장을 인수하며 700억을 썼었다.
2년 차니 아직 그 돈을 다 회수하지 못한 것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그 인수 금액도 다 회수도 못 했는데, 이번에 또 불떡볶음면을 사 오기 위해 몇백억을 써야 한다고 하면, 이사회에서도 불만이 나올 거라고. 아무리 후계자파와 외파가 합쳐진 라면 사업팀이라지만, 2년 동안 천억 이상 투입하는 건 문제가 생긴다고.”
“우리 두 계파가 힘을 합칠 때는 파트너스 파에서 회사 이익을 빼돌린다고 생각하고 태클을 걸 수 있지요.”
이재영 상무도 김독수 전무의 말에 동의했다.
“아무리 실세들이 움직이는 팀이라고 해도 2년 동안 그룹에서 천억 이상을 빼서 투자하거나 인수하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더구나 700억을 주고 인수해온 라면 사업팀의 매출도 부진한 편이기에 돈을 더 쓴다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아쉽네요.”
두 계파가 힘을 합친다고 투자사인 파트너스 임원들이 훼방을 놓을 수도 있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거산이 나름 비빌 수 있는 언덕이라 여겼는데, 그 언덕도 이름처럼 큰 언덕이 아니었다.
“임 사장이 지금 ‘푸드 딜리버리’를 서울에 상륙시키기 위해 실탄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서, 불떡볶음면을 인수하는 것보다는 회사 차원에서 푸드 딜리버리에 투자를 하는 건 가능해. 투자를 받는 건 어때?”
“지분을 넘겨주는 조건의 투자라면 제가 사양하겠습니다. 사실 몇 개월만 서울 진출을 늦춘다면 필요한 자금이 들어올 겁니다. 지금 불떡볶음면을 팔려고 하는 이유는 그 몇 개월이 아깝기 때문이었습니다.”
“잠시만요. 임 사장님이 지금 이야기한 몇 개월 후 돈이 들어온다는 게 지자체 라면의 새 계약에 따른 수주금액을 이야기하는 겁니까?”
“네. 이 상무님. 지자체의 이름을 건 지자체 라면이 지역 특산물 화 되어 평판이 좋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그대로 사업을 다시 계약할 겁니다.”
지자체 46곳이 그대로 사업을 다시 진행한다면 사업수주 금액만 1400억대 이상이었다.
거기서 순이익이 대략 350억 내외로 떨어지니 몇 개월만 기다린다면 총알은 자동으로 채워질 것이었다.
물론, 이 지자체 라면 사업에 거산을 끌어들여 서로 수익 배분하기로 했기에 내 손에 떨어지는 순이익은 200억 정도였다.
지자체 라면의 200억에 불떡볶음면에서 들어오는 수익 금액까지 하면 대략 300억.
여유 있지는 않아도 충분히 서울 진출을 위한 총알이 되어 줄 수 있었다.
“몇 개월의 시간. 아마도, 지자체에서 라면 사업을 재 발주하고 계약 완료 후 1차 납품을 하면 빨라도 6개월이 걸리겠군요. 늦으면 9개월까지도. 김 전무님께 듣기로는 이미 경쟁자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고 하던데, 그 몇 개월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재영 상무의 몇 개월이 아깝다는 말에 임건호도 동의했다.
하지만, 지분을 내주며 투자를 받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그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바로 거산의 계파문제였으니깐.
“불떡볶음면보다 푸드 딜리버리 어플이 더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인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지분을 조건으로 한 투자 건은 일절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오늘은 그냥 맛있는 음식을 먹고 헤어지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아깝지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불떡볶음면뿐만 아니라, 지자체 라면과 관련된 모든 권리를 다 넘기는 인수계약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재영 상무의 말은 지금 내가 가진 라면 관련된 사업을 다 넘기라는 말이었다.
“흐음.”
나보다도 먼저 김독수 전무가 침음성을 흘렸다.
“이 상무 말처럼 그렇게 한다면 또 회사에 이야기할 수 있는 면이 서긴 하지. 라면 브랜드 하나를 사는 게 아니라, 지자체 라면 전체를 사는 것이니깐.”
지자체 라면은 스타 코퍼레이션의 로고를 붙여서 생산이 되고, 유통은 거산이 맡아서 팔아 주고 있었다.
거산은 그 유통만을 맡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예 라면과 관계된 모든 것을 거산이 다 인수를 해버리게 되면 1년에 2억 개 가까운 라면 매출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인수 규모가 되면 파트너스 사람들도 설득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자체 라면과 불떡볶음면이 1년에 가져다주는 이익이 얼마입니까? 통상 인수 조건은 5년 치 수익금을 계산해서 인수를 합니다. 그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임 사장님이 알려주시면 인수 건이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매출이나 수익을 부풀리더라도 실사를 하게 되면 다 들통나는 것이라 사실 그대로 이야길 할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 라면과 불떡볶음면은 매년 300억에 가까운 이익을 제게 안겨주고 있습니다. 통상 이익의 5년 치 금액이라면 1500억이 되겠군요.”
“1500억이라. 그리고, 생산 공장인 태양 식품 제조에 지분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라면 관련이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문 사장님이 차리는 공장에 투자를 한 것이라 제 라면 사업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공장 지분은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김 전무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난 불떡 볶음면 인수해달라고 할 때부터 라면보다 어플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헌데, 볶음면 뿐만 아니라, 지자체 라면 전체의 사업권을 다 넘기는 거라면 이것도 괜찮을 것 같아.”
해운대 라면과 불떡 볶음면의 쌍두마차에 9천만 개 이상 생산되는 지자체 라면의 사업 권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일전의 700억에 1500억 해서 2200억 원의 투자로 업계 3위가 될 수 있는 수치였기에 신규 라면 제품 생산과 마케팅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했을 때도 이득이었고, 거산의 힘으로 제대로 된 마케팅과 수출을 한다면 이익률도 더 끌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수 건이 성사 된다면 최대한 빨리 500억을 집행해 주고 내년 초까지 잔금 1000억을 집행해 줄 수 있을 거야.”
라면 전체를 인수해가겠다는 김독수 전무의 말이 귀와 머리를 채웠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가만히 놔두고 조금씩만 노력해주면 5년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지금 돈이 들어가야 하는 시기에 바로 쓸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금융권에 이 사업 담보를 걸고 돈을 빌릴까도 생각을 했지만, 이어 들려온 김독수 전무의 말에 가슴이 서늘했다.
“그리고, 말은 제대로 하자고, 입으로는 내 자식입네 하면서 우리 거산에게 오면 더 크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미 자네나 스타 코퍼레이션 사람들의 마음에서는 라면이 떠난 지 오래잖아. 그저 때가 되면 돈이 나오는 캐시카우 정도로 생각하고 있잖아. 안 그래?”
애정이 사라졌다는 김독수 전무의 팩트 폭력에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푸드 딜리버리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 투자캠프에 참여를 했었고, 여러 투자사들이 달라붙어 무조건 성공할 것처럼 투자를 하겠다고 했기에 어느 순간 내 마음속에서 라면은 지워지고 푸드 딜리버리만이 가득했었다.
그저 때가 되면 돈을 벌어주는 그런 기반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초창기 때의 애정은 이미 사라지고 말았었다.
용심과 공두기라는 거대 라면기업이 버티는 시장에서 싸우기 보다 아직은 신세계의 블루오션인 배송 대행 시장에서 1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라면에 대한 애정을 없애 버린 것이었다.
1위가 되지 못한다면 1위가 될 수 다른 걸 해라는 경영학의 말처럼 지금 1위가 될 곳을 찾았으니 1위 못하는 라면을 팔아 치우는 것이 경영학의 입장에서는 맞았다.
하지만, 매제를 성공 시켰고, 지금의 자본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라면 시장이라는 생각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정을 못하는 구만. 쉽게 생각해. 투자캠프에서 양아치 짓까지 하며 다른 두 곳의 투자를 막았다면, 그 두 곳의 시간을 멈추게 한 거야. 적을 멈추게 하고 자신은 앞으로 나아가면 금방 역전을 할 수 있다고. 결정을 못해서 같이 멈춰 있을 거야?”
“아니요. 라면을 팔아 시간을 사겠습니다.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래. 잘 결정했어. 이 상무가 서류 쪽은 더 잘 아니깐. 계약 조건이나 실사 쪽을 맡아줘. 난 이번 연도 지자체 라면 영업에 힘을 쏟을 테니깐.”
“그렇게 하지요.”
불떡 볶음면만을 팔려고 했던 것이 집안 살림의 중심이었던 라면 전체를 다 팔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물론, 태양 식품 제조 공장의 지분은 그대로 남아있겠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임 사장 얼굴 풀어. 무슨 조강지처를 도박 판돈으로 팔아치운 그런 표정이야. 몇 개월의 시간을 산 거라고 생각하라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산 거야.”
“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쟁자들이 멈춰 있을 때 어떻게든 치고 나가야지요. 대신에 우리 마트에 납품 되는 건 진짜 원가에 주셔야 합니다. 아예 이 부분도 계약서에 넣어 주십쇼.”
***
며칠 후 거산에서 실사가 나왔고, 여러 가지 조율이 있고 난 뒤 라면과 관련된 모든 것이 거산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세금 문제와 기타 문제로 인해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1300억 남짓이었다.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도와준 라면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한 달 후 100억씩 매각 금액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라면 녀석들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고 간다는 생각에 고마웠다.
“거산도 인수에 들어간 금액을 다 뽑기 위해서는 최소 5년은 걸릴 거야. 그때까지는 라면 사업팀을 맡은 우리 두 사람도 이사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눈치 보다 전무님이 잘리시면 우리 회사 거산 담당으로 스카웃해 드리겠습니다.”
“미친놈. 나중에 이건 마무리 되면 어플에 대한 개인 투자나 받아줘.”
“전무님이 개인 투자 하는 거라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거산에서 들어온 총알이 있으니 김민욱은 바로 시흥시 안현 분기점 인근으로 물류지를 마련했다.
인천과 서울 강남을 다 커버할 수 있는 위치라고 했다.
이후 마트가 늘어 가면 경기도를 같이 커버할 수 있는 경기도 광주시나 성남시 인근에 2차 물류지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물류 지가 만들어 지고, 퀵서비스 사무실과 마트의 준비가 서서히 끝나가자 투자캠프에서 투자의향서를 받았던 투자처들과 진행 중이던 상담 건을 모두다 취소를 해버렸다.
펀드들과 금융계 투자부서에선 황당해 했지만, 다른 경쟁 업체의 투자를 막는다는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기에 털어낼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동작구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부산에서 했듯이 각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ICT 분야 사업을 동작구청 지역 경제과에도 하자고 제안을 했었다.
“오 그래? 어떻게 되었어? 진행 하자고 연락이 왔어?”
“그게. 동작구에는 이미 요식업 관련 산업화 서비스가 민간에서 진행되고 있기에 민관 합동 사업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합니다.”
“에이 까였네. 서울은 좀 다르구만.”
구청에서 공문을 뿌리고 해서 들어 가 줘야 영업팀도 일을 하기 쉽고 보급이 빠를 텐데, 아쉬웠다.
영업사원들은 맨땅에 헤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트, 퀵서비스가 노량진과 영등포구에 준비되자 모델학과 출신의 모델 50명을 동원해서 할인 쿠폰 뿌리기를 시작했다.
***
“스타 코퍼레이션의 기업정보가 나왔습니다.”
저기요의 최기영 대표와 독일인 하스만은 얼른 서류를 받아서 확인했다.
기업정보를 전문 업체에 부탁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정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거산 출신에 해운대 라면과 불떡 볶음면을 개발한 회사라. 지자체 라면과 엔터 회사도 같이 운영 중이라고?”
최기영은 기업정보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순 벤처가 아니라 제조업을 가진 기업이었기 때문이었고, 직원이 200명이 넘는다는 인적 구성에도 놀랐다.
“제길 이거였군. 투자캠프에서 투자 받기로 했던 것을 다 캔슬 했던 이유가 있었어. 맨 뒤 최근 근황을 봐봐.”
하스만의 말에 최기영도 최근 동향을 봤다.
최근래에 거산에서 투자를 받았다는 정보가 있었고, 그 투자 규모가 천억 대로 추정된다는 정보였다.
그리고, 물류 지를 시흥에 만들었다는 것 까지 나와 있었다.
“그놈이 이야기 한 대로 서울 공략을 시작했네. 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