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 선택과 집중을 결정하다.
“이재영 상무? 그쪽은 왜 보자는 건데?”
“판단이 서서 그렇습니다.”
“판단? 무슨 판단?”
“그건 이재영 상무까지 있을 때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거산에 좋은 일이니 날 좀 잡아 주십시오.”
김독수는 자신의 경쟁자나 마찬가지인 이재영 상무와 같이 보자고 하는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산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소리에 날을 잡기로 했다.
“다음 주에 바로 보지.”
***
“대 놓고 우릴 몰아내겠다고?”
“아니, 이 시발! 지금 따지러 갈까요?”
저기요의 한국 지사장인 최기영과 한국인들은 푸드 딜리버리의 도발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보고는 당장 따지러 가려고 했다.
“노. 저게 당연한 겁니다. 우리가 너무 주변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배송의 민족만 잡으면 된다고 여긴 우리의 실착입니다.”
부사장인 독일인 하스만은 외국인의 억양으로 또박또박 이야길 했다.
“식사를 했을 때 우리는 저들을 보며 지방에서 올라온 촌놈 취급을 했습니다. 우리가 정보가 너무 없었습니다. 단순히 지방이면 서울보다 못하고, 재정적으로도 좋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고 생각한 우리의 잘못입니다.”
하스만의 말에 다들 당장 찾아가 따지려는 마음이 사라졌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영세업체라 생각했는데, 실제 까보니 서울이란 우물안에 갇혀서 제대로 보지 못한 건 자신들이었던 것이었다.
같은 우물 속 눈앞에 보이는 배송의 민족만 잡으면 천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이 한심했다.
“다들 너무 감정적입니다. 릴렉스하세요. 경영은 얼어붙을 만큼 차가워야 합니다. 스타 코퍼레이션이란 회사의 정보 자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업 정보 업체에서 다음 주에나 알려줄 수 있다고 합니다. 워낙에 회사가 알려진 게 없다고 합니다. 보통 이 정도 규모면 금융권이나 언론사 쪽으로 뭔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답니다.”
“그렇다면 진짜 다크호스라는 말이군요. 최대한 빨리 기업정보를 달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방금 투자 미팅 건이 취소되었습니다. 성사되지 않더라도 처음 우리가 투자캠프에 온 목적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먼저 연락을 하세요.”
하스만의 말에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기요’ 업체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이 또 있었다.
배송의 민족이었다.
그들은 업계 1위라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자연스레 자신들에게 투자가 집중될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성과를 상회하는 푸드 딜리버리의 발표에 제대로 된 투자 상담이 다 취소가 되어 버렸다.
투자캠프가 끝이 났을 때는 인맥으로 투자받은 5억이 전부였다.
“200억 이상 투자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송종하 대표는 5억이라는 투자의향 결과에 참담함을 느꼈다.
그리고, 푸드 딜리버리가 서울에 오게 된다면, 진짜 그들이 프레젠테이션한 결과처럼 서울의 앞마당도 공략을 당할 판이었다.
“대표님. 이미 저쪽은 마트를 가지고 직배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같은 서비스를 해야 밀리지 않을 겁니다. 직접 차려서 운영하기 힘들다면 다른 마트와 연계라도 해야 합니다.”
“동감합니다. LT 마트와 En 마트는 저쪽이 진행중이라고 하니 우리는 집 플러스 마트와 연계를 하도록 합시다.”
투자를 제대로 받았다면 마트를 직접 운영하는 전략을 세웠겠지만, 투자캠프가 실패했기에 연계를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송종하 대표는 투자를 받아 실행하려던 계획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투자캠프에서 경쟁사들을 제대로 확인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실패한 투자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부산에서 올라오는 것도 모르고 뒤통수를 맞았을 거다.’
송종하는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
“매주 요리쇼가 진행되고 사람들이 몰리고 있으니 이제는 데프리카 TV를 따로 운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유튜브에서만 방송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결혼식장의 웨딩 촬영을 전문으로 했던 황일환은 자신의 부사수 두 명과 함께 우리 쪽으로 이적을 했다.
방송 쪽이다 보니 소속은 동생의 더 비치엔터였지만, 실제 일은 이쪽에서 하다 보니 우리 회의에도 참석하고 근무도 같은 사무실에서 했다.
“좋네요. 김민욱 실장님. 서울 1호 마트는 어디로 할지 결정했습니까?”
“네. 서울에서 살다가 온 개발팀 강민호 팀장과 채학인 팀장에게 도움을 받았고, 퀵서비스 사무실을 운영할 김이서 실장과도 논의하여 결정을 했습니다. 첫 진출지는 동작구의 노량진으로 결정했습니다.”
“노량진요?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 배송의 민족이나 저기요는 대 단지 아파트가 있는 강남 3구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요.”
“구매력이 높고, 아파트 단지이기에 배달이나 기타여건도 좋으니 경쟁사들이 강남 3구를 중요시여기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두 업체가 가장 중하게 여기는 곳에 먼저 발을 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싸움을 피하자?”
“네. 지금은 싸움을 피해야 합니다. 나중에 서울에서 4곳 이상의 마트와 직영 퀵서비스 업체가 준비가 되면 그때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은 진출하자마자 싸우면 손해만 볼뿐입니다.”
싸움을 피해야 한다는 말에 쉽게 수긍했다.
싸울 수 있는 기반을 닦은 후에 싸워야 했다.
“노량진은 전국에서 올라온 공시생도 많고, 젊은이들이 모이는 동네입니다. 다들 돈이 없지만, 또 치킨 한 마리에 술 한잔할 수 있는 고시촌 쪽방이 있으니 처음 진출해서 공략하기 좋다고 봅니다.”
“다들 이견 있습니까?”
이미 실무를 맡은 이들이 다 협의를 했기에 문제가 없었다.
“대신에 마트를 2곳을 열 생각입니다.”
“푸드 코트를 만들 공간이 안 나오는 겁니까?”
“그것도 있지만, 노량진의 특수성이 있습니다. 일반 마트도 있지만, 유통기한 임박 상품만을 파는 특이 마트가 있습니다.”
“유통기한 임박 상품만 파는 마트라고?”
“네. 임박몰이니 떠리몰이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주머니가 가벼운 고시생들이 자주 찾습니다.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라고 해서 뭔가 나빠 보이는 그런 느낌이 있지만,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흠. 그 임박 상품을 푸드 딜리버리에서도 팔아도 될까? 유통기한 임박이라면 싸게 파는 것이니 이익이 거의 나지 않을 것 같은데.”
“네. 이익은 작을 겁니다. 단가가 싸니깐요. 하지만, 회원 수를 늘릴 수는 있습니다.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라고 좋지 않게 보지만, 실제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 70%의 가격에 온라인에서 판매가 되면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사람이 몰립니다.”
“다들 돈을 아끼기 위해서 그렇게 몰리는 거겠군. 이거 뭔가 마음이 짠한데.”
“사장님. 유통기한 임박인 것이지 지난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물품입니다.”
“그래. 내가 너무 생각이 많은 거 같네. 계속 이야기해.”
“이 임박 상품을 어플과 연계된 홈페이지에서 같이 판매하기 위해서 일반 마트 한곳과 임박몰 마트를 같이 노량진에서 운영할 계획이며 요리쇼를 위한 푸드 코트는 노량진에 설치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요리쇼 대신에 유통기한 임박 상품으로 사람을 끌겠다는 거군.”
“네. 이후 영등포에 추가로 마트와 퀵서비스 사무소가 들어서면 그때 요리쇼를 위한 푸드코트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오케이 그렇게 하자고. 또 다른 건?”
“서울 진출을 위한 물류 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를 위해 물류 팀을 정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류 팀? 그러고 보니 부산은 구서동의 창고를 물류지로 써왔지만, 서울은 그런 곳이 없군. 땅이 문제인데.”
그렇지 않아도 부산에서 마트를 인수하고 하는 것과 서울에서 인수해서 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주차가 3~4대라도 가능한 공간의 작은 마트를 인수하는 데만 해도 2~30억이 들었다.
월세로 임대해서 할 수 있는 마트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월세가 천만 원이 넘어가는 수준이라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퀵서비스의 경우에도 직영 퀵기사의 월급이 부산의 2배 수준이었다.
이서가 예산 범위 내에서 직영 퀵기사를 구하는 게 힘들다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부담이 되는데, 넓은 물류지와 맡을 직원을 또 구해야 하니 얼마나 돈이 더 들어가야 할지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라면까지 해서 매출이 천억이 넘었지만, 지금 나가는 돈이 너무 컸고, 수익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기까지는 1년 이상 돈을 더 넣어야 했기에 자금이 아슬아슬했다.
투자캠프에서 상담한 펀드나 금융회사에서 투자를 받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런 투자가 족쇄가 될 수도 있었기에 망설여졌다.
“우선 김 실장이 물류지 장소 알아보도록 하세요. 다음 주 중으로 장소 정해지고 하면 노량진부터 시작해서 영등포구와 강남을 공략해 봅시다.”
***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김독수 전무와 함께 꼭 보자고 한 겁니까?”
이재영 상무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일단 나왔다고 입을 열었다.
“제가 두 분을 오늘 모신 것은 불떡볶음면 때문입니다.”
“불떡볶음면 그게 왜? 설마, 해운대 라면처럼 우리에게 팔고 싶다는 거야?”
김독수 전무는 뭔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네. 맞습니다. 볶음면을 거산에 팔고 싶습니다.”
“흠. 김독수 전무님 말로는 투자캠프에서 400억 가까운 투자의향서를 받았다고 하던데, 그 투자금 외에 돈이 더 필요한 겁니까?”
“그 투자는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앞장서서 멍에를 쓰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알토란을 파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흠.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그냥 들고만 있고 유지만 해도 매해 100억 이상은 벌 수 있을 텐데요. 그걸 왜 팔려고 하는 겁니까? 유튜브에서 매운 라면 먹기 챌린지 같은 게 유행 중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넘기려고 하는 겁니다. 태양 식품 제조의 문성철 대표와 공장을 차리고, 나름의 전국 유통을 위해 팀을 꾸렸지만, 수출은커녕 거산이 판매하지 않는 다른 유통망에 납품하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칩니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주인에게 팔려고 하는 겁니다. 잘나가는 지금 날개를 달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재영 상무는 임건호의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더 잘 될 수 있는 자식이기에 입양을 시키겠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됩니까?”
“네. 제가 끼고 있는 거보다는 거산이 들고 핸들링을 하면 더 크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김독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국내 판매만 해도 용심이나 다른 라면 업체들로 인해 홍보나 광고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지금 임건호나 스타 코퍼레이션의 직원들 모두 ‘푸드 딜리버리’ 어플에 매달려 있는 상황이었으니 붉떡볶음면을 키워줄 수 있는 거산에게 보내는 것이 제품의 생명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자식 같이 키운 제품을 팔려고 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알 것 같군요. 얼마 정도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저와 김독수 전무님을 같이 만나자고 했으니 여기서 가격을 정하고 싶다는 의미입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제안하는 금액은….”
“잠시만. 임사장 잠시만! 우린 이 제안 못 받아들여.”
이재영 상무는 가격만 맞으면 사겠다는 그런 눈치였는데, 김독수 전무가 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