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 양아치 짓.
“사장님. 진짜 ‘서울 포위 공략’이라는 제목으로 프레젠테이션하실 거예요?”
“그래. 이 제목으로 할 거야. 우리 앞으로 17개의 업체가 있어.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다손 쳐도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사람들은 지칠 수밖에 없어. 더구나, 동일 업종인 ‘저기요’가 8번째, ‘배송의 민족’이 12번째야.”
“우리가 아무리 내용이 파격적이라고 해도 잘 기억을 못 하겠군요.”
“맞아. 그래서 좀 파격적으로 가야 해.”
프레젠테이션은 전통적인 IT 개발 업체도 있었고, 국산 중장비 개발 업체, 음식 첨가제 관련 개발 업체까지 다양했다.
8번째인 저기요의 차례가 되었다.
독일의 회사에서 투자를 받았으며, 가맹 가게 6만 개와 50만 명의 회원을 가졌다고 발표했다.
“…아직 저기요는 적자입니다. 하지만, 서울 전역에서 확장을 하고 있으며 경기도까지 서비스가 확대되면 바로 수익이 흑자가 될 것이라 자부합니다. 다리를 건널 때도 꼼꼼하게 확인하며 건너는 독일업체에서 투자를 했다는 것을 명심해 주십시오.”
꽤 자신감 있는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이어서 의류와 매표 집계 시스템, 광학측정 장비업체까지 발표를 하자 12번째인 배송의 민족 차례였다.
“송종하입니다. 저희 배송의 민족은 서울 경기의 가맹 가게 8만 개와 65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 업계 1위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업계 1위라는 송종하 대표의 말에 신경이 써졌다.
국내 최초 첫 번째는 맞는데, 그 말과 같이 업계 1위라고 이야길 하니, 순서상 1위가 아닌 규모 면에서 1위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어법이었다.
“…저희 배송의 민족은 이른 시간 안에 흑자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자신할 수 있습니다. 5년 이내 회원 수 1천만 명, 가맹 업체 30만 곳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전 국민의 25%를 회원가입 시키겠다는 말에 자신감이 보였다.
매출 거래 금액과 가입 회원 수는 확실히 우상향을 나타내고 있었고, 그러한 성장 중인 업체는 적자라도 투자 매력이 넘치는 업체였다.
저기요 업체 사람들이 우리가 참여해 준 것을 다행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수치는 우리가 보여줄 수치에 비한다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걸 알기에 비서인 김민지도 여유가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오자 김민지가 PPT를 띄었다.
[서울 포위 공략!]
단순한 강조 볼드체로 글자가 나오고 배경 이미지로는 거친 삽화로 된 탱크와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자 투자를 위해 참석한 이들이 웅성거렸다.
“뭐지? 방산 관련 업체인가?”
“서울시로 들어오는 북한군 애들을 막는 그런 국가산업이 있었나?”
“업체명이 푸드 딜리버리인데?”
“뭐? 그럼 저거 뭐야? PPT 잘못 올린 건가?”
내 신호에 김민지가 PPT를 클릭하자 남한의 지도가 나왔다.
“지도가 이상한데, 남쪽이 붉은색이고 서울 경기가 파란색인데.”
“도대체 뭐지?”
“먼저 프레젠테이션을 한 ‘저기요’, ‘배송의 민족’과 같은 음식 배달대행업입니다. 이번 투자캠프에 경쟁업체 3곳이 모두 다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는 이 3곳이 다 같은 곳으로 보이실 겁니다.”
내 말을 듣고, 여러 관계자들이 8번째와 12번째에 PT했던 저기요와 배송의 민족 관련 서류를 다시 살펴봤다.
“세 곳 모두 같아 보이지만, 서울에서 시작한 두 곳과는 달리, 저희는 지방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딸깍!
들고 있던 리모컨으로 클릭하자 PPT에 애니메이션이 움직였다.
파란색이던 대한민국 지도에서 처음 부산 지역에 붉은 색이 칠해졌고, 이후 경남과 여수, 강릉 등 지방의 곳곳에 붉은 칠이 칠해졌다.
“배송의 민족에서는 국내 최초이기에 1위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사업을 시작한 첫 번째는 배송의 민족이 맞지만, 현재 실적으로는 저희 푸드 딜리버리가 1위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딸깍!
“전국 가맹점 9만 개와 회원 수 90만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역량으로 인해 부산 해운대와 수영구 부산진구와 ICT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여수와 강릉 등 전국 지자체와의 ICT 사업도 진행 중입니다.
사실 가맹점은 아직 5만 개였지만, 지자체에서 ICT 사업의 명단을 위임받은 업체가 9만 개였기에 9만 개로 쓴 것이었다.
그리고, 회원 수도 순수 어플 회원이 아니라 방송 가입 회원을 추가한 숫자였다.
따지고 본다면 거짓이지만, 서류상으로는 가맹점 숫자와 회원 숫자가 분명 맞았다.
배송의 민족 송종하 대표가 말 어법으로 국내 1위라고 했듯이 우리도 서류를 가지고 숫자를 잡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업체가 가지지 못한 것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마로 오프라인 마트와의 연계입니다.”
딸깍!
스타 마트 전경 사진이 순서대로 6개 나왔고, 푸드코트 내의 ‘요리쇼’ 사진들이 나왔다.
“푸드 딜리버리는 단순한 음식 배달이 아니라 퀵서비스를 통한 일반 물건까지 판매배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생적인 측면에서도 주문 후 직접 조리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요리쇼’ 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CCTV로 조리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여주고는 LT마트 푸드 코트에 입점 공사를 하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요리쇼 가게는 전국 LT 마트 푸드 코트에 입점하기로 계약을 진행했고, En마트 푸드 코트에도 입점 계약을 했습니다.”
딸깍!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매출 관련입니다. 우리 스타 코퍼레이션은 이미 연간 매출액이 천억이 넘었으며 흑자 전환을 이미 했습니다.”
PPT에 매출장부를 아예 공개했다.
“벤처가 매출 천억?”
“응? 저 회사 여기에 왜 나온 건데? 이미 중견 체급인데.”
“해운대 라면은 왜 있는 거지? 불떡볶음면도 있는데.”
“어, 저기가 라면 생산 공장도 같이 하는 거네.”
“여기에 왜 나오셨어요?”
투자사 관계자들은 이미 중견기업급의 매출과 직원도 100명이 넘어 200명에 육박하는 회사의 규모를 보곤 투자캠프에 왜 나왔는지를 물었다.
성공한 브랜드의 상품이 있다면 그걸로 웬만한 은행에서는 다 대출이 될 터인데, 투자캠프에 나온 게 이해가 안 가는 것이었다.
“PPT 맨 앞장에서 썼듯이 서울을 포위 공략하기 위해 거기에 쓰일 총탄을 지원받고자 나왔습니다. 경쟁업체인 저기요와 배송의 민족을 한방에 몰아내기 위해서 총알이 필요합니다. 그런 총알을 투자해 주십시오.”
과감한 말에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저기요와 배송의 민족 사람들은 화를 내는 것 같았다.
“흠흠. 투자캠프 의장으로서 방금 발언은 철회해 주시기 바랍니다.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투자캠프입니다. 같이 캠프에 참여한 업체를 몰아낸다는 발언은 문제가 있습니다. 철회해 주십시오.”
“네. 그럼 방금 발언은 철회하겠습니다. 서울과 경기에 진출하기 위해 투자를 받고자 캠프에 참여를 했습니다. 많은 투자자 분들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이상입니다.”
발언을 철회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끝냈지만, 이제까지 이런 식으로 같은 캠프에 참여한 경쟁자를 몰아내고자 투자받겠다는 프레젠테이션이 없었기에 다들 웅성거리며 쉽게 장내가 정리되지 않았다.
“잠시 휴식하고 다시 19번째 업체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햐. 저 또라이 저거. 여기서 이렇게 질러 버리네.”
김독수 전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임건호가 이렇게 강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두수 앞을 내다보는 놈이니. 우리가 먹긴 틀렸어.”
“8번째 발표했던 저기요 쪽 사람들이랑 미팅 잡은 거 취소합니까?”
“그래 취소해. 보니깐 저기요나 배송의 민족이나 다 잡아먹힐 것 같아.”
“그럼, 스타 코퍼레이션 쪽이랑 투자 상담 미팅 잡을까요?”
“아니. 우선 눈치 좀 보자. 다른 곳이 어떻게 나가는지 보고 그때 미팅 잡자. 푼돈 투자해 주겠다고 좋아할 규모가 아니야.”
은행 투자팀에서 나온 사람들은 ‘저기요’와 상담을 취소해 버렸고, 배송의 민족과 미팅을 잡고 있던 사모펀드 쪽 사람들도 미팅 일정을 홀딩시켰다.
투자캠프에 동일업종 3곳이 나왔고,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 어디인지를 알았으니, 당연히 다른 2곳과는 손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미 서울, 경기에서 2곳이 영업하고 있었지만, 투자금을 든든하게 받은 중견기업이 나서기 시작하면 벤처 2곳은 밀릴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었다.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야 하는 펀드나 금융권의 투자팀들은 승패가 바로 보이는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투자캠프의 ‘판돈’이 스타 코퍼레이션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4박 5일간의 투자캠프가 끝이 났다.
“투자의향서를 근거로 이번 투자캠프에서 성사된 투자 규모는 2120억입니다. 모쪼록, 자금이 필요했던 벤처기업들은 좋은 투자를 받아, 모두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새로운 국가 먹거리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투자캠프가 끝이 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김독수 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상담하던데, 얼마를 투자 받기로 했다고?”
“전무님. 왜 거산은 투자의향서를 안 주시는 겁니까?”
“이미 몇백억이나 투자 건 미팅하는 걸 봤는데, 거기 껴서 뭐하게.”
“하하하. 쪼오-끔 바쁘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거산이 빠지니 아깝네요. 400억 넘길 수 있었는데.”
“지분 조건 투자야?”
“지분도 있고, 이자를 붙여서 상환하는 건도 있습니다. 이사진에 사람을 끼워 넣는 조건도 있고요.”
“후후후. 투자받으면 다 좋을 것 같지? 이제 머리가 더 아플 거다.”
“투자받게 되면 감 놔라 배 놔라 하겠지요.”
“그것만 하면 다행이지. 거산에 다닐 때 기억 안 나?”
“아, 파트너스 파.”
거산은 회장과 이재영 상무 등 사장단들의 ‘후계자파’와 인수 합병하며 생긴 합병회사의 ‘외파’, 그리고, 투자로 인해 이사진에 끼게 된 파트너스 파가 있었다.
투자자들의 대표로 들어온 파트너스 파의 이사들은 보통은 조용했지만, 투자회사에서 무슨 이익을 챙겨오라고 했을 때는 미친 듯이 회사의 이익을 뜯어 갔었다.
“투자를 받으면 뭔가 공돈이 생긴 것 같아서 좋았는데, 바로 팩트를 알려주시니 아찔 한데요.”
“그래. 투자받는 게 무조건 좋지만은 않은 거야.”
“그래서 양아치 짓을 할까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양아치 짓? 어떤 양아치 짓?”
“투자 상담만 엄청나게 하고는 투자를 안 받는 거요.”
“응? 왜? 이사 진에 투자한 쪽에서 사람 심을 것 같아서 그런 거야?”
“아니요. 제가 이 투자캠프에 나올 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회사의 가치를 알고 싶다고요. 한 번의 투자캠프로 400억 가까이 투자를 받아 낼 수 있었으니 회사의 가치는 충분히 증명한 것 같아서요.”
“그럼, 상담은 왜 시간 끌려는 건데?”
“경쟁업체들이 투자받지 못하게 하려고요. 투자 상담으로 몇 개월간 시간을 끌어서 저기요나 배송의 민족이 투자받지 못하게 할 겁니다. 그렇게 돈줄을 막는 것만으로도 서울에 진출하는 우리에게는 엄청난 이득이 될 겁니다.”
본래 이럴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저기요에서 배송의 민족에게 투자가 몰리는 걸 막기 위해 투자캠프에 나왔다고 했고, 우리까지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던 그 말 때문에 양아치 짓을 떠올린 것이었다.
우리가 서울에 진출할 때 실탄이 없어서 우리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와! 임건호 이제 진짜 양아치 다되었네.”
“회사 경영이라는 게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이재영 상무님과 해서 세 명이서 한번 봤으면 하는데, 시간 좀 만들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