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투자캠프. (2)
“오! 형님. 그러니깐 LT마트 동래점에 요리쇼 가게를 입점하기로 했다고요?”
최도협은 요리쇼 가게가 LT마트에 입점한다는 소식에 좋아했지만, 자신에겐 큰 이익 없이 일만 더 해야 한다는 걸 깨닫자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래. 첫 시범점포라 월세 1년 동안 면제를 받기로 했으니 조건은 좋아. 다만, 문제는 우리 어플과의 일이겠지. 김민욱 실장 생각은 어때?”
“우리가 진출하지 않은 동래구라서 어플 확대 효과는 확실히 있을 것 같습니다. 마트나 퀵서비스가 따라붙지 못하더라도 포스기와 어플 영업만으로도 충분히 이익을 만들어 낼 겁니다. 다만...”
“다만?”
“다만, 이 요리쇼 가게가 다른 LT마트에도 깔리게 된다면 푸드 딜리버리 어플에는 영향이 없겠지만, 마트에는 영향이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니크한 가게였는데, 흔한 가게가 되어 버리게 되면 장점이 죽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흠. 장점이 죽는다라.”
사실 나는 아예 En마트까지 입점시킬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김민욱의 말을 듣고 보니 내 생각이 틀린 것 같았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바로 ‘희소성’마케팅이었다.
외국계 레스토랑이나 식음료가 한국에 진출하면 프리미엄화, 희소 성화 마케팅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게 만들었었다.
한국 사람은 약간은 허영에 물든 소비를 하는 기분파 적인 소비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매출이 결정되기도 했다.
“언제든지 배달해서 먹을 수 있다는 게 우리 어플과 맞지만, 너무 흔해지면 그게 또 단점이 됩니다. ‘다들 먹으니깐 난 안 먹을 거야.’ 하는 청개구리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브랜드 가치도 같이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하긴. 처음 한국에 들어왔던 맥도날드도 초기에는 희소성 마케팅으로 직영점만 출점했었지. 희소성을 생각하지 못했어. 수익을 위해 엄청 깔아 버리려고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군.”
“마트 입점은 최소한으로 가고, 오프라인 매장과 배달을 같이 하는 방향으로 백화점이나 아웃렛에 입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김 실장 말이 맞습니다. 한 끼 떡볶이도 그렇게 아웃렛 위주로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백화점과 아웃렛이라. 그쪽도 내방객을 끌어모으는 것이 우선이니 우리와 확실히 연계될 것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말이지.”
우선은 계약서를 썼고, 먼저 연락해준 LT마트 10곳과 En마트 10곳 해서 마트에 들어가는 매장 수는 20개로 결정을 했다.
그 이후로는 아웃렛이나 백화점에만 입점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각 분야별 적절한 매장 수를 연구해서 그 숫자에 맞게 늘려나가야 할 것 같았다.
“사장님. 그리고, 요리쇼를 별도로 입점하거나 해서 한다면 서류상 독립을 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네. 그게 더 이득이겠어. 그리고. 매제! 한근오 쉐프랑 둘이서 계속 진행하는 게 힘들 것 같은데. ‘부엌을 부탁해’에 출연하는 다른 쉐프들 섭외는 힘들까?”
“저와 한근오를 빼면 다들 오너 쉐프들이라. 섭외가 안 될 겁니다.”
“흠. 그럼, 우리가 쉐프를 키우는 건 어때?”
“쉐프를 키운다고요?”
“그래. 매제랑 한근오 쉐프가 요리쇼를 진행할 때 될 성싶은 후배를 계속 출연시켜서 스타 쉐프를 키워보는 거지. ‘선배들 없을 때 몰래 진행해 보는 요리쇼입니다!’ 같은 컨셉도 괜찮지 않을까?”
“흠. 전공이랑 컨셉 캐릭터만 잘 맞춘다면 될 것도 같은데요. 한번 그렇게 해보죠.”
“좋아. 그럼, ‘요리쇼’를 독립시켜서 요식업으로 파트를 새로 만들자. 매제랑 한근오 쉐프한테 5%씩 지분 주면 둘이 공동 대표해서 할 수 있겠지?”
“5%의 가치가 얼마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돈만 된다면야 한근오 쉐프도 좋다고 할 겁니다.”
“좋아. 그럼, 이건 누가...”
일을 맡을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요리쇼 일을 꿰차고 진행해 나갈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제까지 운영을 쭉 해온 김민욱이 최선인데, 그렇게 되면 마트 쪽 일이 틀어져 버릴지도 몰랐고, 추가로 생각하고 있는 프로젝트 일도 있어서 김민욱을 뺄 수가 없었다.
“건희는 요즘 뭐 하는데?”
“영입했던 배우들 몇몇이 영화 조연을 맡으면서 허파에 바람이 들었습니다. 엔터 사장님 놀이를 엄청나게 하고 있습니다.”
“사장 놀이? 캬하! 서울 가서 편한가 보네. 건희에게 요리쇼 일을 맡겨야 하겠다. 사장님 놀이 그만하고 내려오라고 해.”
“으하하. 형님 잘 생각하셨습니다. 동생은 굴려야지요.”
***
“김민욱 실장은 나랑 좀 봅시다.”
요리쇼의 분사건 회의를 마치고 가려는 김민욱을 불러서는 비싼 한정식집으로 데리고 갔다.
“네 일인데, 요리쇼를 빼앗긴 거 같지?”
“아닙니다. 일이 많은 것도 있고, 분사가 되었다고는 해도 사실 계속 같이 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분사해도 결국 마트 안에 푸드코트로 계속 입점하는 거라 결국 일은 같이할 것이긴 했다.
그래서 민욱이는 뭔가 일이 줄어든 거라 좋아하는 눈치가 반, 맡은 일이 없어져서 아쉬워하는 눈치가 반이었다.
“우선 민욱이 네가 마트 쪽으로 집중을 해줘. 매장 수가 20곳이 되면 자체 브랜드를 하나 만들 거야.”
“자체 브랜드요?”
“그래. 김독수 전무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
“그게 어떤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나중에는 요리쇼에서 만들어지는 요청 요리를 별도의 도시락 상품으로 만들까 해. 푸드 케이터링(catering) 사업을 할 생각이야.”
“오. 유통할 수 있는 매장이 있으니 식품제조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지역적인 문제로 인해 요리쇼에서 나온 음식을 못 먹어보는 사람이라면 도시락 형태로라도 구매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케이터링 사업을 한번 해보려고. 그 생산 공장이나 브랜드 런칭을 민욱이 네가 맡게 될 거야. 그러니 마트 쪽 업무에 후임을 키워. 케이터링 서비스 쪽도 좀 공부도 하고.”
“네. 그런데, 일이 엄청 다양해질 것 같은데요. 케이터링이 제대로 돌아가면 도시락도 배달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새로운 신규 사업을 몇 개 더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을 하는 김민욱의 머리에는 그렇게 케이터링에서 나온 도시락과 우리가 생산하는 라면과의 세트 상품까지 금세 그림이 그려졌다.
“그런 새로운 일은 일단 전국에 마트가 40개 정도 되면 그때 해보자고. 지금은 어떻게든 늘려나가며 관리하는 데만 신경 써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미리 알려주셔서 일할 맛이 납니다.”
“하하하. 대기업에 잘 다니고 있던 사람을 내 욕심에 데리고 왔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민욱아 같이 날아오르자. 우리 쨘하자!”
쨘!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거다. 끝까지!”
“네. 끝까지. 원샷입니다!”
***
투자캠프 일로 서울 상공회의소 연수원에 들어서니 업체 식별을 위해 종이로 출력된 ID카드를 목에 걸어주었다.
그러면서 참가 업체들에 대한 기본 정보 팜플렛도 주었는데, 어떤 업체들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살펴봤다.
“응? 배송의 민족? 저기요? 둘 다 여기에 참여한 거야?”
음식 배달업체 3곳이 팜플렛 한 페이지에 쪼르륵 소개가 되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 투자캠프에 나온 것만으로도 정보를 얻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야 우리 회사의 몸값이 얼마인지 궁금해서 확인차 나와 본 것이지만, 배송의 민족이나 저기요는 진짜 투자자를 찾기 위해 왔을 터였다.
그 말은, 돈이 떨어졌다는 말이기도 했기에 그들의 사정을 대강이나마 추측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정부 주도의 투자캠프는 2박 3일간 업체들이 투자 유치를 위한 브리핑을 하고 이후 다시 2박 3일간 개별로 투자 상담을 하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각 업체마다 이번 투자캠프에서 투자 유치한 성과를 발표하며 끝이 나는 것이었다.
물론, 이 4박 5일간의 투자캠프와 상담이 100% 다 지켜지는 건 아니었다.
작게는 몇천, 많게는 수십억, 수백억이 투자되는데 4박 5일간의 상담만으로 결정될 리가 없었다.
캠프 성과 발표는 말 그대로 보여주기식 성과 발표였다.
그런데도 이런 투자캠프가 계속 열리는 이유는 벤처회사와 금융계와의 만남을 위해 정부에서 계속 추진하는 것이었다.
“프레젠테이션 순서는 업체 간의 유불리 문제로 인하여 뽑기로 진행하겠습니다. 가장 공평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의 있으신 분들은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순서를 정하는데 검은 주머니 속에 든 종이 뽑기로 한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최첨단인 IT 기업들의 투자캠프인데, 종이 뽑기로 프레젠테이션 순서를 정한다니.
하지만, 이제까지 이 순서 문제로 일이 많았기에 옛날 방식을 고수한다고 생각하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진행자가 준비된 종이에 숫자를 넣어 검은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돌아가며 종이를 뽑았다.
“18?”
총 28개 업체 중 18번째.
중간은 넘었다는 생각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기요와 배송의 민족을 살펴봤는데, 저기요가 8번째, 배송의 민족이 12번째였다.
경쟁업체보다 늦은 것이니 기쁨 두 배였다.
상공회의소 연수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사람들이 식판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옆에 앉아도 됩니까?”
비서 김민지와 함께 왔기에 김민지를 한번 봐주고는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그제야 그들의 목에 걸린 ID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요’의 사람들이었다.
백인 한 명과 한국인 두 명이었는데, 목걸이의 이름을 보니 ‘하스만’ 이라고 쓰여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기요’의 최기영입니다.”
“푸드 딜리버리의 임건호입니다.”
밥을 먹는 와중에 명함을 서로 교환했다.
“저희가 한 방 맞은 거 같습니다.”
“네?”
“배송의 민족이 가장 큰 경쟁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가장 큰 서울에서 주도권만 잡으면 된다고 이 사업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부산에서부터 올라올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리고, 투자캠프에 참석하는 것도 생각하질 못했습니다.”
“저도 ‘저기요’가 투자캠프에 참석할 줄 몰랐네요. 독일에서 투자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참석하셨다니 의외입니다.”
“경쟁자 때문이라고 해야겠지요. 뭐 덕분에 수박 겉핥기로 알고 있었던 푸드 딜리버리 대표님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아유 이제 서울에 진출하면 자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그렇죠. 그렇게 되길 빌겠습니다.”
서로 눈치 싸움을 하며 우리가 먼저 밥을 다 먹고 자리를 떴다.
“와! 사장님. 밥을 어떻게 먹은 줄 모르겠어요. 경쟁업체가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막 막히는 것이 갑갑했어요.”
김민지는 눈칫밥을 먹었다고 속이 더부룩하다며 가슴을 쳤다.
“민지야. 돈가스를 그렇게 먹었으니깐 느끼하고 갑갑한 거지. 넌 다요트 안 하냐?”
“그거 아니거든요. 일단 갑갑하니깐 빨리 아아 한잔 사주세요.”
“어이구.”
“그런데, 저쪽에서 왜 우리가 여기에 참석했다고 다행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 이름만 알고 아예 정보를 몰랐다는 건가요?”
“그게 아니야. 아마도 다 알아보고 했겠지. 그쪽에서 다행이라고 한 건, 우리가 투자받기 위해 여기에 나온 게 다행이라는 거야. 돈 빌리러 왔다는 게 마음에 든거지.”
“아, 우리에게 유용자금이 없으니 돈을 빌리러 왔고, 그래서 다행이라는 거군요.”
“그래. 아마도, 우리가 서울로 진출하기 위해 총알을 빌리려고 여기에 왔다고 생각할 거야. 뭐 그것도 나쁘진 않아.”
외국 독일 쩐주가 있는 저기요 애들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경쟁자 때문에 참석했을 터였다.
아마도 배송의 민족 애들이 투자받지 못하게 같은 업종이 있다고 알리기 위해 나왔을 터였다.
합법적인 훼방 플레이였다.
거기에 같은 업종인 우리까지 있으니 투자금이 더 나눠지던지 아니면, 우열을 알 수 없으니 3곳 모두 투자를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만 되면 저기요의 승리였다.
일단 저기요와 배송의 민족 애들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판단해야 했지만, 우리 프레젠테이션의 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바꾸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에? 서울 포위 공략요? 사장님 진짜 그 제목으로 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