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 투자캠프. (1)
“이창모 부장에게 보고 받으신 겁니까? 한잔 받으시지요.”
광안리 해변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일식집 방에 둘이서 마주 앉으니 뭔가 이제는 같은 자리에 올라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고받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했는데, 돈 냄새가 나더라고. 적자 상태인 마트를 벌써 4곳 인수했더라고. 본격적으로 유통을 해보려는 거야?”
“아, 아닙니다. 마트는 부가 사업입니다. 메인은 어플입니다. 유통보다는 IT 쪽입니다.”
“그럼, 그 메인이라는 어플에 힘을 싣기 위해서 마트들을 인수한 거야?”
“네 그렇습니다.”
김독수 전무의 표정을 보니 뭔가 아닌데 하는 표정이었다.
“설마, 제가 하는데 IT 쪽이 아닌 걸로 보이셨습니까?”
“그래. IT라면 뭔가 더 과학이 들어가거나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건 그냥 배달 연결해주는 거잖아. 이게 어떻게 IT가 되는 거냐?”
김독수 전무는 IT라는 것에 대해서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무님. 처음 핸드폰이 나왔을 때 다들 집에 전화기가 있는데, 뭣 때문에 크고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니냐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집 전화기가 다 없어졌습니다. 이 어플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전화로 하는 주문이 사라질 겁니다. 이제는 핸드폰으로 음식을 주문해서 사 먹는 시대가 올 겁니다.”
“뭐, 황당하게 들리긴 해도 앞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내가 학생 때만 해도 누가 물을 돈 주고 사 먹느냐고 했었으니깐. 헌데, 삶에 변화가 오는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소한 거 아냐?”
“소소하게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분야가 될 겁니다. 이런 아날로그 생활방식을 디지털화시켜서 편의성을 증가시키는 걸 융합혁신기술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 푸드 딜리버리가 그런 혁신기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랑은 생각이 완전히 달랐군. 난 그 어플을 만든 게 본격적으로 유통을 하기 위해 수단으로 봤거든. 그런데 오히려 그 반대였구만.”
김독수와 임건호가 서로 보고 있는 지향점이 다르다 보니 서로가 주(main)와 부(sub)를 반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어플을 퍼트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거 완전히 다른 거였군.”
임건호는 김독수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사업이 진행되어도 될 것 같긴 했다.
경쟁업체인 배송의 민족이나 저기요 같은 업체는 우리처럼 마트를 만들어 일반 물품을 팔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어플에서 만들어지는 광고 수익과 주문에 따른 수수료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것이었다.
어플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내려는 관점이었다.
하지만, 우리 푸드 딜리버리는 그 안에서 일반 물건들을 같이 팔고 있었으니 그들과는 어플의 관점이 달랐다.
그리고, 지금 수익이 나고 있는 것도 광고 수익이나 주문 수수료가 아니었다.
마트에서 팔리는 물건과 요리쇼 가게에서 나오는 매출이 우리의 주된 수익이었다.
물론, 점점 어플이 확대되면 그 매출과 수익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어플에서 물건을 직접 파는 것이 매출의 중심이었다.
“생각해보니 전무님이 그렇게 볼만 했습니다.”
“그렇지? 나는 처음 마트 물건을 이렇게 파는 걸 보고 벌써 4곳이나 인수했길래 웬만해서는 안 망하겠다고 생각했거든.”
“마트가 잘 안 망한다는 건 옛말입니다. 저희가 인수한 4곳 모두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서 나온 매물들이었습니다.”
“인수한 마트들이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마트들이었지?”
“네. 100평에서 200평 정도의 작은 마트입니다.”
“그러니 망하는 거야. 마트가 잘 안 망한다는 건 규모가 있기 때문이야. 작은 곳 4곳이면 이제 큰 마트 1곳과 같은 규모야. 전국에 40곳의 미니 마트를 만들게 되면 삽질하지 않는 한 절대 망하지 않을 거야. 이건 내가 보장하지.”
김독수 전무가 보장을 한다고까지 이야길 했지만, 임건호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멍청하긴. 단가가 달라진다는 거야. 그리고, 전국에 40곳의 마트가 있으면 그때부터는 네가 갑이 되는 거야.”
“아, 판매망을 전국에 가지고 있으니 물건을 팔고 싶어 하는 업체에 단가 협상이나 조건을 정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래. 우리가 파는 해운대 라면만 해도 원가는 400원이야 그런데, 마트에서 얼마에 팔리고 있지?”
“개당 600원에서 900원까지 팔고 있지요.”
“그래. 제조업체보다 더 벌 수 있는 게 유통이야. 미니 마트라도 40곳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식품회사나 음료 회사에서도 무시 못 하는 거야. 거기다 어플로 해서 팔린다는 장점이 있잖아. 회원 수가 50만 명씩 되어봐. 그냥 단가협상할 때마다 프로모션 해 주겠다고 난리 칠 거다.”
“헌데 지금은 대기업에서 하는 미니 마트인 SSM(기업형 슈퍼마켓)도 망하는 추세 아닙니까?”
“거긴 메리트가 없으니깐. 대형 마트는 가격이 싼데, SSM은 편의점보다 큰 슈퍼일 뿐이니깐. 하지만, 지금 자네가 하는 마트는 어플로 판매한다는 것도 있고, 작은 마트에서 직영 푸드코트를 운영한다는 게 메리트야.”
“확실히 기존 SSM이 망하는 게 수익성 때문이니 다른 수익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메리트가 있겠군요.”
“그래. 그래서 투자 좀 해보려고 오늘 보자고 한 것이지.”
김독수 전무가 투자까지 하겠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마트를 배달 서비스와 합친 게 큰 것 같았다.
“아직 투자에 대한 조건은 아직 마련해두지 않았는데, 얼마나 투자를 해주실 겁니까?”
“50억.”
“이게 개인으로 하는 건가요? 아니면 거산이 하는 겁니까?”
“내가 하는 개인적인 투자야.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지분 40%를 받고 싶은데.”
“흐음.”
우선 투자 담보나 그런 것도 없었고,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건 좋았다.
하지만, 지분 40%는 너무 과했다.
일단 급한 게 없는 만큼 한번 빼기로 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이게 적정한 지분 비율인지 알 수가 없네요.”
“이제 1년 차인 회사에. 적자인 마트 4곳 외에는 담보로 뭘 걸 수 있는 것도 없는 회사야. 거기에 50억을 조건 없이 투자하겠다는 곳이 있을까? 어떤 금융업체도 못 하는 투자야. 그런 투자에 40%의 지분 요구면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사실 일반적인 벤처업체에 대한 투자라면 이 조건도 천사급의 엔젤투자였다.
하지만, 들어간 돈이 그 몇 배나 되기도 했고, 성공했을 때 발생할 기대이익을 생각하니 지분 40%를 넘겨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IT업체로 등록을 하니 벤처 투자캠프라는 것이 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투자를 원하는 신규벤처 업체들이 투자를 바라는 발표를 하면, 그 사업성을 보고 금융계나 투자벤처, 사모펀드 등에서 투자를 해주는 그런 모임이 있다더군요.”
흔히 생각하는 벤처 투자는 지분을 받고 돈을 투자하는 방식을 떠올리지만, 그 외에도 단순한 이자 금액만 불려주는 조건의 투자도 있었고, 몇 년 후 원금 상환과 개발 결과물을 넘겨주는 조건의 투자도 있는 등 다양한 투자조건이 있었다.
그런 다양한 투자조건이 있다는걸 김독수 전무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투자캠프를 언급한 것이었다.
“그래 그런 행사가 있지. 거기서 운이 좋아서 대기업에 인수된 회사도 있고, 150억 투자를 받은 의류회사도 있고 하지. 거기 한번 나가보려고?”
“네. 정확하게 지금 회사의 가치를 제가 모르고 있으니 한번 나가서 ‘푸드 딜리버리’의 가치를 한번 알아보고 싶습니다. 다른 투자조건이 있을 수도 있고요.”
“흠. 그럼. 나도 개인 투자가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투자캠프에 참여하지 거기서 한번 서로의 조건을 부대껴보자고.”
***
“새끼 많이 컸네.”
김독수는 자신을 차에 태워 보내고 멀어지는 임건호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창모 부장에게 보고를 받고 한번 알아보다 보니 지금 하는 마트 사업이 꽤 전망이 있어 보였다.
기존 마트에는 없는 수익사업을 하는 것이라 분명히 유통계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임건호를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인 LT그룹의 관계자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개인 투자를 해서 어떻게든 지분을 챙겨두려고 했던 것이었다.
“40%가 좀 너무하긴 했지. 이제 딜을 해서 30% 언저리로 쇼부를 보면 될 것 같은데. 괜히 귀찮게 투자캠프에 참여를 한다고 말이야.”
투자캠프 참여 전에 몇 번 더 만나서 투자 지분 계약을 미리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김독수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굼뜨기로 유명한 LT그룹에서 임건호를 보자고 한 것이었다.
***
“우리 애도 ‘부엌을 부탁해’ 방송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최도협 쉐프의 방송을 보고는 몇 번이나 요리쇼 가게에서 음식을 주문해 먹더라구요.”
LT그룹의 유통 파트 최문기 본부장은 사람 좋은 얼굴에 덩치도 커서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게 생긴 사람이었다.
더구나, 웃으면서 딸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더 정이 가는 느낌이었다.
“주문한 걸 다 먹고 나서는 왜 아빠 LT마트에는 저런 푸드코트가 없냐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저런. 따님이 상사시군요.”
“하하하. 그렇죠. 중학생 이상 딸들은 그냥 상전이죠. 그래서, 지난 방송도 보고, 푸드 딜리버리 어플의 요리쇼 리뷰를 보고하다 보니, 저희 LT마트에도 이 ‘요리쇼’ 가게를 입점시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가게의 입점 때문인가요?”
처음 LT그룹에서 연락이 왔을 때는 김독수 전무처럼 마트와 관련된 유통 이야기인가 싶었다.
헌데, 그런 유통이 아니라 마트 푸드코트에 우리 ‘요리쇼’를 입점시키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LT마트가 전국에 210곳이 있습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모든 지점에 다 넣고 싶지만, 제대로 된 푸드코트가 있는 지점은 150곳입니다. 먼저 한곳을 입점시켜 보고 추이에 따라 다른 매장에도 입점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시범점포로 한곳을 먼저 해보자는 거군요.”
“네. 동래구에 있는 저희 LT마트에 입점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요리쇼 가게를 푸드코트에 입점시키게 되면 분명히 쉐프가 와서 하는 요리쇼도 해달라고 할 터였다.
내방객이 많아야 하는 대형 마트이다 보니 그런 이벤트를 해주는 곳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터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재미가 없을 터였다.
우리 마트의 홍보를 위한 것도 아니고, 다른 마트의 홍보를 하게 되는 것이기에 그렇게 메리트가 없는 일이었다.
“시범점포이니 월세라던지 그런 부분은 저희 쪽에서 다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대로 수익이 나고 한다면 정식으로 다른 지점 마트에도 입점을 하는 것으로 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다른 마트.
최소한 10곳에 입점을 한다는 전제로 머리를 굴려봤다.
스타 마트를 기반으로 하는 곳과는 중복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트에 입점해서 통합 주방을 써야 하는 요리쇼 가게의 특성상 이런 콜라보 형태로 다른 마트와 연계되면 그 지역에 요리쇼와 어플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좀 더 깊게 생각해보니 LT마트뿐만 아니라 En마트에도 같이 입점을 한다면 어플이 쉽게 퍼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해서 LT마트와 En마트에 우리 요리쇼 가게가 입점하게 된다는 계약서가 있으면 투자캠프에서 몸값이 더 오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투자캠프에서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 시범점포의 운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좋습니다. 시범 전포와 성과가 좋을 경우 최소 10곳 이상 입점 시킨다는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