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요리쇼의 시작.
“저는 반대합니다. 확장을 빨리해서 선점을 할 수 있지만, 제대로 내실을 다지지 못한다면 시장 개척만 하고 후발 주자에게 그대로 시장을 넘겨줄 수도 있습니다.”
이서의 말도 일리 있었다.
주문배달 시장을 모르는 지역에 길만 닦아주고 다른 업체에 뺏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김이서 실장의 말도 맞지만, 연락이 온 여수나 강릉의 인구는 27만 명, 31만 명입니다. 가을부터 시작하기로 한 부산 진구의 인구가 35만 명입니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여수와 강릉은 몇 배나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서비스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경쟁 업체들도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이종민 실장의 말처럼 규모가 작기에 경쟁 업체들도 관심이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계륵이네 계륵.”
“사장님 계륵이라도, 수익이 나지 않아도, 지자체에서 주는 용역비만 있다면 1~2년은 유지가 가능할 겁니다. 포스기와 가맹 영업만 하는 지사장과 직원 두 명만 있으면 돌아갈 겁니다.”
이종민은 영업으로 일단 뿌려두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푸드 딜리버리의 장점인 직영 배달과 마트 물건 배송은 안 되게 될 건데요.”
“김이서 실장. 그건 일단 접어 두자고. 그게 다른 어플과의 차별성이지만, 수지타산이 안 맞는데, 손해를 봐가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그런 차별성이 없으면 다른 업체로 금세 갈아 타버릴 수 있습니다.”
이서는 내가 그전에 생각했던 바닥을 다지고 진출하는 안정성과 제대로 된 서비스를 중요시여겼다.
“이서의 말처럼 바닥을 다지고 우리가 뿌리를 깊게 내리면 다른 업체가 들어와도 뽑히지 않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해. 잔디처럼 뿌리는 얇더라도 넓게 퍼져있으면 너무 넓게 퍼져있어서 뽑히지 않을 수가 있어.”
뿌리가 깊은 잡초를 뽑아내는 것만큼 엄청 넓게 퍼진 잔디를 다 뽑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잔디처럼 최대한 빨리 확장을 해서 못 뽑히게 만들어야 된다는 거네요.”
“맞아. 더구나 지금은 지자체에서 별거도 아닌 ICT 산업을 도입해야 한다고 하니 예산을 따먹을 수가 있어. 일단 이종민 팀장이 여수와 강릉 쪽에 연고를 가진 지사장을 구해서 교육을 시켜 부사수 2명만 있으면 포스기와 어플을 설정할 수 있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구 100만 이상 되는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수원, 울산, 창원, 세종까지는 우리가 직접하고, 그 이외의 지역은 지사장에게 하청을 주자고.”
사실, 이 10개 도시가 한국의 핵심이었다.
그 이외의 지역은 사실 버려도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이서 실장의 직영 퀵서비스 사무실과 김민욱 실장의 직영 마트는 이 10개 도시에서만 운영하자고. 선택과 집중이야.”
솔직한 말로 이 10개 도시에 들어가는 퀵서비스 사무실이나 마트만 해도 40~50개는 될 터였다.
그걸 관리하는 데만 해도 진이 빠질 터였다.
“이종민 실장은 그 외 지역인 수원시나 고양시에서 지사를 운영할 사람을 구인하도록 하세요. 지역 지자체에서 사업을 못 따내더라도 최대한 확장을 해봅시다.”
“부산 각 구에 대한 것도 영업부터 먼저 치고 들어가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우리 최대한 힘을 내봅시다.”
우선 사업 진행이 힘들다고 했던 여수와 강릉을 찾아가 다시 ICT 도입으로 지역 요식업의 IT 산업화에 대해서 열심히 입을 털었다.
그렇게 해서 따낸 것이 각각 2년간 1억 원의 금액이었다.
1년에 5천의 사업비로는 사람 1명의 인건비와 사무실 운영비밖에 안 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5천만 원씩이라도 보조를 해주니 다행이었다.
성수기였기에 해운대구와 수영구에서 주말마다 5천 건 이상씩 주문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한 달에 2~3억씩 돈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이서에게는 부산과 울산, 창원, 대구에 22곳의 퀵 사무실을 세우라고 10억을 보내었고, 마찬가지로 22곳의 마트를 만들라고 민욱이에게도 100억을 보냈다.
아직 400억 넘게 여유가 있었지만, 서울과 경기도에 돈을 쏟아부으면 빠듯할 거 같았다.
서울에 진출할 때는 투자를 받아야 할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
“형님. 요리쇼를 인터넷으로 중계한다고요?”
최도협은 요리쇼를 수영구 마트에서 한다고 해서 당연히 고객들을 앉혀두고 요리쇼를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헌데, 직접 수영구의 마트에 와 보니 관객은 아무도 없었고, 그냥 간이로 만들어진 조리대와 방송 촬영 장비만 있었다.
“그래, 데프리카TV와 유튜브에 생중계를 할 거야. 컨셉이 뭐냐면, 시청자가 요청하는 요리를 만드는데, 이걸 우리 ‘푸드 딜리버리’에서 주문하는 고객에게 직접 배송해주는 거야.”
“저...전국으로요?”
“아니, 방송은 전국이라도 배송은 수영구나 해운대구만 가능할 거야. 우선순위는 수영구고.”
“흠. 제가 만든 음식을 직접 먹기 위해서는 어플을 깔고 주문을 하라는 거군요.”
“그래. 맞아. 원래라면 우리가 전국구가 되면 그때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수영구부터 하게 되었어. 한 보름 정도 뒤에는 부산 진구에서 할 수도 있어.”
수영구청장에게는 오직 수영구에서만 한다고 했지만, 은근슬쩍 넘어가면 되는 거였다.
“흠. 보름에 한 번씩 온라인 요리쇼군요.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중계를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몇 명은 앞에 앉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의자 10개 정도 가져다 두고 수영구에 사는 사람 오면 바로 볼 수 있다고 공지하지 뭐.”
“어!? 사람 들어왔다. 아 시청자분들이 들어오시고 계십니다.”
데프리카TV와 유튜브에 제대로 공지를 하지도 않았지만, 매제가 이름이 알려져 있다 보니 사람들이 한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서인 김민지를 시켜서 몇몇 커뮤니티에 최도협 요리쇼가 있다고 글도 쓰게 했다.
“어떤 요리 할까요? 아, 먼저 여기는 부산 수영구의 스타마트입니다. 에이 듣보 마트 말고, 스.타.마.트입니다. 작은 마트이지만, 여기 보시면 10명 정도 요리쇼를 직접 보실 수 있는 자리도 있습니다. 수영구 광안1동에 있는 스타 마트로 오십시오!”
아직 방에 사람도 몇 없고 했기에 과연 사람이 올까 싶었다.
“지옥에서 올라온 볶음면을 먹고 싶다고요? 엄청 매운 거? 그럼 그걸로 하죠.”
매제는 이미 몇몇 호텔에서 요리쇼를 하고 있었기에 채팅으로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여유 있게 볶음면을 하기 시작했다.
마트에 있는 불떡볶음면을 직접 가서 가져오고, 채소 코너에서 땡초와 타바스코소스를 가져와 바로 조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지금 수영구에 사시는 분이라면 ‘푸드 딜리버리’ 어플을 까세요. 이거 볶음면이 다 되면 단돈 천 원에 배달시켜 먹으실 수 있습니다. 지금 물이 끓고 있기 때문에 지금 주문하셔야 합니다. 총 3분이 바로 가능합니다! 아 참! 포스에서 가게 설정부터 해야 하구나.”
최도협은 포스기에 주문받기를 설정했고, 한정 수량으로 3개를 설정했다.
그러자 푸드 딜리버리 어플 최상단에 ‘최도협의 요리쇼!’라는 가게가 떴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바로 주문이 들어왔다.
[띠링! 푸드 딜리버리에서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오! 바로 주문이 들어 왔네요. 어디 보자. 응? 주문요청 사항이 뭐이래! 크으.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
“왜 전화했는데.”
수영구 광안 3동에 사는 이은하는 며칠 전 헤어졌던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긴 받았지만, 말이 좋게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냥 너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서.”
“아직 안 먹었는데 왜?”
“그래서 너네 집으로 배달 하나 보냈어.”
“뭔데? 무슨 배달? 나 음식 지저분하게 하는 중국집에서 뭐 안 사 먹는 거 알잖아.”
“중국집 아니야. 최도협 쉐프가 한 요리야.”
“무슨 소리야! 최도협이 왜 요리를 해서 나에게 보내주는 건데? 네가 자주 하는 거짓말에 정말 지친다.”
“거짓말 아니야. 진짜야. 유튜브에 최도협 한번 쳐봐. 지금 요리쇼 하고 있어. 그거 내가 주문해서 너에게 보내준 거야.”
“진짜야? 있어 봐.”
이은하는 전 남친의 말에 통화 중인데도 유튜브 어플을 켜서 최도협을 검색했다.
진짜 최도협이 라이브로 요리쇼를 하고 있었다.
띵똥!
벨소리에 인터폰을 보니 배달기사가 진짜 음식을 들고 와 있었다.
“음식이 진짜 왔어.”
“그래. 그럼 잘 먹어. 그냥 너에게 먹이고 싶어서 보낸 거야. 끊을게.”
이은하는 전화를 끊고 음식을 받았다.
진짜 방금 한 음식인지 사각형의 종이 상자가 따끈따끈했다.
방송을 보지 못했지만, 유명한 쉐프가 요리를 한 것이었기에 바로 뚜껑을 열어봤다.
면 음식인 거 같은데, 흰색의 국물이 자박하게 고여있고, 그 위로 치즈와 양파, 쪽파가 예쁘게 데코레이션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음식인지 궁금해서 폰으로 방송을 재생하니.
최도협이 사람들에게 이번에는 어떤 음식 만들어 줄까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짜식이 헤어졌는데도 챙겨주네.”
이은하는 스파게티로 보이는 음식을 포크로 돌돌 말아 한입 먹었다.
뭔가 풀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더니, 갑자기 입안이 화끈해졌다.
“아악! 이 미친 새끼가!”
혀에서 느껴지는 매운맛에 이은하는 절로 욕이 나왔다!
바로 냉장고에 있던 우유를 마시고, 입을 물로 씻어내고 난리였다.
그러곤 전남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뻗쳐오는 매운 기운을 담아 소리샘에 욕을 한참이나 하고 전화를 끊었다.
***
[후기가 등록되었습니다!]
“오! 배달주문 후기가 왔습니다. 가장 먼저 불떡 볶음면 주문하신 그분이네요. 요청사항이 더럽게 맵게 만들고, 먹기 전에는 매운지 모르게 해달라고 하신 그 분이네요.”
최도협은 그 요청사항에 맞추기 위해 붉은색인 불떡 볶음면의 스프를 쓰지 않고, 청양고추를 갈아서 직접 소스를 만들어 요리를 해줬었다.
“크흑. 후기가 장난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어플에 접속해서 한번 보십시오.”
[...헤어진 전 여친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기에 일부러 보냈습니다. 미친 듯이 오는 전화 다 무시했고, 소리샘에는 자진모리장단으로 욕이 3분이나 녹음되었습니다. 최도협 쉐프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진짜 최고로 짜릿한 복수를 한 거 같습니다. 제 점수는 별 5개가 아니라 5천 개입니다...]
“이야. 난 이 분이 매운 걸 너무 좋아하셔서 시킨 줄 알았는데, 이렇게 쓰실 줄 몰랐네요. 뭔가 드신 분은 매워서 힘드셨을 거 같은데, 별 5천 개의 만족도라고 하시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아, 후기에 댓글 다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고요? 어플 개발 선생님! 그렇게 가능한가요?”
방송을 위해 현장에 와 있던 개발팀 강민호 팀장은 가능하다고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된답니다. 다음 요리쇼에서는 방송을 보시는 여러분들이 후기에 의견을 남기실 수 있게 되어 있을 겁니다. 다음이 언제냐고요? 언제죠? 마트 사장님!”
김민욱은 일정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아직 부산진구의 마트는 공사 중이었다.
“아, 아직 일정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네요. 다음 주 중으로 어플에서 일정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첫 방송인데도 이렇게 직접 오셔서 방송에 참여해주신 10분에게는 제가 또 뭔가를 해서 같이 먹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가 마트라서 뭐든 들고 오세요. 바로 요리해 드리겠습니다!”
“와아아아!”
“재수! 오길 잘했다.”
방송에서만 보던 쉐프가 직접 해주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현장에 있던 10명은 비명을 지르고 좋아했다.
성공적으로 첫 요리쇼가 끝이 났고, 관계자가 아닌 그냥 일반인의 입장에서 봐도 재미가 있었다.
특히나, 저렇게 골탕 먹이기 위해 주문을 하는 빌런이 있었기에 공중파에서는 하지 못하는 컨텐츠가 만들어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