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부산 석권. (2)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몰고 다니는 그런 전동기계 같은 건 못 구하는 거야?”
“네. 야쿠르트 대리점 사장님께도 물어봤는데, 그 전동기는 야쿠르트 본사에서 수량을 내어 주는 거라 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이 타고 다니는 전동기가 냉장도 되고 온장고 기능도 되기에 이동 포인트 기수대로 딱이라 생각했는데, 구할 수가 없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바퀴 달린 책꽂이 책장처럼 이동 기수대를 만들었는데, 그런 기수대를 알바생들이 밀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주문을 하실 때는 동백로 68로 하시고 포인트 1이라고 주문하시면 바로 여기로 배송이 옵니다! 포인트 2, 3은 저쪽입니다. 주문하신 요리는 저희가 잠시간 맡아드리기도 하오니 많은 주문 바랍니다!”
[백사장 주문은 푸드 딜리버리로!]
[수령처 : POINT 1]
이렇게 쓰인 붉은색 대 배너가 4m 높이로 세워져 있으니 시선을 끌었고, 아르바이트생이 쿠폰을 뿌리며 음식도 받아줬기에 백사장까지 들어가서 고객을 찾는 퀵 서비스 기사들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특히나, ‘빠른 친구들’ 퀵 기사들의 경우에는 책장에도 지정 공간이 있어 주문한 음식을 보관해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방송국에서 나와서 찍고 있었다.
“해운대 백사장에서도 치킨과 짜장면을 시켜 먹을 수 있는데, 어떤 거 같아요?”
“간편해서 좋은 거 같아요. 예전에는 수영복 입.꼬. 해변 밖까지 나가서 뭘 사 오고 했는데, 이제는 그냥 핸드폰으로 주문만 하면 다 가져다줘서 좋은 거 가.타.요.”
방송국 리포터의 말에 최대한 표준어를 쓰려 노력하는 여자 피서객의 말투는 누가 봐도 경남 사람의 말투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하는 말투가 귀여웠다.
“한 분만 더 인터뷰할게요. 서울분 없으세요?”
그러자 몸 좋은 남자가 나왔다.
“백사장에서 팥빙수랑 햄버거 시켜 먹는 거 상상도 못 했는데, 진짜 해운대는 대단한 거 같습니다. 서울에도 이런 서비스가 없어요. ICT 시티 짱!”
“네 인터뷰 감사합니다!”
“어때요? 잘 나올 것 같아요?”
지역 경제과의 김길원 과장과 해운대구 ICT 사업단의 이인경 단장은 몇 번이나 KNM 방송국 리포터에게 물어봤다.
“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역 뉴스에 빨리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이렇게 관광지에서도 뭘 시켜 먹고 하는 게 국내 최초인가요?”
“인증은 안 받았지만, 이렇게 지역 요식업체와 핸드폰 어플이 함께 되는 서비스는 해운대가 처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해운대 ICT 사업단이 추구하는 디지털 혁신입니다.”
이인경 단장은 인터뷰가 아닌데도 인터뷰 말투로 대답했다.
“아, 네네. 그럼 방송 쓰기에 좋을 겁니다. 운이 좋으면 SBC 전국 방송에도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참 좋죠.”
***
부산 수영구의 구청장인 석광기는 매일 뉴스를 챙겨 보는 사람이었다.
“저저저. 벌써부터 언론질이야?”
오늘도 KNM 8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성수기가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핫(HOT)한 해변이라며 해운대의 ICT 관련 단신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전국 최초로 해운대구의 ICT 기술이 민간 사업자와 함께 구현된 사업 사례인데요. 이렇게 해운대 백사장 어디서나 음식과 물을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더구나, 이 서비스 덕분에 해변의 쓰레기도 줄었다고 하는데요. 한번 보시죠...』
뉴스에는 붉은색의 옷을 입은 계도원이 어플을 통한 주문을 설명하고 있었고, 그렇게 배달된 주문을 확인해서 주문자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 먹은 쓰레기도 다시 버릴 수 있게 쓰레기장 안내를 하는 모습이 나왔다.
“아니, 저게 무슨 혁신인데. 그냥 주문해서 받는 건데 무슨 ICT가 구현된 사업 사례야. 웃기네.”
수영구의 석광기 구청장은 알게 모르게 콤플렉스가 있었다.
자신의 수영구에 있는 광안리 해변이 더 좋은 거 같은데, 사람들은 해운대를 더 위로 쳐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영구에서는 광안리를 더 띄우기 위해 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 전엔, 매출 부진으로 폐점했던 던킨도너츠 광안리 지점을 다시 재입점시키기도 했었다.
‘광안리 등킨도나츠를 먹어야 한다.’ 는 인터넷 밈까지도 챙겨가며 광안리의 인지도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되지도 않은 흔한 주문서비스로 전국 최초라며 해운대구가 뉴스를 내보냈으니 자신들도 저 서비스를 도입해야 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서진에게 이와 관련된 것들을 알아 오라고 하니 오히려 해운대 백사장은 치킨 족발이 배달되는데 광안리는 왜 안 되냐는 민원도 들어와 있었다.
“아니 관광 사업팀은 뭐 하는 곳이야? 이런 민원이 들어와 있는데도, 왜 아무런 액션이 없었어? 우리는 해운대가 하는 거 지켜보기만 할 거야? 관광 사업팀 진짜 이거 몰랐어?”
“죄송합니다. 해운대에서 된다고 해서 그쪽에서만 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럼 빨리 이거 추진하고, 우리 광안리에서는 뭔가 더 특별한 걸 해 달라고 해. 해운대보다 무조건 더 특별해야 해.”
***
“수영구청 구청장실이라고요?”
“네. 저희 구청장님이 ‘푸드 딜리버리’ 대표님을 한번 만나서 사업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광안리 해변을 가지고 있는 수영구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제안을 위한 준비였는데, 저쪽에서 칼자루를 우리에게 쥐여준다고 하니 뭔가 이득을 더 챙길 수 있게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임 대표님 우리 수영구는 해운대구와는 달라야 합니다. 같은 서비스를 적용하더라도 우리 수영구 광안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해운대와 진행하는 요식업 IT 산업화에 추가해서 우리만을 위한 것을 추가해서 만들어 주십시오.”
성광기 구청장은 자신들만의 특별한 것을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뭔가를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특별한 거라고 하니 골치가 아팠다.
그래서 미리 준비했던 것을 꺼내 들었다.
“구청장님 혹시 JTVC 채널에서 하는 ‘부엌을 부탁해!’ 방송 아십니까?”
“알고 있지요. 시청자 사연을 받아서 그 집 부엌에 있는 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는 거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그런 스타일의 요리 쇼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걸 수영구에 만들어 상설화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업장을 수영구에 만들겠다는 겁니까?”
“네. 해운대에는 이런 요리 쇼룸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광안리에서만 할 것입니다. 쉐프들이 요리를 만든 후에는 그 음식도 수영구의 구민들만이 먹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흐음. 해운대에는 없고, 우리에게는 있다고 한다면 좋은 거지요. 특히나 우리 구민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더 좋습니다. 그 요리 쇼룸 서비스를 빨리해주십시오.”
“네 그럼, 이 어플 ‘푸드 딜리버리’ 서비스와 연계된 요식업 IT화 사업에 대해서 수영구에서 지원을 해주십시오.”
“그렇게 합시다.”
석광기 구청장은 이미 해운대구가 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요식업 IT 산업화에 찬성을 했고, 그로 인해 요식업 가게 명단을 다 받아 내었다.
이후로는 해운대구와 같았다.
이종민과 영업맨들이 수영구의 이름으로 공문을 뿌리고, 영업을 갔으며, 포스기가 없는 곳은 우리 포스기를 넣었고, 포스기 장기 계약이 이미 되어 있는 곳은 어플만 설치하는 것으로 빠르게 진행을 했다.
그렇게 이종민이 물꼬를 트면 김이서가 퀵 서비스 사무실을 열었고, ‘빠른 친구들’ 직영 직원을 뽑아 배달을 시작했다.
이후로는 중소규모의 마트를 인수해서 김민욱이 일반 상품과 마트 내 푸드코트를 만들어 직영 가게를 운영했다.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니 일 처리가 부드럽게 진행되었고, 금세 광안리에서도 하루에 천 건의 주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달여가 지나 광안리와 해운대 해수욕장이 정식으로 개장하자 성수기 버프로 하루에 5천 건의 주문이 터져 나왔다.
어떤 배달 기사는 수변공원으로 치킨 배달을 하러 가며 일곱 건의 주문을 한꺼번에 쳐낼 만큼 한 장소에서 주문이 폭증했는데, 한여름의 바닷가는 배달 음식의 메카나 다름없었다.
***
“어? 김선희?”
전화기에 뜬 이름을 보고 의아했다.
해운대 복지과에 있다 부산진구 지역경제과로 옮겨간 김선희 주사였기 때문이었다.
먼저 전화를 준 것이 처음이라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미인과의 통화는 늘 즐거우니깐.
“임대표님 전에 해운대 구청에서 지역경제과에 일이 있다고 한 게, ‘푸드 딜리버리’ 이 건이었어요?”
오랜만의 전화인데도,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용건부터 이야길 했다.
“네. 주사님. 그때 이 일 때문에 해운대 구청에 간 거였습니다.”
“그럼, 그때 왜 저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셨어요? 해운대에서 왔는데, 이걸 왜 전혀 모르고 있냐고 한 소리 들었단 말이에요.”
“하하하. 그때는 주사님이 신규발령지로 가야 한다고 해서 바쁘셨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래도 그때 언질이라도 주셨으면 좋았을 건데. 우리 부산진 구청도 이 ‘푸드 딜리버리’ 서비스를 통한 요식업 IT산업화에 대해서 진행을 하고 싶은데, 언제 구청으로 들어오실 수 있으세요?”
“아, 그런데 어쩌죠. 지금이 해운대, 광안리 성수기이다 보니깐 인력이나 그런 게 다 해운대와 광안리에 매달려 있습니다. 진 구청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여름 끝나고나 가능하다는 말이에요?”
“아마도 그럴 거 같은데, 일단 저 빼고는 다들 바쁘다 보니 여름 성수기가 일단 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표님은 왜 안 바쁘신데요?”
“사장이 뭐 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냥 구청장님 만나서 좋은 이야기 하고 커피 한잔하다 보면 민관 협동 사업 하나 만들어지고 하는 게 전부죠.”
“흠. 그럼 일단 이 건으로 한번 만납시다. 일 진행은 여름 끝나고 가능하다고 해도 컨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걸 위에 올려야 해서요.”
“엇? 이거, 업무를 빙자해서 데이트 신청하시는 거 아닙니까? 당장 진행이 안 되는데, 보자고 하시고.”
“에? 갑자기 일 진행하기로 한 거 취소하고 싶어지는데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주사님도 칼 같으시네요. 저희 본가가 부산 진구입니다. 오늘 퇴근하고 가면서 구청으로 들르겠습니다. 좀 기다려 주십시오.”
***
대충의 요식업 IT산업화에 대한 서류를 주고 검토하게 했는데, 시간이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식사하지 않으셨으면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이거 설명하는 데 한두 시간 걸리기 때문에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겁니다.”
“흠. 그러죠. 진구가 본가시면 어디에 맛있는 게 있는가요?”
“그런데, 김선희 주사님은 고향이 어딥니까? 말투가 부산 사람 말투는 아닌 거 같은데.”
“울산이에요.”
“아, 그래서 묘하게 서울말이 섞여 있었구나.”
울산은 부산의 바로 옆이었음에도 서울, 경기의 현대맨들이 많이 내려와 있다 보니 사투리와 서울 경기의 말투가 섞여 사투리도 아닌 것이 표준어도 아닌 특이한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울산 사람이라는 소리에 서면에 있는 국밥 골목으로 데리고 갔다.
“돼지국밥 먹을 수 있지요?”
“먹을 수는 있는데, 그리 즐기지는 않아요.”
“그럼 맛있게 먹는 법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