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 푸드 딜리버리. (1)
“휴. 잘 끝난 것 같습니다. 역시 사무실이 비싸고 좋은 곳에 있으니 쉽게 넘어 가주는 것 같습니다.”
채학인은 묶고 있던 넥타이를 풀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VAN 사 설립 실사를 위해 금융여신위원회에서 사람들이 왔었는데, 실사에 다들 잘 대응을 한 것이었다.
“그럼 이 실사 건에 대한 결정은 언제 나오는 거지?”
“일단 지적당한 단수 체크 항목 3개에 대해서 바로 서류를 올려야 합니다. 그게 문제 없다면, 다음 주 중으로 바로 통보가 올 겁니다.”
“그러면 다음 주에 바로 어플 베타 버전 출시하고 영업 들어가는 걸로 합시다. 황우영 팀장님 포스기 세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영업팀은?”
“금융여신 위원회에 보여준 50대는 미리 세팅했고, VAN 사 코드만 붙이면 바로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영업도 보름 정도는 지자체 라면 영업 인원들까지 다 투입할 예정입니다. 포스기 세팅보다는 구청의 IT 산업화 일환으로 어플 설치를 우선할 생각입니다.”
“쿠폰 명함도 준비가 다 된 겁니까?”
“네. 넘버링된 쿠폰 명함 10만 장이 이번 주에 배송됩니다.”
가장 중요한 ‘푸드 딜리버리’의 홍보·마케팅이 남았지만,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네 감사합니다.”
다들 전화를 끊은 채학인을 보고 있었다.
“휴, 되었습니다! 통과되었습니다!! 이제 스타 코퍼레이션은 VAN 사입니다.”
“오!”
“이에!”
“아자자!”
채학인의 통과되었다는 한마디에 스탠바이 상태였던 일들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개발을 맡은 강민호 팀장과 채학인 팀장이 VAN 사 코드를 붙여 최종 테스트에 들어갔고, 오류가 없다면 바로 앱 마켓에 올릴 예정이었다.
나는 황우영 팀장과 포스기 20대를 들고 구청으로 가 구청장과 사업 설립이 되었다고 사진을 찍었고, 지역경제과에 빈 상자를 디스플레이로 쌓아주고 왔다.
지자체 사업의 일환이 되었기에 해운대구 요식업체들의 명단도 수월하게 받아 낼 수 있었고, 해운대구 요식업체들에 IT 산업화 공문을 일괄적으로 뿌렸다.
이제는 영업팀이 가맹을 받아 어플 카테고리를 채우면 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매제의 한 끼 떡볶이가 어플에 등록되었고, 매제의 아는 지인들이 운영하는 업장도 등록시켰다.
그래도 뭔가 부족해 보이자 구색을 갖추기 위해 거산의 부산지사로 움직였다.
빠른 친구들 배송기사를 이용할 때는 거산의 공산품도 같이 배송해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플에 우리 상품을 올리고 싶다고?”
“네. 오징어 안주류와 주전부리류 그리고 라면까지 다 올리려고요.”
상품 판매 관리부의 터줏대감인 이창모 부장은 뜬금없이 찾아와 어플에 상품을 올리겠다는 임건호의 말에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이거 김독수 전무에게 먼저 보고해도 되는 거냐?”
“네? 보고는 올려도 되는데, 무슨 지시가 있었습니까?”
“얼마 전에 김독수 전무랑 술을 한잔하면서 신신당부를 들었거든. 네가 부산에서 뭘 하는 거 같은데, 혹시라도 무슨 일인지 알게 되면 꼭 알려 달라고 하더라고.”
“캬! 제가 이렇게 관심을 받는 사람이 되었네요.”
“그 지자체 라면 유통을 맡으면서 라면 사업부가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은 벗어났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네가 또 새로운 걸 하고 있으면 같이 하게 바로 좀 알려달라고 하더라.”
“보고는 하셔도 되는데, 이게 잘 될지 안 될지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오케이. 그런데, 우리 물건을 어떤 방식으로 팔려고? 물류지는?”
“물류지는 없습니다. 안주류로만 해서 20여 종 정도만 소량으로 사무실에 비치 해 두었다가 주문 들어오면 배송을 해줄 생각입니다.”
빠른 친구들 사무실이 편의점이 있던 자리였기에 소량이나마 물류를 쌓아 둘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퀵 서비스 사무실에 거산 발주 프로그램 하나만 설치해 주십시오. 그럼 필요한 물건 발주해서 받도록 하겠습니다.”
“뭐, 편의점 하나 추가한 거라고 보면 될 거 같긴 하네. 이건 내 선에서 가능하니깐 직원 보낼게.”
“넵. 단가는 최저 단가 아시죠?”
“국내 최저가로 주마.”
***
“오늘은 6곳!”
김민욱은 퇴근 전에 오늘 세팅한 업장을 체크해서 벽에 스티커를 붙였다.
옛날 방식이긴 했지만, 매일매일 늘어가는 가맹점 숫자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게의 메뉴와 가격정보를 전산화 작업하는 지원팀에 넘겼고, 이후 메뉴 사진이 준비되면 다시 들려 최종적으로 확인을 하면 되었다.
처음엔 개척 영업이라 힘들지 않을까 했지만, 해운대구의 공문을 보내고 방문해서 그런지 가게 점주들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반겨 주었다.
특히나 테스트로 주문해 주면 다들 ‘푸드 딜리버리’ 어플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깐 핸드폰에 이 어플을 깔고, 주문을 하면 여기 포스기에 주문 온 게 뜬다는 거죠?”
“네 사장님. 테스트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테스트가 되는 거예요?”
“네. 저희 가맹점 중에 한 끼 떡볶이가 가장 먼저 가입을 해 주셔서 언제든지 주문하면 바로 옵니다. 결제는 현장에서 제가 카드로 결제하겠습니다.”
“오! 카드 결제기를 들고 오는 거예요?”
“네. 사장님 핸드폰으로 바로 시켜보시지요.”
김민욱은 카페 사장의 핸드폰에 어플을 설치하고 주소를 설정해서 한 끼 떡볶이 오리지날 세트를 주문했다.
그러자 30분 만에 떡볶이와 튀김 세트가 배송되었고, 카드로 바로 결제를 했다.
“카드를 아예 핸드폰에 등록해 두면 이렇게 결제할 필요도 없습니다. 먼저 드십시오. 그리고, 이런 테스트 주문으로 이곳 카페 음료수를 다른 곳에서 주문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우리 가게 매상 올려준다는데, 왜 싫겠어요? 카페는 테이크 아웃 잔이랑 다 있으니깐 바로 보내줄 수 있어요. 주문이 들어오면 여기 포스기의 기사 콜 메뉴에서 부르면 되는 거지요?”
“네. 맞습니다. 저희 직영인 ‘빠른 친구들’은 추가 금액 없이 배송 가능하고, 다른 퀵 서비스 기사들은 추가 금액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무조건 빠른 친구들이지.”
“네. 그러면 되는데, 저희 기사들 숫자가 한정적이라 식사시간에는 빠른 친구들이 너무 바빠서 올 수가 없더라구요.”
“하긴 그때는 밀릴 수밖에 없겠네.”
“카페는 식후 디저트로 시키시는 분이 많으니 또 시간이 살짝 다를 겁니다. 여기 정산에 대한 안내장과 사장님께서 적어주실 정보입니다. 전산처리는 아마 내일 될 겁니다. 문자로 안내가 갈 거고요. 어플에 올라간 정보를 확인하시면 될 겁니다.”
김민욱은 설명을 하며 영업이 끝이 나면 반드시 영업 종료를 클릭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를 했다.
그리고, 할인 쿠폰을 카운터에 전시해 놓고 가게를 나왔다.
그렇게 포스기와 어플 세팅이 끝이 나면 카페 사장들의 경우 가게를 비우지 못하기에 어플 사용을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2천 원 할인 쿠폰도 있으니 자연스레 공급자이자 소비자가 되는 것이었다.
***
“이모님. 그냥 배달하시는 곳마다 이거 3~4장씩만 같이 주시면 됩니다.”
건호는 명함갑에 들어있는 쿠폰을 넘겨줬다.
“이게 뭔데? 명함 같은 거가?”
“핸드폰으로 뭐 살 때 쓸 수 있는 할인 쿠폰입니다.”
“쿠포온? 안된다. 우리는 이런 거 마음대로 돌리다가 잡히면 큰일 난다.”
연갈색의 단체복에 햇빛을 가리는 챙모자를 쓴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회사에서 이런 거 돌리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가 잡상인도 아니고, 안 된다.”
해운대 센텀의 모든 빌딩과 아파트를 프리패스로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눈앞에 있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이었다.
그래서 직접 포섭에 나선 것이었다.
“이모님 우리 사무실에 쿠퍼스 10개 배달해 주십시오. 이건 주문서.”
주문서라고 손에 쥐여주었지만, 사실 그 안에 오만 원권 2장이 있었다.
“흐흠. 아, 이거 이라면 안 되는데. 큰일 나는데.”
“이모님. 그냥 쿠폰 주는 거로는 본사에 잘 연락 안 갑니다. 함 해 주이소. 이게 배달시켜 먹는 사람에게는 2천 원이 할인이 되는 거라 서로 이득입니더.”
“햐. 할인해 주는 거면 좋은 건데, 이라면 안 되는데...내가 마 특별히 요쿠르트 넣어 줄 때 같이 넣어줄게.”
“감사합니다. 이모님.”
센텀의 비즈니스 빌딩에 드나드는 야쿠르트 이모님들로 인해 센텀 사무실에 쿠폰을 돌렸고, 마찬가지로 센텀 지구에 있는 대단위 아파트를 담당하는 야쿠르트 이모님들에게도 뒷돈을 찔러주며 쿠폰을 부탁했다.
“그런데 사장아. 내가 어제 어플을 한 보니깐 오징어 안주도 판다이가.”
“네. 일반 상품도 팔고 있습니다.”
“그러면, 해운대 지역 담당하는 우리 지점장 만나서 아예 야쿠르트도 팔면 안 되나? 그러면, 이래 뒤로 해가꼬 쿠폰 안 줘도 된다 이가. 안 그렇나?”
“그렇네요. 하하하. 그러면 되네요. 그러면 공식적으로 쿠폰을 뿌릴 수도 있겠네요.”
거산의 오징어 안주를 파는 것처럼 빠른 친구들 사무실에 냉장고를 놔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야쿠르트 본사에 가서 딜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럴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빠른 친구들 사무실과 가장 가까운 야쿠르트 대리점에 가서 야쿠르트에서 나오는 물건을 우리 어플에서 팔고 싶다고 하니 할인은 해줄 수 있지만, 반품은 못 받아 준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일정 규모를 납품받기로 했고, 다 판매가 되면 기사들이 들렀다 가져가는 것으로 협의를 보았다.
대리점과 그렇게 협의를 보게 되니 야쿠르트 이모님들을 이용해서 할인 쿠폰을 수월하게 돌릴 수 있었고, 빌딩과 아파트에서 주문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어플 카테고리별로 얼추 메뉴가 구성이 된 것 같으니 길거리 홍보를 하면 될 거 같은데.”
해운대의 번화가는 센텀과 해운대역이지만, 아파트 단지가 있는 장산역과 유동 인구가 많은 백사장도 중요했다.
단순히 현수막을 붙이거나 하는 홍보보다는 눈에 띄는 홍보가 필요했다.
“눈에 확 띄고 사람들에게 각인되려면 역시나 미남 미녀 마케팅이 최고지.”
산청 약초축제에서 배우 최지인과 김은혜를 써서 효과를 톡톡히 봤기에 이번에도 외모 마케팅을 하기로 했다.
“30명이 필요하시다고요?”
동생과 같이 일하는 정은채 실장은 30명이나 구한다는 말에 놀랐다.
“사흘 동안 30명이면 비용이 꽤 클 것 같은데요. 가두 선전이라면 그렇게 대규모로 움직이는 게 확실히 눈에 띄긴 하지만 사흘 동안 숙박비나 그런 걸 생각한다면 데뷔한 연예인들을 쓰는 게 비용적으로 만만치 않을 거예요. 모델학과 학생들이나 연기 전공하는 학생들을 알바로 쓰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아, 그 생각을 못 했네요.”
“홍보 부스처럼 집중되는 게 아니라 거리를 다니며 하는 거라면 데뷔하지 않은 아마추어라도 충분할 거예요. 그리고 부산 사람을 쓰게 되면 숙박문제도 해결될 거고요. 제가 아는 지인을 연결해 드릴게요.”
“네. 그렇게 좀 부탁드립니다.”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뭔가 아쉬웠다.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최지인과 나를 이어주려고 했던 정은채 실장이었기에 최지인의 근황이나 그런 이야기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전혀 없었다.
물론, 내가 바쁘다고 제대로 들이대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냥 지나간 인연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아쉬웠다.
“연애는 무슨 푸드 딜리버리에 올인이다.”
***
“와! 저기 뭐지?”
훤칠한 사람이 입으면 매력이 2배가 되는 청바지와 흰색 면티를 입은 선남선녀들이 버스에서 내렸는데, 다들 어깨띠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슨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인가 싶어 지나가던 행인들의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선남선녀들이 다가가 뭔가를 건네주니 사람들은 일단 받아들었다.
“푸드 딜리버리 서비스 할인 쿠폰입니다. 집에서 주문하시면 음식을 가져다드립니다.”
서글서글하게 잘생긴 남자가 음식을 가져다준다는 말에 출근하던 여직원은 가슴이 떨렸다.
“지...진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