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VAN.
“그 밴(VAN)이란 게 정확하게 뭡니까?”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우리가 가게에서 신용카드로 물건을 살려면 본래 그 가게가 신용카드 회사와 신용거래 계약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BC카드, 신성카드, 대현카드 등등과 계약이 되어있어야 카드를 쓸 수 있습니다.”
“오, 그게 다 계약이 되어 있어야 하는 거였군.”
“네. 하지만, 지역의 작은 가게가 직접 카드사와 계약을 맺는다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카드 회사와 신용거래 계약을 하려면 가게 주인의 신용거래 금액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서 이런 힘든 신용거래 계약을 대행하는 VAN사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깐 밴사가 카드사와 가게 점주와의 사이에서 중계 계약을 맺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군.”
“네. 맞습니다. 가게 점주는 밴사 한곳과 계약하기만 하면 한국의 카드사는 물론이고 외국의 카드사와도 자동 계약을 하게 되어 무슨 카드든 다 결제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럼 이 밴사라는 업체는 카드사와 점주를 이어주는 수수료를 먹겠구만. 카드사와는 수수료 2%로 계약을 하고, 가게 점주와는 2.5%로 계약을 해서 그 0.5%의 중간 마진을 먹는 그런 비즈니스 모델인 건가?”
“맞습니다. 가게에서 많은 결제가 일어나는 만큼 수수료를 계속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자자, 잠시 짚고 가자고. 아마 푸드 딜리버리 어플에서 카드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것도 VAN사를 거치는 거겠지?”
“네. 맞습니다. 푸드 딜리버리 어플의 결제 단에는 밴사 모듈이 들어갑니다.”
“그럼 채학인 씨 말처럼 우리가 VAN사를 설립하게 되면 어플에서 일어나는 결제 건 수수료도 우리가 먹을 수 있다는 거네.”
“맞습니다. 그래서 VAN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제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채학인의 말처럼 어플에서 일어나는 결제와 가게 매장에서 일어나는 결제 수수료를 다 먹을 수 있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VAN사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자본력이 있어야 하며, 회계를 회계법인에 공증 맡겨야 하는 등의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그럼 포스기 업체들은 다 VAN사인 건가?”
“그건 아닙니다. 포스기 업체들도 뭔가 IT업체로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규모 회사가 난립해 있는 상황입니다. 그중에서 실제 VAN사를 설립해서 하는 곳은 한 곳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그 VAN와 다시 계약을 맺어서 영업을 하는 겁니다.”
채학인의 설명을 듣다 보니 뜬구름 잡는 소리에서 점점 선명하게 돈이 움직이는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부 계약으로 밑에 VAN사까지 거느릴 수 있다라. 피라미드 영업도 된다는 거네. 그럼 그 밴사는 어떻게 설립하는 건데? 금융업 계통이면 정부에 뭔가 등록하거나 신고를 해야 하는 거야?”
“아직은 그런 VAN등록에 대한 법령이 없습니다. 카드사와 직접 거래를 맺기만 한다면 됩니다.”
“그럼 너무 쉬운 거 아냐? 정부에 뭔가를 신고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카드사와 계약만 하면 되는 거 아냐?”
“네. 맞습니다. 다만 각 카드사에서 제시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회사 자본금 10억 이상과 부가통신업 영위에 필요한 전산기기, 프로그램, 전산자료 손실에 대비한 이중 백업 장비를 보유해야 됩니다. 거기에 부가통신업에 3년 이상 종사한 경력자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일단, 자본금은 충분하고, 장비야 사면 되는 거고, 경력 있는 사람도 채학인 씨가 되는 거지?”
“네 됩니다. 그래서 VAN사 설립을 이야기해 드린 겁니다.”
“무조건 대박이 나는 사업이라는 말인데, 궁금한 게 있어. 그럼, 채학인 씨에게는 뭐가 남는 거지? 사장인 내가 돈을 다 벌게 되는 거잖아. 나랑 몇 년 동안 동고동락한 사이도 아니고, 본인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월급밖에 없는데, 하자고 하는 이유가 뭐야?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 말이야.”
건호는 월급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나서서 사업을 제안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채학인이 뭔가 꼼수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저, 나중에 그 하부 밴사로 창업하게만 해주십시오.”
“하부 밴더로? 하하하.”
건호는 뭔가 미심쩍었다. 괜히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 건호의 미심쩍어하는 의심과는 달리 채학인은 꿈이 있었다.
그가 처음 입사했던 VAN사인 ‘네오포스 통신’에서 가졌던 꿈이었다.
채학인이 보았던 네오포스의 임원들은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돈을 벌어가는 사람들로 보였다.
네오포스는 3500곳의 소매점에 POS가 깔려 있는 회사였는데, 하루 평균 10만 건의 결제가 이루어졌고, 매일 12억 원대의 금액이 네오포스 통신을 거쳐 갔다.
거기서 떨어지는 수수료가 매일 700만 원 이상이었고, 회사의 임원 4명은 그냥 매일 놀러 다니며 편하게 돈을 받아 갔다.
물론, 그런 3500개의 가맹점을 만들어 내기 위해 초창기에는 노력을 했겠지만, 어느 정도 포스기가 깔린 이후로는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돈이 되는 것이었으니 채학인의 눈에는 그저 신선놀음으로 보일 뿐이었다.
채학인은 그런 신선놀음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네오포스 통신에서 일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자신의 VAN사를 차려 신선놀음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네오포스 통신에 6년 넘게 있었음에도 VAN사를 차릴 만큼의 자본력을 가지지 못했고, 사람들을 구워삶아 투자를 몇십억 받아낼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그러다, 스타 코퍼레이션이라는 업체에서 정산/회계 전문 개발자를 구한다는 구인을 보고 회사 규모를 가장 먼저 확인했었다.
그리고, 여력이 된다는 것을 보곤 이직을 한 것이었다.
창립 멤버로 VAN 사를 설립하여 임원이 된다면 네오포스의 임원들처럼 신선놀음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건호는 대놓고, 훗날 창업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는 채학인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직 제대로 어플도 만들기 전인데, 벌써 VAN 사나 음식 배달이나 다 성공해서 그 이후를 꿈꾸는 직원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고, 그런 포부를 가지고 있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좋아 보였다.
이미 매제가 창업해서 수익을 만들고 있고, 그 투자로 인해 새로운 수익도 나고 있었기에 이런 포부를 가진 직원에게 투자하는 것도 내 이득과 동시에 사회적 공헌이라 생각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부 밴더 차리게 해주겠습니다. 남자가 야망이 있어야죠. 하지만, 약속하나 합시다. 일의 최우선은 이 ‘푸드 딜리버리’입니다. VAN 사 등록이 쉽지 않을 경우에는 기존의 VAN 사를 써서 어플을 출시하고 이후 다시 VAN 사를 등록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채학인 씨 일의 선후에 따른 약속 할 수 있습니까?”
“네. 할 수 있습니다.”
“오케이. 그럼, VAN 설립에 대한 장비들과 조건들을 챙기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석건 개발팀장이 하드웨어 담당 인원 구인과 백업 장치 같은 장비도 구인하도록 하십시오.”
“넵.”
“그럼 포스기를 무상으로 설치해주면서 ‘푸드 딜리버리’와 ‘밴사’를 같이 가는 것으로 합시다. 김이서 씨는 하드웨어 인원이 들어오면 포스기 제작 단가나 그런 비용적인 부분 체크해서 보고해 주세요. 다른 질문 있습니까?”
“사장님이 중국집과 치킨집 사장님께 물어보고 배달 금액 2천 원이라고 했던 부분이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이서 씨 현장의 업주들은 그 가격이 절대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금액 확인을 위해 서울에서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요한 부분을 잘 이야기 해줬네요. 서울로 출장가게 되면 그거 바로 확인해서 피드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일단 첫 개발 회의는 여기서 마치고, 업무지원 직원인 석현정 씨가 회의록 작성해서 올려주세요.”
***
어플 쪽 개발과 포스기에 대한 것이 진행되기 시작했으니 ‘푸드 딜리버리’의 다른 한 축인 배송기사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무영이를 다시 불러 앉혔다.
“에? 제가 사장을 하라고요? 저 그런 거 못 하는데요.”
무영이에게 퀵사무소 일을 맡기려고 했는데, 녀석은 기겁을 했다.
“무영아 너 오토바이 타고 하는 거 좋아 하잖냐.”
“저기 과장님. 아니다 사장님 제가 오토바이 타고 하는 건 좋아하는데, 그걸 좋아한다고 퀵서비스 기사 사무실을 차리는 건 아니죠. 아재들 관리하기 힘들어요. 어리다고 말 안 듣고, 그거 달래 가면서 할 자신이 없어요. 아마, 바로 욕하고 싸울걸요.”
그러고 보니 퀵서비스 쪽에 아는 사람이라고 무영이를 사장으로 앉히려 했는데 무영이는 이제 19살이었다.
이건 내가 봐도 사무실 사장으로는 무리일 것 같았다.
같은 또래의 젊은 애들을 모아서 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지만, 그런 젊은 애들만으로는 일이 제대로 굴러갈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 관리하는 거라면 이서 누나를 앉히면 안 되나요?”
“이서를?”
“네. 이서 누나가 사람 관리는 진짜 잘해요. 아마, 퀵서비스 사무실도 잘할걸요.”
“이서가 그렇게 사람 관리를 잘했나?”
무영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몇 개가 떠올랐다.
피시방에서 팔리는 오다리에 대한 자료를 구해 달라고 했을 때나, 떡볶이집에 알바들을 심었던 거, 군청에서 일을 대행해줄 사람을 구하는 것까지 모두 다 이서가 처리를 했던 것이었다.
이서가 꼼꼼하게 일을 하고 수완이 좋다는 건 알았는데, 인력관리도 잘할지는 몰랐다.
“이서도 22살밖에 되지 않는데, 괜찮겠어? 퀵서비스 아재들 관리 힘들다며?”
“오히려 22살 여자라서 더 잘할걸요. 양아치 같은 아재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대단하다고 잘해줄걸요.”
“흠. 거기에 무영이 네가 돕는다면 이서가 딱 맞긴 하겠네. 이서랑 일단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같이 가자.”
“퀵서비스 사무실을 제가 하라고요? 그럼 지금 하는 일은요?”
“지금 하는 사무 일은 다른 직원에게 맡겨야지. 이서 네가 실장이 되어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거야. 할 수 있겠어?”
“흠. 사람 관리하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퀵서비스 사무실을 한 번도 가보거나 한 적이 없어서 어떤 곳인지를 모르겠네요.”
“누나 그거 쉬워. 그냥 1층 허름한 사무실에 간판 달고 앞에 퀵서비스 기사 구함 하고 현수막만 붙여둬도 사람들이 올 거야.”
“그렇게 모인 기사들에게 일은 그럼 어떻게 주니? 일을 어디서 받아오는지가 중요하지.”
“사장님이 이야기한 그 음식 배달에서 일을 받으면 되는데, 그게 아직 전이면 뭐 다른 사무실에서 주는 거 받아야지. 그게 아니면 사무실이나 그런데 다니면서 스티커 붙이고 찌라시 돌려야지.”
퀵서비스 일을 따내려면 결국 맨바닥 헤딩을 해야 하는 것 같았다.
“그 라디오에서 광고하는 그런 번호를 만들면 안 되냐?”
“사장님 그거 광고하는데도 1억씩 들걸요. 그렇게 광고하는 거보다 무료로 배송해주는 이벤트가 훨씬 더 좋을걸요.”
“무료 배송 이벤트?”
“네. 처음 부르면 공짜로 해주고, 5번마다 공짜로 가져다주면 고객들은 모일 거예요. 그게 광고비 쓰는 거보다 이득일걸요.”
“흠. 그럼 이렇게 하자. 초반 5개월간 한 달에 200만 원씩 줄 테니까 무영이 네가 네 또래 10명 기사들 모아.”
“10명이나요?”
“그래. 해운대에 퀵서비스 사무실 낼 거고. 초반에는 안면 있는 구내식당에 퀵서비스 명함 두고 3번, 6번 9번 이용할 때마다 무료로 보내주는 거로 사람들 모아보자.”
보통 일반 퀵서비스 사무실에서 이런 조건으로 기사들을 부리려고 하면 공짜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 무조건 않는다고 할 터였다.
하지만, 월급 200을 준다는 조건으로 기사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라 괜찮았고, 무영이 친구 외의 기사라면 건당 돈을 주면 되는 것이었다.
어플이 나와서 정상적으로 운영될 때까지 퀵서비스 사무실을 운영해보면서 운영문제나 오류들을 미리 잡아야 했다.
“일단 내 명의로 사업자를 내고, 사무실 구해 줄 테니까 이서는 사무실 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퀵서비스 일 한번 해보자.”
“네. 그렇게 할게요.”
이서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챙겨준 임건호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퀵서비스 일을 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마음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뭔가 자신에게도 기회가 온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며칠 전 VAN 사를 같이 해야 한다고 했던 채학인처럼 자신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그럼 일단 카드부터 먼저 주세요.”
*
[작가의 말]
실제 VAN사 등록에 대한 법(?)은 2015년에 나왔습니다.
이것도 법이라기보다는 금융당국에서 등록을 위한 메뉴얼을 내놓은 것입니다.
2010년 전후로 등록한 VAN사들은 대부분 노가 났고, 지금까지도 쭈욱~잘 나가고 있습니다.
메뉴얼화된 2015년 이후로 10여개사가 더 등록되었지만, 이미 선점된 시장이다 보니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