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무한리필 한 끼.
최소 수량이라고 했지만, 거산의 유통망에 올리기 위해서는 봉지면 300만 개에 컵라면 100만 개가 필요했다.
지자체 라면을 제외하고 전국에 유통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산 수량이었다.
그리고 유통된 대부분이 판매되지 않고 유통기한 한 달 전에 반품되어 올 것 같았다.
그래서 거산 라면 사업부에 와서도 매운맛을 좋아하는 소수를 위해서 손해를 봐가며 생산하는 것이라고 입을 털었다.
괜히 반품률 90%면 뻘쭘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 어디에나 소수의견이라는 게 있고 아웃사이더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라면 맛에도 그런 특이한 맛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안 팔릴 거 뻔히 알면서도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그게 요즘은 없어진 낭만 아니겠습니까?”
김한철 부장은 맥주잔을 들다 말고 내려놓고는 박수를 쳤다.
“그래. 돈 있는 사람들이 이런 투자도 좀 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야 시장이 커지는 거지. 이 안주로 나온 치킨도 마찬가지잖아. 누가 치킨 튀긴 거에 치즈 가루를 뿌리려고 생각했겠어. 짭짤한 이런 치즈 맛 치킨이 있을 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잖아.”
김한철 부장은 새로운 라면을 들고 와서 가짓수를 늘려줘 고맙다며 오늘은 자기가 산다고 호프집으로 왔다.
뭐, 유명한 곳은 아니고, 그냥 김 부장의 집 근처였기에 온 것이었다.
“이 치즈 뿌린 치킨이 히트할 줄 아무도 몰랐고, 파닭도 마찬가지였어. 누가 치킨을 파채랑 먹는다고 생각했겠어. 고기도 아닌데 파채라니. 이 볶음면도 대박 날지도 모른다고. 그걸 누가 알겠어? 인생 운빨이야 운빨. 한번 운에 맡겨봐!”
문성철 대표와 연구소 직원들에게 팩폭 당해서 며칠 동안 깨져있던 멘탈이 김한철 부장의 우쭈쭈 칭찬에 바로 회복이 되었다.
“그렇죠. 누가 알겠습니까? 여튼 이번에 새로 런칭하는 거 좀 신경 좀 써 주십쇼.”
“오케이. 나만 믿어. 우리가 부산에서 올라왔잖아. 동향 사람 좋다는 게 뭐야? 바로 이런 거 아니겠어? 팔은 어쩔 수 없이 안으로 굽는다니깐. 난 임 대표가 늘 이렇게 새로운 걸 만들어 내고 도전하는 거에 대찬성이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프론티어 정신! 그런 정신을 기업인이라면 가지고 있어야지.”
김한철 부장은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는 타입이었다.
물론, 쏟아내는 많은 말 중에서 칭찬이 더 많았기에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요즘 기업인들은 말이야 실패를 너무 두려워한다고! 한 기업, 한 그룹의 총수가 된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하면 쓰나. 우리 회사 창업자이신 최민배 회장님만 봐도 얼마나 많은 걸 실패했었어.”
“그렇죠. 그런데 부장님. 실패보다는 흘려보낸 걸로 정정하는 거 아시죠?”
거산의 초대 회장인 최민배 회장은 워낙에 많이 말아먹어서 회사에서 언급할 땐 ‘실패’를 ‘흘려보낸 것’으로 통칭해서 썼다.
오죽했으면 하는 것마다 다 실패한다고 ‘마이너스의 최’라고 별명이 붙었을까.
하지만, 그런 실패를 커버해줄 만큼 의류 하청이 있었고, 결국엔 브랜드화에 성공해서 거산 그룹을 키워냈다.
중간 과정에서 실패가 있었지만, 결국엔 성공했으니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회자 될 뿐이었다.
“오케이 그래. 최 회장님이 지금 가지고 있는 3개 브랜드를 위해 몇 개를 흘려보냈었냐? 공식적인 것만 8개야. 그런데, 임 대표는 봐봐. 다 성공했잖아. 그리고, 이제 자산도 많은데 한 두 번 실패하면 어때 안 그래? 이제 몇 개는 실패해도 되잖아.”
“그렇죠. 실패했다고 해도 한 6개월 돈 좀 아끼면 회복되는 손실이죠.”
“에이씨! 아무리 그래도 그 비유는 빡치네. 내 연봉보다 많구만. 안 되겠어 여기 계산 임 대표가 해.”
“하하하. 그렇게 하죠. 집에 애들 야식으로 먹게 뿌링클 포장까지 해서 드리겠습니다.”
애들 먹을 치킨까지 바리바리 챙겨서 집으로 가는 김한철 부장 덕분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김한철 부장의 말처럼 실패는 한두 번 할 수도 있는 거였다
.
최민배 회장이 계속 실패해도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건 나이키에게 받던 의류 하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도 지자체 라면이라는 바닥쿠션이 있기에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물론, 도전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충분히 먹고 살 정도는 되었다.
아니, 먹고 사는 정도가 아니라 깔아둔 게 있다 보니 나름 중견기업체 대표로 떵떵거리면서 살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뭔가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동물원의 사자나 호랑이가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분명 가지고 있는 힘은 있으나, 현실에 안주해서 그냥 주는 먹이만 먹고 누워 있는 우리 속의 맹수가 될 것 같았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도전하지 않으면 이빨이 있고 발톱이 있어도 누워 뒹굴기만 하는 동물원의 맹수가 될 뿐이었다.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들어 레드오션인 라면시장에서 활로를 찾아야겠다는 고민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
산청공장에 들린 김에 불떡 볶음면이 제대로 유통되고 있는지 농협 한무리 마트에 가서 한번 살펴봤다.
한쪽에 진열은 되어있었으나 실제 판매가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라면이 진짜 많긴 많네.”
라면시장을 잡고 있는 용심, 공두리, 삼익의 빅3뿐만 아니라 나름 대기업인 거산, 필도, 물무원까지 있으니 진짜 무한 경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복잡한 시장에 각 지자체의 라면들도 끼어들었으니 가뜩이나 촘촘한 라면시장이 더 빡빡해진 것이었다.
각 마트나 편의점의 PB상품 생산과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들의 주문 생산을 하며 기업을 꾸려온 문성철 대표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부산으로 와서도 마트 몇 곳을 들러 살펴봤다.
부산 쪽 마트에도 비빔면들 옆으로 구석에 진열이 되어있었다.
국물 라면이 메인, 짜장들이 서브, 그리고 비빔면이나 스파게티류는 서브의 서브였다.
그러다 보니 불떡 볶음면은 구석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업체에서 나오셨나요?”
라면 진열대에서 이리저리 보며 사진도 찍고 진열 구성을 보고 있으니 마트 직원이 관계자로 보고 물어 왔다.
“아예. 거산입니다. 행사 포지션이나 POP 홍보 다이는 심라면이 다 잡았는가요?”
“네. 원래 이번 달에 행사 예정이 없었는데, 갑자기 심라면에서 행사가 들어가네요. 거기다 심라면이 행사를 하니 틈사이 라면도 할인 행사에 들어갔구요. 아마, 거산에서 행사 들어가려면 다음 달 말까지는 자리가 없을 거 같네요.”
직원에게 홍보 행사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 바닥의 치열한 경쟁이 더 와 닿았다.
보통은 신상이 나오면 웃돈을 내면서라도 홍보 다이를 잡고 행사를 진행하는 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매니아를 노리고 나온 물건이기에 이런 마케팅 홍보도 아예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어? 근데, 일본 라면도 이제 들어오는 건가요?”
“네 기신 라면이 한국 지사를 세우고 올해부터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저쪽은 컵라면 위주로 판촉을 진행하기에 좀 결이 다르긴 한데, 나름 저쪽도 행사를 자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이 터지겠네요.”
한국의 라면시장이 레드오션이었기에 활로를 찾아 다른 나라의 시장으로 넘어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으로의 수출이었다.
헌데, 역으로 한국으로 진출하는 기신 라면을 보자 그것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신 라면도 사실 예전에 한번 한국에 진출을 했었다.
지금은 라면 업계에서 손절치고 사업을 접어버린 둥그레와 협업하여 한국에 진출을 했었다.
둥그레의 라이센스 생산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했지만, 둥그레 라면이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철수하면서 기신 라면도 철수를 했었다.
헌데, 다시 또 들어 온다고 하니 일본 쪽의 라면 업계도 레드오션의 활로를 외국에서 찾는 듯했다.
하긴, 기신 라면의 창업자인 안도 모모후쿠 사장이 생전에 살아 있을 때 수출과 미국을 열렬히 외쳤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이름을 ‘컵누들’로 지었던 이유도 미국시장에 수출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지었다는 일화도 유명했다.
하지만, 안도 모모후쿠 사장이 그렇게 원했던 미국인들은 여전히 면 요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미국인들이 컵누들에 가지는 이미지는 동양인들이 먹는 간편식 혹은 비상사태로 먹을 게 없을 때 먹는 음식으로 인식할 뿐이었다.
내 나름대로 레드오션인 한국 시장을 벗어나 외국으로 수출해서 활로를 찾아보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근 40년 가까이 이름마저도 영어로 지어가며 일본인들이 공략했음에도 개척이 되지 않는 해외 시장이었다.
그렇다고, 북미를 빼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수출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
중국도 나름의 면 요리가 많았고, 자체 라면도 있었다.
대만의 우육탕, 베트남과 태국의 쌀국수.
아시아의 각 나라는 자신들만의 누들 면 요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파스타 같은 누들 요리를 먹는 유럽을 공략하려고 해도 인식의 장벽이 있었다.
에스프레소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먹는다고 커피가 아니라고 욕을 박아대는 놈들이 이태리 놈들인데, 자기 나라의 파스타 대신 라면을 식사로 먹을까 싶었다.
파스타 대신 라면을 먹는 이태리 인은 생각도 되지 않았다.
유럽을 높게 생각하지만, 이상한 음식이라고 침을 뱉고 욕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놈들이 더 많은 게 유럽이었다.
결국 라면의 활로를 수출로 찾겠다는 대안도 답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유통 후 한 달이 지나 받은 매출표는 그런 내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라면은 이게 한계다.
***
“고객님. 앞에 손님들이 계셔서 30분 정도 대기하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대학생 커플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대기 순번 4번이 적힌 표를 받고 대기 좌석에 앉았다.
내가 불떡 볶음면으로 죽을 쑤는 동안 매제가 만든 떡볶이 무한리필 가게는 대박이 났다.
홍대 앞 번화가 2층에 자리 잡은 가게에는 점심, 저녁 시간마다 대기 줄이 늘어섰다.
“테이블 회전율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술을 먹는 게 아니다 보니 고깃집에 비해서는 확실히 빠릅니다.”
매제는 장사가 잘되어서 그런지 아주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네가 요리쇼도 하는 거야?”
“네. 손님이 없는 평일 오후 3시에 한 번씩 합니다.”
“제대로 의욕이 올랐구나.”
“하하하. 그렇죠. 이게 셀프 방식이라 인건비도 다른 가게에 비해 작습니다. 테이블을 치워주는 알바만 있으면 되니깐요.”
인건비도 인건비이지만, 일단 떡볶이의 재료 원가가 저렴한 게 컸다.
거기다 배를 빨리 부르게 하는 탄산음료와 맥주를 무료 제공하고, 공깃밥과 컵라면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나름 분식을 좋아한다는 사람들도 2번 이상 조리해서 먹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손님들은 분식 뷔페로 생각을 하고 왔기에 7,900원이란 가격을 비싸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뷔페라는 모티브로 인해 가성비 있는 가격으로 10대와 20대들에게 지지를 받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아, 그리고 2호점을 부산 서면에 내기로 했습니다.”
“부산에? 관리가 힘들 건데. 서울·부산 왔다 갔다 할 수 있겠어?”
“뉴클라우드 호텔에 같이 있던 후배가 한번 와보고는 체인점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내주기로 했습니다.”
“아니, 오픈한 지 한 달째인데 벌써 지점을 그렇게 쉽게 내어주냐? 그리고, 내가 이거 지분 50% 들고 있는데 왜 상의도 없냐. 또 사기당하면 어쩌려고?”
“형님이 많이 바빠 보이셔서 그때 알려주신 변호사님 입회하에 계약서 쓰고 다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안 맡기고 저와 건희가 일일이 다 챙기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둘이 챙기고 이지람 변호사 입회하에 계약했다면 괜찮겠지. 이 뷔페가 돈이 되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뷔페에 사리면은 물론이고 비치되어 있는 라면도 다 우리 라면이었기에 뭐 나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돌아오긴 할 터였다.
“먹고 가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불떡 볶음면을 증정하자. 내가 10만 개 기증할게. 손님들 갈 때 기분 좋게 가라고 한 개씩 사은품으로 줘.”
***
“엘리사. 어제 바빴어? 다 같이 떡볶이 뷔페 갔었는데. 왜 빠졌어? 매운 음식이라 안 간 거야?”
“아니야. 어제 약속 있었어. 그리고 이제 나 한국에서 2년이나 있어서 한국 음식 다 잘 먹어. 아 사철탕 빼고는 다 먹어.”
프랑스에서 온 엘리사는 보신탕을 사철탕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정도로 한글 패치가 된 유학생이었다.
“그래? 그럼 떡볶이 같은 매운 것도 먹을 수 있어?”
“그럼 이제 나 완전 한국 사람이라니까. 명예 한국 사람이야.”
“그으래? 그럼 이거 어제 뷔페에서 받아 온 건데 한번 먹어볼래? 떡볶음면이라고 살짝 매운 거야.”
불떡 볶음면을 내미는 진호는 웃음을 몰래 지었다.
“물론이지. 나 한국 음식 다 잘 먹는다니깐.”
진호와 친구들은 불떡 볶음면을 비벼주면서 속으로 웃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도 이걸 먹고 고생했는데, 프랑스 여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자 엘리사 한번 먹어봐.”
엘리사는 자칭 명예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젓가락으로 불떡 볶음면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처음 입안에 넣은 볶음면을 엘리사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몇 번 씹었다.
그러다 올라오는 매운맛에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으, 시바 졸라 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