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 같이 나눠 먹읍시다.
“에헤이 우리 임차장. 대표가 되더니 신수가 훨씬 훤해졌구만!”
“한 부장님도 부장 달고 해서 그런지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 하하하.”
“내가 서울 체질인지 서울 물이 좋더라고. 하하하. 일단 전무님이 회의실에 계시네 바로 가지.”
그래도, 나름 인수인계를 하며 일주일가량 같이 있었기에 다른 직원들하고도 인사를 했는데, 김승재 대리도 그렇고, 다들 그렇게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니 눅눅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때 봤었던 몇몇 사람들도 없었다.
새로 만들어 진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라면 사업부의 분위기가 이렇게 눅눅해진 이유가 있었다.
거산이 700억을 들여 라면 공장까지 인수하고 해운대 라면이 판매가 잘되자 다들 신사업에 대한 기대를 했었다.
그래서 신제품도 출시를 했으나,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물론, 해운대 라면은 4천만 개 이상이 팔리며 나름 선방을 하고 있었지만, 새롭게 거산에서 추진한 라면 2종과 비빔면은 죽을 쑤고 있었다.
처음 거산이 출시한 라면은 캠핑 예능에서 연예인이 끓여 먹었던 우엉 라면이었다.
우엉이 라면에 들어 가 국물을 묵직하게 만들어 중후한 맛을 내는 라면이었는데, 이게 초반에만 반짝하고, 판매가 잘되지 않았다.
묵직한 국물맛은 좋았으나 그로 인해 면발의 맛이 죽는다는 평가였다.
이후 만든 라면은 장국 국수 라면으로 잔치국수와 라면의 중간쯤 되는 형태였다.
국수와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교집합 된 틈새를 노리고자 출시했으나, 오히려 국수와 라면을 좋아하는 양쪽 모두에게서 평가가 좋지 못했다.
그리고 여름을 맞이해서 출시한 해초 비빔면은 초록색의 면발이 사람들에게 호불호를 주며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공두기는 여섯 번 째 신제품이었던 진심 라면으로 시장에 안착했었어. 시장에 처음 들어와서 자리 잡는 것이 힘든 법이야. 다들 기운내고! 화이팅!”
신제품 3종을 진두지휘한 이재영 상무는 잇따른 실패로 기운이 빠진 직원들을 위로하며 새로운 신제품으로 성공하면 된다고, 분위기를 애써 끌어 올렸다.
하지만, 갑자기 여러 지자체에서 라면, 짜장면이 나오기 시작하며 몇백만 개가 판매되었다고 지자체의 홍보 기사가 올라오자 이재영 상무도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라면 사업부의 분위기는 박살이 났다.
“아니, 스타 라면이라는 중소 기업체에서 10개 넘는 라면을 출시해서 시장에서 3천만 개 이상을 팔았다고 하는데, 너희는 뭐야? 쟤네들은 잘하는데, 너네는 왜 못하는데? 어?”
사내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이끈다던 이재영 상무가 화를 내며 질타를 하자 가뜩이나 연속 된 실패로 불안하던 직원들이 타 부서로 옮겨달라고 하거나 퇴사를 하겠다고 사직서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임원회의에서도 말이 나왔고 공식적인 회의 의제가 되었다.
“라면 사업부의 기획 및 마케팅은 1팀인 박정민 부장팀이 맡았고, 생산과 유통은 김한철 부장의 2팀이 맡았군.”
거산의 최지운 회장은 700억 넘게 쏟아부었음에도 신통찮은 결과만 내고 있고, 직원들의 이직문제까지 생겼으니 이재영 상무에 대한 질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후계자 파의 얼굴마담이기도 한 이재영을 무작정 찍어 내릴 수는 없었다.
신규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시장 진입과 안착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기도 했으니, 무조건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용심과 공두기, 삼환까지 빅 3이 버티고 있는 시장에 끼어드는 것이었으니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그런 초반의 리스크를 후계자파가 다 뒤집어쓰기 보다는 외(外) 파와 나눠 써야 했다.
“이미 만들어진 시장에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생산/유통은 잘 되고 있다고, 기획/마케팅 팀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다 전가하기는 힘든 법이야. 안 그래?”
“네 맞습니다. 1년으로는 사실 판단을 하기 힘들지요.”
“신규 사업 진출이면 3년은 지켜봐야 하는 법이지요.”
몇몇 임원들이 최지운 회장의 말에 동조를 했다.
“1년 해보고 안된다고 기획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다 책임을 질수는 없지. 그러니, 한번 이렇게 해보자고. 박정민 부장의 1팀이 생산과 유통을 한번 맡아보고, 김한철 부장의 2팀이 기획/마케팅을 한번 맡아봐. 그렇게 1년간 팀을 바꿔서 한번 해보자고. 팀 성과는 그해 매출 실적으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고. 김 전무 어때?”
김독수 전무는 최지운 회장이 무슨 의도로 업무를 바꿔보라는지 알 것 같았다.
신규 진입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그 리스크를 나눠 가지라는 것이었다.
결국, 앞으로 1년 동안 똑같이 실패하더라도 크게 책임을 추궁받지 않을 것 이기에 김독수는 흔쾌히 수락했다.
“네 업무를 한번 바꿔서 해보면 전체적인 그림을 알게 되어서 시너지가 나올 수도 있는 법이지요. 그렇게 한번 해보겠습니다.”
***
김독수 전무는 팀 간의 업무를 바꾸며 매출을 늘릴 방법을 궁리하다 신문에 몇 번 나온 지자체 라면을 살폈다.
“그러니깐. 이 스타 라면, 스타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의 주소가 문성철 대표의 태양 식품 제조 회사의 주소라고?”
“네. 전무님 그래서 은근슬쩍 문성철 대표를 떠보니깐 임건호 차장 이름이 나왔습니다. 뉘앙스를 보면 임 차장이 차린 회사 같습니다.”
“그럼 전화를 해서 한번 떠보고 진짜 스타 라면을 임건호가 차린 거라면 한번 보자고 해봐.”
그렇게 김한철 부장과 약속을 잡고 본사로 오게 된 임건호였다.
***
“임 대표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할게. 우리도 지자체 라면 영업에 나서기로 했어.”
“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자체 라면의 재고 유통을 맡기기 위해 왔는데, 그거보다 더 큰걸 먼저 터트리는 김독수였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까지 넘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거 지자체당 300만 개가 전부입니다.”
“그런 300만 개 짜리 10개면 3천만 개야. 지금 우리는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그 정도로 라면 부서가 힘이 든 겁니까?”
말을 하며 김한철 부장을 보니 눈 밑에 다크서클이 축 쳐져 있는 게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게 맞는 거 같았다.
“해운대 라면 빼고는 신제품 3개가 다 박살이 났어. 신제품으로 매출 만들고 하기 보다는 우리도 좀 쉽게 가려고. 그래서 지자체 라면을 우리도 할 수밖에 없어.”
말을 하면서 김한철 부장이 샘플로 가져가라고 라면과 비빔면을 꺼내어 줬다.
“그리고, 임대표. 우리 말고도 용심, 공두리까지도 지자체 라면 알아보고 있더라.”
“아, 진짜 한국 대기업들은 와 이럽니까. 중소기업이 함 잘살아 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죽여야겠습니까? 다들 너무하네. 진짜!”
짜증 내는 투로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었고, 대기업들에 대한 방어책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산에서 먼저 연락해서 나를 불러들이고, 지자체 라면에 진출할 거라고 이야기하는 김독수 전무의 진짜 의도를 알고 싶었다.
“지자체 라면에 진출할 거라는걸 알려주기 위해서 저를 부르신 건 아닌 거 같은데, 다른 이유가 있어서 부른 거 아닙니까?”
“햐. 눈치 빠르네. 하긴 이렇게 빠꾸미가 되어있으니 알아서 자기 사업한다고 나갔겠지.”
김독수 전무는 진짜 아까운 인재라고 생각하는지 입맛을 다셨다.
“지자체 라면 같이 나눠 묵자.”
같이 연합하자는 제의였다.
그리고, 이 제의가 나는 기뻤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의 시장 진출 방어책 중 하나가 거산과의 연합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참 웃긴 기업경영문화가 있는데, 바로 전경련이란 단체에 회장들이 다 소속이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말은 ‘전국 경제인 연합회’라고 포장을 잘해두었지만, 실상은 각 기업 간의 사업 관리를 위한 친목 모임이었다.
전경련 모임에서 각 기업의 대표들이 만나 서로 조율할 건 조율하고, 밀어줄 건 밀어주고 하는 야합이 이루어 지는 것이었다.
말은 상도의를 지키기 위한 조율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냥 가격 담합이라던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영역 협정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지자체 라면 판을 먹고 나면 거산과 연합해서 내 나와바리를 지킬 수 있는 방어 토템으로 거산을 세워 두려고 했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김독수 전무가 같이 나눠 먹자고 말을 먼저 꺼낸 것이었다.
“임 대표도 솔직히 혼자서 이 판 다 못 먹는 거 알고는 있지?”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해보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깐 그걸 같이 하자고.”
“뭐 가격만 맞으면 못할 거도 없습니다. 일단 카드 다 꺼내 보십시오. 칼자루는 제가 들고 있는 거 아시지요?”
“이야. 이거 완전 날강도네. 칼자루 잡고 있다고 가지고 있는 거 다 꺼내라고 해샀코 캬. 범을 키웠네. 범을 키웠어.”
“알아서 혼자 컸다 아입니까. 하하하.”
“로고는 거산 거로 넣고, 비율은 6:4로 하자.”
“우리가 6입니까?”
“생산까지 맡으면 6 준다. 새로 공장까지 짓고 있다면서.”
“벌서 거기까지 알아보신 겁니까?”
“뭐, 조사하면 다 나오지. 영업은 같이 하고, 생산은 너희가 다 하는 걸로.”
나름의 계산을 해보니 큰 재미는 없어도 안정적인 캐시카우는 확실히 될 거 같았다.
그리고, 용심과 공두기를 막기 위한 토템의 역할까지 생각하면 나름 쏠쏠할 것 같았다.
더구나 다 품종 생산을 위한 공장을 짓는 것도 있었기에 우리와 거산이 같이 영업해서 최대한 지자체를 많이 따낸다면 규모의 이익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지자체 라면의 오프라인 유통을 거산의 유통망을 통해서 하고 싶습니다. 처음 해운대 라면처럼 판관비만 받고 팔아주십시오.”
“몇 종이나 되는데?”
“14종류인데, 브랜드당 200만 개 정도의 재고라 좀 애매합니다.”
“그 정도면 뭐 될 거 같군. 이제 외식 사업부 쪽에도 라면을 유통할 수 있거든. 나름의 혜택은 있을 거야.”
“그럼 딜하지요.”
이 오프라인 유통망을 쓰는 게 사실 최종 목표였다.
한국인 라면과 코리아인 라면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독수 전무는 생산을 책임지다 기획 쪽의 일을 맡았기에 어떻게든 매출을 올리고 1년 후에 성과를 보여줘야 했다.
그렇기에 지자체 라면에서 이득을 봐야 했고, 다른 라면들의 유통을 판관비만 받더라도 진행을 해야 했다.
어떻게든 덩치를 불려서 외파가 후계자파 보다 뛰어나다는걸 보여줘야 했다.
***
스타 라면의 영업팀이라고 해봤자 이종민 실장과 김민욱 과장의 2팀 뿐이었다.
여기에, 거산의 영업 팀 5개 10명이 추가되자 한 달에 1개 정도 가능했던 지자체 영업 계약이 한 달에 4~5개가 가능했다.
이렇게 공격적으로 진행을 하다 보니, 용심과 공두기도 아차 싶었는지 본격적으로 영업팀을 돌리기 시작했고, 서로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거산과 우리가 46개, 용심이 28개, 공두기가 17개로 82개 군과 광역시의 지역 라면 사업을 따내었다.
사업 수주만 1500억대, 순이익은 400억대로 단 5개월 만에 거산의 라면 사업부는 어두운 분위기를 걷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자체 라면의 영업 결과를 들으며 함박웃음을 터트린 최지운 회장은 전경련에서 용심과 공두리의 대표들과 친목을 다졌고, 3년 간은 서로 공격적 영업은 하지 않는 것으로 담합 아닌 담합을 했다.
***
“이제 직원이 15명이나 되었네. 그런데, 다들 유니폼 입는걸 좋아해?”
겨울이라고 직원들 동복 유니폼과 작업복을 만들 수 있게 이서가 서류를 올렸는데, 다른 이들도 유니폼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예쁘면 다 좋아하죠. 작업복도 디자인만 예쁘면 그냥 출퇴근할 때 바로 입고 할 수 있고요.”
“그래? 그럼 시간도 있는데, 같이 맞추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