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마음대로 안 되는 것.
산청군에서 연 약초축제는 외부의 관람객도 많이 왔으나, 시내 오일장이 열리는 곳에서 진행이 되었기에 유동인구가 많았고, 나름의 성공을 할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약초라는 것이 쉬운 품목이 아니었다.
축제에는 일반인이 많이 오는 것이 당연했고, 전문가가 와서 약초를 사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무슨, 감초 가루가 뭐 이리 비싸.”
“이거 국산 맞아요?”
“이건 원래 말려서 먹는 거에요?”
이러다 보니, 진짜 약초는 팔리지 않았다.
“어중간한 거 사가기 보다는 그냥 저 라면이나 사 가자고, 산청에서 나는 채소로 만든 라면이라고 여기서 밖에 안 판다고 하니깐 저거나 사 가자고.”
결국 약초축제에 방문한 사람들은 수제 매실액이나 식초 같은 품목이 아니면 간편하게 사갈 수 있는 한방 라면을 기념품으로 구매해 갔다.
“이거 온라인으로는 안 파는 거에요?”
“아닙니다. 산청군 홈페이지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택배로도 받으실수 있으세요!”
“그럼, 거기서 사고 택배로 받아야겠네.”
차에 짐을 싣고가기 힘든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산청군 홈페이지에 들어 가 구매를 시도했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다.
대충 내가 봐도 쇼핑몰 시스템이 불편했다.
아마도, 사업예산을 부풀리기 위해 자체 쇼핑몰을 구축한 것 같았는데, 이게 다른 유명 온라인 사이트에 비해서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모 부장님. 방문객들이 홈페이지 쇼핑몰이 잘 안된다고 하는데, 저희 홈페이지에서도 판매를 해도 됩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거 골치가 아픕니다. 일단 홈페이지 계약 업체와 계약 조건을 봐야 하는데, 스타라면 사이트에서 판매해도 괜찮을 겁니다.”
이정모 부장에게 구두로나마 확인을 받자 우리도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쇼핑몰을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라면과 코리아인 라면이 다음 달에 시제품으로 나올 예정이었기에 자체 쇼핑몰이 필요했다.
어느덧 행사 마지막 날이 되었는데, 처음 내가 가진 생각처럼 최지인과 어떻게 썸이 나고 하는 그런 게 없었다.
온종일 카메라 앞에서 사진을 찍히고, 손님들과 사진을 찍어준다고 응대하는 것이 의외로 힘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둘 다 피곤했기에 저녁을 먹으면 바로 숙소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날도 부스 정리를 다하고 나니 연애질의 연자도 꺼내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날 때도 ‘다음에 또 봅시다.’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
“지인아. 너 그거 알고 있어? 이 일에 일부러 너 데리고 온 거.”
정은채 실장은 운전을 하면서 룸미러로 힐끗 보며 물었다.
“일부러요? 그냥 은혜랑 제가 일이 없다 보니 온 게 아니었어요?”
“우리 대표님 결혼식 때 네가 들러리 섰잖아. 그때 대표님 오빠분이 너를 봤었거든. 그 이후로 전화로 연락 와서는 너 꼭 데리고 오라고 했었어.”
“그래요? 근데,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고 할 줄 몰랐지. 진짜 힘들었다. 그런데, 너는 어때? 대표님 오빠분 말이야.”
“뭐, 나름대로 착하신 분 같은데...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돌싱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
최지인은 대답을 하면서도 말끝을 내렸다.
같이 보름간 일을 하다 보니 겉으로는 착하고 무난해 보였는데, 마누라와 사별을 한 것도 아니고 이혼을 한 것이라 뭔가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돌싱은 연애 못하냐? 그럼 넌 따로 만나볼 생각은 없어?”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로서는 뭔가 하자가 있었으니 이혼을 했을 것 같다는 고정 관념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쉽게 만나거나 좋아지지는 않을 거 같아요.”
최지인이 속마음을 이야기 하자 차 안이 조용해 졌다.
“돈이 많은데도 소탈해서 괜찮긴 한데, 그래도 이혼남이고 전 초혼이잖아요. 그게 모든 걸 다 설명해 주는 거 같아요. 이유 있는 사람이라는 거...부담되요.”
정은채 실장은 최지인의 말을 듣고는 아차 싶었다.
연예계에 오래 있다 보니 그저 돈만 많으면 젊은 여배우들이 쉽게 사람을 만나볼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재력가와 뜨지 못한 여배우들의 결혼을 매니저 생활을 하며 많이 봐왔기에 지인이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던 자신의 실착이었다.
“사람 관계라는 게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그냥 붙여두면 붙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했네. 일단 서울까지 둘 다 푹 자둬. 내일 바로 일찍 오디션에 가야 할 거야.”
***
“이서야! 축제기간 동안 판매된 매출서는 아직이야? 그리고, 컴패니언 걸들 일당도 정리해서 군청에 넘겨줘야 지급해준다는데, 그건 얼마 정도 걸린다고 하디?”
“에...잠시만요. 통화중이에요!”
필요한 서류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처리를 하면서 내가 달라고 한 서류까지 만든다고 이서가 낑낑거렸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 직원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우선은 전화 받는 사람이라도 충원을 해야 이서에게 몰린 업무가 어느 정도는 분산이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영업팀이 두 팀으로 늘었으니 이서 혼자서 영업팀을 지원하면서 다른 잡무까지 처리하는 게 힘들 것 같았다.
이걸 좀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
인원 추가를 생각하다 보니 온라인 판매를 위한 홈페이지와 쇼핑몰 담당 직원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구두로 확인 받은 산청 한방 라면이나 다른 지자체의 라면들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한국인 라면까지 온라인에서 팔려면 사람이 더 있어야 했다.
“이사님. 축제기간 매출서이고요. 카드 정산은 일주일 후에 들어옵니다. 컴패니언 걸 인건비는 우리 돈으로 먼저 지불을 했구요. 군청에서는 이달 말에 입금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 이서야. 공장 쪽 업무를 담당할 여직원을 우선 한 명 뽑자. 그리고, 쇼핑몰도 우리 것을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발송이나 C/S 담당 직원도 있어야 할 거야.”
“저기, 그럼 계속 산청에 있어야 하는 건가요?”
사람을 뽑는 거 보다 산청에 계속 있는 것부터 물어보는 것을 보니 산청에 있는 것이 힘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산청에 출장을 온 것도 벌써 6개월이었다.
나야 차가 있으니 부산이고 서울이고 왔다 갔다 할 수 있지만, 차가 없는 이서는 그러지를 못했고, 약초 축제기간에는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행사장에서 일을 했었다.
더구나, 자기 숙소인 빌라에 방이 많다고 다른 사람들과 살게도 했으니 불편했을 터였다.
오히려 지금까지 불만 사항을 이야기 하지 않고 꾹 참아준 것이 고마웠다.
“우선 ‘한국인 라면’이 나오면 우리도 물류 창고가 있어야 해. 부산 쪽으로 창고와 사무실을 구할 테니까 산청에는 공장 업무 확인을 위한 직원만 있으면 될 거야.”
“그럼. 산청에서 근무할 사람을 구인하도록 할게요.”
이서에게 직원 인사까지 맡겨도 될까 싶었지만, 이제까지 아무 문제 없이 해왔기에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이사님 그런데, 홈페이지는 홍보용이니 템플릿으로 간단하게 만들면 되고요. 쇼핑몰은 네인버에서 시작한 쇼핑팜이란 플랫폼이 있어요. 그거로 그냥 만들면 될 거예요. 따로 개발자를 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래? 그럼 산청에서의 업무지원과 부산에서의 물류 창고, C/S 담당하는 직원만 뽑으면 되는거야?”
“네. 부산에 창고가 구해지고 나서 뽑으면 되니깐 산청에서의 연락 업무를 맡아줄 사람만 먼저 뽑을게요.”
***
사람이 구해지는 동안 부산을 돌아다니며 물류 창고로 쓸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구서동 IC 근처의 주류 판매상을 하던 곳을 계약했다.
산청에서 라면이 오면 그걸 받아 다시 전국으로 보내야 했기에 교통의 요지인 IC 근처로 잡은 것이었다.
라면을 쌓아 둘 수 있게 창고건물을 설치하는 동안 라면 계약을 맺었던 지자체와 추가로 유통 계약을 맺기 위해 방문을 했다.
처음에 지역 특산품화 한다는 마케팅 포인트를 위해 온라인 판매나 유통 판매에 대한 부분 자체를 아예 계약서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별건으로 판매관리 계약을 맺는 것이었다.
“그런데, 임 대표님 아예 우리 울산시 홈페이지에서 판매 된 라면을 스타 라면에서 바로 발송을 해주시면 안됩니까?”
지금은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그걸 확인해서 발송까지 하는 일을 공무원등이 하고 있었다.
그런 발송업무가 귀찮은지 아예 우리에게 넘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됩니다. 저희 쪽에서 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만 주신다면 매일 확인해서 저희가 발송 가능합니다. 대신 외주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보니 돈이 문제겠지요. 혹시나 해서 판매관리 위탁에 대한 것도 별건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판매관리를 우리가 해주고 수수료 12%를 받는 별건 계약서를 내밀었는데, 공무원들은 자기들의 월급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다 보니 수수료로 12%를 뗀다고 해도 좋다고 했다.
판매 수익이 줄더라도 자기들 일이 줄어드는 것이 더 좋은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런 공무원들 덕분에 잔잔하게 돈을 땅길 수 있을 터였다.
***
“임차장. 이러기 있어?”
산청의 공장 창고에서 부산 구서동 물류기지로 라면 재고를 옮기는데, 거산의 김한철 차장 아니, 이제는 김한철 부장이 연락을 해왔다.
전화를 건 첫마디가 ‘이러기 있냐’고 버럭하는 말투였기에 어떤 문제인지 몰라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임차장. 산청 한방 라면이랑 여수 해물라면, 인천 짜장면, 짬뽕까지 다 임차장 회사에서 출시한 거라며?”
“아아.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틈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하하.”
김한철 부장이 전화를 건 목적을 알게 되었기에 내가 이겼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타이밍 좋게도 지자체 라면들과 유통 계약도 새로 맺었으니 오프라인 판매 유통을 거산에게 넘길 수 있는 권한이었다.
그렇게 되면 온라인은 우리 직원들이 맡고, 마트와 편의점 같은 오프라인 유통은 거산의 유통망을 통해서 할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나눠 먹어야 하니 떨어지는 콩고물이 좀 줄어들겠지만, 그냥 놔두기만 하면 돈을 벌어 주는 것이라 우리에겐 이득이었다.
“이건 때문에 김독수 전무님이 같이 한번 보자고 하는데, 언제 서울 올 수 있는 거야?”
“아유 전무님이나 부장님이 부르시면 서울로 바로 가야지요. 내일 오후에 본사로 들리면 됩니까?”
“그래. 그럼 내일 오후로 약속 잡고. 또 하나 물어보자. 스타 코퍼레이션이란 회사에 대표가 임 차장이라는 말이 있는데, 맞아? 전주가 따로 있는 거야? 아니면 전주가 임 차장인거야?”
“그게, 어쩌다 보니 제가 회사를 차렸습니다.”
“허허이. 그럼. 임 대표님이네. 이거 내가 말 놓고 한 게 잘못 된 거네.”
“아이고 아닙니다. 우리가 뭐 남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말 편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오후에 찾아뵙겠습니다.”
***
“임 차장이 뭐래? 스타 코퍼레이션이란 회사가 자기 회사 맞대?”
김독수 전무는 김한철 부장이 전화를 끊자마자 물었다.
“네. 예상했던 대로 스타 코퍼레이션이 임 차장이 세운 회사가 맞다고 합니다. 일단 내일 오후로 약속을 잡았으니 내일 담판을 지으면 될거 같습니다.”
“역시 난놈이었네. 어떻게든 잡았어야 했는데. 놓친 게 아깝네.”
김독수 전무는 오른팔로 키워서 같이 갈 수도 있었던 임 차장을 내보낸 것이 정말 아쉬웠다.
더구나, 늘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하던 이재영 상무와 힘을 합쳤는데도, 라면 쪽 실적이 떨어지고 있다 보니 승승장구하고 있는 임건호를 내보낸 것이 더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