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 터닝포인트?
“가게를 해라고 한다고? 누가?”
해운대 라면의 CF가 티비에 나오면서 주위에서 바람을 넣는 사람이 생긴 것 같았다.
“그게 같이 ‘부엌을 부탁해’에 출연하는 쉐프도 있고, 그쪽으로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하니 프랜차이즈 쪽 사람들도 만나고 하다 보니 다들 권합니다.”
“권한다고 다 하는 건 아니잖아.”
최도협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 비즈니스 쪽 일이다 보니 내 눈치를 봤다.
“경주 대현 호텔에서도 요리쇼를 하기로 계약을 했는데, 부산에서 이틀, 경주에서 이틀을 행사 비슷하게 뛸 바에는 그냥 자기 가게를 차리고 나흘 동안 가게에서 일을 하는 게 더 벌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이야기를 들을수록 도협이가 제대로 바람이 든 거 같았다.
무는 바람이 들면 구멍이 숭숭 뚫려서 안 된다고 하고, 여자도 마찬가지로 바람이 들면 못쓴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바람은 남자에게 불어닥친 사업 바람이었다.
특히나 우쭈쭈하고 주위에서 띄어 줄 때는 그 바람이 너무나 강해서 주위를 둘러보지 못할 수가 있었다.
“그럼 무슨 가게를 할 건데? 주메뉴는?”
“제 전공도 있고 하다 보니 이태리 파스타 가게를 하려고 합니다.”
“흐음. 난 딱 듣기에도 바로 잘못된 거 같은데. 네가 티비에서 나오고 있는 CF는 라면이잖아. 부산의 뉴클라우드 호텔에서 하는 요리쇼도 라면이고. 대현 호텔에서는 무슨 요리를 하는데?”
“거기는 ‘부엌을 부탁해’에서 나왔던 요리들 위주로 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자! 봐봐. 이상하잖아. 네가 유명해진 건 파스타가 아니잖아. 라면이거나 방송에서 급하게 후다닥 만든 퓨전 요리잖아. 그런데, 전공을 했다고 스파게티 파스타 가게를 열겠다고?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게 파스타가 흔한 요리다 보니 ‘부엌을 부탁해’에서는 못 보여줘서 그렇습니다. 제대로 파스타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방금 너도 이야기했잖아. 파스타가 흔한 요리라고. 스파게티, 파스타는 젊은 애들이 예쁘게 먹는 용도로 가게에 가서 먹거나 레토르트로 만들어진 소스를 사서 쉽게 해 먹는 음식이잖아. 비싸게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고.”
“그래서, 예쁘게 먹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그런 가게를 할 생각입니다. ‘부엌을 부탁해’의 주 시청자들이 20~30대 젊은 사람들이니 오히려 그런 보여주기식의 가게가 잘 될 겁니다.”
매제의 이야길 듣고 보니 그냥 단순하게 바람이 든 게 아니었다.
요리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에헤이. 매제 초심을 잃었네. 음식 맛이 아니라 예쁘게 보여줄 수 있는 데이트 음식을 할 거라니. 그렇게 겉멋만 든 음식이 오래 가겠어?”
“형님의 말도 맞습니다. 요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먹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거지요. 헌데, 이제는 세상이 바꿔버렸습니다. 맛있고 배부르게 먹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남들에게 잘 먹었다고 보여줄 수 있는 있어 보이는 음식도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헐. 그게 무슨 말이야.”
매제가 단순히 초심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흑화를 해버린 것이었다.
요즘 한창 이름값을 올리고 있는 백중헌 프렌차이즈 요리사가 강조하는 음식 맛과 가성비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멋만 잔뜩 든 요리를 해서 팔겠다는 말이었다.
“매제가 흑중헌이 되었구만.”
“흑중헌요? 아! 그런데, 형님. 이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일본의 요리학교에서 이태리 음식을 배운 사람이나 이탈리아에 가서 직접 피자와 파스타를 배워온 사람들도 다 망해나갔습니다.”
“그 사람들도 다 보여주기식 음식을 했던 거냐?”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태리에서 쓰는 바질과 파슬리,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까지 다 들고 와서 정말 맛과 정성을 가득 담아서 가게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다 망했습니다.”
최도협은 그렇게 이태리의 스타일 그대로 정성을 쏟아서 영업을 했던 선배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돈을 날리고 몸도 상해서 가게를 접어야 했었다.
물론, 현지화보다는 원조의 맛을 지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 폐업의 원인일 수도 있었다.
그런 선배들을 봤었기에 최도협은 맛은 중간만 가도 되고, 데코레이션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춰서 가게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음식의 깊은 맛을 원하지도 않고, 그 깊은 맛이 무엇인지도 이제는 잘 모를 정도입니다. 직접 토마토를 갈아 만든 수제소스보다 시중에서 시판되는 피자 토마토소스를 더 맛있다고 고급이라고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하긴, 대기업의 입맛이 확실히 더 맛있긴 하지.”
깊은 맛보다는 무난한 맛을 원했고, 페이스북에 오늘 뭘 먹었다고 올리며 비싼 가게라고 과시하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특징이긴 했다.
그런 특징을 캐치해서 사진이 잘 나오는 음식을 하겠다고 하니, 이게 요즘 트랜드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나름의 생각이 뚜렷한 상황이라면 매제를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진짜 매제가 파악한 트랜드에 잘 맞게 가게를 만들고 음식을 한다면 대박이 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쪽박이 날 터였다.
“네가 가게를 차리면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있어?”
“있습니다. 같이 동업을 하자는 분이 있습니다. 감자탕 프랜차이즈를 하시는 분인데, 양식 쪽으로 프랜차이즈를 내보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투자가 아니라 동업?”
동업하자는 말에 기분이 싸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일이 진척이 되어 있는 거네. 건희도 알아?”
“아직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형님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조강지처 말 따라야 한다고 이야길 하고 싶었지만, 조강지처 말을 듣지 않아서 이혼한 것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조강지처 말 들으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낯짝이 그렇게 두껍지는 못했다.
“그래. 휴. 어쩔 수 없네. 일단 그분하고 한번 만나보자. 만나서 좀 디테일한 이야기를 해 보고 추진을 해 보자. 오늘 집에 가면 건희에게 이야기를 하고.”
“네. 형님. 역시 형님이라면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해는 아니거든!’ 하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 해봤자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마음에 벽을 더 세우게 될 뿐이었다.
도협이를 보내고 생각해보니 한국 사람들은 의외로 이태리 전통 피자나 스파게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리 피자 스타일로 토핑이 몇 개 들어가지 않은 담백한 피자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었다.
올리브 기름과 허브, 토마토소스, 치즈 그리고 바질이 올라가는 게 끝이었다.
더구나 얇은 피자였기에 비슷한 가격으로 토핑이 가득 올려져 있는 뉴욕식 피자에 비해 뭔가 허술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스파게티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까르보나라나 토마토 스파게티는 본토인 이탈리아의 음식과는 차이가 엄청나게 컸다.
일본의 나폴리탄이라고 하는 케첩 스파게티에 우리나라의 스파게티들은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이태리 사람들은 우리들이 하는 스파게티가 스파게티가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이태리인이나 이태리 요리를 전공한 사람과 보통 한국인들과의 인식 차이에서 오는 미스매치가 문제였다.
그런 인식차이가 있으니 전통 이태리 음식점들이 다 망한 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씌 가뜩이나 바쁜데, 장사는 무슨 장사를 한다고 아유 빡쳐!”
***
이틀 후 도협이의 연락을 받고 서울 모처에서 건희와 정은애 실장까지 해서 모였다.
거기서 수염 면도 자국이 엄청나게 파란 40대의 안경잡이를 도협이가 소개해주었는데, 꼴통 프랜차이즈의 대표라고 했다.
“아, 꼴통 감자탕집이랑 꼴통 순대 국밥집의 거깁니까?”
“하하하. 맞습니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정기라고 합니다. 해운대 라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하하하. 별거 없습니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그래도 자주 본 프랜차이즈의 대표라 어느 정도는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간 생각했던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사실, 그냥 방송일만 하면 충분한데, 가게를 하겠다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아. 솔직히 부정적이야. 하지만,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라는 것 또한 말이 안 되긴 해.”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서 말인데, 가게를 차리려면 우선 이태리 음식을 버려야 한다고 난 생각해.”
가게를 여는 것에 찬성을 하긴 했지만, 이태리 음식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자기의 전공인 이태리 음식을 버려야 한다고 하니 당연하게도 최도협의 얼굴은 굳어졌다.
“이게 한국 사람들은 피자하면 뉴욕 스타일의 미국 피자를 먼저 떠올리는 상황인 건 알 거야. 스파게티나 파스타도 이태리식이 아니라 일본에서 변형된 스파게티를 진짜 스파게티로 한국 사람들은 인식을 하고 있고. 난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보거든. 아무리 보여주기 음식 스타일로 한다고 하더라도 그 인식의 문제가 클 거야.”
한국에서 이태리 음식을 하는 사람과 일반인들의 간극을 이야기하자 이정기 대표도 어느 정도 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워낙에 스파게티 소스가 잘 나오고, 이태리 소스의 직수입도 되기 때문에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야. 그래서 이태리 음식으로 가게를 차리는 건 반대야.”
오빠가 제대로 된 근거를 바탕으로 반대를 하자 건희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꿈쩍도 안 했는데, 나름대로 크게 사업을 하고 있고, 인정을 받는 오빠가 이야기를 하니 도협이가 수긍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베트남 음식도 프랜차이즈로 한국에서 성공했는데, 베트남 쌀국수보다 들어온 역사가 긴 이태리 음식으로 프랜차이즈가 성공한 게 하나도 없잖아. 그게 한국에서의 이태리 음식이 가진 위상이야.”
팩트폭력에 최도협의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임 대표님께서는 어떤 음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매제에게 이야길 듣고 생각을 하면서 프랜차이즈 업체들을 대충이라도 살펴봤습니다. 그중에서 매제가 하면 알맞을 게 하나 있더군요.”
“그게 뭡니까? 이태리 음식 전공 쉐프에게 맞는 음식이 어떤 겁니까?”
“라면입니다. 정확하게는 일본식 라멘입니다.”
얼굴이 어두워졌던 최도협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라멘이라면 저도 일본에서 공부할 때 엄청 많이 먹고 아르바이트도 해봤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한 거야. 베트남 쌀국수로 성공한 ‘미시 사이공’ 쌀국수가 의외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잘 맞았어. 소고기 양지로 국물을 우려낸 뽀얀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거니깐.”
“라멘도 비슷하지요. 돼지와 닭으로 국물을 내고 면을 말아 먹는 거니깐요.”
어두웠던 매제의 얼굴이 처음처럼 밝아졌다.
“맞아. 그리고, 라멘은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가 퍼진 건 몇 없지만, 서울이나 경기도에 4~5개 정도의 가맹점을 가진 프랜차이즈는 그래도 몇 개가 있더라고.”
“맞습니다. 단품으로 조리 편의성이 높고, 국물을 들이키는 한국인 특유의 식습관에도 맞으니 딱인 것 같습니다.”
이정기 대표도 괜찮은 선택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자, 최도협의 머리에서 이태리 음식은 이미 저만치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일본 라멘의 맛을 원하는 사람들은 새로 생긴 라면집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기도 하고 하던데. 물어보니깐 일본인들에겐 라멘이 한국의 돼지국밥과 같다고 하더라고. 소울 푸드처럼 정기적으로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음식.”
“맞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도 사람들이 순회하듯이 라멘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침 꼴통 프랜차이즈도 순대국이나 감자탕을 하시는 쪽이니 라멘 국물을 뽑는 것도 잘 될 것 같고. 딱이네. 일본 라멘을 한다면 난 가게 하는 거 찬성이야.”
내가 라멘이면 찬성한다고 하자 최도협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지 등이 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정기 대표와 당장이라도 가게를 열 것처럼 했는데, 이렇게 급하게 하는 것도 안 좋았기에 내가 브레이크를 좀 걸어줘야 했다.
“가게 차리는 건 좋은데, 그전에 결혼식을 하고 해. 아마 가게 차리면 더 시간 없을 거야. 그러면 어떻게 결혼식 준비를 하겠어. 내 동생 더 나이 들어서 웨딩드레스 입힐 거야?”
“아. 알겠습니다. 먼저 결혼식부터 하고 신혼여행으로 일본으로 가서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딱 맞겠네.”
가게를 하는 것보다 먼저 결혼식을 하게 되면 시간이 걸릴 터이니 도협이가 좀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될 시간을 가지게 될 터였다.
그리고, 이 라멘이 제대로 프랜차이즈화된다면, 역으로 라멘 봉지면도 일본이나 외국으로 수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