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앉아서 돈 벌기. (1)
“산청 한방 라면 상표권 말하는 거야?”
“네. 이 상표권을 지자체에 안 넘겨 주고 우리가 들고 있으면 나중에 우리가 핸들링 하기 쉽지 않겠어요? 그리고, 이게 잘 되면 해운대 라면처럼 또 대기업에 팔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 이서 네 말이 맞아. 그렇게 하면 확실히 이득이지. 헌데,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돈이 되는 걸 아는 데도 넘긴 이유가 뭘까? 생각해봐.”
“음.”
이서는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지만, 무조건 이익이 생기는 것인데도 넘기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혹시, 문성철 대표님처럼 여유가 생기다 보니 돈 욕심을 부리지 않는 건가요?”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건 아니야.”
“그럼, 뭣 때문에 상표권을 넘겨주는 건가요?”
“우리가 들고 있어도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야.”
“네? 별 소용이 없다고요? 왜요?”
“작년인가 재작년에 뉴스가 나온 게 있는데 기억하려나 모르겠네. ‘해돋이’, ‘해맞이’ 특허 사건이라고 알아?”
“해돋이, 해맞이요? 그건 신년 1월 1일에 해운대 백사장이랑 속초 해변 같은 곳에서 하는 거 아니에요? 그게 특허랑 관련해서 문제가 있었어요?”
“그래. 이 해돋이, 해맞이란 단어로 상표권을 등록한 업체가 있었어. 이벤트 행사 진행 관련 업체였는데, 이걸 상표로 등록해 두고 지자체에서 해돋이 행사나 해맞이 행사를 할 때 그 이름을 못 쓰게 막았었어.”
“헐. 그런 것도 상표권으로 제재가 가능하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해돋이 해맞이 행사를 진행했던 여러 지자체에서는 난리가 났어. 그리고 어떻게 이게 상표권에 걸려서 쓰지 못하느냐고 특허청에 심의를 해달라고 소청을 넣었어.”
“그럼 결과는 어떻게 된 건가요?”
“해운대나 속초에서 해맞이, 해돋이 행사를 잘하고 있잖아.”
“아, 업체가 진 거군요.”
“그래. 당시 특허청에서는 지역명이 들어간 속초 해맞이 행사, 해운대 해돋이 행사 같은 네이밍을 써도 된다고 유권해석을 해줬어. 지자체의 이름이 들어간 해돋이, 해맞이 행사 네이밍은 공공의 행사이기에 상표, 특허권이 제한된다고 판결해준 거지.”
“그럼, 라면에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건가요? 그것과는 조금 다른 거 같은데.”
“다른 거 같지만, 같아. 우리가 산청 한방 라면을 상표 등록해서 우리가 이 라면을 핸들링하려고 하는데, 산청 군청이 싫다고 산청 원조 한방 라면을 만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법적으로 우리 상표권이 침해받았다고 소송을 걸고 할 수 있을까?”
“흠. 아마도 지자체의 이름이 들어가 있으니 해돋이나 해맞이처럼 지자체의 편을 들어줄 확률이 높겠네요. 지자체의 이름이 들어갔고 처음 생산도 지자체와 같이 했으니 공공자산이라고 우리 상표권을 제한할 것 같아요.”
“맞아. 우리가 상표권을 무조건 잡고 있을 이유가 없는 거지. 큰 이득을 볼 확률이 거의 없으니깐. 들고 있다고 해도 상표권 법으로는 지켜내질 못해. 그럴 바에는 그냥 넘겨주는 게 서로 편한 거지.”
“그럼 해운대 라면은 운이 좋은 거였네요.”
“해운대 라면의 경우에는 구청이 뭐라고 하기 전에 빵하고 떠버렸으니깐 구청에선 뭐라고 하지 못한 거지. 그리고, 해운대 구청이 해운대 라면을 욕심내서 들고 가기 위해 싸울 이유도 없었고.”
“흠. 그렇다면 상표권을 아예 넘겨주고, 그냥 유지관리만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거네요.”
“그래. 더구나 각 지방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 브랜드 상표 출원을 엄청나게 하고 있어. 쌀만 해도 브랜드가 100개는 넘을걸. 그러다 보니 이제 공무원들도 상표권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 그런 중요한 상표권을 자신들이 가지지 못하는데, 돈을 태우려고 할까?”
“아무리 선거특수라고 해도 문제가 될 수 있겠네요. 업체가 상표권을 들고 있으면 특혜라고 공격받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맞아. 이제 이서 똑똑하네. 그리고 공무원들 특성상. 상표권도 줬고, 우리가 생산을 다 맡아 주면 웬만한 사고를 치지 않은 이상 다른 업체로 변경이 되지 않아. 그냥 그대로 놔두려고 해. 괜히 바꿨는데 더 비용이 많이 든다거나 하게 되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니깐.”
“그냥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1년에 4~5억을 벌면 되는 거네요.”
“그래. 82곳의 군청만 해도 1년에 300억이 넘을 거야. 그리고 며칠 안에 몇 곳에서 전화가 올 거고.”
“네? 다른 군청에서 전화가 올 거라고요?”
“그래.”
이서는 영업도 하지 않은 군청에서 전화가 올 거라는 임건호의 말에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며칠 후 진짜 전라도 담양군에서 연락이 왔고, 강원도 고성군에서도 연락이 왔다.
산청군의 이정모 부장이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고 했다.
“네. 6시 우리 고향에 나온 산청군의 라면처럼 담양군에서도 라면을 만들고 싶으시다구요? 네. 물론 가능합니다. 저희 담당자가 연락을 드릴 수 있게 선생님 성함과 연락처를 알려주시겠습니까? 네네.”
이서는 진짜 마법처럼 다른 군에서 연락이 오자 놀랐다.
“젊은 사람들은 KBC1 채널을 거의 안 보고 ‘6시 우리 고향’이란 프로그램도 있는지조차 모를 거야. 하지만, 어르신들은 매일 꼬박꼬박 챙겨보시거든. 특히나 매일 지방 특산품이나 그런 내용이 방송되니 지자체 공무원들도 무조건 볼 수밖에 없어.”
“역시, 방송이 짱이네요.”
“그래. 나도 친구들이 봤는지 시골에서 뭐하냐고 연락이 오더라. 촌놈 다되었다더라. 이서 네가 너무 리얼하게 잘 꾸며 줬어.”
***
“저게 뭐야? 인천 짜장면?”
인천 시장인 이정복은 새마을운동 협의회 모임에 참석해 식사를 하고 인천 지역 회장단들과 한잔을 하고 있었다.
모임이 2~3시간이 넘어가자 한두 명씩 자리를 뜨는 게 보였는데, 가게 문 앞에서 웬 남자 두 명이 짜장면을 사람들에게 챙겨주고 있었다.
“이정복 시장님. 스타 라면의 이종민입니다.”
“스타라면?”
“네. 해운대 라면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해운대 라면? 아, 그건 들어봤지. 그런데 우리 인천에서도 이렇게 짜장면이 나오는 거야? 처음 들어보는데. 김 보좌관 이거 알고 있었어?”
“저도 처음 봅니다.”
“해운대 라면에 이어 인천 짜장면을 신제품으로 만들어서 반응을 보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종민은 이야길 하면서 보좌관에게 짜장면 10개를 들려줬다.
“해운대 라면이 5천만 개 넘게 판매되며 지역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천 짜장면을 만들어 인천의 명물을 만들어 보고자 이렇게 제안 드립니다.”
이정복 시장에게 사업제안서를 건네었지만, 이 시장은 사업제안서를 받자마자 바로 보좌관에게 넘겨줬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인천에서 짜장면이 유명하긴 하지만, 잘못 잡았어.”
“네? 잘못 잡았다구요?”
“그래. 우리 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생각해서 짜장면을 만들었겠지만, 그게 잘못이야. 이 짜장면을 만들어 팔았다가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집 매출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어? 바로 내가 욕을 들어.”
“시장님, 같은 짜장면이지만, 서로 영향이 없을 겁니다.”
“왜 영향이 없어? 5천 원짜리 짜장면을 먹을 바에는 500원짜리 짜장라면 사서 먹으면 되는 건데. 관광자원이나 마찬가지인 차이나타운 중국집을 위해서라도 우린 이런 짜장면을 못 팔아. 이만 가지.”
옆에 있던 보좌관은 눈치를 보다가 사업제안서와 받았던 짜장 10개를 내려놓고 갔다.
“실장님. 이정복 시장의 말처럼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요.”
“단순하게 보면 이정복 시장의 말처럼 짜장라면이 많이 팔리게 되면 중국집의 매출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어. 하지만, 아무 영향이 없어.”
“그런가요?”
“그래. 김 대리는 모르겠지만, 라면 영업을 하게 된다고 이야길 듣고는 관련된 책이나 기사를 많이 찾아봤었거든. 처음, 용심의 짜파게티가 나왔을 때 이정복 시장의 말처럼 중국집에 큰 타격이 있을 거라고 다들 예상을 했어,”
“그럼 진짜 손해가 났는가요?”
“아니, 전혀. 중국집에 그런 타격은 없었어. 다들 중국집의 짜장면을 짜파게티가 대체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어. 김 대리는 짜파게티가 무슨 맛 같아? 시중에 파는 짜장면 맛 같아?”
“그야 당연히. 아, 아니네요. 맛이 같지가 않네요. 헐. 중국집의 짜장면과 짜파게티 맛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왜 이제 안 거죠?”
김민욱은 생각하다 보니 용심의 짜파게티 맛과 중국집의 짜장면 맛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생각하기에 중국집 짜장면 맛을 봉지 면으로 만든 것이 용심의 짜파게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야. 완전히 다른 맛이야.”
“네. 그런 거 같아요. 뭐랄까. 이 짜파게티 맛이 무슨 맛이냐면...음. 그냥 짜파게티 맛이네요. 헐. 뭔가 짜장면과는 다른데, 이게 무슨 맛인지 설명을 못 하겠어요.”
김민욱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어이없다는 듯이 이야길 했다.
“맞아. 짜파게티는 그냥 짜파게티 맛이니깐. 짜장면의 ‘짜’와 스파게티의 ‘파게티’를 합쳐서 만들었기에 짜장면의 맛도 아니고, 스파게티의 맛도 아닌 거야. 말 그대로 짜파게티의 맛이라는 거지.”
“와! 이걸 몰랐네요. 생각해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네요. 짜파게티나 짜장면의 모양을 참조한 여러 짜장라면은 중국집의 짜장면과는 맛이 다르네요. 그러니 경쟁해야 되는 음식이 아니었어요.”
“그래. 그러니 이정복 시장의 말은 틀렸다는 거지.”
“하지만, 결정권자인 시장이 저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어떻게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저런 케이스는 못 바꿔, 아마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고 바로 앞에서 먹게 해도 인정을 하지 않을 거야.”
“그럼, 영업은 해봤자 소용이 없는 거 아닌가요?”
“소용없다고 일 안 할래?”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바뀔 가능성이 없는 걸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안 되면 되게 하라! 이말 몰라? 이정복 시장이 짜장라면이 팔리면 짜장면이 안 팔릴 거라고 했으니, 먼저 중국집을 찾아보자고. 그리고, 그 중국집을 뚫어서 거기서 인천 짜장면을 팔아 보자고.”
이튿날부터 이종민과 김민욱은 차이나타운의 여러 중국집을 다니며 중국집 내에서 인천 짜장면을 비치해서 파는 것을 영업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하부에서 이루어지는, 발로 움직이는 대면 영업을 김민욱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나, 중국집 사장님들이나 카운터의 직원들은 잡상인 취급을 하며 내쫓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가 제일 스트레스였다.
그런 취급을 받는 게 짜증이 났지만, 이종민 실장은 웃으며 또 찾아가 이야길 하고 하니 이종민 실장을 따라다니는 것 자체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김 대리 재미있지 않아?”
“네? 전 솔직하게 재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엄청 힘듭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영업이 이런 건 줄은 진짜 몰랐습니다. 라면을 들고 찾아가서 파는 건 줄은 진짜 생각도 안 해봤었습니다.”
“허허. 김 대리 그럼, 영업을 뭐라고 생각한 거야? 양복 쫙! 빼입고 가서 앉아서는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는 그게 영업이라고 생각한 거야?”
김민욱은 그 말에 ‘네. 저는 그게 영업이라고 생각하지, 일일이 이렇게 외판원처럼 물건 팔러 다니는 게 영업일 줄은 몰랐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쉽고 폼나는 영업만 하려고 하는 놈이라고 욕을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김 대리. 이런 굽신거리는 영업이 정말 없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게 정말 재미있는 거야. 이걸, 게임이라고 생각해봐.”